좀 거창하게 이야기를 꺼내자면 문명이 발전하면서 인류는 이전에 얻지 못했던 감각을 얻게 된다. 특히 시각은 기술 발전에 따라 숨가쁘게 새로운 각도를 얻고 있다. 망원경과 현미경, 고속 촬영과 저속 촬영은 물론 흑백 이미지 같은 간단한 것들마저도 사람 고유의 감각에는 없었던 것들이다.

기술이 선사하는 새로운 시각을 어찌 할리우드가 탐내지 않으랴. 새로운 이미지들은 이내 할리우드 영화로 흡수된다. 때로는 할리우드 영화에서 상상해낸 이미지들이 실제 기술로 구현되는 경우도 있다.

상상과 기술의 최전선, 할리우드

ⓒ US Army/Touch St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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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루카스가 'ILM사'를 만들어 할리우드 특수효과를 한 단계 진화시키고, 스티브 잡스가 '픽사'를 만들어 디지털 애니메이션이라는 새로운 형식을 할리우드에 공급한 것처럼 새로운 이미지를 찾는데 있어서 할리우드는 상상과 기술의 최전선이다.

1991년 걸프전을 TV로 지켜 본 사람들은 미군이 제작하고 CNN이 배급한 새로운 영상 자극을 경험했다. 목표물을 정확히 찾아 공격한다는 스마트 미사일이 전송하는 거친 흑백 영상은 십자선을 조준하며 목표물을 향해 내리 치닫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이제 사람들은 거실에 편안히 앉아 미사일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최후를 맞이하는 광경을 바로 그 미사일 시점에서 체험하게 되었다. 전쟁을 전자오락처럼 느끼게 한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보는 이들을 TV 앞에 끌어다 앉히는 힘이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이렇게 자극적인 미사일 1인칭 시점을 할리우드가 흡수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진주만>(2001)에서는 진주만 공습 당시 일본군이 떨어뜨리는 폭탄 장면에서 걸프전 미사일의 1인칭 시점에 기댄다. 구식 폭탄을 실감나게 묘사하기 위해 최신식 미사일을 모방한 셈이다.

카메라의 발전으로 '초고속'의 세계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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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슬로우 모션이라 부르는 고속 촬영은 중요한 장면을 강조할 때 쓰인다. 실제 생활에서 주관적인 감정에 따라 시간이 더디게도 느껴지고 빠르게도 느껴지지만 대략 인간이란 실시간, 정속에 갇혀있다. 고속이나 저속으로 촬영하는 간단한 카메라 조작만으로도 시간을 늘리거나 압축하는 새로운 시각이 열린다.

카메라 기술이 발전하면서 초고속 세계가 열렸다. 초고속 카메라는 지금까지 우리가 알지 못했던 세계를 보게 해 주는데 예전에 우유 선전에도 쓰였던 '왕관현상'이 그 작은 예다. 초고속 카메라나 전자 현미경 같은 첨단 장비가 보여 주는 이미지들은 이런 기계가 없던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결코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다.

<매트릭스>(1999)를 대표하는 총알 피하는 장면은 '플로우 모션'이라는 새로운 기법을 도입한 것이지만 그 바탕을 초고속 카메라가 보여준 이미지에서 찾기도 한다. 날아가는 총알을 본다는 것은 일반적인 고속 촬영으로는 불가능하고 적어도 초당 24000 프레임은 찍을 수 있는 초고속 카메라로 가능하기 때문이다.

건강 검진을 해본 사람은 사람 몸을 들여다보는 다양한 방법을 경험해 봤을 것이다. 일반적인 엑스레이만 해도 우리야 흔하게 여기지만 이것 역시 방사선을 모르던 시대 사람들에겐 상상도 할 수 없던 세계일 것이다. CT, MRI, PET를 비롯한 다양한 촬영법이 보다 정밀한 영상을 제공한다. 이 외에도 내시경처럼 직접 들여다보는 방법과 초음파도 있다.

쉴 새 없이 새로운 기술 나오지만 '유통기한' 짧은 게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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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이 발달해서 사람 몸을 속속들이 들여다보는 것도 같지만 위장 뒤에 있어 엑스레이 찍기 어렵다는 췌장이나 중간쯤에 있어서 내시경 넣기가 곤란하다는 십이지장처럼 여전히 진단하기 곤란한 곳들이 있으니 아직 갈 길이 멀다.

요즘은 캡슐에 내시경을 넣기도 하고 미래에는 나노 로봇을 들여보내 진단은 물론 수술까지 한다고 하니 단위가 조금 틀리긴 했지만 축소한 잠수함을 타고 사람 몸속에 들어가 수술을 한다는 <마이크로 결사대>(1966)를 떠올리게 된다.

걸프전을 배경으로 한 독특한 영화 <쓰리킹즈>(1999)에서 총에 맞은 동료 몸에 귀를 대고 소리를 들어 보는 장면이 있다. 폐를 맞았는지 소리로 확인한 뒤 응급처치를 하려는 것인데 말로 때우고 넘어가기엔 아쉬웠는지 카메라가 아예 배 속으로 들어가서 내장을 시원하게 보여 준다.

잘 만든 모형으로 이 장면을 찍은 감독이 기자들에게 살아있는 동물 배를 갈라 촬영했다고 농담했다가 구설수에 올랐을 정도로 당시만 해도 실감나고 충격적인 영상으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이내 할리우드 기본기로 자리 잡았고 < CSI 수사대 >같은 곳에선 컴퓨터 그래픽을 남발하며 너무 많이 보여준 탓에 벌써 물릴 지경이다.

과학과 기술을 빌어 새로운 영상을 쉴 새 없이 흡수하는 할리우드지만 유통기한이 갈수록 짧아지고 있다는 것이 고민거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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