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에서 가장 체격이 좋은 정혜선 선수가 쓰러졌다. 오랫동안 일어나지 못하는 걸 보니, 상대 선수와 심하게 부딪친 모양이다. 신 코치가 링크 위로 달려나간다. 한달 전 중동중학교와의 연습 경기 때는 볼 수 없었던 광경. 16일, 태릉 실내 빙상장. 성인 남성으로 구성된 동호회 팀의 덩치는 중학생들의 그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오늘은 이길 수 있어요."
시합이 시작되기 전, 신 코치와 선수들 모두 자신감을 보였다. 스코어는 1:0, 대표팀의 리드. 생각보다 많은 골이 터지지 않고 있다. 선수 대기실에서 어깨를 주무르고 있던 정 선수가 벌떡 일어난다.

"꺄- 언니! 멋져, 멋져!"
드디어 추가골이 터졌다. 그런데 선수들의 환호가 종전과는 다르다. 골을 성공시킨 황현정 선수에게 쏟아지는 축하 세례. 이영우 주장의 목소리도 들린다. "야, 고기 먹으러 가자. 언니! 꽃등심 쏴야지!". 황 선수가 첫골을 터뜨리면 지키기로 했던 약속이다.

이제 2:0, 너무 들떴을까? 대표팀의 위기. 골키퍼와 퍽을 몰고 달려드는 선수 사이에 아무도 없다. 순간, 스틱을 길게 뻗으며, 몸을 날리는 2번 선수. 선취골을 성공시킨 황보영 선수다. 이날 황보 선수는 현란한 드리블과 능숙한 스케이팅으로, 머리 하나 더 큰 남자들 사이를 종횡무진 누비고 다녔다.


▲ 황보영 선수 ⓒ 이원영
황보영 선수(23세)는 대표팀에서 단연 눈에 띄는 실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제 그녀에게 아이스하키는 자신의 손톱과 같다.

"처음에는 안 간다고 했어요. 얼마나 싫었는지, 바로 밑 남동생과 함께 외갓집으로 도망갔을 정도니까요. 그랬더니, 부모님이 그러시더라구요. 정말 여기 남을 거냐. 그럼, 두 번 다시 못본다구요."

1997년 11월, 그녀는 북한을 떠나기 싫었다. 아이스하키를 시작한 지 5년만에 가슴에 단 인공기. 꿈같은 국가종합팀(국가대표)생활을 1년밖에 하지 못했다.

"북한에서는 여기처럼 인기 종목이다, 비인기종목이다 하는 구분이 별 의미가 없어요. 비록, 국제대회 등에서 좋은 성적이 기대되지 않더라도, 혜택은 똑같이 돌아가죠. 게다가 국가 대표가 된다는 것은 곧 성공을 의미해요. 장비는 물론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이 나와요. 따로 돈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그러나, 북한에서 나온 뒤에는 아무런 희망이 없었다. 1년 6개월 동안의 중국 생활, 무국적자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다시 아이스하키 스틱을 찾기 시작한 것은 1999년 4월.

"얼마 동안 저를 담당하는 경찰이 있었어요. 그분께 정말 귀찮을 정도로 졸랐죠. 어떻게 하면 아이스하키를 할 수 있냐구요. 그래서 남자 동호회에 들어갔다가, 여자 대표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러나, 그녀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현실이 가로막았다. 아무런 수당도 없고, 어떤 미래도 보장돼 있지 않은 국가대표팀. 그것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유니폼, 츄리닝, 장비, 식비 등 아무런 지원이 없다는 사실만은 도저히 수긍할 수 없었다.

ⓒ 이원영
"북한에서 운동할 때가 백 배, 천 배 더 좋았어요. 장비는 물론 목도리, 심지어는 속옷까지 나왔으니까요."

대표팀이 새로 구성된 것은 2000년 11월. 당장 대표팀은 150만 원 정도가 필요했다. 새롭게 합류한 선수들이 대표팀으로 승인을 받기 위한 신체검사 비용. 손 벌릴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결국 그녀는 신체검사비 전액을 혼자서 지불해 버리고 만다.

"하루라도 빨리 대표팀이란 허락을 받고 싶었어요. 그리고 고등학교 애들도 있는데, 결국 집에다 손 벌릴 게 뻔했구요. 결국 자본주의에서 한 발짝이라도 움직이면 다 돈이잖아요. 그런데도 알아서 운동하고, 알아서 먹으라는 게 이해가 안 갔어요."

간신히 가슴에 달게 된 태극마크. 그러나, 이번에는 가족의 반대에 부딪쳤다. 특히 북한에서 운동할 때 전폭적으로 지지해주던 아버지가 가장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딱 한번 보러 오셨어요. 초등학교와의 경기였는데, 여러 가지 상황을 보시고 무척 실망스러우셨나봐요. 남는 게 뭐가 있니, 돈이나 벌어 빨리 시집이나 가라. 요새는 집에 들어가기가 싫을 정도예요."

ⓒ 이원영

'남는 게 뭔가 있다'는 것을 보여야 하지만, 현실은 그리 만만치 않다. 대부분 동료 선수들이 아이스하키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고, 그나마 낮에는 모두 직장이나 학교에 가야 한다. 그녀가 생각하는 국가대표의 운동량에는 턱없이 모자란다.

그래서일까. 북한에서 운동하던 생각이 자꾸 난다. 하루 평균 10km를 달릴 때, 입에서 나던 단내음. 매달 반복되던 '지표측검'이란 체력 테스트를 위해, 쉴새없이 흘려야 했던 땀방울.

"물론 힘들었어요. 하지만 성취감은 맛볼 수 있었죠. 지금 생각하면, 그때가 좋았던 것 같아요. 같이 뛰던 동료들 생각도 나요. 어떻게들 변했을까..."

ⓒ 이원영
빠르면 내년 1월. 북한이 동계 아시안 게임에 출전한다면, 그녀의 궁금증은 풀릴 수도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러한 '해후'가 두렵기도 하다. 이제 태극기를 가슴에 단 자신을 예전의 동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바꾸고 싶어한다. 차라리 아무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했으면 하는 '순진한' 발상.

갑갑한 현실. 그녀를 위로해주는 것은 드라마다. 어쩌다 놓친 드라마는 재방송이라도 꼭 봐야 직성이 풀린다고. 사랑도 잘하고, 자신의 일도 척척 잘해내는 드라마 주인공들.

"북한에 있을 때는 몸매나 화장에 신경 쓰지 않았어요. 겨울에 크림이라도 바르고 다니면, 화장한다고 수군댈 정도니까요. 그런데, 여기 오니까 그게 아니더라구요. 다들 날씬한 여자를 좋아하잖아요. 저도 살 빼고 싶어요. 이 팔뚝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에요."

하지만 아이스하키란 운동을 그만둔다면 모를까, 그렇게 할 수는 없다. 스피드와 힘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운동한 만큼 먹어야 한다.

"아무래도 내년 아시안 게임 때까지는 살 빼는 거 포기해야겠어요."

쾌활하게 웃으며 얼굴을 감싸쥐는 손. 하얀 매니큐어를 바른 손톱이 눈에 띈다. 맘대로 날씬해질 수도 없는 억울함(?)을 손톱을 기르며 보상받고 있는 건 아닌지. "스틱을 다루다 잘못하면 손톱 꺾인다니까", 신 코치가 손톱 검사를 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손톱만은 진짜 못 깎겠어요. 코치님께 손톱 깎으면 손에 힘이 안 들어간다고 막 우겨요."

ⓒ 이원영
아이스하키 스틱을 꽉 쥐어야 하는 글러브. 그 안에 감춰진 손톱은 왠지 어울리지 않는다. 혹시 지금 그녀는 무척이나 혼란스러운 것이 아닐까. 차라리 스틱을 놔버린다면, 오히려 무난하게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버지의 바람처럼. 왜 그렇게 하지 않는 걸까.

"빙판 위에 서 있다는 거. 그 자체가 너무 좋아요."

그리고 한가지 이유가 더 있다. 그녀의 꿈은 여자 아이스하키 지도자가 되는 것. 북한에서부터 간직해온 소망을 계속 이어나가고 싶은 것이다.

그렇다면, 그 누구보다도 손톱을 깎고 싶은 사람은 그녀 자신인지도 모른다. 'KOREA 마크'가 선명한 츄리닝이라도 받을 수 있다면, 그녀의 혼란스러움은 훨씬 줄어들지 않을까. 대한민국 여자 아이스하키 국가대표 황보영 선수. 그녀가 달고 싶어하는 등번호는 16번이다.

덧붙이는 글 | '스포츠와 사람들'
우리 감독님은 매일 숙제 검사해요
운동장에 설 수 없는 야구부원 우영이
우리 사장님은 여자 아이스하키 선수
장윤창 배구스쿨은 너무 재미있다
16강 들면 뭐합니까?
"형들이 심부름도 안시키고 참 좋아요"
"아름답게 살고 싶다면 달리세요"
8평 자료실이 간직한 한국 축구
"스포츠신문은 스포츠만 다루자"

2002-01-25 11:52 ⓒ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스포츠와 사람들'
우리 감독님은 매일 숙제 검사해요
운동장에 설 수 없는 야구부원 우영이
우리 사장님은 여자 아이스하키 선수
장윤창 배구스쿨은 너무 재미있다
16강 들면 뭐합니까?
"형들이 심부름도 안시키고 참 좋아요"
"아름답게 살고 싶다면 달리세요"
8평 자료실이 간직한 한국 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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