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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극장' 제작진이 24년 동안 지켜온 방송 철칙 '한 가지'

[장수프로] KBS 1TV <인간극장>

24.04.14 19:06최종업데이트24.04.29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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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 25주년 '인간극장' 방송 25주년을 맞은 KBS 1TV <인간극장>의 타임프로덕션 한성순 팀장, 제3비전 조창근 팀장, KBS 김영선 PD가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하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2000년 5월 1일 첫 방송된 KBS <인간극장>은 그 이후 24년째 꾸준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KBS의 대표 휴먼 다큐멘터리다. 무기수로 복역하다가 6박 7일간 휴가를 나온 모범수들의 이야기를 담은 '어느 특별한 휴가, 귀휴' 편을 시작으로, 제주 바다와 65년 동안 함께한 '해녀 김옥자' 편, 영화 <맨발의 기봉이>의 원전이 된 '맨발의 기봉씨' 편, 어려운 환경에도 따뜻한 가족애를 보여준 '흥부네 11남매' 편 등 <인간극장>은 수많은 우리 이웃들의 거칠고 치열한 삶을 밀착 취재하며 안방극장에 감동과 공감을 전했다.

특히 방송 시작을 알리는 오프닝 음악과 정감 넘치는 내레이션은 누구나 <인간극장>을 떠올릴 수 있을 만큼 익숙한 것이기도 하다. 24년 동안 매일 아침 7시 50분에 한결같이 시청자들과 함께한 <인간극장>만의 힘이다. 지난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본관에서 KBS 김영선 프로듀서와 타임프로덕션 한성순 팀장, 제3비전의 조창근 팀장을 만났다.

<인간극장>은 격주로 타임프로덕션과 제3비전이 외주 제작을 맡고 있고, 김영선 프로듀서가 이를 조율하는 전체 프로듀싱을 담당하고 있다. 특히 한성순, 조창근 팀장은 <인간극장> 제작 초창기부터 함께한 사이로, <인간극장>의 역사에 대해서는 물론 시시콜콜하고 정감 넘치는 에피소드들까지 꿰고 있는 인물들이다. 

2000년 프로그램에 합류했다는 한성순 팀장은 <인간극장>에 대해 "내 삶과 분리해서 말할 수 없는 프로그램"이라고 말했다. 그는 "프로그램이 흘러가듯 저 역시 성장해 왔다. 서른 살에 연출을 시작해서 서른둘에 결혼하고, 서른셋에 아이 낳고, 서른다섯에 아이 낳고 아직도 이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며 웃었다. 2002년부터 조연출을 맡았다는 조창근 팀장 역시 "저도 총각일 때 시작했는데 결혼하고 아이를 갖고 나니 그때와 출연자들, 프로그램을 보는 시선이 많이 달라졌다고 느낀다. 인간에 대해 더 많이 공감하게 되고 출연자들에게 많이 배우고 있다"고 전했다.
 

ⓒ 최주혜

 
24년 동안 변함없이 우리 곁을 지켜온 <인간극장>이지만, 길었던 세월 만큼이나 제작 현장의 풍경은 많이도 달라졌다. 최근까지도 현장에서 연출을 담당한 조 팀장은 당시를 추억하며 "6mm 카메라로 촬영했던 옛날 시스템이 더 좋았던 것 같기도 하다. 언젠가 촬영을 했는데 파일이 통째로 날아간 적이 있다. 6mm 시절엔 테이프가 손상되면, 앞뒤를 조금 잘라내고 붙여서 새로 만들 수 있었거든. 그렇지만 HD 카메라로 바뀐 지금은 그게 안 되지. 며칠 동안 찍은 게 날아가버리기도 한다. 그러면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한성순 팀장 역시 "그때는 테이프를 데크에 넣고 재생하면서 작가들이 수기로 프리뷰어(영상을 텍스트로 옮기는 일)를 했다. 지금은 프리뷰어의 영역이 따로 있지만, 그땐 막내 작가에 메인 작가까지 다같이 손으로 적었다. 원고도 이메일로 주고받는 게 아니라 손으로 써서 타이핑을 하고 그걸 직접 들고 더빙실까지 뛰어 올라가야 했다"고 말했다. 이어 한 팀장은 당시엔 출연자 섭외를 위해 어디로든 무작정 떠났다고 회상했다.

"꼭 해보고 싶은 아이템이 노부부였다. 2004년이었는데 노부부를 찾기 위해 저, 조연출, 막내작가, 카메라 감독까지 넷이서 강원도를 2박3일 동안 훑었다. 여기 가면 이런 분이 있다더라, 어느 동네 맨 끝집에 가면 어떤 분이 산다더라. 도서관에서 찾은 이 정도 정보만 가지고 가서 온 동네를 다 돌아다녀 보는 것이다. 그러다 120년 된 귀틀집에 사는 80대 노부부를 만났다. 그게 참 기억에 많이 남는다. 그땐 무작정 떠나는 게 당연했다. 신안에 1000여 개 섬이 있으면 우리가 이번에 일정상 갈 수 있는 섬이 어디까지인지 계산해서 무작정 갔다. 그때는 이런 휴먼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뭐든 아이템이 됐다. 요즘은 이미 다른 방송에서 다룬 게 너무 많지 않나. 그런 부분에선 옛날이 좋았지."(한성순 팀장)

50여 명의 제작진이 힘을 쏟다
 

KBS 1TV <인간극장> 현장 스틸 이미지. ⓒ KBS

 
<인간극장>은 PD 10명, 메인 작가 7명, 조연출 7명, 취재 작가 7명, 카메라 감독 등을 모두 포함해 약 50여 명의 제작진이 만드는 프로그램이다. 이들이 모두 매주 방송되는 분량을 제작하는 것은 아니다. 조창근 팀장은 "주 5일 방송되는데, PD, 작가 1명씩, 조연출, 취재작가, 카메라 1명, 제작팀장까지 모두 포함해서 6명이 한 주간의 방송을 제작한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짜인 팀이 하나의 에피소드를 완성하기까지 총 10주 정도의 시간이 걸린단다. 한성순 팀장은 "출연자를 물색하고 섭외를 결정하기까지 3주, 촬영 3주, 후반 작업 2.5주, 그리고 마지막 1.5주는 출연자 A/S 기간이라고 부른다. 출연자와 제작진이 그동안 밀착해 있었으니, 방송 끝나고 회포를 푸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면 10주가 된다. 그리고 또다시 (다음 편을) 시작한다"고 덧붙였다.

제작진은 21일 정도 출연자와 함께 먹고, 자고, 동고동락하며 촬영하는데 하루이틀 차에 찍은 영상은 거의 방송에 쓰지 않는다고. 조 팀장은 "첫날에는 촬영조차 하지 않을 때도 많다. 계속 촬영만 하는 게 아니라 출연자와 대화를 많이 나누는 편이다. 첫째 주는 (아직 서로 낯설어서) 서먹서먹 하다. 2주 차쯤 점점 가까워지는데 이때 출연자와 제작진간 힘 겨루기가 생기기도 한다. 그러다 3주 차에는 엄청 가까운 사이가 된다. 그때쯤이면 한 배를 탄 것이나 다름없다"고 귀띔했다. 촬영 기간 동안에도 오늘 무엇을 찍을지 거의 정해놓지 않고 그저 출연자의 일상을 함께하면서 지낼 때가 더 많단다.

"아침에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오늘 뭐할 거예요?' 슥 물어본다. '오늘 애 데리고 어디 가봐야 하는데 그런 것도 따라갈 거예요?'라고 하시면, '일단 가보죠 뭐. 같이 가요' 하고 슬렁슬렁 따라가는 것이다. 그렇게 찍다 보면 뭐가 나오고. 식사도 같이 하고 잠도 같이 자니까. 카메라 내려놓고 같이 밥 먹다가도 아까 촬영할 때랑 다른 새로운 얘기가 나오면 숟가락 놓고 또 카메라를 든다. 그게 <인간극장>의 문법이 됐다." (한성순 팀장)

매일 붙어있었다 보니, 촬영이 끝나고 나면 허전함을 느끼는 출연자들도 적지 않다. 조창근 팀장은 어느 출연자로부터 갑자기 걸려왔던 전화가 기억에 남는다고 고백했다. 

"촬영이 모두 끝나고 방송은 나가기 전이었다. 갑자기 전화가 와서, 아내분이 '우리 신랑 울고 난리였다'고 하시더라. 염전을 운영하는 출연자였는데, 염전은 주변이 뻥 트여있지 않나. 염전을 밀려고 길목을 걸어가다가, '이 사람들이 나한테 인터뷰를 할 때가 됐는데 왜 아무 말도 안 시키지?' 생각을 한 거다. '조 PD 뭐하고 있지?' 하고 뒤를 돌아봤는데 아무도 없었지. 촬영에 너무 익숙해져서 순간적으로 착각한 것이다. 텅 빈 염전을 보니 너무 외로워서 눈물이 주룩주룩 났다고 하더라. 아내분은 점심을 챙겨서 함께 밥을 먹으러 갔는데, 갑자기 신랑이 우니까 깜짝 놀라셔서 전화를 하셨다. 그 얘기를 전화로 듣는 데 뭉클하더라. 단순히 출연자와 제작진 관계가 아니라 촬영이 끝나도 형님, 누님이라고 부르며 지낼 정도로 가까워진다." (조창근 팀장)

유일무이한 연작 다큐멘터리
 

KBS 1TV <인간극장> 현장 스틸 이미지. 이날 제작진은 육아와 촬영을 거의 함께 했다는 후문이다. ⓒ KBS

 
<인간극장>이 돌풍을 일으킨 이후, SBS <휴먼스토리 여자> 등 비슷한 다큐멘터리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20년 전과 달리 '휴머니즘'이라는 말이 어색해진 시대지만 <인간극장>은 유일무이한 연작 다큐멘터리로 우리 곁에 남아 있다. 시청률 역시 7%를 웃도는 수준으로(닐슨코리아 전국 기준) OTT, 유튜브가 대세인 시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훌륭한 성적이다.

<인간극장>이 아직까지 시청자들의 사랑받을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김영선 프로듀서는 공식 홈페이지에 쓰인 기획 의도 '평범한 사람들의 특별한 이야기, 특별한 사람들의 평범한 이야기'를 언급하며, 이 말 만큼 <인간극장>을 잘 표현해주는 말은 없다고 강조했다.

"모든 사람의 삶에는 드라마가 있다. 평범해 보이는 사람이라도 그 삶을 깊숙이 들여다보면 각자의 사연, 아픔, 희로애락이 있다. 최근 '별난 여자 김선씨' 편을 보면서 그걸 느꼈는데 SNS에서는 독특한 모습만 보여주는 분이었다. 그런데 우리 카메라가 한꺼풀 벗기고 들어가니, 그 사람의 깊은 이야기를 끌어냈다. 아주 가끔 연예인이 나오기도 하지만, 화려하게 사는 사람들도 우리처럼 희로애락을 겪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나. 그래서 사람들이 <인간극장>을 좋아하는 것 같다. 저 사람들도 우리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구나. 공감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게 우리 프로그램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김영선 프로듀서)

그럼에도 TV를 보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인간극장> 제작진 역시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다. 주 시청자층이 장년층, 노년층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도 김영선 프로듀서는 "휴먼 다큐멘터리는 세대를 떠나서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는 코드가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요즘 젊은 친구들도 유튜브 등을 통해 <인간극장>에 대해 알고 있더라. 최근 화제가 됐던 '나는 선생님과 결혼했다' 편은 젊은 층도 많이 봤다. 저희도 소재도 다양하게 하려고 하고 젊은 세대 출연자들을 찾는 등 노력하고 있다. 길이도 30분 정도라, 젊은층이 보기도 편한 콘텐츠이지 않나. 꼭 실시간으로 보지 않더라도, 두고두고 볼 수 있는 콘텐츠이길 바란다"고 말했다.
 

▲ 방송 25주년 '인간극장' 방송 25주년을 맞은 KBS 1TV <인간극장>의 제3비전 조창근 팀장, KBS 김영선 PD, 타임프로덕션 한성순 팀장이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하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그동안 <인간극장>에 출연한 사람들만 해도 1000명이 훌쩍 넘는다. 더이상 새로울 게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인간극장>이 앞으로도 계속 방송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김영선 프로듀서는 "저도 처음에는 놀랐다. 어떻게 24년 동안 끊임없이 새로운 사람을 찾을 수 있었을까. 누가 '사람은 계속 태어나고 또 늙는다'고 하더라. 평범한 사람들의 특별한 이야기를 담는다는, 다큐멘터리의 본령을 지킨다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국민소득 3만 불을 넘어서면 더이상 <인간극장>은 방송하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한 적도 있다. 우리가 영미, 서구권처럼 잘 살게 되면 남의 문지방을 아무렇지 않게 넘어서 촬영할 수 있을까 걱정했다. 하지만 3만 불을 넘어섰지만 여전히 방송하고 있지 않나. 한국만의 특수성이 있는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한다. 저는 <인간극장>에 출연해주시는 모든 분들을 진심으로 존경한다. 저는 제 삶을 누가 와서 보겠다고 하면, 감추고 싶은 부분도 많다. 하지만 그 분들은 '나는 떳떳하게 살았는데 왜. 내가 도둑질을 했어, 뭘 했어'라며 자신을 탁 펼쳐 보이는데, 그 순간이 굉장히 멋있다. 그런 분들이 계속 있는 한 <인간극장>은 계속될 수 있지 않을까." (한성순 팀장)
인간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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