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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녀에서 루이15세의 여자가 된 여인... 끝은 잔혹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 690] <잔 뒤 바리>

24.04.14 10:14최종업데이트24.04.14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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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저를 중심으로 온 세상이 돌아간다고 믿는다. 부모며 형제, 온갖 물건들이 제 생각처럼 움직이지 않는단 걸, 또 그와 저 자신이 이어지지 않은 별개의 존재란 걸 아이들이 차츰 배워나간다. 그 과정에 수많은 좌절과 울음이 따르는 건 당연한 일, 그것이 멈추는 날 우리는 성장 또한 멈추었다고 말한다.
 
성장이 멈추었다 해서 모두 성숙한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때로는 그보다 많은 이들이 저를 중심으로 사고하는 버릇을 고치지 못한다. 오로지 남들보다 뛰어난 지성과 겸손한 성품을 가진 이만이 역지사지의 자세를, 내가 아닌 남의 입장에서 사고하는 방법을 조금씩 익혀나갈 뿐이다.
 
일상에서도 그러할진대 시대를 건너 역사를 바라보면 실패는 훨씬 두드러진다. 오늘의 잣대로 어제를, 이곳의 시각으로 저곳을 재단하는 일이 세상엔 너무나 많이 벌어지는 것이다. 징기스칸이며 알렉산더, 나폴레옹 같은 이들이 살인광에 불과한 취급을 받는다거나 카이사르를 독재자로, 공자를 남성우월주의자 쯤으로 여기는 태도가 그와 같다.
 

▲ 잔 뒤 바리 포스터 ⓒ 태양미디어그룹

 
잔 뒤 바리가 입은 순백의 드레스
 
웨딩드레스를 생각해보자. 오늘날 한국인은 순백의 드레스를 우아하고 고결하다 여기며 결혼식의 상징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과연 몇 세기 전 유럽, 문명의 중심이라 자부하던 프랑스 파리 베르사유 궁전에선 어떠했을까. 새하얀 옷이란 외투 안에나 입는 속옷으로 치부되고 감히 그를 바깥으로 꺼내어 입으면 천박하다는 소리를 들었을 테다. 아닌 게 아니라 18세기 중엽 베르사유 궁전에서 실제 있었던 이야기라 전해지는데, 이를 담아낸 영화 한 편이 한국에 개봉했다.
 
드레스를 입은 건 훗날 잔 뒤 바리로 알려지는 잔느 보베르니에다. 평민, 즉 가난한 재봉사의 아이로 태어나 귀족들을 대상으로 한 창녀로 지내다가 마침내 루이 15세의 정부가 되었던 여인 잔 뒤 바리의 일대기 <잔 뒤 바리>가 한 편의 작품으로 만들어졌다. 미국 사회를 들끓게 한 엠버 허드와의 지난한 소송전 뒤 조니 뎁의 복귀작으로 화제가 된 영화로, 제76회 칸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돼 눈길을 끌기도 했다.
 
1743년생인 잔느(마이웬 분)는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다. 어머니는 저를 제대로 보살피지 않지만 저를 그래도 신경 써 준 주인댁의 배려로 어려서 수녀원에 들어가 예의와 배움을 얻는다. 당시 평민계급 여성이란 온종일 노동에서 해방되지 못하고 조금만 예쁜 외모를 가졌다면 성적 대상이 되는 경우가 다반사, 이를 막기 위해 그녀를 수녀원에 보내었던 것이다.
 
창녀에서 루이 15세의 여인이 된 여자
 

▲ 잔 뒤 바리 스틸컷 ⓒ 태양미디어그룹

 
그러나 수녀원에서 잔느는 엄격한 종교의례보다는 자유분방한 지식에 호감을 갖는다. 문학, 그중에서도 자극적인 내용이 잔뜩 등장하는 연애소설이 특별히 그녀의 구미를 당긴다. 마침내 이런 태도가 문제가 되어 수녀원에서 쫓겨나게 되지만 재기발랄하고 교양도 풍부해진 그녀에겐 도리어 기회의 장이 열린 것이나 다름없다.
 
영화는 가난한 평민의 신분을 벗어날 수 없는 잔느가 스스로 고급창녀가 되기를 선택하는 과정, 뒤 바리 백작과 만나고 마침내 루이 15세(조니 뎁 분)의 눈에 드는 모습을 약간의 상상력을 더해 스크린 위로 옮겨낸다. 잔 뒤 바리란 이름을 얻은 그녀는 종일 노동하는 평민의 삶을 원치 않았고 종일 제가 좋아하는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지내기를 꿈꾼다. 그러나 어디 평민에게 그런 기회가 주어질 수 있을까. 그럴 바엔 부유하고 지체 높은 이들과 몸을 섞으며 자유와 부유한 삶을 얻겠다는 게 그녀의 계획이다.
 
마침 상류층을 대상으로 매춘을 알선하던 뒤 바리 백작(멜빌 푸포 분)의 눈에 그녀가 들었고, 그녀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 밑에서 일류 창녀로 거듭난다. 그녀의 미모와 지성이 사교계에 알려지며 차츰 정부 대신들까지 고객으로 맞이할 정도가 되자, 뒤 바리 백작은 그녀를 국왕 앞에 선보이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그녀를 한 번 본 것만으로 루이 15세는 그녀를 궁으로 불러들인다. 그에 앞서 잔 뒤 바리가 평민이 아닌 뒤 바리 백작의 아내 신분으로 세탁된 건 물론이다.
 
베르사유 궁 안에서 벌어진 치졸한 따돌림
 

▲ 잔 뒤 바리 스틸컷 ⓒ 태양미디어그룹

 
당대 최고의 미남자로 불렸고, 왕성하게 미녀들을 거두었던 루이 15세다. 태양왕 루이 14세와 단두대에서 목이 잘린 루이 16세 사이에서 프랑스의 전성기와 쇠퇴기를 함께 겪어낸 파란만장한 왕이다. 잔 뒤 바리는 루이 15세의 길었던 치세기 후반을 함께 한 여자로, 과중한 업무와 숨 막히는 질서에 얽매여 고단하게 살았던 그에게 휴식이 되어준 이다. 거리 출신 여성다운 자유분방함이 마음에 들었던 왕은 그녀를 거두어서 베르사유 궁에 살도록 하는데, 창녀 출신으로 하루아침에 왕의 정부가 된 여인을 왕실 여자들이 손 놓고 받아들일 리가 만무한 일이다.
 
절대권력자의 총애를 받았으니 뭇 여성에게 선망을 받는 것도 자연스런 일이다. 궁중 격식에 맞지 않는 자유로움은 도리어 매력으로 퍼져나간다. 그녀가 즐겨 입던 줄무늬 드레스며 남장하는 패션이 모두 파리 시내에서 유행이 된다. 왕가 여자들과 힘겨루기를 할 때는 순백의 드레스를 입고 궁정 안을 오갔는데, 사내들은 그에 매혹되고 여성들은 속옷에나 쓰는 색을 겉에 드러낸 그녀를 천박하게 여겼다는 설이 있을 정도다.
 
영화는 그를 에피소드로 적절이 버무리는 한편, 왕가 여인들이 잔 뒤 바리를 시기하고 괴롭히는 모습을 중점적으로 잡아낸다. 왜 아닐까. 왕에겐 정략결혼을 한 왕비가 있고, 또 그녀를 둘러싼 왕실 여자들과 귀부인들이 있는 것이다. 그녀가 있기 전 역시 평민 출신으로 왕의 정부가 되어 국정을 농단했단 평가를 받은 저 유명한 퐁파두르 후작부인의 사례가 떠올랐기 때문일 수도 있었을 테다. 왕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왕가 여자들이 대놓고 잔 뒤 바리를 무시하고 모욕하는 일이 거듭 벌어지니 산전수전 다 겪은 그녀라도 상처를 받을 밖에 없는 일이다.
 
영화는 마치 여학교에서 벌어지는 학교폭력을 보듯, 왕궁 여자들이 교묘한 방식으로 잔 뒤 바리를 따돌리는 모습을 잡아낸다. 예배당에서 자리를 내어주지 않거나, 먼저 말을 걸지 않아 격식 있는 행사에서 아무 말도 할 수 없게끔 무안을 주는 식으로 괴롭힘이 이어진다. 보다 못한 사내들이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려 나서보아도 그럴수록 수렁에 빠져드는 건 잔 뒤 바리일 뿐이다. 여성 무리에서 소외된 여성이 다른 어느 곳에도 섞일 수 없는 당대의 상황은 당시 여성의 지위가 어떠했는지를 역으로 부각한다.
 
누가 그녀에게 돌을 던질 수 있으랴
 

▲ 잔 뒤 바리 스틸컷 ⓒ 태양미디어그룹

 
왕세자빈인 마리 앙투아네트(폴린 폴만 분)가 베르샤유 궁에 들어온 뒤 괴롭힘은 한 결 더 심해진다. 영화는 잔 뒤 바리와 그녀를 괴롭히는 것들, 그럼에도 그녀가 왕궁을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을 차근히 풀어낸다. 마치 위인전 뒤에 실린 연대기를 보듯 탄생부터 성장, 성취와 고난, 비극적 최후까지를 차례대로 묘사하는 작품이다. 보잘 것 없는 창녀와 국왕의 신뢰를 받는 최고의 여인 사이의 엄청난 괴리를, 또 그와 같은 일이 얼마든지 현실일 수 있었던 당대 프랑스의 모순적 풍경이 이 영화 가운데 그려진다.
 
직접 주연까지 맡은 마이웬은 유독 잔 뒤 바리에게 관심이 깊었던 모양, 프랑스 혁명 뒤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그녀의 비운을 애틋하게 바라본다. 기실 혁명 뒤 처형된 이 가운데 잔 뒤 바리만큼 억울한 이도 많지는 않을 테다. 평민 출신이어서 더욱 계급의 배신자란 오명을 써야 했던 그녀, 그러나 그녀가 오늘의 세상에 태어났다면 예쁜 외모와 지성, 우아한 취향으로 전혀 다른 삶을 살았을지 모를 일이다.
 
어느 사학자의 눈에는 국정을 농단하는 여성이고, 또 어느 호사가의 눈에는 힘든 일을 기피하려 쉬운 길을 선택한 허영 많은 여자였을 잔 뒤 바리. 그러나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저를 돈벌이로만 대했던 어머니 아래 자랐으며 종일 노동하다 죽는 삶을 피하여 주체적으로 선택한 길이 곧 그녀의 삶이 되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자유롭고 우아하고 싶었던 그녀가 유일하게 꿈을 이룰 수 있는 방편으로 찾은 길이 창녀였다는 사실은, 또 지극히 좁은 길을 지나 왕의 정부가 되어서도 겹겹이 쌓인 고통을 당해야 했다는 점은 그저 무시되어서만은 안 되는 이야기가 아닐까. 마이웬과 조니 뎁에게 그러했듯 한 발짝만 곁에서 바라보면 그림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일이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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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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