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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 한잔하실 건가요? 이게 최고입니다

[추석 기획 - 술과 함께] 술을 부르는 영화들

23.10.02 12:38최종업데이트23.10.02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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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간의 긴 추석 연휴, 가족과 함께 혹은 혼자 한잔하며 재충전할 시간을 계획하고 계신가요? 이때 보면 좋을 콘텐츠들을 소개합니다.[편집자말]
인류에게는 오랜 친구가 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아프고 지칠 때나, 환호성을 지를 때나. 우리 옆에는 언제나 술이 있었다. 도를 지나쳐서 마시지만 않는다면, 그가 다정하고 충실하며 공감을 많이 해주는 친구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영화를 볼 때도 마찬가지다. 각양각색의 술과 함께라면 영화의 감동과 즐거움이 배가 되는 건 당연한 일. 

'주님(酒님)'과 함께할 때 더 빠르게 시간을 녹여주는 영화를 만나보자. 

#1. <어나더 라운드> 보드카 손을 잡고 춤추자
 

영화 <어나더 라운드> 스틸컷 ⓒ (주)엣나인필름

 
가끔 이런 순간이 있다. 최선을 다해서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좀처럼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을 때가. 그렇다고 남을 붙잡고 하소연하자니 내가 너무 작아 보이는 날이. 이 순간을 마주한 모든 이에게 위로를 한 잔 건네는 영화가 있다.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장편영화상 수상작이자 매즈 미켈슨과 토마스 빈터버그 감독이 합을 맞춘 <어나더 라운드>다. 

고등학교 역사 교사인 '마르틴(매즈 미켈슨)'. 그는 삶에 의욕을 잃은 채 표류 중이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삶의 이유를 찾지 못한다. 어느 날, 그는 친구들과 한 가지 결심을 한다. 매일 조금씩의 술을 마셔보면서 일상이 어떻게 변하는지 살펴보기로. 

그는 극적인 변화를 겪는다. 우선 가족을 되찾는다. 가족과 함께 저녁 식사를 즐기고, 다 함께 여행을 떠난다. 매력 없는 남편, 따분한 아빠는 이제 없다. 열정도 되살아난다. 수업진도를 기억 못 하고, 시험 문제도 제대로 못 내던 마르틴. 그는 실험적인 강의로 학생들에게 역사에 대한 흥미를 심어주는 데 성공한다.   

물론 알코올 중독자가 되자는 건 아니다. 꼭 술은 아니더라도, 사그라든 열정을 되살릴 불쏘시개를 찾아보자는 게 <어나더 라운드>의 진심일 테니. 그래도 마르틴처럼 보드카 한 잔을 마시며 그 진심을 되새기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터. 냉동고에서 차갑게 식힌 보드카 한 잔이면 마르틴에게 보드카가 왜 '생명의 물(지즈데냐 바다, Жизденя вода)'이었는지는 체감할 수 있다. 

#2. <미드나잇 인 파리> 방구석 파리 여행, 와인 한 잔의 로망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스틸컷. ⓒ (주)엔케이컨텐츠

 
명절을 보내는 모습은 나날이 달라진다. 가족, 친척이 모여 차례를 지내거나 성묘를 가는 모습은 점점 사라진다. 대신 공항을 향해 달려가는 이들은 많아진다. 이번 추석처럼 징검다리 연휴라면 인천공항 터미널에는 발 디딜 곳을 찾기 어렵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예외가 있는 법. 남들 다 가는 해외여행을 각자의 이유로 떠나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그렇다고 너무 우울할 필요는 없다. 그런 우리를 위해 우디 앨런이 준비한 선물이 있다. 언제 봐도 파리 증후군에 걸리기 충분한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가 바로 그 추석 선물이다. 

<미드나잇 인 파리>를 처음 봤을 때 감탄을 안 할 수 없었다. 그 어떤 작품보다도 분위기에 취할 수 있는 영화였기 때문. 오프닝을 가득 채운 파리의 명소와 거리를 보면 파리 여행의 첫날이 절로 떠올랐다. 에펠탑을 바라보며 와인을 곁들인 저녁 식사, 에펠탑 너머로 떨어지는 석양, 센 강을 따라 걷던 파리의 밤까지.

그러니 <미드나잇 인 파리>와 함께 할 친구는 정해져 있다. 두말할 필요 없이 와인이다. 아마 와인 종류는 중요하지 않을 거다. 어떤 와인을 마시든 이미 그 풍미와 향기에 푹 빠진 후일테니. 

#3. <킹스맨 : 시크릿 에이전트> 기네스와 함께라면 나도 스파이
 

영화 <킹스맨 : 시크릿 에이전트> 스틸컷.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지인에게 가끔 듣는 질문이 있다. "넌 영화가 왜 그렇게 좋니?" 가능한 답이 많은 질문이다. 하지만 단순하게 답하자니 애매하고 어려운 질문이기도 하다. 그럴 때 손쉽게 꺼낼 수 있는 답안이 있다. "2시간만큼은 내가 주인공이 될 수 있으니까!" 매튜 본 감독의 <킹스맨 : 시크릿 에이전트>와 기네스 한 잔은 이 로망을 충족시키는 지름길이다. 

<킹스맨> 하면 떠오르는 명장면은 두 개다. 펍에서 에그시를 괴롭히는 불량배를 해리가 손보는 장면과 밸런타인이 실험 장소로 점찍은 교회에서 해리가 모든 신도를 경쾌하게 죽여버리는 순간. 두 시퀀스의 공통점은 하나다. (에그시에게는 미안하지만) 바로 해리가 주인공이라는 점. 그냥 주인공도 아니다. 기깔나게 섹시하고 중후한 스파이 주인공이다. 그러니 콜린 퍼스처럼 되고 싶다는 로망이 생기는 것도 당연하다. 

특히 너무나도 간편한 방법이 있는 이상 이를 외면하는 것도 예의는 아니다. 집 앞 편의점에서 기네스 한 캔만 사 오면 2시간 동안 콜린 퍼스에 빙의할 수 있으니. 다만 한 가지 조심하자. 캔을 따자마자 기네스를 마시지 말 것. 500ml 잔을 옆에 두고, 맥주 색깔이 검은색으로 변할 충분한 시간을 준 뒤 음미하자. 해리가 깡패를 손 봐준 다음 남은 기네스를 깔끔하게 마시는 그 순간에. 

#4. <리틀 포레스트> 술이 뭣이 중헌디, 안주가 맛나면 그만이지
 

영화 <리틀 포레스트> 스틸컷.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술을 먹을 때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단짝이 있다. 바로 안주다. 안주만 맛있다면 무슨 술을 마셔도 혀가 즐거워할 테니까. 이런 맥락에서 볼 때마다 없던 입맛도 돌고, 안 땡기던 술도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임순례 감독의 <리틀 포레스트>다. 

김치수제비, 배추전, 떡볶이, 양배추전, 곶감, 쑥갓 튀김... '혜원'(김태리)의 손끝에서 피어난 수많은 제철 음식은 식욕을 자극한다. 무엇보다도 힐링에 최적화된 음식이라 어떤 술과 먹어도 만족스럽다. 혜원처럼 편의점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다가, 코를 찌르는 인공적인 화학품 냄새 때문에 도시락 밥을 뱉은 경험이 있다면 더더욱. 

일상에 치이고 목표에 매몰된 채로 여유를 잃은 이들에게 정성 가득 들인 혜원의 음식은 보는 것만으로도 맛있고 배부르다. 그 음식에 어떤 술이 됐든 어울리는 조합을 골라 보면 그 어떤 힐링보다 값진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래도 작중 최애 조합을 뽑자면 역시 양배추전(오꼬노미야끼)일 것. 어떤 술과 먹어도 최고의 범용성을 자랑하는 찰떡궁합 안주가 아닐까 싶다. 마음도 편안해지고, 혀도 편안해지는 그런 2시간을 즐길 수 있을 테니까. 물론 혜원, '재하'(류준열), '은숙'(진기주)처럼 친구, 가족과 함께 막걸리에 곁들이면서 추억을 곱씹으면 더욱 행복할 것이고. 
덧붙이는 글 개인 블로그(https://blog.naver.com/potter1113)와 브런치(https://brunch.co.kr/@potter1113)에 게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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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읽는 하루, KinoDAY의 공간입니다. 서울대학교에서 종교학과 정치경제철학을 공부했고, 지금은 영화와 드라마를 보고, 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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