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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전방위적으로 일어난 미투 운동은 분명 한국 사회를 바꿨다. 아니 바꾸고 있다. 남성 중심 조직 문화의 문제점이 전면에 드러나고, 성폭력에 대한 경각심은 그 어느 때보다도 높다. 성폭력을 조장하거나 묵인하던 남성 주류 문화 역시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압박을 받고 있다. 이는 일종의 '인권 혁명'이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정작 미투 운동을 촉발한 여성들은 발 뻗고 잘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용기 있다', '응원합니다'라는 지지의 목소리는 잠깐이다. 언론과 주변의 관심이 사라질 때부터 폭로자들은 홀로 싸워야 한다. 미투 운동에 참여한 여성들이 계속 잘 살아갈 수 있어야, 미투가 진정으로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오마이뉴스는 2018 '올해의 인물'로 '서지현과 미투 폭로자들'을 선정했다. 그 일환으로, 서지현 검사와 다섯 명의 폭로자들에게 '미투, 그 후'를 물었다.


[서지현] “거미줄과 싸울 게 아니라 그 줄 친 거미를 직시해야"


사진 1ⓒ 이희훈

- 올 초 미투에 나선 이후 삶은 어떻게 달라졌습니까?

"아직 출근을 하지 못하고, 집밖을 거의 나가지 않는다는 것을 빼면 특별히 저 자신이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처음 입을 열기로 결심했을 때, '검사도 변호사도 하지 못할 것이다, 평생 집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삶을 산다고 해도 괜찮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결심과 지금의 제 삶이 그리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


- 미투를 하기 전 예상하거나 걱정했던 것과 다른 점이 있었나요?

"제가 입을 열면 검찰에서는 제 업무능력, 인간관계 등을 음해하고 다른 목적이 있다고 주장할 것이라고 예상했어요. 예상과 너무나 똑같이 음해하고, '인사불만으로 벌인 일이다', '정치 하려고 벌인 일이다'는 주장을 여전히 계속 하고 있어요. 실은 예상과 너무 정확히 똑같아서 처음에는 우습기도 했어요. 이렇게 창의력이 없나 싶기도 하고... 그런데 그런 음해가 너무 효과적으로 작동해서 많은 사람이 그 말을 믿는 것을 보고, 그렇게 구태적인 음해 매뉴얼을 계속 작동시키는 것은 이유가 다 있구나 하는 것을 알았죠."


- 말씀하신 대로 미투 이후 2차 피해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는 또 다른 피해자들을 위축시키는 요인이기도 합니다. 서 검사님도 많은 음해를 받았습니다. 어떻게 극복하고 있으신가요? 
"제가 한 음해를 해명하면 또 다른 음해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결코 빠져 나올 수 없는 거미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빠져 나오려고 몸부림쳐봤자 점점 더 저를 옭아매서 언젠가는 목숨을 앗아가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죠. 그래서 이제는 거미줄과 싸울 것이 아니라, 거미줄을 친 거미를 직시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 그 거미는 누구라고 생각하시나요? 
"작게는 가해자와 검찰, 크게는 이 사회라고 생각해요. 피해자들은 그동안 성폭력 피해로 인해 말할 수 없이 고통을 받았을까요, 아니면 성폭력을 방치하고, 가해자를 두둔하고, 오히려 피해자들을 비난해온 공동체로 인해 입을 열지도 못한 채 고통 속에서 죽어갔을까요? 피해자들을 입을 열 수 없게 만든 것은 그들의 나약함과 두려움 때문이었을까요? 아니면 피해사실을, 진실을 들여다보기보다는, 그들을 꽃뱀, 창녀 등으로 부르며 의심하고 비난해온 이 잔인한 공동체 때문이었을까요?

- 미투에 나설 때 피해자들에게 '피해자의 잘못이 아니다'라고 말해주고 싶다 하셨습니다. 많은 피해자들이 이 말에 용기를 얻었다고 했습니다. 지금은 어떤 말씀을 하고 싶으십니까? 
“'스스로를 사랑하자'는 것이에요. '당신이 최대한의 용기로 생존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당신은 최선을 다한 것이다', '당신은 가해자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그 누구보다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라구요.

 

[남정숙] "의도하지 않은 전사"


사진 2ⓒ 자료사진
"미투 운동은 미(Me)보다는 투(Too)에 방점이 찍혀야 한다" 
서지현 검사의 미투가 있고 사흘 뒤, 남정숙(56) 전 성균관대 교수는 방송 보도를 통해 동료 교수인 이아무개씨로부터 2011년 4월부터 수차례 성추행 피해를 입었다고 털어놓았다. 이아무개씨는 그가 일하던 문화융합대학원의 원장이었다. 이어 2015년 학생 두 명의 투서로 인해 남 전 교수의 성추행 피해가 학내에서 공론화됐지만 이아무개씨는 3개월 정직의 징계만 받으며 학교에 남았다. 
그는 가해자 이아무개씨에게 민사·형사 소송을 제기했고, 둘 다 2심까지 승소한 상태다. 가해자는 강제추행 혐의로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후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정작 남 전 교수는 학교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그는 이제 복직을 위해 해임처분 취소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남 전 교수는 미투 이후 자신이 "의도하지 않은 전사"가 되었다고 밝혔다. 미투 운동에 참여한 많은 이들의 숙명을 설명해주는 말이었다. 

[임희경] "정상" 


사진 3ⓒ 연합뉴스
"저 자신에게 그 질문을 수십 번 던질 때마다 '당연하다'는 답밖에 안 나왔다. 그 행동에 따라서 오는 불이익, 그게 비정상인 것이다." 
김해 A경찰서 소속 임희경(46) 경위는 지난해 4월 지구대에서 함께 일하던 후배 여경이 팀 남자 선배로부터 상습적 성추행·성희롱을 당하는 것을 알게 됐고 경찰 내부에 신고하는 데 도움을 줬다. 가해자 김 경사는 감봉 1개월을 당하고 다른 경찰서로 떠났지만 문제는 그 이후부터였다. 가해자를 두둔하는 사람들의 모욕적인 말부터 신고 2개월 만에 다른 경남 지역 B 경찰서로 전출까지 2차 피해가 이어졌다. 결국 플래카드를 들고 1인시위를 한 뒤에야 감찰이 이뤄졌고 임 경위에게 2차 피해를 입힌 7명이 징계를 받게 됐으며, 임 경위는 원래 있던 김해 A경찰서로 돌아갔다. 
임 경위는 "제가 목소리를 내고 나서야 내가 정상임을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지는 미투 운동에 대해선 "제 개인의 케이스인 줄만 알았다, 그런데 알고보니 대한민국 전체의 문제였다"라며 "사회 구성원들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예진] "용기" 


사진 4ⓒ 세바시
올 3월 오예진(23)씨는 서울 용화여고 졸업생 4명과 함께 용화여고성폭력뿌리뽑기위원회를 만들어 재학·졸업생을 대상으로 교사들의 성폭력에 대한 설문을 받아, 결과를 '국민 청원 게시판'에 올리고 언론에 알렸다. 졸업생들이 성폭력 고발에 나섰다는 사실을 알게 된 재학생들은 노란색 포스트잇으로 창문에 'Me too', 'With You'등을 붙이며 호응했다. 지금껏 총 69개 학교가 참여한 것으로 추정되는 '스쿨 미투'의 시작이었다. 스쿨 미투 결과, 용화여고에선 18명의 교사가 징계받았다. 
오씨는 미투 이후에 자신이 '용기'가 됐다고 말한다. 재학생들에게, 또 학교에서 성폭력 피해를 입는 이들에게 자신의 존재가 용기가 됐고, 그 용기를 받아 나선 이들이 또 다른 사람들의 용기가 됐다는 것이다. 그는 "다시 이런 일이 내게 생기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직장이든 어디든 바로 말할 수 있다는 용기가 생겼다"고 털어놓았다. 

[이예린] "열심히" 


사진 5ⓒ 김성인
지난해 4월, 건국대 철학과에 재학 중이었던 이예린(22)씨는 학술답사를 갔다가 성추행 피해를 입었다. 그는 피해 사실을 바로 과에 알렸고, 가해자인 선배는 퇴학이라는 징계 처분을 받았다. 그걸로 끝인 줄 알았다. 이씨는 퇴학 처분 사실을 듣고 형사 고소에 대해서는 합의하자고 마음 먹고 처벌불원서를 작성했다. 처벌불원서가 받아들여져 가해자는 성범죄 예방교육 이수를 조건으로 기소 유예 처분을 받았다. 
그러나 가해자는 오히려 지난해 8월 건국대를 상대로 징계처분 무효 확인 소송을 걸어 다시 학교로 돌아오려고 시도했다. 다행히 지난 7월 1심 재판부는 퇴학 처분이 정당했다고 선고했다. 
이씨는 미투 이후 "열심히 살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대학 내에서 스토킹 사건이 발생했어요, 예전 같으면 이렇게까지 피해자 분의 편에서 열심히 뛰지 않았을 거예요"라며 "그때 저를 도와준 사람들이 가슴에 남아 있어서..."라고 덧붙였다. 

[최영미] "재판이 끝나야..." 


사진 5ⓒ 연합뉴스
최영미(57) 시인은 <황해문화> 2017년 겨울호에 발표한 '괴물'이라는 시를 통해 1994년경 종로구 술집에서 목격한 고은 시인의 성추행을 고발했다. 그의 폭로 이후 문단 내에서 고은 시인의 성추행을 목격했다는 미투가 이어졌다. 
그러나 지난 7월 고은 시인은 최영미 시인과 언론사 등을 상대로 총 10억 7천만 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미투 운동과 함께 하는 시민행동은 "자신의 위법행위를 덮고 피해자를 공격하는 2차 피해의 전형"이라고 성명을 발표했다. 이렇듯 고은 시인을 비난하는 여론은 거셌으나 소송은 취하되지 않았고, 지난 14일 서울중앙지법에서 네 번째 공판이 진행됐다. 
최 시인은 "재판 중이라 길게 말하기는 조심스럽다"며 말을 아꼈다. 

최 시인뿐만 아니라 미투 운동에 참여한 많은 폭로자들이 현재 법정을 오가고 있다. 그 과정에서 피고인의 발언이 그대로 기사화되며 2차 피해를 입는 경우도 있고, 가짜 미투로 몰리기까지 한다. 심지어 가해자가 무혐의 처분을 받거나 재판을 거쳐 무죄를 선고받기라도 하면, 피해자에겐 으레 '꽃뱀'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성폭력 증언 자체를 거짓말로 치부해 버리는 것이다. 또 한편에서는 최 시인처럼 역으로 민·형사상 고소를 당하며 심리적·경제적 압박을 받는 경우도 있다. 
한국 사회는 과연 피해를 폭로해도 괜찮은 사회일까? 미투를 밑거름 삼아 제도와 시스템을 변화시킬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미투 그 후'를 지켜봐야 할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