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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야하라!" 시민들 사이에 태극기 '비선실세' 최순실 국정농단에 분노한 수만명의 시민들이 지난 10월 29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박근혜 하야"를 촉구하는 촛불집회를 마친 뒤 경찰 저지선을 뚫고 청와대를 향해 행진하고 있다.ⓒ 권우성

이른 추위가 닥쳤던 지난 10월 22일 토요일, 일군의 대학생들과 시민들은 자정이 넘도록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박근혜 퇴진"을 외치고 있었다. 서울 광화문에서 울려 퍼진 "박근혜 퇴진"의 함성을 경찰들이 막아섰고, <오마이TV>는 그 장면을 생중계했으며, 박 대통령의 지속된 무능에 분노하고 국정농단 사태를 감지한 국민들은 댓글 창을 폭발시키며 동참하는 중이었다.


그날, 416연대는 '세월호 참사, 진실을 인양하라'는 토크 문화제를 이어갔고, 일찌감치 목소리를 냈던 블랙리스트 예술가들이 동참했으며, 박근혜 대통령에 분노한 시민들과 학생들이 참여하고 있었다. 2016 민중총궐기투쟁본부 역시 사드배치 저지 전국 100개 촛불집회로 광화문의 이른 촛불에 동참했다. 앞선 10월 19일, JTBC <뉴스룸>이 "최순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박 대통령의 연설문을 고치는 일"이라는 고영태 전 더블루K 이사의 발언을 보도하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의혹에 불씨를 확 댕긴 시점이었다.


제1차 촛불집회가 있기 1주일 전인 그 시점에서 '1000만 촛불'이 타오르리라고 예상한 국민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며칠 후인 25일, 전날 밤 JTBC의 태블릿PC 보도에 1차로 항복(?)한 박근혜 대통령이 1차 대국민사과를 발표하면서 분위기는 급반전됐다. 경찰들의 기세가 등등했던 광화문광장을 분노한 시민들이 가득 메웠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집회 이후 광범위한 시민들이 참여한 '촛불'이 점화됐다. 1000만 촛불의 서막과 출발은 그렇게 극적이었다.


'기세등등' 경찰 물러가고, 촛불시민의 무대가 된 광장

▲ '박근혜 퇴진 위한 청와대 행진' 지난 12월 3일 오후 서울 광화문일대에서 열린 '촛불의 선전포고-박근혜 즉각 퇴진의 날 6차 범국민행동'에서 수많은 시민들이 청와대를 향해 행진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그 이후, 8차 촛불집회까지 개근을 했고 9차 촛불집회는 오마이TV 생중계로 지켜봤다. 11월 5일, 고 백남기 농민 영결식에 참석한 시민들이 그대로 범국민대회까지 합류하는 광경은 실로 감동적이었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었고, 교복을 입은 학생들은 특히 고마웠으며, 유모차 속 아이까지 함께한 가족 단위 참가자들은 특히 눈에 띄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박근혜는 하야하라"는 구호가 더 익숙했다.


이후로 꼬박 두 달, 온 국민들이 알고 있는 그대로다. 분노한 민심과 민의의 촛불이 광장을 점령했고, 정치권을 추동했으며, 대통령과 청와대, 언론과 검찰, 재벌을 압박했다. 국민들의 요구는 '하야'에서 '퇴진'으로, 다시 '구속'으로 번져갔다. 그리하여, 탄핵소추안 국회통과를 이끌어낸 것도, '최순실 게이트' 국회 청문회의 결정적 장면을 연출한 것도, 뚜벅뚜벅 제 갈 길을 가고 있는 특검에 힘을 실어 준 것도, 오롯이 촛불이었다.


한편으로 광장은 갈수록 성숙해져 갔다. '강요된 평화', '비폭력 프레임'에 갇힌 평화시위가 아닌 폭력을 동원하지 않아도 국민적 요구를 국회에, 법원에, 언론에 전달할 수 있는 힘과 저력을 갖춰갔다. 온·오프라인이, 세대가, 계층이 결합됐다. 오로지 불통의 대통령, 몸과 마음이 아파 보이는 대통령만이 청와대 관저라는 구중궁궐에서 구속을 피하기 위해 꼼수를 부리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 '1000만 촛불광장'은 대한민국 역사의 기록적인 한 페이지로 남을 것이다. 비단 외신이 주목한 "전무후무한 한국의 집회 문화"여서가 아니다. 1987년의 광장이, 2008년의 촛불이 다 하지 못한 평화, 비폭력 시위를 완성했고, 1000만 촛불시민들의 구체적이고 광범위한 사회 변혁의 요구를 대통령 탄핵과 조기대선, 개혁입법 등 헌법적, 정치적 절차로 이행해 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촛불시민은 "헌법적 권리 주체로서의 시민"으로 재탄생했고, 전국의 광장은 그 변혁의 무대였다.


우리에게 온 절체절명의 기회


▲ "세월호 7시간 단 한명도 안 구한 박근혜 구속수사하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이후 첫 주말 7차 촛불집회가 열린 지난 12월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수많은 시민들이 모여 박 대통령의구속과 세월호참사 진상규명을 요구고 있다.ⓒ 유성호

2008년의 촛불, 그리고 2014년의 세월호 유가족 집회를 막아선 경찰과 2015년 고 백남기 농민을 스러지게 한 물대포를 기어이 기억해 내야 한다. 시민의 승리를 정치권에 헌납한 '87년 체제'를 넘어, 시기적으로 광장의 촛불을 정치사회적 변화로 이끌어내지 못했던 '명박산성'의 벽을 넘어, 박근혜 정부의 광폭한 탄압을 끝내고, 그 변혁의 무대를, 시민혁명을, 촛불혁명을 이어가야 한다.


"이제 시작이다"라는 다짐과 외침이, 2016년 12월 31일 "송박영신(박근혜를 보내고 새로운 해를 맞이한다)"의 촛불은 그래서 더 없이 소중하고 중요하다. 아직 완수해낼 과제가 산적해 있다. 이를 테면, 이번 촛불정국으로 '세월호 7시간'이라는 상징적 실체를 전 국민이 알게 됐다면, 세월호 특조위의 재건과 조속한 인양이 선결 과제로 남게 됐다. 사회 전반에 드리워진, 우리 앞에 놓인 산적한 과제들이 모두 그러하다.


'헬조선'에서 벗어나기 위한, 구의역에서, 강남역에서, 진도 앞바다에서 목숨을 잃는 젊은이들이 구하기 위한, 그리하여 불평등과 경제적 빈곤과 차별이 만연했던 한국사회를 개혁하기 위해 촛불시민이 이뤄낸 절체절명의 기회를 잃을 순 없다. 아니, 잃어서는 안 된다.


이제 그 권력이 광장의 촛불로부터,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엄중한 사실을 '1000만 촛불시민'들이 깨달았고, 2016년은 그 거대한 힘을 제대로 세력화한 첫번째 '역사의 장'으로 남게 됐다. 촛불시민들은 이제 그 자각을 안고, 촛불을 들고선 정치권을, 공권력을, 언론을, 재벌을 직접 압박하고 있다. 촛불시민이, 촛불광장이 이룩한 새 비전이다.


개인적으로도, 2017년을 '1000만 촛불시민'으로 함께 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었다. 곧 2017년 정유년 새해가 밝는다. 2017년은 너와 나, 우리가 함께 살아내기 위한 어제와 다른 오늘이 되어야 할 것이다. 훗날 우리의 아이들이 2017년은 어떤 해였냐고 물었을 때, "대한민국을 국민의 손으로 새롭게 다시 만든 해였다"고 말해 줄 수 있도록.


▲ 박근혜 퇴진 광화문광장은 산 교육장 지난 11월 26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퇴진 5차 범국민행동에서 촛불을 든 한 어린이가 연설과 공연을 지켜보고 있다.ⓒ 이정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