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기에 앞서

한국과 미국의 월드컵 경기가 몰고 온 흥분이 어느 정도 진정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 역시 이곳 텍사스에서 새벽 4시까지 잠 설쳐가면서 응원의 물결에 동참했었지요. 시작 전부터 여러 가지 면에서 많은 주목을 끌었던 경기인지라, 경기가 끝난 후에 한국내의 분위기가 궁금해 인터넷신문들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다 이곳 미국 신문들을 읽으면서, '한·미전'의 다른 당사자인 미국과 관련한 이야기들을 소개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우선, 제가 한국 인터넷신문에서 읽지 못한 내용을 중심으로 소개할까 합니다. 어쩌면 다들 알고 계신 내용인데 제가 미처 알지 못했기 때문에 뒷북을 칠지도 모르겠습니다. 제 편견을 간간이 섞어 아무런 순서없이 편히 쓸테니, 그저 뒷 이야기를 듣는다는 기분으로 가볍게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1

한국과 미국의 경기가 미국 내에 생중계 되었을까요? 케이블 방송에서는 스포츠 전문방송인 '이에스피엔(ESPN)'과 공중파 방송에서는 히스패닉 방송인 '유니비젼(UNIVISION)'에서 생중계를 하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미국 내 공중파 가운데 영어채널에서는 월드컵 경기 자체를 중계하지 않기 때문에 저 역시 유니비젼의 스패니시 해설을 곁들여 가며 시청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스패니시를 못하는 관계로, 전 경기를 통틀어 제가 알아들었던 것은 '코레아'와 '꼬올'이라는 두 단어였습니다. 목청 좋은 아나운서는 골이 들어갈 때마다 최소한 3분 정도는 쉬지 않고 "꼬올-------"이라고 외치더군요.

2

그렇다면 미국 신문들은 어땠을까요? 월드컵이 세계인의 축제라고는 하지만 미국 내에서의 의미와 비중은 좀 다른 것 같습니다. 야구의 MLB, 풋볼의 NFL, 농구의 NBA 등 이른바 미국인들의 주된 관심사와 거리가 멀다는 것은 신문을 봐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전국지인 '유에스에이 투데이(USA TODAY)' 오늘자 신문을 보니 스포츠 섹션 맨 뒷부분에서 월드컵 소식을 다루고 있더군요. 제가 사는 이 지역의 지방지인 '달라스 모닝뉴스(Dallas Morning News)'나 '스타-텔레그램(Star-Telegram)'에서도 월드컵을 계속해서 특집으로 보도하고 있지만, 야구, 농구, 미식축구, 대학팀 경기 등의 주 종목을 제외한 '기타 경기(Other Sports)'에 속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국의 경기이기 때문에 이번 '한·미전'이 그들에게도 관심사인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얼마나 많은 미국인들이 관심을 기울이고 있느냐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지만 말입니다.

3

많은 분들이 공감하실테지만, 제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안정환 선수의 골 뒷풀이(세리모니)였습니다. 아마 미국 사람들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는지, 어느 신문에서든지 안정환의 동점골 기사 후에는 뒷풀이 소식과 함께 그 의미를 밝혀 놓았더군요. 지난 동계올림픽의 1500미터 쇼트트랙 결승에서 김동성 선수의 실격과 그 결과 아폴로 안톤 오노가 금메달을 딴 사건을 의미한다는.

그러면 이에 대한 미국선수들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황선홍을 과잉방어하며 넘어뜨려 우리 팀에게 페널티킥 기회를 주었던 '제프 아구스'는 그 장면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나중에 듣고서는 "참 재밌다(pretty funny)"고 말했는가 하면, 미국 팀의 주장인 '클라우디오 레이나'는 "우리에게는 그렇지 않았지만 그(김동성 실격) 사건이 그들 마음속에 있었나보다"면서 "내 생각에 그들이 그(김동성)에게 (골 세리모니를) 바친 것 같은데 참 멋지다(that's nice)"고 했더군요.

경기장 분위기에 대해서는 골키퍼인 '브래드 프리델'이 "참 좋은 분위기였다(It was a great atmosphere)"면서 한국에 온 이래 줄곧 한국인들이 매우 다정하게 대해주었고 전혀 적대적이지 않았다고 덧붙였더군요. 반미감정으로부터 미국 팀을 보호하느라(?) 고생한 당국자가 들으면 기쁠지 아니면 허탈할지 모르겠지만, 미국신문과의 인터뷰이니 만큼 솔직한 심정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4

'클린트 매티스' 선수 기억하시나요? 미국 팀에서 골을 넣은 선수라는 설명보다 로마병정 투구와 같은 헤어스타일을 한 선수라고 하면 금방 떠오를지도 모르겠군요. 미국신문에서는 '모호크 형의 머리를 한(the Mohawk-coifed)' 매티스라고 부르더군요. 즉, 북미인디언의 한 종족인 모호크족 스타일의 머리를 했다는 것인데, 그의 룸메이트인 '파블로 마스트로에니'의 도움으로 자른 것 같다고 골키퍼 '브래드 프리델'이 한마디 했더군요.

5

마지막으로 약간 허탈할지도 모르는 소식입니다. 경기 전에 대다수의 미국선수들은 호텔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LA 레이커스와 뉴저지 네츠의 NBA(미 프로농구) 결승 3차전 중계를 봤다고 합니다. 현재 미국 내 스포츠 경기 가운데 가장 큰 관심사이기는 하지만, 한국 선수들은 대 미국전에 대한 부담으로 땀을 흘리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시간에 경기시작 3시간 전까지 농구시합을 봤다니 조금은 맥이 빠지는군요.

나오면서

시합 후 가진 '브루스 어리나' 미국 감독의 인터뷰를 관통하는 한마디는 어쨌거나 "기쁘다"였던 것 같습니다. 어찌보면, 홈팀의 이점을 가진 한국팀에 전반적으로 수세에 몰리기까지 한 경기를 비겼으니 다른 결과는 다 접어 두고라도 기쁜 것은 사실일 테지요.

대부분의 관객들이 붉은 옷을 입고 압도적인 응원을 펼치고, 대략 100만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이곳저곳에서 모여 함께 응원하며, 선수와 감독 등이 대 미국전에 대한 부담을 잔뜩 안았던 것에 비하면 그들은 너무도 가벼워보였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려 미국 신문들을 훑어보고 나니, 무찌를 적을 앞에 두고 '돌격 앞으로'를 외치며 나갔는데 경기가 종료되고 적에게서 "잘 싸웠다"는 가벼운 악수를 받은 그런 묘한 기분이 조금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제 골을 먹고도 위축되지 않고 당당한 경기를 펼친 선수들에게서, 골을 넣고 격정적인 순간에 멋진 골 뒷풀이를 보여진 선수들에게서, 이제는 어느 정도 승리에 대한 과도한 불안감이나 답답한 마음들이 해소되지 않았습니까?

이기지 못해 상심하신 분이거나 비겨서 허탈하신 분들, 이제 훌훌 털고 시합을 즐겨보면 어떨까요? 경기는 이겨야 맛이고 승리는 쟁취해야 기분이지만, '승리'라는 거대하고 유일한 목표에 '재미'라는 작고 소박한 개인기를 덧붙여 봅시다.

비록 태극기 휘날리며 경기장에서 소리치지 않더라도, 빨간 셔츠에 붉은 악마 띠를 구하지 못했어도, 함께 하는 마음이면 축구라는 스포츠를 기쁘게 즐기는 마음이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덧붙이는 글 | 한국의 16강 진출을 기원하며~
대-한민국, 짜~자작짝짝~
(근데, 이렇게 하는 것 맞나요? 글로만 봤더니 말로는 어떻게 따라해야 하는지 모르겠네요. ^^;)

2002-06-11 16:40 ⓒ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한국의 16강 진출을 기원하며~
대-한민국, 짜~자작짝짝~
(근데, 이렇게 하는 것 맞나요? 글로만 봤더니 말로는 어떻게 따라해야 하는지 모르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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