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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19일. 덕성여대 학생들은 이날 오전, 오후 두차례에 걸쳐 발생했던 교직원들의 학생폭력에 대한 사과를 4시간만에 받아냈다. ⓒ 오마이뉴스 김미선


"여기 덕성여대인데요, 지금 교직원들이 학생들을 때리고 있어요."
4월19일 오후 7시. 덕성여대의 한 학생에게서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학생들이 교직원들에게 맞다니, 또인가?' "재단퇴진"을 요구하며 학내분규 중인 덕성여대는 올해 들어 2월15일, 3월29일 등 두 차례에 걸쳐 교직원들의 학생폭행이 빚어졌던 곳이다.

게다가 덕성여대는 동아일보 17일자가 1면과 3면에서 "학내분규는 과격학생들탓"으로 보도하면서 예로 든 학교로 이 학교의 학생-교수들은 동아일보측에 왜곡편파보도 시정을 요구하고 있는 상태였다.

<관련기사>
- 동아일보 4월17일자 3면 왜곡편파 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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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성여대 두 교수 "동아는 창간정신을 바꿔라"


취재진이 도착한 시각은 오후 8시30분. 덕성여대 정문앞 상가도로에 "박원국(재단이사장-편집자주)의 하수인, 교직원들 각성하라" "폭행 교직원 사과하라"는 등의 구호가 울려퍼지고 있다. 둥글게 원을 그리며 앉아 있는 2백여 명의 학생들. 그 한가운데에 10여 명의 교직원들이 학생들에 의해 포위돼 있었다.

동영상 보기 - "사과해"라는 학생들의 외침1 / 김미선 기자


오전, 오후에 걸친 직원들의 폭행

학생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날 덕성여대에서는 오전, 오후 두 차례에 걸쳐 교직원과 학생들간에 마찰이 빚어졌다. 18일부터 시작된 학생들의 수업거부, 3월29일부터 시작된 학생들의 행정동 점거, 행정동 앞에서 설치된 교수들의 천막에 대해 학교측이 문제를 삼고 나왔기 때문.

학생들은 16, 17일 양일간 총투표를 거쳐 18일부터 수업거부에 돌입한 상태다. 이들은 수업거부에 돌입하면서 대부분의 강의실에 있는 의자를 대강의동에 쌓아두었다. 첫 번째 마찰은 19일 새벽 교직원들이 대강의동 의자를 빼내면서 빚어졌다.

양기숙(심리학 2) 양은 "아침 8시50분경 대강의실 문을 막아놓았던 책상을 교직원들이 빼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갔다. 학생들 10여명이 대강의동 안으로 들어가려 하자 강의실 안에서 직원들이 못들어오게 밀었고, 강의실 밖에 있던 직원들도 학생들을 뜯어내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학생과장에게 밀려 넘어졌다"고 당시의 상황을 전했다.

학생들은 또 "대다수의 교직원들이 이 과정에서 의자를 휘두르고 폭행을 가했다"며 "한 학생은 한 직원으로부터 뺨을 맞고 안경이 벗겨졌다"고 주장했다.

▲ 4월19일 오후 6시경 교직원들에 의해 철거된 교수농성천막. ⓒ 오마이뉴스 김미선
두 번째 마찰은 오후 6시경부터 시작됐다. 행정동 앞에 설치된 교수들의 농성천막을 15명의 교직원들이 철거하는 것을 보고, 학생들이 이를 말리다가 폭행을 당했다는 것이다.

철거 당시 교직원들은 손에 목장갑을 낀 채 양손에 각목을 들고 있었으며, 직원들의 이런 폭행과정은 주변 건물 안팎에 있던 다수의 학생들에게 목격됐다. 이 과정에서 한 직원은 카메라를 든 한 여학생을 밀쳐내고 쓰러진 학생을 끌고 가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도서관, 전산실, 기숙사에 있던 학생들이 하나둘씩 천막철거의 현장으로 몰려들었으며, 이들은 폭행에 가담한 교직원들에게 사과를 요구하며 교문 밖으로 진출했다.

"사과"를 받아내기까지 4시간의 외침

빙 둘러앉은 학생들과 그 안에 갇힌 교직원들의 모습은 위와 같은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다. 오후 9시. 이들이 '사과' 공방을 벌이기 시작한 지도 이미 1시간 가량이 지난 상태다. 학생들은 교직원들에게 "학생들을 폭행한 것에 대해 사과하면 보내주겠다"면서 사과를 요구하고 있으며, 교직원들은 "마찰과정에서 있었던 일이지 폭행이 아니다"라며 이에 응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교직원들의 발언은 3시간 동안 조금씩 바뀌어갔다.

동영상 보기 - 폭행현장을 목격한 학생의 증언 / 김미선 기자


[19일 오후 9시] 교직원들, "폭행한 적 없다"

▲ 폭행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는 학생들 앞에선 교직원들. ⓒ 오마이뉴스 김미선

"교직원분들 빨리 사과하고 집으로 돌아가십시오"
김나영 총학생회장(정치학 97)의 말에 교직원들은 팔짱만 끼고 있을 뿐, 답이 없다. 최병완 학생과장은 학생들대신 몰려든 취재진을 향해 "학생들을 때린 적이 없다"고 적극적으로 항변했다.

- 천막은 왜 철거했는가.
"학생들이 행정동을 추가점거했기 때문이다. 더 이상 행정을 할 수 없을 정도의 상황이었기 때문에 총장의 특별지시에 의해 교수들의 천막부터 철거했다."
- 천막을 철거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이 교직원들로부터 폭행을 당했다고 하던데, 학생들은 지금 직원들의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폭행을 안했는데 무슨 사과냐. 어느 부분에 대한 사과를 하라는 것인가."

9시37분. 한 남자가 책임자급인 변종수 사무처장에게 다가와 "폭행한 것이 밝혀지면 사과하겠다고 말해라"라는 등 학생들에게 할 수 있는 말을 일러주고 돌아갔다. 이를 곁에서 지켜본 한 학생은 "변 사무처장과 대화한 사람은 북부경찰서 형사다"라고 기자에게 귀띔했다.

학생들 앞에선 변 사무처장. 그는 조금 전 그 남자가 일러준 것과 거의 흡사한 내용으로 학생들에게 말했다.

1. 사과에 대해서는 행정동 점거를 해제하면 하겠다.
2. 학생들은 빨리 집에 가자고 말하고 있는데 교직원들은 점거농성을 하는 학생들 때문에 집에도 못가고 있다. 직원들은 여기에서 나가도 다시 학교로 돌아갈 것이다.
3. 그리고 폭력을 당했다고 하는데 폭력당했다는 것을 증명하라.

동영상 보기 - 변종수 사무처장의 거짓말 / 김미선 기자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는 게 그렇게 어렵나"라는 학생들의 야유가 이어졌고, 대열 속에 있던 한 여학생이 앞으로 나와 자신이 본 상황을 말하기 시작했다. 이어지는 목격자들의 증언.

"오후 6시경 학생들의 비명소리와 함께 애들이 뛰어가는 소리를 듣고 친구와 2명이서 행정동 앞으로 갔다. 이미 철거가 진행되어 트럭에 집기를 담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몸싸움이 벌어졌는데 교직원들이 학생들에게 욕을 하고 밀쳤다. 이 자리에서 교직원들의 폭행이 확실하게 있었다"

"밥먹고 나오는데 천막의자를 던지는 것을 봤다. 변 사무처장이 한 학생의 카메라를 뺏고 얼굴을 쳤다. 하늘색 옷을 입은 여학생이 넘어진 걸 봤는데 이 학생을 잡아 끌고 갔다. 참을 수 없어서..."

"전살실에서 비명소리를 듣고 창밖으로 가보니 교직원 2명이 각목을 들고 있었으며, 한 학생이 카메라를 빼앗기고 맞는 것을 봤다. 직원들은 쓰러진 학생을 끌고 갔다.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학생들이 그 장면을 목격했다. 더 이상 전산실에 있을 수가 없어서 학생들과 함께 전산실을 나오다가 사무처장을 발견했다. 사과를 받으려고 그의 팔을 붙잡았는데 교직원들이 내 어깨를 쳐서 넘어졌다."(김윤나, 국문학과4)

▲변종수 사무처장. ⓒ 오마이뉴스 김미선

그러나 변종수 사무처장은 자신을 폭행당사자로 지목한 한 여학생에게 "거짓말이다, 저학생을 데려와라","이래가지고 이바닥이 더러운 바닥이다, 와서 대면하고 얘기하자"며 거세게 반발했다.

동영상 보기 - "사과해"라는 학생들의 외침2 / 김미선 기자


이어 한 학생은 "쓰러져 있는 한 학생을 끌고 가는 걸 전산실 창문 앞에 있는 학생들은 다 봤다"며 "내가 말한 것 중에 조금이라도 거짓이 있었다면 달게 징계 받겠다"고 말했다. 변종수 사무처장은 "나도 넘어뜨리고 끌고 간 적 없다. 내 말이 사실이 아니라면 나도 달게 징계받겠다"고 응수했다.

학생들의 증언은 오후 10시 넘어서까지 이어졌다. 증언자들의 일부는 "나는 운동권은 아니지만 그 상황을 목격했기 때문에 너무 분개해서 이 자리에 왔다"고 밝혔다. 실제 교직원을 둘러싼 학생들의 대다수는 천막철거 장면을 목격했던 일반 학생들이다. 또 현장엔 인근 주민, 상가사람들도 다수 나와서 이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19일 오후 10시 30분] 변종수 사무처장, "뭐라고 사과하느냐"

ⓒ 오마이뉴스 김미선

"현장을 본 학생들이 한둘이 아니다. 차라리 깨끗하게 사과하라."
"천막농성장을 치우는 것을 보고 막으니까 한 교직원은 '너희가 무슨 권리로 우리를 막느냐'고 했다. '우리학교니까 막는다'라고 하니, '니네는 단지 이 학교에 이용료를 낼 뿐'이라는 것이었다."(01학번)
"나도 천막을 부수는 자리에 있었다. 교직원이 각목을 휘두르는 것을 막다가 각목에 턱을 맞았다. 근데 교직원들이 달려들었을 때 술냄새가 났다. '너 이러면 박원국에게 떡고물이라도 떨어지냐'라고 물으니 '어'라고 답했다."(사학과 회장)

오후 10시 35분. 현장을 목격했거나 폭행을 당했던 학생들의 증언이 이어지면서 교직원들의 태도도 조금씩 달라졌다.

ⓒ 오마이뉴스 김미선
"빨리 사과하고 가세요."(김나영 총학생회장)
"확인이 되어야 사과를 하지."(변종수 사무처장)
"때린 게 사실이고, 맞은 게 사실인데 무슨 확인이 더 필요합니까. 2월15일 이후 모든 폭력사태에 사무처장님이 총 지휘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빨리 사과하십시오."(김나영 총학생회장)
"뭐라고 사과하느냐."(변종수 사무처장)

11시. 각서를 쓰기로 했다. 학생들의 막차시간도 다가올뿐더러 말로 하기 어렵다면 각서에 사인이라도 하라는 것이다.

"<각서> 덕성여대 교직원들은 기간에 일어났던 폭력사태에 대해 그 잘못을 인정합니다. 오늘 강제로 철거한 천막에 대한 보상과 폭행당한 학생들의 피해보상을 하겠습니다. 앞으로 다시 이런 일이 발생할 경우 책임지고 사퇴할 것을 맹세합니다. -사무처장 변종수 외 4.19 폭력사태 관련 직원일동"

▲ 말로 사과하지 못한다면 '각서'라도 쓰라는 학생들의 요구. ⓒ 오마이뉴스 김미선

11시25분. "각서에 사인하라"는 학생들의 요구가 시작됐다. 학생들은 "우리가 바보도 아닌데 왜 집에 안가고 있겠는가, 우린 그 상황을 직접 봤기 때문이다. 평범하고 양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위에서 몇사람이 겁을 주더라도 양심에 따라 행동하라"고 교직원들에게 호소했다. 그러나 교직원들은 답이 없다. 시간은 이미 12시를 향해 치닫고 있다.

[19일 밤 11시55분] "또다시 폭력사태가 발생하면 책임지고 사퇴하겠다"

▲ 변종수 사무처장과 교직원들이 학생들 앞에서 사과발언을 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김미선
11시55분. 변종수 사무처장이 "말로 하겠다"며 앞으로 나섰다.
"폭력으로 다친 학생이 있다면 사무처장으로써 분명히 사과한다"

"다친 학생들이 있는 걸 알지 않느냐"는 학생들의 항의.

"오늘 학생들이 다쳐서... 폭력된 것에 대해 사과를 드립니다. 앞으로는 이런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 사무처장으로써 약속하겠다."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냐"는 학생들의 재항의.

동영상 보기 - 변종수 사무처장의 사과발언 / 김미선 기자


"앞으로 또 폭력사태가 일어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김나영 총학생회장)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고는 말 못한다. 한도끝도 없이 받으려고만 하느냐."(변종수 사무처장)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만 말하고 가라."(김나영 총학생회장)
"약속해도 못지킨다."(변종수 사무처장)
"말로는 할 수 있는데 왜 각서에는 도장을 못찍나."(김나영 총학생회장)
"내가 쓰지도 않은 것에 어떻게 내 도장을 찍나. 맘대로 해라. 밤새도록 하자."(변종수 사무처장)

20일 0시5분. 변 사무처장은 "앞으로 또다시 이런 사태가 발생한다면 내가 책임지고 사퇴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10분 뒤 "학교에 천막이 있다는 사실은 나도 마음이 아프다. 천막에 대해서 보상하겠다. 또 다친 학생에 대해서도 보상하겠다"고 덧붙였다. 그제서야 학생들로부터 환호성이 쏟아졌다.

덕성여대 학내분규 10년만에 학생들이 학교측으로부터 '사과'를 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동영상 전체 보기 - "안때렸다"에서 "사과한다"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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