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통 엄마와는 달랐던 우리 엄마는 음악 소리만 들리면 정신을 못 차리고 마을 잔치가 열릴 때면 술에 취해 마이크를 놓지 않곤 했다. 나는 그런 엄마가 때로 창피했다."
- <엄마…> 중에서

<엄마…>, 엄마와 딸들의 욕망과 좌절에 관한...

▲ 관객과의 대화에 참석한 류미례 감독(오른편)과 임성민 프로그래머(왼편)
ⓒ 2004wffis 제6회 서울여성영화제에서 상영 중인 류미례 감독의 다큐멘터리영화 <엄마…>(2004)는 '보통 엄마와는 다른' 엄마의 '사심'에 관한 기록이다. 감독의 어린 시절 엄마는 자식들에게 무관심하고 때로는 야멸치기까지 한 사람이었다.

마흔 둘에 아버지가 남기고 간 노름빚과 6남매를 홀로 떠맡아야 했던 엄마는 폭음을 하고 자식들에게 호통을 치거나 방에서 자주 울었다. 어느날 그런 엄마가 밝아지기 시작했다. 남자친구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이와 함께 똑똑하고 어른스러워 항상 감독에게는 '빛나는 존재'였던 셋째 언니 미정의 이야기가 중첩된다. 부모의 무관심 속에서 혼자 삶을 꾸려야 했던 언니, 유학을 떠난 러시아에서 주목을 받을 만큼 뛰어난 문학적 자질을 가졌던 언니는 공부를 그만두고 아이를 키우고 있다. 불행한 결혼 생활을 하면서 두 아이를 기르는 언니는 엄마를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감독은 사심을 보면서, 미정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리고 아이를 키우면서 점점 그들과 자신의 욕망과 좌절, 외로움을 이해해간다.

"전 좌석 매진이라니, 내 인생에 이런 일도 있구나"

여성 다큐멘터리 감독들을 위한 옥랑상
<엄마…>는 서울여성영화제 2기 다큐멘터리 옥랑상 수상작이다. 옥랑상은 대안적 세계관과 긍정적 여성관을 그려내는 여성 다큐멘터리 감독들에게 안정적인 제작 환경을 매련해주기 위해 서울여성영화제와 옥랑문화재단이 함께 마련한 것이다.

지난 4회부터 시작한 옥랑상은 수상자에게 1000만원 이내의 순수 제작비를 지원하며 다음해 영화제에서 상영한다.

류미례 감독의 <엄마…>는 지난해 옥랑상을 수상해 올해 상영하게 되었다. 류 감독은 "출산을 앞두고 육체적·정신적으로 힘든 상황에서 작업을 했지만 내 영화가 상영될 공간, 내 영화를 보러올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떠올리면 힘이 났다"면서 "옥랑상이 작업 초기에는 자신감을, 후기에는 추진력을 주었다"고 밝혔다. / 송민성 3일 서울여성영화제 첫번째 상영을 마친 류미례 감독은 관객들의 호응에 한껏 들떠 있었다. 앞서 가졌던 두어번의 시사회에서는 그다지 좋은 반응이 나오지 않았던 탓이었다. <푸른영상> 내부 시사회에서는 '여성들이 자기 문제에 지나치게 매몰되어 공격의 방향을 잘못 잡은 것 아니냐'는 비판을, 가족끼리의 시사회에서는 '나를 왜 저렇게 그렸냐'는 불만과 '(이렇게 만들어 가지고는) 욕 많이 먹겠다'는 걱정 아닌 걱정을 들어야 했다.

그러나 관객들의 반응은 전혀 달랐다. 전 좌석이 매진되었고,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관객들은 울고 웃으며 공감을 표시했다.

"오면서는 기금 받아서 다 어디다 썼냐는 소리 들을까 봐 걱정 많이 했어요(웃음). 전 좌석 매진이라니, 내 인생에 이런 일도 있구나 하면서 왔죠."

'이런 엄마'도 있다는 것 보여주고 싶어

류 감독은 영화를 통해 다양한 엄마의 상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의 엄마도, 그 자신도 사회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한결같이 따뜻하고 헌신적인 엄마는 되지 못했다. 자상하고 인내하는 모성은 영화나 책 속에서만 존재하는 환상이었다.

"아이를 키우는 건 힘들지만 정작 아이 때문에 힘든 건 50% 정도예요. 나머지 절반은 모성 부족에 대한 스트레스죠. 내가 나쁜 엄마인 건 아닌가, 아이에게 더 잘해 줘야 하지 않나 하는 자책감과 미안함 같은."

그는 '보통의 엄마와는 달랐던' 자신의 엄마와 역시 '보통의 엄마와는 다른' 자신을 영화 속에 담아냄으로써 '이런 엄마'도 있다고, 그리고 '이런 엄마'가 나쁜 엄마인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용기 그 이상의 무엇이 필요한 가족 다큐멘터리 작업

▲ 관객들과 토론하고 있는 류미례 감독
ⓒ 2004wffis 물론 쉬운 작업은 아니었다. 가족을 찍는 사람들이 으레 그러하듯 류 감독도 적잖이 마음 고생을 해야 했다.

"다들 힘들 거라고 할 때 난 그게 가족이라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털어 놓을 용기를 말하는 건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건 당연한 거고 그 이상의 힘든 게 있더라고요."

그는 그것을 '의도하지 않은 왜곡'이라고 설명한다.

"영화에 모든 면을 담을 수는 없으니까 단편적인 모습이 강조되어 보이는 경우가 있거든요. 의도하지 않게 실제와는 달리 표현되는 부분들도 생기고요."

그 결과 영화 속에서 그의 아버지는 보름이 멀다 하고 도박을 하고 어머니를 때리는 나쁜 남편으로, 오빠는 체면을 지나치게 중시하는 사람으로 그려졌다. 딸의 기획 의도를 모르는 어머니는 아직까지 자신이 고생한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 줄 알고 있다(그는 며칠 후 영화를 볼 어머니의 반응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런 부분은 가족들한테 정말 미안하고 안타깝고 그래요."

삶은 계속된다는 희망을 담은 영화

류미례 감독
1995년 월간 <민족예술> 기자로 활동했으며 1998년에 다큐멘터리 영상 제작집단인 '푸른영상'에 가입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작품으로는 <22일간의 고백>(1998), <동강은 흐른다>(1999), <친구>(2001) 등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류 감독은 영화를 통해 얻은 것이 많아서 행복하다.

"셋째 언니가 힘들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속사정까지는 잘 몰랐어요. 우린 언젠가부터 대화를 하지 않았으니까. 지쳐가는 언니를 보면서 난 내가 언니처럼 될까 봐 두려웠고, 언니는 또 언니대로 내가 언니처럼 될까봐 걱정스러워했던 거예요. 근 10년만에 말문을 트면서 언니가 나와 참 비슷한 사람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죠. 언니는 그저 언니일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에요."

그는 '그야말로 언니의 발견'이라며 웃었다. 언니와 자신이 서로의 상처를 쓰다듬어주고 이끌어줄 수 있는 상대라는 것을 이제서야 발견했다는 뜻이다.

▲ 생후 한달된 둘째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류미례 감독
ⓒ 송민성 그래서 <엄마…>는 희망을 담은 영화이다. 류 감독은 엄마에서 언니와 자신, 그리고 자신들의 딸로 이어지는 관계를 살피면서, 삶은 고되지만 그 고됨을 견딜 힘을 주는 것이 또한 삶이라는 희망적 메시지를 영화 속에 담았다.

"밤 7시 이후에도 일할 수 있을 때 다시 작업을 할 거예요."

다음 작품 계획을 묻는 물음에 류 감독은 대뜸 대답한다.

"아침의 느낌이 다르고 저녁의 느낌이 다른데 난 밤에 발동이 걸리는 스타일이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아이들 때문에 밤에 일하는 건 상상조차 못하죠. 한 5년 지나면 가능할까요?"

밝게 웃으며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류 감독은 그의 말대로 '부족한 엄마지만 나쁜 엄마는 아닐'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그가 꽤 괜찮은 다큐멘터리 감독이라는 사실이며, '다큐멘터리는 내 삶의 구원이자 원동력'이라고 말하는 류 감독의 다음 작품을 기대해도 좋을 것이라는 확신이다.2004-04-04 10:15ⓒ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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