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넷플릭스의 코미디 스페셜 <펀 브레이디: 자폐증 비키니 퀸>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스코틀랜드 출신의 코미디언 펀 브레이디(Fern Brady)의 스탠드업 코미디를 녹화한 단편이다.

브리스틀에서 이루어진 이 공연은 그 자체로도 웃음을 제공하는 데 충분하지만, 넷플릭스의 코미디에 대한 기조를 염두에 두고 감상하는 것도 좋을 듯 싶다. 

다양성 코미디,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
 
 <펀 브레이디: 자폐증 비키니 퀸> 스틸컷

<펀 브레이디: 자폐증 비키니 퀸> 스틸컷 ⓒ 넷플릭스

 
브레이디는 공연의 첫 농담 소재로 자신의 자폐증(autism)을 가져온다. 그는 자폐증을 '슈퍼파워'라고 위로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러면 하늘을 날아다니는 슈퍼맨 대신에 1960년대 시인 실비아 플라스한테 엄청나게 집착하기만 하는 슈퍼히어로를 다룬 영화가 나와도 상관없겠네?"하고 묻는다. 비(非)당사자들의 어설픈 배려가 당사자들에게는 더 어쭙잖게 들린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시작한 것이다.
 
사실 코미디언 당사자의 사회적 약자성을 화두로 삼은 스탠드업 코미디는 이번이 최초가 아니다. 호주 출신의 코미디언 해나 개즈비 역시 자신의 스페셜에서 자폐증에 대해 언급한 바 있으며, 미국의 유명 코미디언 테일러 톰린슨도 자신이 정신과 약을 복용한다는 사실을 허심탄회하게 밝혀 주목을 받은 바 있다. 펀 브레이디의 자폐증 농담이 의의가 있는 이유는, 앞선 경우와 달리 화자가 '사과 없이' 소재의 힘만으로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는 데 있다.
 
코미디는 본질적으로 어떤 대상의 '이상함'을 지적하면서 그곳에서부터 웃긴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랬기에 사회적 소수자 당사자들은 지적의 화살을 자기 자신에게로 돌렸고, 그 때문에 편견에 복무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해 왔다. 일례로 아시아계 코미디언 스티븐 히는 아시아인 특유의 영어 발음, 극성 교육열, 그리고 수학을 잘한다는 서구적 편견을 웃음거리로 삼아 정작 아시아계 당사자들에게는 날 선 비판을 받은 적도 있다. 이러한 사례를 감안하면, 자폐증 소재를 가감 없이 꺼내든 펀 브레이디의 이야기를 편집하지 않은 넷플릭스가 추구하는 방향성도 엿볼 수 있다. 당사자성 코미디 특유의 비판을 이해하고, 어설프게나마 더 포용적인 웃음을 추구하고자 하는 것이다.
 
넷플릭스가 다양성 면에서 항상 올바른 모습만을 보여 온 것은 아니다. 저명한 코미디언 리키 저베이스의 스페셜 <슈퍼네이처>는 트랜스젠더 시민들에 대한 공격적인 농담을 포함했는데, 이를 편집 없이 그대로 내보내면서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넷플릭스는 시청자들의 이런 지적을 묵과하지 않고 그대로 수용해, 해나 개즈비를 필두로 한 트랜스젠더·젠더퀴어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모은 스페셜 <젠더 아젠다>를 발표하기도 했다. 도덕적으로 완벽하지는 못할지언정, 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행위를 멈추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자세는 펀 브레이디가 자신의 농담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외친 선언과도 일맥상통한다.
 
"이제 두려워하기를 멈출 시간이야."

코미디의 '영혼', 사회비판
 
 <해나 개즈비: 젠더 아젠다> 스틸컷

<해나 개즈비: 젠더 아젠다> 스틸컷 ⓒ 넷플릭스

 
브레이디의 농담은 자폐증에서 멈추지 않는다. 그는 유기적으로 연결된 이야기 속에서 여성 안전에서부터 시민 결합, 그리고 존엄사와 관련된 이야기까지 묵직한 주제를 거침없이 다루어 낸다. 그러면서도 시종일관 밝은 분위기를 유지해 관객들의 웃음이 멈출 틈을 주지 않는데, 이는 코미디의 본질인 해학과 풍자를 통해 사회비판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엄숙하고 진중한 연설과 달리, 브레이디는 우리 곁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가져와 사회의 모순점을 찌른다.
 
이러한 경향이 제대로 드러나는 농담 중 하나는 브레이디의 '등교 첫날'을 언급한 대목이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호신용 호루라기를 손에 쥐여 주며 '무슨 일이 일어나면 그걸 힘차게 불어라'고 말한 경험을 회상한다. 그러고는 이렇게 덧붙인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말이 안 되는 거야. 아동 납치범들이 학교 안에 들어왔다면 걔들은 이미 엄청난 양의 사회적 터부를 무시한 거라고. 그런 끔찍한 사람들이 내가 호루라기 한두 번 분다고 잘도 멈추겠다."

여성 안전을 '네가 더 조심해'라며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사회를 비판함과 동시에, 특유의 익살스러움으로 관객들의 실소를 자아낸 것이다.
 
브레이디를 비롯한 서구권 코미디언들의 사회풍자적 농담이 근래 들어 증가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실상 코미디는 오래전부터 지배층의 모순을 웃음거리 삼기 위한 피지배층의 무기였다.

영국의 영화감독 켄 로치는 "부르주아는 코미디를 할 수 없다"고 단언하기까지 한 바 있다. 박해받고 잃은 것이 많은 계층의 사람들일수록 더 이야기할 게 많다는 이유에서다. 앞서 지적한 바 있는 '지나치게 자조적인 농담' 역시 사회적 편견을 받아 온 당사자가 이야기했기에 단점에도 인기가 많았던 것이다.
 
브레이디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자신의 죽음까지 무대 위로 가져온다. 그는 평소 결혼할 생각이 없었지만 최근 들어 남자친구와 '시민결합'을 신고할 생각은 가지고 있다면서, 그 이유를 이렇게 밝힌다.
 
"별건 아니고, 적어도 내가 연명치료나 받고 있을 때 호흡기를 끊을 권리는 내 '남편'한테 주고 싶거든."

비록 브레이디 자신은 이성애적 경험에서만 이를 이야기했지만, 관련 이슈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 온 사람이라면 동성결혼/시민결합이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아 혜택은커녕 삶과 죽음에 경계에서 배우자를 만날 수조차 없는 이들의 설움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브레이디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이 농담이 단순히 웃음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넘어 사회가 보장해야 할 것에 대한 성찰을 자극했음은 분명해 보인다.
 
이렇듯 과감한 브레이디의 1인 농담을 지켜보다 보면, 한국 코미디의 현재 역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오랜 휴방 끝에 국민 곁으로 돌아온 <개그콘서트>는 '필리핀 며느리'의 행동을 웃음거리 삼아 인종차별 논란에 휩싸인 바 있고, < SNL 코리아 > 역시 외국인 유학생들의 한국어를 조롱의 대상으로 삼거나, 정치인들의 논란을 수박 겉핥기 식으로만 다루어 비판받은 적 있다.

약자의 입장에서 세상을 보는 대신, 그들을 대상화하고 가십거리로 소비한 결과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지만, 코미디 프로그램에서만큼은 아래에서 위로 흘러야 한다. 브레이디의 스페셜은 우리로 하여금 코미디의 '영혼'이 제대로 된 사회비판과 풍자임을 잊지 않게 만든다.
 
물론 몇몇 시청자들은 그럼에도 브레이디의 거침없는 입담이, 다양한 소수자들의 농담이 '불편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이야기가 중요한 이유는 펀 브레이디가 작심하고 내뱉은 말에서 여실 없이 드러난다.
 
"나한테 마이크가 주어지기 전까지는 아무도 내 말 안 들어 줬잖아?"
 
불필요한 조롱이나 약자 희화화에 지쳐 코미디 프로그램 보기를 멈춘 사람이라면, 풍자와 해학이 넘치는 넷플릭스 코미디 스페셜을 통해 웃음을 되찾아 보는 건 어떨까. 
넷플릭스 코미디 펀브레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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