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국제시장>
JK필름
사람은 언제나 그 시대의 자식이다. 누구도 시대를 벗어나기 힘들다. 그들은 식민지 말기 일제의 분위기를 어렴풋이 기억하지만, 그게 삶에 깊이 각인되기엔 너무 어렸다. 어쩌면 이들이 일본에 대해 상대적으로 관대한 이유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해방과 더불어 만들어진 남북분단의 살얼음 끝에 무려 3년이란 엄청난 세월 동안 전쟁을 겪었다.
전쟁을 겪지 못한 전후 세대는 세 번이나 해를 바꿔가며 당시 남북한 전체 인구의 1/10 넘는 사망자를 낸, 가뜩이나 가난한 민족을 철저히 잿더미로 만들며 평생 두려움과 증오를 담고 살게 한 그 기억을 어림잡기 힘들다. 그들은 무조건 살아야 했다. 굶어 죽지 않기 위해 돈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해야 했다. 군사 독재든(1961~1993년), 미국의 용병이든(1964~1973년 베트남 파병), 잘 살 수만 있다면 안될 게 없다고 여겼다.
민주주의니 인권이니, 개혁과 진보도 좋은 얘기인 줄은 알지만, 항상 죽느냐 사느냐, 먹느냐 굶느냐의 선택 끝에 내몰린 자신의 처지와는 멀어도 아주 먼, 배부른 이야기라고 느꼈다. 실제로 20세기 한국 현대사 100년, 그중에서도 1940~1990년대까지 세월은 정말 살벌하고 가혹했다. 자기가 잘하고 못하고, 뭘 하고 안 하고와 상관없이, 줄을 잘못 서면 죽을 수 있고, 엉뚱한 소리 했다가는 잡혀갈 수도 있는 시절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들은 자신의 하나뿐인 목숨을 지키고, 자식들을 자신과는 다르게 배부르게 먹이고 입히며 대학 보내는 게 전부였다. 북한이 쳐들어오지 않고, 사회 불안이 없는 가운데, 돈 많이 벌어 부자 되는 것이 인생 목표의 전부였다. 친일파든, 군인이든, 안정적 선택이 우선이 되었다. 젊은 시절 내게 부모 세대의 그런 모습이 그렇게 천박하고 못나 보일 수 없었다.
바로 여기에 기득권 세력의 정치적 공작이 끼어들 틈이 생겼다. 같은 시대를 살았지만, <국제시장> 주인공 같은 삼팔따라지(한국전쟁 후 북한에서 피난 온 실향민)와는 다른 금수저들은 친일에서 반공으로 갈아타며, 반백 년 세월 동안 철저히 동년배들의 두려움과 증오심을 이용해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온갖 기득권을 장악하며 주류로 살아왔다.
1960~70년대 낯선 독일에 광부와 간호사로 나가고, 베트남에서 미국 용병으로 죽을 고비를 넘기고, 1980년대 중동 사막 한복판에서 죽음 같은 더위와 싸우고, 청계천과 구로공단에서 철야 작업한 것은 바닥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동시대 금수저들은 바닥 사람들의 대가로 받은 피땀 맺힌 외화를 종잣돈 삼아 정치·경제적 성공을 거두고, 두고두고 우려먹으며, 업적 삼아 은인인 듯 큰소리를 쳐왔다.
<국제시장>의 감성을 통해서도 결국 "그래. 우리나라는 저렇게 위태하고 가난했다. 우리 어르신들은 저렇게도 힘들게 열심히 일해서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지금 독재니 민주니 하는 소리도 다 배부른 얘기야!"라며 아전인수적 교훈을 삼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일제의 식민지 변명에 대해서는 치를 떨면서도, 아무런 원한 없던 이국땅에서 억지 총질했던 베트남전쟁만큼은 여전히 '자유를 지켜주기 위한 대한 남아의 기개'로만 기억하고 싶어 하는 마음도 영화는 담고 있다.
그런데 대다수 국제시장 세대는 평생 제대로 사람 대접 한번 받지 못하고 시골 촌놈, 공순이와 공돌이, 돈 벌어오는 기계(남편)와 밥순이(아내)로 살았으면서도 상당수가 보수 기득권 세력의 표밭이 되어 주었다. 그리고 이제는 전광훈의 열광적 박수부대가 되어 주고 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아부지, 이만하믄 내 잘 살았지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