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7.31 13:28최종 업데이트 23.07.31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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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요금과 텔레비전 방송수신료(KBS·EBS 방송 수신료) 징수를 분리하기 위한 방송법 시행령 일부개정안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앞에 화환들이 세워져 있다. ⓒ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후 변변한 미디어 관련 정책을 발견하기 어렵다. 아니 정책은커녕 방송장악에만 골몰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방송은 언론으로서 독립성이 생명인 영역이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 초기인 지난해 6월 16일 당시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는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을 겨냥해 '대통령의 통치 철학이나 국정과제에 동의하지 않는 분들이니 자리를 물러나는 것이 정치 도의상 맞다'라고 주장했다.


이명박 정부 초기 박재완 국정기획수석이 'KBS의 사장은 새 정부의 국정 철학과 기조를 적극 구현하려는 의지가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고 주장한 이후, KBS·MBC 사장을 교체하려 편법·탈법을 자행하고 이에 저항하는 구성원들을 해직·전보 등으로 압박했던 공영방송 침탈의 악몽이 기시감처럼 연상되는 순간이었다. 권 원내대표의 발언은 이명박 정부 때 박재완 수석의 발언과 마찬가지로 윤석열 정부의 방송 장악 신호탄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방송통신위원장 면직 겨냥한 감사원과 검찰의 공조
 

임기 두 달을 앞두고 윤석열 대통령에게 면직처분을 받은 한상혁 전 방송통신위원장. ⓒ 연합뉴스

 
감사원은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 장기감사를 통해 TV조선 재승인 심사 과정에 부정한 일이 있었다며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고, 검찰은 당시 심사에 관여했던 방송통신위원회 직원들과 심사위원들을 기소했다.

직원들과 심사위원들은 혐의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니 진실 여부는 재판에서 가려질 것이다. 관련 학계 연구자 300여 명은 학문적 전문성과 양식을 침탈하는 검찰 수사를 중단하라고 촉구했지만 마이동풍이었다. 그 목표가 방통위원장 면직에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검찰은 방송통신위원장이 이를 알고도 조건부 승인 과정을 주도했다고 구속 영장을 신청했지만 사법부는 혐의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기각했다. 그럼에도 검찰은 방송통신위원장을 기소했고, 윤석열 대통령은 5월 30일 이를 빌미로 위원장을 면직했다. 정무직 공무원인 방송통신위원장은 <방송통신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10조에 따라 직무를 위반하거나 금고 이상의 형을 받지 않는 한 면직할 수 없다. 한상혁 위원장은 단지 검찰이 기소하였을 뿐 직무 위반이 확정된 것은 아니다. 아니 당시는 재판이 시작되지도 않았다. 한상혁 위원장의 임기는 7월까지였다. 법을 어겨 가며 임기 두 달밖에 남지 않은 방송통신위원장을 면직시킨 이유는 무엇일까?

공영방송 침탈 다음 단계, KBS 이사 해임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5일 오전 전체회의가 열리는 과천 방송통신위원회에 항의 방문, 김효재 방송통신위원장 직무대행이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방송통신위원장을 면직하고 여권 추천의 김효재 부위원장을 직무대리로 하는 방통위는 공영방송 KBS의 이사 구성 변경을 시도하는 중이다. TV조선 심사에 관여한 윤석년 이사를 KBS 이사에서 해임했다.

'공영방송 이사로서 사회 통념상 높은 도덕성과 청렴성이 요구됨에도 불구하고 위법한 행위를 한 혐의로 구속기소 돼 KBS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국민의 신뢰를 크게 저하시켰다'는 이유다. 하지만 윤 이사 역시 기소됐을 뿐이다. 야권 추천의 김현 위원은 무죄 추정의 원칙을 제기하며 반대했지만 무력했다. 한 위원장의 면직으로 방송통신위원의 구성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한 위원장을 면직하고 민주당 추천 방통위원 임명을 지연함으로써 단지 3인만으로 이루어진 '비정상적인' 그렇지만 여권에 유리한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비정상체제에서 수신료 분리 징수, 공영방송 이사진 변경 같은 중대한 결정을 감행하고 있다.

윤 이사 해임에 이어지는 시도는 남영진 KBS 이사장 해임이다. 방통위는 7월 25일 해임을 위한 전 단계로서 8월 중 청문 절차를 가지겠다고 통보했다. 해임의 명분은 KBS의 방만 경영을 방치하고, 기소된 윤석년 이사 해임을 부결시켰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방통위의 견강부회에 불과하다.

KBS의 방만 경영과 관련해 늘 언급되는 KBS 고액연봉 상위직급 문제는 1986년 아시안 게임과 1988년 올림픽을 앞두고 대대적으로 증원한 구성원들이 정년을 앞둔 상층부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 해소되고 있다. 사장이나 이사회가 인위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이다. 그래서 이전 사장들도 해결할 수 없는 과제였다. 그런데 지금 와서 사장도 아닌 이사장을 관리 감독의 책임을 물어 해임하는 것이 합리적일까?

윤 이사를 해임 의결하지 않았다는 명분 또한 적절치 않다. 임명제청권자인 방통위와 윤석열 대통령의 해임 자체가 무죄 추정의 원칙을 위배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이사회는 오히려 기본권을 보장하려 한 것이다. 책임을 져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 의문이다. 하지만 이사장은 결국 해임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 방통위는 여권에 유리한 비정상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이사장을 굳이 무리하게 해임하려 들까. KBS 사장을 교체하려면 KBS 이사회 구성을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이미 윤석년 이사를 해임했고, 이사장까지 해임하여 그 후임을 윤석열 대통령이 임명하면, 여권에 우호적인 이사가 다수인 이사회를 만들 수 있다.

총선 앞두고 사장 교체가 목표
 

김의철 KBS 사장이 지난 6월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KBS 아트홀에서 수신료 분리 징수 권고와 관련한 KBS의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는 이미 사장을 해임하려고 공권력을 동원한 바 있다. 감사원은 KBS 노조와 보수단체들의 국민감사 청구를 받아들여 KBS에 이례적인 감사를 벌였다. 국민감사청구는 60일 이내에 결론을 내려야 함에도 세 번에 걸쳐 감사 기간을 연장했지만 5월 1일 발표한 감사원의 결론은 청구인이 주장한 위법 사항이 없다는 것이다.

1차 시도는 무위로 끝났다. 정부는 수신료 분리 징수라는 카드를 꺼냈다. 사장 퇴진을 압박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KBS 사장이 수신료 분리 징수 시도를 거두면 물러나겠다고 발언함으로써 수신료 분리 징수 시도가 정치적 꼼수였음이 드러났다. 여느 정권이라면 정치적 속내를 들켰으니 해명을 하면서 수신료 분리 징수 시도를 중단했을 것이다.

하지만 현 정부는 외려 입법예고 기간을 단축하는 특단의 조치를 취해 속도전을 펼쳤고, 입법예고 기간 들어온 시민 의견 대다수가 '분리 징수 반대'였음에도 강행했다. 사실 수신료 분리 징수는 국민 편익을 내세웠지만 국민 불편만 가중시키는 최악의 정책이다. 수신료 납부는 수상기가 있는 사람은 반드시 내야 하는 방송법상 의무사항이다. 따라서 분리 고지한다고 해서 수신료를 안 낼 수는 없다. 수신료 납부를 둘러싼 갈등은 증폭되고, 수신료 분리 징수비용만 늘어나 성실하게 납부한 수신료 효용성을 낮출 뿐이다. 수신료 분리 징수 건은 국민 불편만 가중시키고, 사장 교체 카드로서는 실패했다.

그다음 단계가 KBS 이사회 구성을 바꾸어 사장 해임제청안을 의결하게 하고 이를 받아 윤석열 대통령이 해임 절차를 진행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독립성을 보장받아야 하는 헌법 기구인 감사원과 공정해야 할 검찰을 정치적 행위에 동원하면서까지 KBS 사장을 교체하려는 이유는 뭘까? 결국 내년 총선에서 영향력 있는 언론을 우호적으로 확보하려는 시도일 것이다.

사실 윤석열 정부는 KBS만이 아니라 MBC에도 압력을 가하고 있다. 대통령 전용기 탑승 거부 사건은 익히 알려진 사건이다. '바이든' 발언 관련 보도, 김건희 여사 논문 표절 관련 프로그램 등으로 불편해진 정부가 언론의 취재 자유를 침해한 조치였다. 그리고 더 나아가 MBC의 항의를 핑계로 '출근길 기자회견(도어스테핑)'도 중단했다. 불편한 보도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위협을 한 것이다.

또 감사원은 3월부터 공정언론국민연대라는 보수단체의 국민감사 청구를 받아들여 문화방송의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감사를 시작했다. 문화방송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가 관리 감독을 부실하게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부패방지 및 국민권익위원회의 설치와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국민감사청구는 '공공기관의 사무처리가 법령위반 또는 부패행위로 인하여 공익을 현저히 해하는 경우'에 한하고 있다. 방송문화진흥회가 법령위반 또는 부패행위가 있지 않은 한 감사를 행할 수 없다. 감사원이 정치 감사를 벌인다는 비판을 면할 길이 없다. 이 또한 방송문화진흥회를 감사하여 이사진 구성을 바꾸는 조치를 취하려는 꼼수라는 의혹이 나오는 이유다.

자세히 언급하지는 않겠지만 YTN 대주주 지분 매각 건도 있다. 기획재정부가 대주주인 한전KDN과 마사회가 지닌 지분을 사기업에 매각하여 공공성을 약화시키려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남영진 이사장의 정상적인 업무추진 법인카드 사용에 문제가 있다고 권익위원회에 신고하여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기도 하다.

현 정부는 감사원, 검찰, 권익위원회, 기획재정부, 방송통신위원회 등 독립적이어야 하거나 공익적이어야 하는 기구를 전방위적으로 동원하여 공영방송을 장악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정부 시절 특정 성향의 일간지 광고 수주 동향 파악 요구 등 국가정보원을 통한 방송 장악 시도 의혹이 있는, 언론탄압의 대명사인 이동관 대통령 특보를 방통위 위원장에 지명한 윤석열 대통령의 방송장악 의지는 자명해보인다. 정부의 반민주적 공영방송 장악은 내부 구성원은 물론 시민단체가 나서 저항하고 막아내야 한다. 그러면 정부는 멈출까? 그러지는 않을 거 같다.

궁극적인 해법은 독립성 보장하는 법·제도
 

더불어민주당 고민정 최고위원 등 '윤석열 정권 언론장악 저지 야4당 공동대책위원회' 의원들이 지난 25일 오전 서울 헌법재판소 앞에서 KBS 수신료를 전기요금에서 분리해 징수하는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의 효력 정지를 촉구하는 의견서를 제출하기에 앞서 입장을 밝히고 있다 ⓒ 연합뉴스

 
단기적 대응도 중요하지만 궁극적인 해법은 제도 변화에 있다. 정권의 성격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공영방송이 정치적 외풍에서 자유롭지 못한 이유는 정치 후견주의 탓이다. 공영방송 이사를 구성하는 절차에 정치권이 관행적으로 개입하기 때문이다. 공영방송 이사 임명은 법 제도상 정치권이 관여할 수 없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정치권은 정당 추천으로 임명된 방통위 위원을 통해 실질적인 추천권을 행사하여 왔다. 따라서 제도적으로 정치 후견주의를 명확히 금지시키거나 그 영향력을 최소화해야 한다. 그동안 학계와 정치권에서는 다양한 방안이 제시됐다. 정치권이 추천하고 주요 의사결정에서 어느 일방이 주도하지 못하도록 하는 특별다수제, 방통위와 국회의 상호 견제 방안, 정치권의 추천을 최소화하고 전문성을 강화한 방안 등등이 있다. 어떤 방안도 완벽하지는 않지만 최소한 지금의 관행화된 정치적 개입보다는 낫다.

그중 이사회 추천을 다변화하고, 사장후보국민추천회 단계를 거쳐 사장을 결정하는 방송법 개정안이 이미 국회 본회의에 부의되어 있다. 이사회 구성의 경우 이사회의 수를 늘려, 정치권 5인을 제외하고는 방통위, 시청자위원회, 학계, 방송 전문가 단체 추천을 늘리는 안이다. 사장 선임의 경우 사장후보국민추천위원회는 후보자 중 3배수를 추천하고 이사회가 투표로 결정하도록 하는 안이다.

국회는 편법, 탈법으로 공영방송을 장악하려는 시도가 더 이상 반복되지 않도록 개정안을 신속히 처리하여야 한다.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방송법 개정안을 신속히 통과시켜 책임을 다해야 한다.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김서중 성공회대 미디어콘텐츠융합자율학부 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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