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4.15 18:37최종 업데이트 24.04.15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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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오전 안산 단원고 수학여행 학생과 여행객 등을 태우고 제주도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전남 진도 인근 해역에서 침몰하고 있던 모습. ⓒ 해양경찰청 제공

 
아들과 이별하던 그날의 아침은 매우 특별하게 시작됐다. 평소 삶의 전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일에 찌들다 보니 아들과 속 깊은 대화를 못 하고 살았는데, 수학여행을 간다기에 출근할 때 현관에서 아들을 살포시 안고 모처럼 등도 두드려 주었다. 그리고 '조심해서 잘 다녀오라'고 얘기했다. 그때까지 아들은 단 하루도 부모의 품을 벗어난 적이 없었기에 수학여행을 떠나는 길이 특히 더 애틋하고 신경이 쓰였던 것 같다.

그날은 이례적으로 일찍 퇴근했다. 저녁을 먹고 있는데 아들보다 한 살 많은 딸이 "아빠, 수현이 오늘 수학여행을 못 갈지도 모른대"라고 말을 했다. "짙은 안개 때문에 아직 배가 출항을 못하고 있다"라고 했다. 무심코 "수학여행을 가지 말고 집으로 돌아오라"는 얘기를 했고, 딸은 "정말 돌아오라고 얘기해?"라며 반문했다. 잠시 생각해 보니 난생처음 친구들과 떠나는 여행인데 나만 유난을 떠는 것 같아 "얘기하지 말라"고 했다.


이튿날 아침이 밝았다. 여느 때처럼 출근해 회의하고 있었는데, 10시 8분경 수현이 엄마로부터 전화가 왔다. "자기야, 수현이가 타고 있는 배가 진도에서 침몰하고 있대." 곧장 집을 향해 죽음의 질주를 시작했고, 10시 13분 58초경 아들이 마지막 전화를 했지만 통화하지 못했다. 짧은 신호음이 울린 후 다시는 발신음이 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아들과 이승의 짧은 인연은 16년 3개월 만에 끝이 났고, 그 후 3654일(16일 기준)이란 세월이 흘렀다. 강산이 한번 변했고 10년이란 세월이 훌쩍 흘러 버린 것이다.

'이곳이 바로 지옥'
 

2022년 10월 25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유가족들이 기무사 불법사찰관련 재판결과에 대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이희훈


돌이켜보면 지난 10년이란 세월은 지독하게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던 것 같다. 저승에 정말 지옥이 존재한다면 '이곳이 바로 지옥이구나!'라고 생각했고, 지금 '최악의 악몽을 꾸고 있다'고 착각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홍익대 김호월 교수나 정치인 정몽준(당시 서울시장 후보) 씨의 아들이 유가족들을 '미개인'으로 표현하며 비난할 때, 분노는 했지만 참을 만했다.

하지만 방금 사랑하는 자식들의 상여를 멨던 유가족들을 상대로 더러운 '돈'과 결부시켜 비난할 때는 참을 수 없는 모욕감을 느꼈다. 특히 바로 내 눈앞에서 "요즘 세월호 유가족들 너무한다. 자식들 덕분에 평생 만지지 못할 돈을 받았으면 성당에 가서 자식들의 명복이나 빌 것이지 쓸데없이 대통령님을 힘들게 한다. 직장은 안 다닐 것이냐?"라고 비난할 때는 죽고 싶고 죽이고 싶었다. 

아무리 악한 사람이 죽어도 '잘 죽었다'고 말하지 않으며, 나름 예의를 갖추어 명복을 빌어준다. 음모론을 떠나 우리 아이들은 국가(해경)의 부진정부작위로 모두 사망했다는 사실에 대해 인식 있는 보통 사람들은 이론(異論)을 제기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당시 삼류 정치인과 극우 보수 인사들은 "세월호 참사는 '해난 사고'이므로 정쟁의 도구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 "유가족들은 진상규명보다 돈을 더 원한다"라며 입에도 담지 못할 말들을 끊임없이 배설했다. 

10년 동안 매일 새벽 다섯 시 이전에 일어나 밤 11시까지 쉬지 않고 수많은 기록을 읽었다. 솔직히 이 끝없는 미친 짓을 중간에 그만두고 싶었을 때가 많았다. 하지만 이 일은 앞으로도 상당한 시간 동안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끝까지 진실을 밝히겠다'는 아들과의 약속도 있었지만, 지금은 이 사건의 실체를 꼭 알고 싶다는 욕망이 더 크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길래 위로는 박근혜씨부터 장관급 공무원과 여당 국회의원, 말단 해경에 이르기까지 진실을 감추고 진상규명을 방해했던 것일까? 그리고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철석같이 약속했던 문재인 전 대통령은 왜 이 사건의 실체를 밝히지 못하고 임기를 마쳤을까? 

또 많은 극우 보수단체와 태극기 부대, 일베 어린아이들은 도대체 어떤 이유로 국가의 비호와 묵인을 등에 업고 아이들의 원통한 죽음을 욕보이고 유가족을 조롱했을까?

이 의문의 진실을 풀지 못하면 절대 두 눈을 모두 감고 죽지는 못할 것 같다. 최소 한쪽 눈만이라도 감고 죽으려면 마지막 남은 진실 한 조각까지 찾으려고 노력해야 했고, 그 길은 한마디로 참기 힘든 형극(荊棘)의 길이었다. 

'야만 공화국'을 증오한다
 

단원고 2학년 4반 고 박수현 군의 아버지 박종대씨가 쓴 <4.16세월호 사건 기록연구- 의혹과 진실> ⓒ 김화숙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신체에 위해를 끼치거나 재산에 중대한 손해를 끼칠 우려가 있을 때 이를 보호할 의무가 있다. 세월호 참사와 같은 긴급한 재난 상황에서 국민을 구조할 엄격한 법령상 의무도 있다.

당연히 국가는 전복하는 세월호에서 국민의 소중한 생명을 구해야 했고, 참사가 발생한 후에는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해야 했다.

하지만 국가는 한 사람도 구조 못 했으면서 적극적으로 진실은 묻으려 했고, 다시는 빛을 보지 못하도록 영구히 봉인하려 했다. 이를 위해 장관급 공무원이 동원되었고, 여당 국회의원들이 협조했다. 중요한 문서는 찢어지고 새로운 문건이 작성된 정황도 심심찮게 발견된다. 심지어 보수단체 지원을 위해 혈세를 쏟아부었던 결과, 극우 보수와 일베 어린아이들이 피해자 가족 바로 앞에서 참기 힘든 모욕적 행동과 조롱을 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이러한 행태들은 이태원 참사를 넘어 오송 참사까지 연결되었고, 향후 또 다른 참사로 반복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또다시 이런 사태가 발생할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사명감을 가지고 투쟁할 수밖에 없었다.

내 삶에서 매일 하루가 소비될 때마다 초조함을 느낀다. 이승의 삶이 하루 줄어들 때마다 아들과 새로운 만남은 하루 가까워지는 것이니 흐르는 세월이 억울하거나 아깝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 사건의 진실을 온전히 밝히지 못한 채 아들 곁으로 달려간다는 두려움은 조급증과 초조함을 느끼기에 충분한 근거가 된다. 생명이 붙어있는 한 뒤돌아보지 않고 앞을 향해 뛸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지금까지 두 번에 걸친 검찰의 수사와 특별조사위원회의 조사, 특검, 국회의 국정조사, 감사원 감사… 등 수많은 수사와 조사가 있었지만,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은 여전히 '미완성 교향곡'으로 남아있다. 게다가 2022년 6월 12일, 사참위 조사 기간이 종료됨에 따라 국가가 주도하는 진상규명 절차는 완전히 끝나 버렸다.

이제 이 사건의 진상규명은 국가가 주도하지 않으니 나와 유가족 협의회, 4․16연대 등이 계속 진행할 수밖에 없다. 모든 진실이 밝혀지는 그날까지 이들 모두가 지치지 않고 건강하게 계속 싸웠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들의 건투를 빈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염원 3654일, 
고 박수현 군의 아버지 박종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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