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4.15 13:33최종 업데이트 24.04.15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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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워크샵에 참여하고 있는 학생들 베를린 모아빗에 위치한 위안부 박물관에서 학생들이 워크샵에 참가하고 있다. ⓒ 최미연

 
최근 독일 베를린 모아빗 지역에 위치한 위안부 박물관(Museum der Trostfrauen)에서 진귀한 풍경이 펼쳐졌다. 20여 명의 독일에서 나고 자란 이민계 청소년들이 지난 3월 22일·25일·26일, 3일간 일본군 '위안부' 여성을 주제로 한 연극 워크숍에 참여한 것이다.

시민단체 코리아협의회가 운영하는 위안부 박물관에는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들의 증언뿐만 아니라 청소년들이 제작한 지점토 조각상과 랩 가사 등도 전시되어 있다.


지점토 조각상으로는 베를린 노이쾰른 지역 학교에 다니는 청소년들이 일본군 '위안부' 희생자들의 이름을 한글로 적은 꽃화분, 저항 할 수 없었던 폭력을 표현해낸 흉상 등이 박물관 입구에 자리해있다. 지난해 11월 학생들은 수업의 일환으로 제작한 조각상을 두고 교내에서 발표를 진행하기도 했다.

독일에서 '평화소녀상 지키기 운동'을 해오고 있는 코리아협의회는 2021년부터 "내 옆에 앉아봐"라는 이름의 청소년 대상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평화의 소녀상 옆에 놓인 빈 의자에 '앉아'달라는 표현을 통해 연대를 제안하고, 2차 세계 대전 때 벌어진 위안부 전시 성폭력을 동시대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차별·폭력과 연결짓는다. 이 교육은 베를린시의 문화교육 기금으로 지원 받아 운영되며 지역 내 다양한 청소년 단체, 학교와 연계하고 있다.

독일 사회에서 멀리 떨어진 한국과 그 외 다른 국가들에서 일어난 전시 성폭력에 대해 교육을 받는 것이 생경할 수도 있지만, 청소년들은 과거의 사건들과 현재와 맞닿는 지점들을 찾아낸다. 특히나 다양한 이민자들이 거주하는 베를린이기에 일어날 수 있는 인종차별과 여전히 진행 중인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전쟁의 상황 등이 그 중 하나다. 최근 코리아협의회는 베를린에서 열린, 가자 지구 내 알시파 병원에서의 전시 성폭력에 강력히 규탄하는 연대 집회에 참가했다.

즉흥 연극, 아이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일본군 '위안부'를 주제로 한 영상을 시청한 후 받아 적은 단어들 피, 울타리, 전쟁, 집이라는 단어들이 적힌 포스트잇을 고른 학생 ⓒ 최미연

 
프로그램은 박물관 인근에 위치한 평화의 소녀상에서 만나는 것으로 시작해 박물관 관람,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 감상으로 문을 연다. 이후 토론과 함께 랩 가사 작사하기, 연극, 요리 등의 문화 프로그램으로 지역 아티스트들과 함께 한다. 교육 대상은 10대 초반에서 후반, 독일인부터 독일로 이주해 온 난민까지 다양하다.

이번 연극 워크숍은 3일에 거쳐 진행되었는데 첫 날은 다큐멘터리 감상 및 토론이 주를 이루었다. 토론식 수업이 활발하게 진행되는 독일 사회인만큼 김동원 감독의 <끝나지 않는 전쟁>을 보고 나서 청소년들은 2~3시간에 거쳐 토론을 이어 나갔다. 때마침 라마단 기간이었기에 대다수가 온종일 물도 마시지 않은 채 기력이 소진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저마다 발언하고자 손을 연신 들곤 했다.

멀리 떨어진 다른 국가에서 일어난 전시 성폭력에 대해 참가생들은 마치 어제 일어난 일처럼 예민하게 반응한다. 특히나 여학생들은 가까운 지인들이 경험한 성폭력의 경험을, 30여 년 전 방송에 나와 일본군 '위안부' 피해 증언을 한 할머니의 목소리에서 재해석하고 발견한다.

둘째 날은 베를린에서 연극을 전공한, 한국인 교사 정은순님의 지도에 따라 초상화 그리기가 진행되었다. 서로의 얼굴을 긴밀하게 살피기 위한 과정으로 20여 명이 2~3분 이내에 옆에 앉은 사람의 얼굴 일부만을 그린 후 옆으로 전달해 나가는 방식이다. 무거운 주제로 인해 한껏 긴장되어 있을 학생들의 분위기를 풀어주는데 탁월한 시간이 아닐 수 없다.

학생들은 박물관 내에 준비된 여러 사진과 문서 자료들을 보고 포스트잇에 생각나는 것들을 풀어냈다. 이것들은 마지막 날 즉흥 연극을 준비하는 데에 재료가 될 예정이었다. '피, 울타리, 전쟁, 집',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여성에게 더 많은 권리가 필요합니다", "자유로운 의견" 등 머뭇거림 없이 다양한 단어와 문장들이 박물관의 한 벽을 가득 메웠다.

인종차별을 주제로 '일상에서 경험한 것들', '인종차별적인 대우를 받았던 것들', '인종차별한 사람을 어떻게 대처했는지'에 대해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이 또한 2~3시간을 훌쩍 넘겼다. 사전에 대략적으로 준비한 프로그램별 배정 시간이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그것은 참고일뿐, 학생들이 이 주제를 능동적으로 소화시키고 자신들의 언어로 해석 할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주고자 했다.

셋째 날은 세 편의 일본군 '위안부' 관련 애니메이션 영상을 관람했다. <허스토리>, <소녀에게>, <환>. 이 중에는 일본군 '위안부'가 아닌 일본군 생존자의 증언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작품도 포함되어있다. 개인들이 국가와 전쟁의 폭력 아래 어떻게 희생되었는가를 다각적으로 바라보기 위함이다.

벽에 붙인 포스트잇 중 마음에 드는 것을 5개 고르게 한 후 그것을 바탕으로 학생들에게 즉흥 연극을 구성하라고 제안했다. 모두 2명씩 짝을 지어 돌아가며 1인의 관객이 되고 1인이 퍼포머가 되는 형식이었다. 동시다발적으로 박물관 곳곳에서 자신이 마음에 드는 장소를 정해 누군가는 말 없이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고 누군가는 독백을 읊었다.

다큐를 관람하면서 삐딱한 자세로 누워있다시피 했던 학생도 막상 연극을 시작하니 눈빛이 변하며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모두가 같은 주제를 접해도, 자신의 속도에 맞게 체화해 나가는 과정이 다름을 존중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국 사회는 무엇을 해야 할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는 조각상을 제작하는 학생의 손 베를린 노이쾰른 지역의 학생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기리는 조각상을 제작하고 있다. ⓒ 최미연

 
3일간의 워크숍에 진행 보조와 촬영자로 함께 하며 가장 놀라웠던 사실은 이런 섬세한 존중이 전제되어 있는 분위기였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딱딱한 책상에 앉아 활자로만 접하는 게 아닌 자신의 의견을 개진해가면서 과거와 현재를 잇는 지점들에 고민을 던지는 과정이 인상적이었다. 시민단체·박물관에서 진행하는 이러한 프로그램들은 시의 지원으로 이뤄지고 있었다.

지난해 한국에서는 교육과정 간소화를 이유로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 위안부에 대한 내용이 빠졌다가, 교과서 편찬준거에 '일본군 위안부'가 명시되면서 논란이 잦아든 일이 있었다. 일부 학교에서는 동아리나 학생 자치 활동으로 일본군 '위안부' 관련 영화 감상이나 모금 운동 등을 해나가는 것으로 교육을 이어나간다. ("일본군 '위안부' 역사교육, 우린 제대로 하고 있나"https://omn.kr/1z8tj)

가해국인 일본은 교과서에서 일본군 '위안부'의 존재를 지워가는 데 여념이 없다. 한국 사회는 이 역사에 대한 질문보다도 역사 자체에 대한 부정과 더 싸워야만 하는 실정이다. 

이민자들의 도시인 베를린에서 이민자들의 자녀인 참가생 한 명은 다음과 같은 말로 이 연극 워크숍에 대한 감상을 나누었다.

"자기성찰은 스스로의 실수를 들여다보는 것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그것을 개선하고 고려하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그것들을 항상 인지하려하고요. 이 위안부 주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든 문제에도 해당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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