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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똑똑한 학생인 듯 하니 시간을 두고 깊게 생각해보았으면 해요. 학부모라는 요소의 해결방안도 넣어서 정말 공정하게 말이예요. 반박하듯 썼지만, 한편으로 나는 학생의 자기권리 주장이 반갑고 멋지다고 생각한답니다.
  2. 다양한 학부모의 입맛을 만족시키는 문제 앞에서 교사는 자신의 일관된 하나의 스타일을 선택하여 가르치는 선택지를 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게 최선이니까요. 물론 최근엔 체벌이 매우 예민한 문제가 되어서 때리는 것을 적극적으로 고민하는 교사는 적습니다. 다만, 어떻게 잠자는 학생 또는 수업을 방해하는 학생을 같이 데리고 갈 수 있을까. 를 고민합니다. 그리고 교육 현장에서 `교사의 의무는 학생의 자발적인 권리에 앞선다` 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교사가 평소에 학부모를 의식하면서 교육을 하지는 않지만, 학부모가 전화 또는 방문하는 순간부터 교사는 학부모를 의식할 수 밖에 없어요. 이 과정에서 마음을 심하게 다칩니다. 이 학부모라는 요소만 해결해도 교사들은 굉장히 편해질 겁니다.
  3. 세번째로 학생은 현실의 학교를 구성하는 요소의 중요한 걸 놓쳤어요. 이걸 놓쳤기에 비현실적인 글이 되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학부모;입니다. 내가 말한 두번째의 지적과 겹쳐 이 세번째 문제는 때로 파괴적인 결과를 낳기도 해요. 학부모는 일반적으로 내 아이가 자발적으로 잠을 잘 때, 교사가 깨워서 공부시키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어느 학부모는 때려서라도 가르치길 원하는 학부모가 있어요. 그리고 또 어느 학부모는 체벌을 반대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또 어느 학부모들은 아이가 부당한 무언가를 겪었다고 (주관적으로) 느낄 때, 학교를 찾아와 언어폭력과 실제 신체적 폭력을 가하기도 해요.
  4. 두번째로, 학생이 수업시간에 조용히 잠자는 일이 단순히 학생 본인의 교육받을 권리만 침해받는다고 했지만, 대립구도를 세우려고 지나치게 단순화했어요. 정확하게는 학생의 권리와 충돌하는 것은, 교사의 권리가 아니라 `의무`입니다. 교사는 뒤떨어지는 학생을 타일러가며 가르칠 의무가 있어요. 이건 교육철학에 맞아 떨어지는 의무입니다. 그것을 학생의 자발적인 권리 포기라는 측면이 있다고 인정하더라도 계속 잠자게 두면 그 교사는 교사로서의 의무로부터 눈돌리는 게 됩니다.
  5. 교사의 입장에선 제대로 된 예는 세번째가 메인이고 나머지는 가짜이거나 잘못된게 교권 침해를 주장하는 예인 거 같네요. 그런데 그 중요한 부분을 그냥 수업을 중단한다거나 학교 당국의 촉구로 가볍게 퉁쳤어요. 그것의 현실적 어려움이 메인인데. 일단 첫번째, 상대방의 것을 가볍게, 내 입장의 것은 무겁게 혹은 상대방은 좀 멍청하게 나는 똑똑하게 놓고 비교하는 건 객관적이지 못해요. 그렇기에 읽을 때엔 공평하게 다루는 것처럼 읽히지만, 디테일을 따져보면 미묘하게 편파적이라는 느낌을 받아요. 이렇게 할거면 비교형식이 아니라 그냥 학생의 입장을 주로 서술하는 것이 차라리 낫습니다.
  6. 브레이크가 필요한 상황이긴 합니다. 그런데 글쓴이의 접근방식이 너무 올드하네요. 글쓴이 스스로의 포지셔닝도 끝내 해결을 못지은 것 같구요. 그냥 이쪽 저쪽에 한마디씩 지적해준 뒤에 감동코드로 억지스럽게 화해시키려는 글입니다. 이걸로는 설득력이 없어 보여요.
  7. 한가지 조언을 하자면 기자가 기사에 쓰고 있는 현재 힙합의 문제는 클럽문화로부터 나온다. 마치 기자의 글을 읽으면 돈모은 랩퍼의 주 수입원이 쇼미더머니인 것처럼 오해하게 되는데 실은 클럽공연이 주 수입원이다. 이 때문에 현재 힙합의 비트메이킹 소위 잘팔리는 음악의 질이 결정된다. 날카로운 시대정신? 사회 시스템의 모순? 당연히 담길리가 없지. 클럽에서 누가 그런 거 듣나. 귀에 박히기나 하나? 일리네어의 `연결고리` 비트가 잘나간 이유는 클럽에서 잘 먹히는 단순함이다. 따라서 클럽문화를 까지 않고는 현재 힙합의 문제를 말할 수 없다. 나는 당최 기자가 무엇을 쓰려는 건지 모르겠다. 결국 적당한 비판점만 늘어놓다가 기획 첫 기사처럼 쇼미더힙합이어야 한다 뭐 이러면서 끝내려는 심산인 건지...
  8. 벌써 두번째 기획 기사이지만 딱히 구제적인 대안도 제시못하는 기 자가 무슨 의도로 이 기획을 진행중인지 아무도 모른다. 어쨌건 이 수상한 기사는 3편도 나올 예정이다.
  9. 이십사이더? 이십사이더의 문제의 그 무대를 보았는지?? 단순히 빠른 랩핑, 너도그리고너도그리고너도그리고의 반복, 그리고 알 수 없는 태권도 퍼포먼스... 그걸 힙합이라고 인정하자는 건가? 기자는 이십사이더가 이십사이더가 된 이유를 단순히 20만원이 찍혔기 때문이라고 해석한건가? 전혀 아닌데? 이십사이더가 이십사이더가 된 이유는 그 형편없는 무대 혹은 그 이전부터 아웃사이더의 랩에 담겨있던 문제들 때문이다. 이걸 돈으로의 환산 문제로 환원하면 그야말로 힙알못 인증이다.
  10. 이 기사는 대안없는 비판의 나쁜 예이다. 그리고 추상적인 주장의 나쁜 예이다. 구체적으로 기자가 원하는 이상적인 쇼미더머니 시즌5가 무엇인지 그려지질 않는다. 힙합만 다루는 가요프로? 정도로 읽힌다. 크루셜스타에게 또 한번의 기회를 주지 않은 건 타블로가 옳았다. 기회의 공정성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충분히 좋은 곡이라면 한번 더 못들어 줄것도 없다면 MR 준비 못한 나경원 의원 딸에게 25분간의 기회를 준 것도 공정성 면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을 터다. 타블로가 맞게 한거다. 기자는 공정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