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5.18 19:44최종 업데이트 24.05.18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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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 여기 깍두기 좀 더 줘."
"예, 금방 갖다 드릴게요."

60대? 아니면 70대? 적어도 나보다는 훨씬 위일 듯한 중년 아저씨의 걸쭉한 목소리에 이어 20대라 해도 믿을 만한 앳된 여자 목소리. 근데, 이모라고? 순대국밥을 한가득 입에 넣고 있던 나는 하마터면 그걸 모두 내뿜을 뻔했다.


우리나라는 유독 가족 간의 호칭을 타인들끼리도 많이 사용한다. 나이가 좀 들었다 싶으면 아버님이나 어머님, 자기보다 위다 싶으면 형이나 누나나 언니, 이젠 이모도 고모도 삼촌도 다 정말 폭넓게 쓰고 있다. 물론 적확한 호칭을 사용해야 하겠지만 친근감이 느껴져서 그다지 나쁜 것 같지 않다.

하지만 무조건 괜찮다는 건 아니다. 그것도 지켜야 할 어느 정도의 수준은 있다. 식당이나 가게에서 학생들이나 젊은 사람이 점원을 '이모'나 '고모'라 부르는 건 정다운 맛이 있어서 그다지 껄끄럽지는 않다.

하지만 아버지뻘 되는 이가 자기보다도 한참이나 나이가 어린 점원을 그렇게 부르는 건 어색함을 넘어 조금 기괴하게 들리지 않는가?

한 가지 더, 신분이나 직업, 관직이나 직급 등 소위 '타이틀'을 사적인 자리에서까지 호칭으로 남발하는 것도 별로 좋게 들리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의원님, 장관님, 관장님, 의장님, 사장님, 회장님, 검사님 등등 소위 타이틀을 전혀 상관없는 장소에서도, 친구나 지인끼리도, 심지어 이미 그 직에서 물러난 후에도 지나치게 자주 사용하는 것 같다. 엄연히 이름이 있는데, 왜 꼭 직업이나 관직, 직급을 호칭으로 사용할까? 내 선입견인지는 모르겠는데 혹시 본인의 인품보다는 타이틀이 주는 선입견을 바라는 건 아닐까?
 

장애인은 못 하는 게 아니라 다르게 하는 것 뿐이다 ⓒ 김미래

 
볼 수 없을 뿐, 할 수 없는 게 아닙니다

생각해 보면 장애인이란 '타이틀'에도 그런 면이 없지 않다. 비장애인뿐 아니라 장애인 역시 마찬가지란 생각이다. 많은 사람이 장애인은 신체나 정신적 결함으로 인해 뭔가를 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영어의 'disabled'란 표현도 그런 느낌을 준다. 사실 나도 얼마 전까지는 그랬고, 지금도 가끔이지만, 그렇게 생각할 때가 있다.

하지만 아니다. 분명 잘못된 선입견이고 부정적 편견을 불러일으킬 수 있어서 삼가야 한다. 사전에도 나와 있듯이 장애인은 신체나 정신 결함으로 행동에 뭔가 제약이 있는 것뿐이지 할 수 없는 게 아니다. 그러니까 '어떻게'만 잘 찾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사람이란 뜻이다.

나는 익숙한 길을 가다가도 누군가와 부딪치거나 장애물을 만나서 방향 감각을 잃어버릴 때가 있다.

"제가 앞을 못 봐서요, 잠시 방향 감각을 잃었거든요. 탄천이 어느 쪽이죠?"
"저쪽인데, 어디로 가시려고요?"

거듭 말하지만, 내게 여기저기는 아무 의미 없는 소리다. 그런데도 많은 이들이 이렇게 말로만 답하고 오히려 되묻는다. 내가 목적지를 말한다고 해서, 아주 가까운 곳이라면 모를까, 나를 그곳까지 데려다 줄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방향을 묻는 내게 왜 목적지를 묻는 걸까?

아마도 시각장애인은 혼자서 갈 수 없다는 생각에 무의식적으로 목적지까지 가는 길을 알려주고 싶은 것이리라. 고맙긴 하지만, 그래도 물어본 대로 시각장애인의 손을 잡고 방향을 가리켜 주는 게 더 고마운 일이다. 그럼 시각장애인은 혼자서도 잘 갈 수 있다.

시각장애인은 활을 쏠 수 있을까, 없을까? 어리석은 질문일 뿐 아니라 약간은 모욕적일 수도 있다. 시각장애인이라도 두 팔 두 다리는 멀쩡하니까.

지금은 대학생인 딸, 아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갔을 무렵, 나는 아이들의 성화에 못 이겨 활터 사대(射臺)에 선 적이 있다. 이미 시력도 무척 나쁜 데다가 시야도 무지 좁았고, 사물이 가끔 두 개로 보이기 시작할 때였다. 그래도 드라마에 나오는 장군처럼 멋지게 화살을 날리는 아빠 모습을 기대하는 아이들을 실망하게 할 수는 없었다.

2m는 넘어 보이는 커다란 과녁판에 코끼리와 코뿔소 등 동물의 모습이 큼지막이 그려진 게 어렴풋이 보였다. 아내와 아이들의 응원에 힘입어 힘차게 시위를 당겼다. 그런데 화살을 보면 과녁이 보이지 않았고 과녁을 보면 기껏 겨눈 화살이 엉뚱한 곳으로 향했다.

한 발, 두 발, 화살은 분명 시위를 떠났는데 과녁에 맞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대신 아이들의 안타까운 탄식만이 들려왔다. 조금씩 초조해지려는데 내 상황을 눈치챈 관계자분이 다가와서 내 팔을 잡고 과녁을 겨냥해 줬다.

잠시 후, 시위를 떠난 화살이 남긴 경쾌한 소리가 통쾌한 소리로 돌아왔고, 곧이어 아이들의 커다란 환호성으로 이어졌다.

"와, 코끼리에 정확히 맞았어요. 와!"

덩달아 기뻐하는 아내에게 어깨까지 으쓱해 보였지만, 나는 내가 겨냥한 과녁에는 코뿔소가 그려져 있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물론 그때는 조금이나마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눈으로 활을 쏠 수 있을 만큼은 아니었다.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얘기다. 그래도 나는 활을 쐈다. 그때 그 관계자분이 제공한 '어떻게' 덕분에 말이다.

시각장애인은 그림을… 당연히 그릴 수 있다. 실과 흙 등을 붙여가며 손끝으로 멋진 풍경화를 그려내기도 하고, 손끝의 감각으로 색깔을 구별해서 사진 같이 사람의 눈을 그려내는 화가도 있다. 세계적 명성의 사진작가도 있고 영화감독도 있다. 아마도 셀 수 없이 많은 시각장애인이 이렇게 시각적 예술 활동을 하고 있을 것이다.

시각장애인은 거친 산을 올라갈 수… 당연히 있다. 에베레스트를 오른 시각장애인도 있고, 히말라야나 7대륙의 최고봉을 오른 시각장애인을 찾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볼 수 없다는 건 볼 수 없다는 것뿐이다. 할 수 없는 게 아니라 조금 불편한 것에 불과하다. 어떻게만 찾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사람이란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반대로 선입견으로 인해 과대평가를 하는 때도 있다.

아직 청춘인 우리 친구들은 여전히 시끌벅적한 음식점이나 카페에서 만난다. 나도 맘껏 떠들 수 있는 그런 곳이 좋다. 그런데 내겐 한 가지 애로 사항이 있다.

앞을 보지 못한 지 벌써 십 년도 훨씬 지났건만, 나는 아직도 이런 자리에서 대화를 나누기가 어렵다. 시각을 대신하는 내 청각은 더욱 예민해졌지만, 소음에 섞인 대화 내용까지 명확히 구별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렇기에 소란스러운 곳에서의 대화에는 예민한 청각이 오히려 방해되기도 한다.

대화를 나눌 때 사람은 청각보다 시각에 더 많이 의존한다. 조금 부정확하게 들리더라도 표정이나 눈빛, 입 모양이나 손짓 몸짓을 보면서 내용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볼 수 없는 데다가, 상대방의 목소리는 시끄러운 잡음에 묻혀서 들리기 때문에 되묻거나 잘못 알아듣고 엉뚱한 답을 할 때가 종종 있다.

"엥? 그게 뭔 소리야? 못 알아들었어? 보지 못하게 된 후에 더 잘 들린다고 하지 않았나?"

장애인도 그냥 사람이다. 특별한 능력을 갖추지도 않았고 초능력은 더더욱 없다. 다만, 일부 신체 기능을 사용할 수 없기에 이를 대신하는 다른 신체 기능이 좀 더 예민해지거나 강화되는 것뿐이다. 그렇기에 청각이 예민해지기는 하지만, 소음이나 말소리나 다 똑같은 소리로 들을 수밖에 없다는 걸 알아주면 고맙겠다.
 

중도 실명한 박환 화가가 실과 흙 등을 붙여가며 마음으로 그린 그림, <기다림2>, 2011년, 캔버스에 흙·나무. ⓒ 화가 박환

  
배려는 고마운 것이지 당연한 게 아닙니다

이런 선입견이나 편견은 비장애인만의 것이 아니다. 장애인인 나 역시 그런 적이 있었다.

내가 연재하는 '시력 잃고 알게 된 세상' 2화에서 나는 화장실에서 겪은 불쾌한 경험을 이야기했다. 공연장 화장실에서 변기를 찾지 못해 헤매는 나를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며 당당히 불만을 토로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아무 관련도 없는 그 공연장과 그때 공연했던 뮤지컬까지 깎아내렸다.

장애인이라고 주눅들 필요는 없다. 오히려 내 모습 그대로 당당해야 한다. 그렇다고 장애가 감투라거나 특권인 것도 아니다. 그때 화장실에 있었던 사람 중에서 나를 도와줄 의무가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또 그들 중 내가 보지 못해서 변기를 찾지 못한다는 걸 전혀 몰랐던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그들 모두를 싸잡아서 비난했다.

의무도 없는 일을 안 했다고 비난할 수 있을까?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모른 체한 도의적 책임? 그럴 수도 있겠는데 모른 체 한 사람은 누구였을까?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반면 나는 얼마든지 도움을 청할 수 있었다. 도움이 필요했다면, 그들이 먼저 도움을 주기를 기다리지 말고 내가 더욱 적극적으로 청했어야 했다.

장애인이나 약자를 배려하는 것은 고마운 것이지 당연한 게 아니다. 먼저 도움을 준다면 고마운 일이고, 없다면 청할 일이지 비난할 게 아니란 거다. 불과 2년 전에도 나는 장애인으로서 이런 선입견을 품고 있었다. 지금도 완전히 극복했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하지만 서로 어울려 살면서 부딪치고 이해하면서 살다 보면 언젠가는 이런 선입견이나 편견은 깨끗이 사라질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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