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의 대사, 음향, 환호성... 마음의 눈으로도 얼마든지 연극을 볼 수 있다
김미래/달리
그러다가 어느 때부턴가 이대로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기가 났다. 하고 싶은 것을 도전해 보기로 했다. 진짜 할 수 있을지, 과연 하는 게 맞는지는 애써 무시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만 고민했다.
어려웠다. 내 머리와 의지만으로는 부족했다. 나는 이미 너무 뻔한 것조차 주눅이 들어 있었다. 남들이 뛰는 것도 신기했고, 낯선 곳을 아무렇지도 않게 걷는 것도 신기했다.
'나는 왜 못할까?'
나를 남과 비교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하다거나 괜한 짓이란 생각은 아예 지워버렸다. 하나둘 결과가 아닌 절차와 과정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할 수 없는 건 무시했고, 할 수 있을 거라 판단되면 흉내 내고 배웠다.
과연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였다. 흉내를 내다 보니 나만의 방법이 창조됐고 그건 새로운 희망이요, 기쁨이었다. 하나둘 할 수 있는 것이 늘어났고 새롭게 할 수 있는 것도 생겨났다.
내가 밖으로 나가지 못한 것은 걸을 수 없어서가 아니었다. 발이 부딪치고 발목이 꺾이고 무릎과 정강이가 까지는 게 두렵고, 창피해서였다. 그렇다면 그 두려움만 없애면 될 일이었다. 내겐 일상이 험하고 거친 길인 셈이니, 그런 험한 길을 가는 사람을 흉내 내면 됐다.
튼튼한 등산화를 신고 무릎 보호대와 정강이 보호대를 했다. 부딪쳐도 아프지 않았고, 상처도 없었다. 두려움도 사라졌고 더 이상 창피하지도 않았다. 지금은 무릎보호대는 물론 정강이 보호대도 없이 당당히 반바지를 입고, 조금 지나치다는 소리까지 들어가며 밖으로 나가서 예쁘고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세상을 맘껏 만난다.
영화나 연극은 눈으로 보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어리석게도 들을 수는 없지만 볼 수 있는 청각 장애인이 나보다 낫다는 생각까지 했었다. 그런데 배우의 한 마디 한 마디에 감동하고, 멋진 음악에도 감동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건 나도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분명 나처럼 볼 수 없는 이의 감상법이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무작정 따라갔다. 영화든 연극이든 가서 느껴야 나만의 감상법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을 테니까. 마음의 눈을 열고 감상했다. 부족하면 동행인에게 물었다. 두 번도 필요 없었다. 처음부터 재미 있었고, 감동도 있었다. 특히 연극은 생생한 배우의 목소리와 몸짓 덕분인지 마음의 눈이 마치 실제 눈처럼 장면 장면을 만들어 보여줬다.
비교하면서 흉내 내다 보니 기타도 칠 수 있었다. 덕분에 목청껏 노래도 불렀다. 박물관에도 갔고 미술관에도 갔다. 꽃구경도 갔고 전시회에도 갔다. 그러면 특별 대우가 기다리고 있었다. 감히 전시물을 만져볼 수 있는 특권을 받았고, 상세하고도 친절한 해설을 들었다.
비교가 없었다면 배울 수 없었고, 배우지 못했다면 누릴 수 없었던 행복이고 기쁨이었다. 자신감이 자존감을 높였고, 숨어있던 산에 대한 그리움이 슬금슬금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건 그동안의 가슴 저리고 애틋한 아쉬움이 아니었다. 기회만 되면 언제든 느낄 수 있는 설렘이요 즐거움이었다.
그렇다고 물리적인 장애까지 사라진 건 아니어서 여전히 미끄러지고 돌부리에 걸리고 나뭇가지에 긁히고 찔렸다. 아직 시간이 더 필요했다. 나는 두려움도 없었고 할 수 있을 거란 자신감도 있었지만, 나를 지켜보는 가장 가까운 아내나 부모님, 친구들은 그렇지가 않았다. 여전히 걱정이 앞섰고 무모하다고 나를 만류했다.
한때는 석탄을 나르는 트럭이 다녀서 '운탄고도'라 불린 길이라기에 나섰다가, 초입부터 늘어선 크고 작은 돌덩이에 놀란 일행의 만류로 정선 하늘길은 제대로 시작도 못 하고 돌아서야 했고, 그냥 동네 뒷산이건만, 다녀온 친구의 바위가 많다는 한마디에 목적지를 바꿔야 했다.
어쩔 수 없이 포장된 길이나 흙길 산책로로 만족하고, 유튜브나 책을 통해 산 이야기를 들으며 아쉬움을 달랠 수밖에 없었지만, 기대는 놓지 않았다.
곰배령에 오르다
때 이른 더위가 극성이던 지난해 초여름 어느 날, 시원한 동네 카페에서 아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는 며칠 전에 들은 곰배령 이야기를 꺼냈다.
"유네스코가 인정한 야생화의 천국이라니까, 생태 보존 차원에서 예약해야만 갈 수 있다는데, 요즘처럼 꽃이 필 때는 예약도 쉽지 않다더라고. 뭐, 말로는 초보자도 쉽게 오를 수 있는 길이라는데, 돌이 많다니까 난 좀 어렵겠지? 그래도 가고 싶기는 하다. 고향 근처라 어릴 적 외갓집 가면 곰배령 얘기 참 많이 들었는데."
내 얘기를 듣고 있던 아내가 갑자기 스마트폰을 눌러대는 소리가 들렸다.
"됐다. 예약했어요."
그러고는 여기저기 같이할 사람을 찾았다. 재개발로 어린이집이 폐원되어서 잠시 쉬고 있던 선배 누나가 곧바로 손을 들었다. 정말 아슬아슬하게 같은 날 예약이 됐다. 이런 걸 뜻밖의 횡재라 하던가, 역시 우리나라 아줌마 만세였다.
너무도 자신만만한 앞 못 보는 한 아저씨와 두 아줌마, 진동리 산림청 점봉산 생태관리센터 직원분이 걱정됐는지 큰소리로 파이팅을 외쳐줬다. 길은 편하고 울창한 숲과 시원한 계곡은 그야말로 최고였다. 단, 볼 수 있다면 말이다.
본격적으로 산에 오르기 시작하자마자 크고 작은 돌들이 나타났다. 나는 한발 한발 확인해서 올라서고 다시 내려서고를 반복해야 했다. 뒤쫓아온 다른 사람들에게 길을 비켜주고 다시 오르다가 비켜주고. 여전히 우리는 웃고 떠들었지만, 내 속은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아, 괜한 짓을 했구나!'
철저한 준비를 한다고 배낭에 넣은 1리터 물통 네 개와 점심을 대신할 간식이 무모한 짓임을 깨닫는 데는 채 1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거의 다 왔어요. 힘내세요."
겉으로는 웃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울기 직전일 때 벌써 산을 내려가던 사람들이 우리를 응원했다. 기운이 났다. 두 여장부는 여전히 씩씩했다. 나만 쓰러지지 않으면 됐다. 내가 안쓰러웠는지 다람쥐들이 길 안내를 자처하고 나섰다.
드디어 곰배령 꽃밭, 우리를 앞질러 갔던 중년 부부가 환영의 손뼉을 쳐줬다. 가슴은 뿌듯, 어깨는 으쓱, 괜한 짓을 한 게 아니라 잘한 짓이었다.
돌아온 생태관리센터, 빨간색 플라스틱 출입 딱지를 반납하는데 우리가 꼴찌가 아니란다. 그 소리가 그렇게나 고맙고 기쁠 수가. 우리 두 여장부 만세!
▲비교하고 도전하면 작은 시련과 더불어 큰 기쁨이 온다
김미래/달리
잘난 체일 수도 있다. 쑥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할 수밖에 없다. 파란 하늘도, 울긋불긋 예쁜 꽃들도, 초록초록 나무들도 나는 상상해야 한다. 아내도 아이들도 부모님도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자칫 처지고 우울해지지 않으려면 이래야 하고, 꼰대처럼 나 자신에겐 끊임없이 잔소리하고 독려해야 한다. 조금 다른 내가 이 세상과 어울리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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