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4.17 07:01최종 업데이트 24.04.17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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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가 끝났다. 선거 결과에 대해서는 앞으로 많은 논의가 있을 것이다. 정치공학적 분석이 나올 것이다. 그런 얘기를 추가하고 싶지는 않다. 한 가지만 지적한다. 여론조사와 정치평론에 대해.

문학연구와 평론을 하는 내가 문외한으로서 여론조사와 정치평론을 어떻게 하는 것이 잘하는 것인지를 평가할 수는 없다. 하지만 시민적 양식으로 판단컨대, 구체적인 근거와 데이터도 없이 자신의 주관적 견해를 분석으로 치장하거나, 여론조사가 아니라 여론조작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행태에 대해서는 엄정한 평가와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법적 조치를 말하는 건 아니다. 민주사회에는 언론 자유가 있으니, 여론조사와 정치평론의 자유는 보장해야 한다. 내가 말하는 건 시민적 공론장에서 이뤄지는 평가다.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엉터리 여론조사와 정치평론을 했던 것에 대해서 공론장에서 엄정히 평가하고 퇴출해야 한다. 오류에서 배우지 않으면 진전은 없다.

'자기 확신'이 득세하는 위험한 시대
 

넷플릭스 드라마 <삼체> 포스터 ⓒ 넷플릭스

 
최근에 넷플릭스 드라마 시리즈 <삼체>(Three-Body Problem)를 인상 깊게 보면서 우리 시대, 이번 선거의 유쾌하지 않았던 풍경을 떠올렸다. <삼체>는 중국 작가 류츠신이 쓴 3부작 장편 SF소설이다. 2015년 저명한 SF 문학상인 휴고상 수상작이다. 나는 3부작 원작에서 1부만 읽었다. 중국 SF 문학을 처음 읽었는데, 이런 작품을 몰랐다니 명색이 문학평론가로서 부끄러웠다. 엄청난 스케일보다는 발상이 흥미로웠다.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좋은 작품이 많다는 걸 새삼 느꼈다.

다가오는 외계인의 침공에 대한 인류의 대응을 다룬 묵시록 3부작인 <삼체>는 12개 이상의 언어로 수백만 부가 판매되었다. 발간 후 수십 년 동안 전 세계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중국 소설 중 하나가 되었다. 넷플릭스 드라마 <삼체>(이하 <삼체>는 드라마를 지칭)는 원작 3부작 중 1부와 2부 일부를 각색한 것이다. 나는 드라마 비평을 하지는 않겠다. 인상적으로 본 몇 장면이 촉발한 생각, 세상 돌아가는 꼴에 대한 단상을 적는다. 

온라인으로 구독하는 <뉴욕타임스> 최근 판에서는 <삼체>에 묘사된 1960년대 중국 '문화혁명'을 두고 중국 내에서 벌어진 논란을 다룬다. <삼체>에서 충격적으로 본 장면도 문화혁명과 관련된다. 1966년부터 1976년까지 10년 동안 진행된 문화혁명 동안 150만~800만 명이 사망했다. 1억 명 이상의 중국인이 영향을 받았다고 추정한다. <삼체>의 시작은 그 격변을 충격적으로 보여준다. 1967년 문화혁명이 한창일 때 한 물리학 교수가 참혹하게 구타당하는 장면이다.

그가 가르치고 연구해 온 물리학 이론은 정치 논리에 따라 반동 이데올로기로 단죄당한다. 그의 아내조차 거기에 동참한다. 그는 홍위병의 구타로 끔찍한 상처를 입은 채 죽는다. 그의 딸이고 <삼체>의 핵심 인물인 여성 물리학자 예원제는 공개 처형을 지켜보았다. 그녀는 충격적인 경험을 겪고 인간에 대한 희망을 잃었다. 강조하며 다시 적는다. '예원제는 인간에 대한 희망을 잃었다.' 내가 주목하는 지점은 이 대목이다.
 

넷플릭스 드라마 <삼체> 스틸컷. 오른쪽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예원제(진 쳉 분) 박사. ⓒ 넷플릭스

 
<삼체>의 서사는 예원제가 갖게 된 인간 혐오에서 시작한다. 예원제가 인간 혐오를 다시 확인하게 된 건 아버지의 사망 후 시간이 지난 뒤 아버지를 구타해서 죽인 여성 홍위병을 만나고 나서다. 예원제는 묻는다. 그때 일을 후회하냐고. 홍위병은 답한다.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고.

홍위병의 답변을 단지 한때 믿었던 이념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그가 주장하듯이 잔혹한 행동에는 자신과 예원제 사이의 계급 차이에 대한 자의식도 작용한다. 쉽게 말해 '너는 나보다 훨씬 좋은 집안에서 좋은 교육을 받은 사람이다. 나는 그렇지 못했고 그럴 희망도 없다'라는 태도. 인간의 마음이 단순치 않다는 걸 보여주는 장면이다. 예원제는 그녀가 겪었던 충격적인 사건으로 인류는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다는 걸 확신하게 된다. 여기서 포인트는 '확신'이라는 표현이다. 그녀의 확신은 파국적 결과를 가져올 행동을 낳는다.   

이런 확신을 가진 다른 캐릭터는 다른 이유로 인류에 대한 희망을 포기한 환경운동가이자 엄청난 부를 가진 재력가인 마이크 에반스다. 에반스는 인류 종이 지구를 파괴하고 있다는 걸 확신하는 급진적 환경론자이다. 예원제와 에반스가 보여주는 인류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는 과정과 그들이 내린 결론에 나는 기본적으로 공감한다. 인류는 희망이 없기에 인류보다 더 강하고 진화된 지구 밖의 존재를 불러서라도 지구를 구해야 한다는 그들의 생각도 어느 정도 이해한다.

인류라는 종에 대한 혐오는 영국 문학의 고전인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를 포함해서 많은 작품이 다뤘다. 과학기술문명으로 통칭하는 근대자본주의 문명은 인간이란 존재에 대한 환멸을 더 강하게 만든다. 역시 공감한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이들이 지닌 자신의 견해에 대한 확신 혹은 독단이다. 예원제와 에반스는 삼체 행성에서 찾아오는 삼체 종족이 인류보다 진화된 과학과 윤리의식으로 인류를 구원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들에게 삼체 종족은 신적인 존재인 주님(the Lord)으로 불린다.

<삼체>의 흥미로운 지점은 이들의 확신이 무너지는 순간을 포착한 장면이다. 과연 삼체는 지구의 구원자인가? 예원제와 에반스가 맞이하는 결말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표현한다. 이런 식의 확신은 두 인물에게만 있는 게 아니다. 400년 뒤에 지구에 도착할 삼체의 공격을 확신한 지구 방위 조직에서는 삼체에게 협조하는 사람들을 학살한다. 여기에도 같은 확신의 논리가 작용한다. '우리'를 위협하는 '저들'을 단호히 제거해야 한다는 논리.

지구를 바라보는 삼체의 시각에도 비슷한 확신이 작용한다. 몇 가지 빈약한 근거를 갖고 삼체는 인류를 벌레라고 단정한다. 벌레는 제거해야 할 존재일 뿐이다. 내가 <삼체>에서 흥미롭게 본 건 이런 확신이 가져온 파괴적 결과다. 확신의 뒷면은 자기성찰의 부재다. 믿는 것이 옳다고 확신하는 자는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다. 우리 시대는 자기 확신이 득세하는 때다. 그런 시대는 위험하다. 

오만한 정당을 지지할 유권자는 없다
 

제22대 국회의원선거일인 10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출구조사 관련 방송을 지켜보고 있다. ⓒ 연합뉴스

 
이제 <삼체>와 관련해 잠시 선거 얘기를 하자. 나는 거대 양당의 행태와 선거 결과에 대해서는 평하고 싶지 않다. 나는 그동안 모든 선거에서 지역구는 현실적인 상황을 고려해서 차선이나 차악을 골랐지만, 비례 투표는 진보정당에 투표해 왔다. 이번 선거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 당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기에 책임져야 할 이들이 상황을 냉정하게 인식하고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남 탓, 상황 탓을 하는 걸 봤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성찰과 반성이 없다. <삼체>가 보여주듯이, '우리'는 옳고 '당신들'은 틀렸다는 확신에 집착한다.

도덕적 우위를 자임하는 개인이나 정당은 오만해진다. 정당은 사회운동 단체가 아니다. 대의민주제에서 그것이 마음에 들든 안 들든 유권자의 지지를 얻지 못한다면, 그 이유를 냉철하게 분석하고 대처해야 한다. 처절한 반성이 있어야 다음을 기약할 수 있다. 오만한 확신에 빠진 사람과 정당을 지지할 유권자는 없다. 선거 결과는 그걸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사족으로 하나만 적자. <삼체>가 보여준 씁쓸한 교훈은 한 문명을 파괴하려면 그 문명을 지탱하는 과학 기술의 토대를 무너뜨리고 과학기술자를 제거하면 된다는 것이다. 사상 최초로 연구 개발 예산을 무지막지하게 삭감한 권력의 모습에서 삼체의 교활한 전략이 어른거린다면 이건 내 망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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