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드라마 <삼체> 스틸컷. 오른쪽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예원제(진 쳉 분)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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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체>의 서사는 예원제가 갖게 된 인간 혐오에서 시작한다. 예원제가 인간 혐오를 다시 확인하게 된 건 아버지의 사망 후 시간이 지난 뒤 아버지를 구타해서 죽인 여성 홍위병을 만나고 나서다. 예원제는 묻는다. 그때 일을 후회하냐고. 홍위병은 답한다.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고.
홍위병의 답변을 단지 한때 믿었던 이념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그가 주장하듯이 잔혹한 행동에는 자신과 예원제 사이의 계급 차이에 대한 자의식도 작용한다. 쉽게 말해 '너는 나보다 훨씬 좋은 집안에서 좋은 교육을 받은 사람이다. 나는 그렇지 못했고 그럴 희망도 없다'라는 태도. 인간의 마음이 단순치 않다는 걸 보여주는 장면이다. 예원제는 그녀가 겪었던 충격적인 사건으로 인류는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다는 걸 확신하게 된다. 여기서 포인트는 '확신'이라는 표현이다. 그녀의 확신은 파국적 결과를 가져올 행동을 낳는다.
이런 확신을 가진 다른 캐릭터는 다른 이유로 인류에 대한 희망을 포기한 환경운동가이자 엄청난 부를 가진 재력가인 마이크 에반스다. 에반스는 인류 종이 지구를 파괴하고 있다는 걸 확신하는 급진적 환경론자이다. 예원제와 에반스가 보여주는 인류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는 과정과 그들이 내린 결론에 나는 기본적으로 공감한다. 인류는 희망이 없기에 인류보다 더 강하고 진화된 지구 밖의 존재를 불러서라도 지구를 구해야 한다는 그들의 생각도 어느 정도 이해한다.
인류라는 종에 대한 혐오는 영국 문학의 고전인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를 포함해서 많은 작품이 다뤘다. 과학기술문명으로 통칭하는 근대자본주의 문명은 인간이란 존재에 대한 환멸을 더 강하게 만든다. 역시 공감한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이들이 지닌 자신의 견해에 대한 확신 혹은 독단이다. 예원제와 에반스는 삼체 행성에서 찾아오는 삼체 종족이 인류보다 진화된 과학과 윤리의식으로 인류를 구원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들에게 삼체 종족은 신적인 존재인 주님(the Lord)으로 불린다.
<삼체>의 흥미로운 지점은 이들의 확신이 무너지는 순간을 포착한 장면이다. 과연 삼체는 지구의 구원자인가? 예원제와 에반스가 맞이하는 결말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표현한다. 이런 식의 확신은 두 인물에게만 있는 게 아니다. 400년 뒤에 지구에 도착할 삼체의 공격을 확신한 지구 방위 조직에서는 삼체에게 협조하는 사람들을 학살한다. 여기에도 같은 확신의 논리가 작용한다. '우리'를 위협하는 '저들'을 단호히 제거해야 한다는 논리.
지구를 바라보는 삼체의 시각에도 비슷한 확신이 작용한다. 몇 가지 빈약한 근거를 갖고 삼체는 인류를 벌레라고 단정한다. 벌레는 제거해야 할 존재일 뿐이다. 내가 <삼체>에서 흥미롭게 본 건 이런 확신이 가져온 파괴적 결과다. 확신의 뒷면은 자기성찰의 부재다. 믿는 것이 옳다고 확신하는 자는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다. 우리 시대는 자기 확신이 득세하는 때다. 그런 시대는 위험하다.
오만한 정당을 지지할 유권자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