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1.08 13:29최종 업데이트 24.01.08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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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드파더스(Bad Fathers)'라는 인터넷 사이트를 운영하며 양육비를 주지 않는 부모의 신상을 공개한 구본창씨에게 유죄 판결이 확정된 4일 오전 서울 대법원에서 구씨가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양육비 해결하는 사람들(구 배드파더스) 사이트를 운영하는 구본창 대표는 이혼 후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부 또는 모의 신상을 공개해왔다. 법적인 제재가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그렇게라도 양육비를 받아내서, 아이의 생존권을 지켜야 한다는 신념에서다. 그런 그에게 대법원은 지난 4일 벌금 100만 원의 선고유예를 확정했다. 배드파더스의 신상공개가 사적제재 수단의 일환에 가깝다고 판단한 것이다. (관련 기사: "사적 제재 수단" 대법원, 배드 파더스 운영자 '유죄' https://omn.kr/26yon).

판결 하루 뒤인 지난 5일 오후, 구본창 대표와 전화 인터뷰를 진행했다. 과거 코피노 아이들이 양육비를 받지 못해 밥을 굶는 것을 보고 그들이 양육비를 받을 수 있게 돕기도 했던 그는 "양육비를 받지 못하면 아이는 성장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라며 "양육비만큼은 반드시 지급되는 사회가 꿈"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인터뷰 일문일답을 정리한 내용이다.

"대법원 판결, 납득 안 돼... 피해자 권리 회복하도록 돕는 게 죄가 되나"

-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 그러나 선고유예가 나왔다. 


"결국 아이의 생존권과 양육비를 주지 않는 무책임한 부모의 명예가 충돌하는 문제인데, 무엇을 더 우선하느냐는 선택의 영역이다. 나는 아이의 생존권이 더 우선이라고 생각하는데, 대법원의 생각은 달랐던 거다. 그래도 사실상 아무런 처벌이 없는 선고유예가 나왔다는 것은 중간 지점으로 판단한 것이 아닌가 싶다."

-대법원은 사적제재라는 입장인데, 동의하나.

"판결문을 보니 이 사이트가 양육비를 받아주는 것을 목적으로 운영됐고, 양육비 미지급자들이 양육비를 지급할 수밖에 없도록 강제했고, 양육자들의 의사에 따라 사진을 올렸다고 하던데 어떻게 이런 것들이 사적제재의 근거가 될 수 있는지 이해가 안 된다. 양육비를 받아 피해자들이 권리를 회복하도록 돕는 이게 어떻게 죄가 될 수 있나. 그리고 신상공개 대상자들이 공인이 아니기에 적절하지 않다고 하는데, 그럼 공인이 아닌 사람들은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인가. 납득이 안 간다."

- 현재 이혼 후 양육비를 받지 못하는 경우는 얼마나 되는지 궁금하다.

"정부에서 전수조사를 시행한 적은 없어서 정확한 수는 모른다. 그러나 언론을 통해 보도된 바로는 피해자가 10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그럴 만도 하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2022년 이혼 건수가 9만 3천 건으로 집계됐는데, 이혼 건수가 한 해 10만 건 아래로 내려간 건 지난 1997년 9만 1160건 이후 25년 만이라고 한다. 그리고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18년 한부모가족 실태조사'에 따르면, 78.8%가 양육비를 못 받고 있다. 단 한 차례도 받은 적이 없는 경우도 73.1%에 달한다. 이게 누적되면 당연히 100만 명이 넘을 것이다."

- 양육비 미지급 피해자는 대부분 여성인데, 이유가 있나.

"여성이라는 성별의 문제와도 관련이 있다. 예를 들어, 남성이 양육권을 가졌을 때 부인이 양육비를 안 주기는 쉽지 않다. 남편이 부인을 무서워하는 경우는 드물지 않나. 그러나 여성의 경우는 다르다. 특히 남편에게 가정폭력의 트라우마가 있는 등의 경우에는 상황이 더욱 힘들어진다. 그러다 보니 여성 비율이 높다."

"국회 계류 중인 양육비 관련 법안 빨리 통과 돼야"
  

양육비해결하는사람들(구 배드파더스) 사이트 ⓒ 양육비해결하는사람들

 
- 그럼 신상공개 이후 양육비를 지급한 사람은 몇 명이나 되나.

"과거 배드파더스로 사이트를 운영할 때, 1000명 이상의 양육비 미지급 건을 해결했다. 지금 '양육비 해결하는 사람들' 사이트를 통해서도 400~500명 정도가 신상공개 이후 양육비를 지급했다. 이렇게 해결된 경우 사이트에서 신상을 내린다."

- 개인이 신상공개를 할 경우, 오판의 위험이 항상 존재한다. 어떤 검증 절차를 거치나.

"양육자들의 말만 듣고 판단하는 건 아니다. 이혼 판결문, 양육비 부담 조서 등 법원의 서류를 받아서 판단한다. 신상공개 전 미지급자에게 사전 통보도 먼저 한다. 미지급이 아닐 경우, 지급했다는 자료를 보내달라고 이야기한다. 만약 지급할 형편이 안 되는 미지급자의 경우에도 사정을 알려달라고 한다. 미지급이 맞다면, 양육자와 이야기해 원만하게 해결하라고도 권고한다. 이런 과정을 다 거쳐 그래도 미지급자가 양육비를 생활의 우선순위로 두지 않고 있고, 전혀 문제를 해결할 의사를 보이지 않는 것이 확인됐을 경우 그때 신상을 공개하는 거다."

- 신상공개 외에는 방법이 없는 걸까.

"우리나라도 법이 많이 바뀌긴 했다. 여성가족부에서 신상공개를 한다고 하길래, 배드파더스 사이트를 닫았었다. 그러나 실효성이 떨어졌고 불완전했다. 여성가족부의 신상공개에는 양육비 미지급자의 사진이 없다. 특정이 안 된다는 거다. '양육비 해결하는 사람들'이라는 이름으로 사이트를 다시 오픈한 이유기도 하다. 배드파더스 문을 닫고 나니, 양육비를 지급하다가 다시 지급하지 않는 경우도 생겼다. 또 양육비 미지급자의 운전면허를 정지시키기도 하는데, 그 정지 기간이 100일밖에 안 된다. 100일 동안 그냥 택시 타고 다니면 되는 거다. 사실 법으로 해결이 되는 게 가장 좋은데, 안타깝다."

- 국회에 계류되어 있는 양육비 관련 법들이 이미 많은 것으로 안다.

"그렇다. 어떤 법이 만들어져야 하고 어떻게 바뀌어야 하고 이런 이야기들이 무의미한 이유다. 이미 시민단체들이 끊임없이 문제 제기와 대안 제시를 해왔고, 국회에도 양육비 문제를 획기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법들이 여럿 발의돼 있다. 그러나 통과되지 못하고 잠들어 있고, 시간이 지나면 또 폐기될 운명이다. 일단 이 법안들부터 빨리 통과시켜야 한다."

- 왜 아직도 통과가 안 되는 걸까.

"우리 사회가 약한 사람들의 목소리에는 잘 관심을 안 가지지 않나. 정치권과 정부가 이 사람들(양육자)의 이야기를 안 들어 준다. 목소리가 작은, 힘없는 집단이기 때문에 그렇다. 양육자들은 혼자 아이를 키워야 하고, 생계를 감당해야 하니 시간을 내기도 힘들다. 어떻게 하면 목소리를 더 높일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다."

- 추가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번 유죄 판결로 인한 파장이 우려된다. 양육비 미지급 외에도 성범죄 미투, 학교 폭력 사건들은 당사자가 본인의 피해 사실과 가해자가 누구인지를 세상에 알려야 한다. 그러나 이제 그것이 쉽게 가능하겠나. 피해자들이 더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

구 대표의 우려는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었다. 여성신문은 지난 5일, 8살 자녀를 키우고 있는 한 양육자가 배드파더스에 대한 대법원 판결 직후 이혼한 전 남편에게 받은 SNS 메시지를 공개하며, 이번 판결의 후폭풍을 우려하는 내용의 보도를 했다. 기사에 따르면 양육자의 전 남편은 "이제 내가 그 쪽에게 양육비를 줘야 하는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득을 해봐라"라는 말과 함께 구 대표의 유죄 판결 기사 링크를 보냈다.

한편 구 대표는 인터뷰 말미 "대법원 판결 이후 '멘붕'이 왔다"라고 솔직한 심정을 밝히며 "신상공개 사이트 운영을 계속할지는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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