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1.01 07:09최종 업데이트 23.11.01 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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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8월 24일, 오염수를 방류하고 있는 후쿠시마 제 1원자력 발전소의 모습 ⓒ 교도통신=연합뉴스


지난 10월 23일 일본 정부의 후쿠시마 오염수 2차 해양 투기가 종료되었다. 8월 24일 1차 해양 투기가 시작되었을 때의 정부 브리핑, 그 장면을 생중계하던 언론, 시민들의 관심과 비교하면 관심이 많이 줄어든 상황이다.

그러나 돌아가는 분위기는 심상치 않다. 겨우 2차 해양 투기가 종료되었을 뿐인데, 오염수가 바다에 버려진다고 해도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일본 정부의 주장과는 상반된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오염수를 버려도 해류를 따라 넓게 퍼져 특정 지점의 삼중수소 농도가 지속적으로 높아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지난 21일 오염수 방류구 인근에서 삼중수소 농도가 기준치를 넘는 리터당 22㏃(베크렐)이 검출되는 등, 이 부근에서 최근 삼중수소의 검출 횟수와 농도 수준이 가파르게 상승한 것이다.


이제 막 2차 해양 투기가 이뤄진 시점인데 오염수에 포함된 '녹'이 오염수 펌프 필터에 부착되어 막히는 설비 고장이 일어나고, 3차 방류분 오염수의 시료에서 탄소-14, 코발트-60, 스트론튬-90, 아이오딘-129, 세슘-137 등이 검출되는 등 일본 정부의 오염수 처리 과정에 대한 문제점이 계속 드러나고 있다.

일본 정부는 검출된 삼중수소가 기준치에 못 미쳐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삼중수소가 바닷물에 농축되어 검출 농도가 높아지는 것이라면 이는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표층수에서의 방사성 물질 검출이 생물학적 농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일본 정부는 현재 삼중수소의 상승 원인이 무엇인지, 이로 인한 환경 영향이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 없이, '기준치 이하라 안전하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또한 삼중수소가 예상과 다르게 검출된 이유에 대한 검증 없이 오는 11월 2일 3차 해양 투기를 서두르고 있다.

지난 25일 후쿠시마 원전의 다핵종제거설비(ALPS)를 청소하던 도쿄전력의 협력업체 직원 5명이 방사능 오염수에 그대로 노출되는 사고가 일어났다. 오염수를 내보내는 연결 호스가 갑자기 빠지면서 오염수가 작업자들의 옷과 마스크에 뿌려진 것이다.

그중 방수복을 입지 않았던 작업자 2명은 오염수가 직접 피부에 닿는 바람에 결국 후쿠시마의 대학병원으로 이송되어서 치료를 받았다. 피폭량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중 한 명의 마스크에서 피폭량 기준치인 5mSV(밀리시버트)가 초과했음을 알리는 방사능 측정기의 알람이 울리면서 우려를 낳고 있다.

도쿄전력은 처음엔 오염수 유출의 양이 100ml에 불과하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일본 온라인 매체 <JB Press>의 마사노 아츠코 기자에 따르면 오염수의 방사성 물질 농도가 1리터당 43억 7600㏃(베크렐)의 고농도이며, 유출량도 수십 리터가 넘는다고 한다.

일본 정부는 지난 23일까지 이미 1560만L 상당의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했고, 내년 3월까지 4차례에 걸쳐 오염수 3만 1200t을 해양 투기할 계획이다. 약 44억Bq의 고농도 오염수를 처리해서 바다에 버리고 있는 것이나 다름 없다. 그런데 이는 후쿠시마 원전에 저장된 오염수의 약 2.3%에 해당하는 양에 불과하다. 

세 개의 사고, 그중 후쿠시마가 가장 위험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2021년 10월 17일 오전 일본 후쿠시마 제1 원전을 시찰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인류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전에 이미 스리마일 원전 사고와 체르노빌 원전 사고라는 비극을 겪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스리마일 원전에는 1호기와 2호기가 있는데, 1979년 2호기에서 핵연료가 녹는 '노심용융' 사고가 발생했다. 1978년 12월 30일 상업운전을 시작한 이래 4개월 만에 설비 고장, 설계 미흡, 체계적 절차 미비, 운전원의 잘못된 대처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사고가 일어났다.

미국 원자력 산업 역사상 가장 심각한 사고로 기록되지만 후쿠시마 원전과 달리 핵연료의 일부만 녹아내렸고, 녹아내린 핵연료가 압력용기 밖으로 벗어나지는 않았다. 격납용기가 파괴되지 않아 유출된 방사선량도 크지 않았다. 원격 로봇으로 핵연료 등 노심을 정화하고 제거한 뒤 사고를 수습할 수 있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원자력 재해 등급인 7등급을 받은 건 체르노빌 원전 사고와 후쿠시마 원전 사고뿐이다. 1986년 체르노빌 원전에서 사고가 일어나면서 후쿠시마 원전처럼 원자로가 완전히 파괴되었다. 체르노빌의 경우 핵연료 자체가 폭발하면서 외부로 핵연료가 노출되었고, 노출된 핵연료에서 강력한 방사선을 내뿜었다. 그로 인해 사고 지역인 체르노빌과 인근 지역뿐 아니라 유럽까지 방사선 물질 오염이 진행됐다. 사고가 일어난 지 37년이 지나도록 유럽 전역의 토양과 버섯류, 베리류 등에서 아직도 방사성 물질 세슘137이 검출되고 있다.

당시 소련 정부는 사람을 이용해 폭발한 핵연료를 수습했고, 핵분열을 억제하는 붕소 화합물, 열을 흡수하고 이산화탄소를 발생시켜 화재를 막아주는 돌로마이트, 방사능 차폐를 위한 납, 그리고 모래, 진흙, 자갈 등을 퍼부어 파괴된 원자로를 덮어버렸다.

스리마일처럼 핵연료를 제거하진 못했지만, 방사선이 밖으로 유출되지 않도록 봉인한 채 거대한 시멘트 석관으로 덮는 방법을 썼다. 거대한 시멘트 석관은 방사선으로 인한 부식으로 사고 30년을 견디지 못해 현재는 시멘트 석관 위에 거대한 강철 방호벽을 다시 건설해 덮었다. 체르노빌 측은 강철 석관 건설 당시 100년을 견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정말 100년을 견딜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알 일이다.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원전의 폐로 기간에 대해 앞으로 30년~40년이 걸릴 것이라고 주장한다. 후쿠시마 오염수의 발생도, 후쿠시마 원전 폐로도 녹아내린 핵연료를 제거해야만 끝이 난다. 후쿠시마 사고 원전 1, 2, 3호기에는 녹아내린 핵연료 약 880t이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 정부는 일단 2호기 원자로 격납용기에서 녹아내린 핵연료를 제거하려 했으나, 시작부터 난항에 부딪혔다.

핵연료를 제거하기 위해 개발된 로봇팔을 투입하려던 배관이 퇴적물로 꽉 막혀있었던 것이다. 일본 정부는 퇴적물을 제거한 후 로봇팔을 투입하겠다고 했으나 그것마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고선량의 방사선으로 인해 노동자 피폭 등 해결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도쿄신문>에 따르면 여러 어려움을 이겨내고 로봇팔을 투입한다고 해도 현재(시험 추출) 한 번에 제거할 수 있는 핵연료의 양은 귀이개에 담을 수준에 불과하다고 한다. 일본 정부는 최종적으로는 로봇팔을 통해 한 번에 10kg씩 제거할 목표를 세우고 있으나, 로봇팔 투입 자체부터가 여의찮은 게 현실이다. 880t의 녹아내린 핵연료를 제거해서 원전 사고를 수습하고, 방사성 오염수 문제까지 해결하려면 도대체 몇 년이 걸릴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

윤 정부의 의중이 궁금하다
 

2021년 12월 29일 당시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경북 울진군 신한울 3·4호기 건설중단 현장을 방문해 탈원전 정책 전면 재검토와 신한울 3·4호기 건설 즉각 재개 등 원자력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우리 국민의 85.5%가 오염수 해양 투기를 반대했고, 오염수가 버려진다면 수산물 소비를 줄이겠다는 등 국민 여론은 매우 좋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오염수 해양 투기를 반대하는 국민들의 의사를 무시하면서까지 일본 정부와 입장을 같이 했다. 그로 인해 일본 정부는 오염수 해양 투기를 좀 더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 한국 정부는 왜 오염수 해양 투기에 반대하지 않았을까?

한수원을 비롯한 여러 공기업들의 행보를 보면 짐작 가는 부분이 있다. 한수원은 고리원전 1호기 폐로 과정에서 사용후핵연료 저장조의 냉각수를 물로 희석해 기준치 이하로 버리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물로 희석해서 버리면 안전하다는 것이 한수원의 주장이다. 또한 한국지역난방공사(이하 한난)가 윤석열 정부의 원전 확대 정책에 부응해 소형모듈원자로(SMR)를 지역난방에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한 사실도 알려졌다. 한난은 서울 강남과 판교, 동탄 등 도심과 신도시에 난방열을 공급하는 에너지공기업이다.

SMR의 경우 하나의 용기 안에 주요 기기를 모두 배치하기 때문에 엔진룸 내부의 핵연료교체 등 노심관리가 복잡해지고, 원자로 내부 부품 검사나 정비에 불리해 사고 위험이 높아지는 반면 경제성은 떨어진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원전을 운영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기술력이 강화되면 사고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주장하지만, 스리마일, 체르노빌,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각기 다른 이유로 발생했다. 스리마일, 체르노빌,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목도했음에도,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한 채 윤석열 정부는 원전 확대 정책을 위해 일본 정부의 오염수 해양 투기를 용인했고,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은 SMR을 도입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우리가 일본 정부의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 투기를 중단시키지 못하면 앞으로 우리의 바다는 방사성 오염수 가득한 쓰레기통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어쩌면 앞으로 모든 나라에서 모든 오염물질을 물로 희석해 기준치 이하로 바다에 버리겠다고 나설지도 모른다.

또한 결국 오염수 해양 투기의 근본 원인인 원전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지 않는다면 우리 동네에 원자로를 하나씩 달고 살아가야 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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