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0.10 07:12최종 업데이트 23.10.10 07:12
  • 본문듣기
주산(주판)의 마지막 세대이자 컴맹 제1세대, 부모에게 복종한 마지막 세대이자 아이에게 순종한 첫 세대, 부모를 부양했지만 부모로서 부양 못 받는 첫 세대, 뼈 빠지게 일하고 구조조정 된 세대인 베이비부머의 이야기를 전합니다.[[기자말]

연금이나 받으면서 팔자 좋게 살려는 꿈은 와장창 깨졌다. ⓒ 픽사베이

 
도대체 돈이 얼마나 있어야 제대로 살 수 있을까.

최근 언급되는 평균 수명을 고려하면 건강만 유지한다면 90세까지도 살고, 현재 30대들은 100세 시대 주인공이 된다. 오래 사는 데 필요한 건 결국 '돈'이다. '짧고 굵게'가 아닌 '길고 가느다랗게' 재테크하지 않으면 은퇴 이후 쪽박 찰 공산이 크다는 뜻이다.


더구나 2050년께 우리나라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40%를 넘을 거라는 예상에 따르면, 노후대책은 발등의 불이다. 하지만 주변에 '노후준비 잘하고 있느냐'고 물으면 대다수가 손사래를 치거나 고개를 가로젓는다.

노후에 중요한 '재건여대' 

언젠가 국민연금공단에서 한 강좌를 들은 적이 있다. 강사는 "노후에 '재건여대' 네 가지를 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는 돈, '건'은 건강, '여'는 여가나 취미, '대'는 대인관계를 뜻한다. 말을 참 잘도 지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 기초연금 잘 타 먹는 방법도 귀띔했다. 거기까진 좋았다. 그런데 잘 나가다가 뒤통수 때리는 소릴 했다.

"낼 사람은 적은데 받을 사람만 많아요. 그게 걱정입니다. 중산층 기준으로 노후를 위해 준비해야 하는 자금은 시간이 지날수록 많아지고 있습니다. 국가에서 운영하는 국민연금, 생명보험사나 은행 등에서 판매하는 개인연금, 퇴직 시 일시금으로 받거나 연금형으로 받을 수 있는 퇴직연금 등 '연금3총사'로도 힘듭니다. 30년 정도 납입해야 겨우 퇴직 후 월 100만 원 조금 넘는 금액을 받아요."

강사의 말을 듣고 '그럼, 어쩌라고'라는 말이 튀어나올 뻔했다. 나는 어떡하지, 머릿속의 계산기를 두드렸다.

'내가 지금까지 납입한 국민연금은 모두 301개월(대략 26년) 동안 5000만 원이 조금 넘는다. 가입기간 소득 평균액은 약 340만 원. 현재 가치로 본 예상연금액(2034년 4월)은 세후 월 104만 6760원이고, 미래가치로 본 예상연금액은 최저 149만 1510원, 최고 179만 60원쯤 된다. 아내는 14년 정도 적립했으니 30만~40만 원을 받을 수 있다. 둘이 합하면 월 150만 원? 헉 큰일이다.'

강의가 끝나고 집으로 오자마자 지난 2022년 11월 가계부를 확인했다.

'식비 79만 8000원, 문화생활비(영화, 책 구입) 등 10만 원, 의료비 8만 7900원, 통신비 20만 원, 의류·미용 16만 8000원, 차량유지비 교통비 25만 원, 보험(보장성보험·건보·의료보험 실비) 50만 원, 주거비(가스비·전기세·관리비) 43만 3000원, 사회생활비(부모님 용돈·의료비, 경조사), 이자비용(주택담보대출) 70만 원+원금 70만 원, 각종 세금 30만 원(연360만 원)'

언뜻 계산해보니 423만 원이다. 이 정도면 대략난감이다. 연금을 받아도 한 달에 200만 원이 넘게 부족하다. 위 목록 중 뺄 것 빼고, 허리띠 조일 것 조이더라도 턱없이 모자란 금액이다.

'아예 식음 전폐를 해야 하나? 부모님 용돈을 끊어야 하나? 대출비용, 주거비를 안낼 수 있나. 그렇다고 스마트폰 끊고, 자동차를 팔 수는 없잖나.'

조용히 한숨이 쉬어졌다. 결국 늙어서도 벌지 않으면 파산, 파탄, 황혼이혼에 이를 수도 있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아, 망했다."

머리가 하얘졌다. 이러니 연금을 받아봤자 '목돈'이 아닌 '용돈' 수준이라는 자조가 나오는 것이다. 누구 탓을 하는 게 아니다. 그냥 답답하다. 게다가 통장 잔고는 바닥이다.

자식들 키우고, 생활비로 쓰고, 빚잔치를 하다 보니 30년 직장생활 동안 플러스 잔고를 본 기억이 없다. 심지어 마이너스 통장들을 굴리며 아등바등 살았다. 당연히 저축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카드로 돌려막고, 대출로 당겨쓰고, 담보로 끌어 쓴 것 투성이다. 이는 빚 내서 빚 갚는 구조다. 연금이나 받으면서 팔자 좋게 살려는 꿈은 와장창 깨졌다.

국민연금, 정답 있을까?
 

100세시대 연금만으로 노후를 대비할 수 없다. ⓒ 픽사베이

 
청년층이든 노년층이든 연금에 대한 충성도는 약하다. '이러다가 국민연금 못 받게 되는 것 아냐?', '정작 우리가 받을 시기엔 빈 깡통 받는 거 아냐'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온다. 연금은 고갈되는 게 아니라 소진된다. 기금이 줄어드는 건 맞지만 다른 자금으로 메꿀 수 있고, 국가재정에서 돈을 끌어와 지급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또한 결국 세금을 투입한다는 뜻이니 국민들이 좋아할 리 없다.

국민연금 운용방식을 현재의 '적립식'에서 '부과식'으로 바꾸는 방안도 거론된다. 적립식은 일하는 동안 일정금액을 차곡차곡 쌓아 은퇴 후에 받는 것이고, '부과식'은 현재의 근로세대가 납부하는 연금보험료를 현재 퇴직세대의 연금지급에 필요한 재원으로 운용하는 방식이다. 

부과식의 경우 노인부양률이 낮고 생산성이 높아 근로자의 실질임금이 높은 사회에서 유리하다. 장점은 세대 간 유대를 강화할 수 있다는 점이지만, 노령화율이 높아질수록 유지하기 쉽지 않다.

현재 청년들은 국민연금을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인식한다. 지금은 '덜 내고 더 받는' 구조인데, 뒤로 갈수록 '더 내고 덜 받는' 현상이 심화된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더 내고 덜 받는' 방식, '덜 내고 더 받는' 방식, 아니면 '내는 쪽 따로, 받는 쪽 따로' 있는 방안들은 복지의 허점이자 어딘가 손해 보는 장사 같다. 본전 생각도 나고 '내 돈 돌리도~'라는 푸념도 나올 수 있다.

얼마 전 퇴직한 공무원 지인과 퇴직교사를 우연히 만났다. 골프를 치고 오는 것 같았다. 내 행색은 막노동을 끝내고 난 뒤라 말이 아니었다. 피할까 망설이다가 맞닥뜨리니 더 어색했다. 길게 붙잡을 것 같은 포즈를 취하기에 안부만 묻고 도망치듯 돌아섰다.

솔직히 그들이 부러웠다. 둘은 골프채를 들고 그라운드 가고, 나는 삽 들고 일하러 가는 모습이 겹쳤기 때문이다. 국민연금·공무원·사학연금의 차이였을까. 꽤 근사한 그들의 노후와 나의 노년은 벌써 큰 격차가 벌어지고 있었다. 물론 '우린 월급에서 많이 떼였으니 그만큼 받을만하다'고 항변하면 할 말은 없다. 그러니 부러울 뿐이다. 결국 탄식이 새어 나왔다.

"아, 연금… 도대체 너를 믿어도 되니?"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