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 한 카페에 붙은 아르바이트생 교육 관련 안내문
연합뉴스
결국 화장실이 가고 싶어도 되도록 참고, 다른 기사들이 커피를 마시며 잠시 쉴 때도 운전대를 잡았다. 그런데도 돈이 되질 않았다. 보통 열심히 뛰면 사납금과 가스비, 식대 값 정도는 벌린다. 그런데 그 돈을 맞추고 나면 피로감이 갑자기 밀려온다. 희한한 일이었다. 이제부터 손님을 태우면 '내 돈'이 되는 것인데 목표가 채워진 이후엔 돈도 뭐도 싫어졌다. 그럴 땐 일을 접고 선술집으로 향했다.
일은 고되고 돈은 안 벌리고 시간은 많이 소요돼 별 재미가 없었다. 녹다운 된 것은 불과 한 달 반 사이였다. 사람을 더욱 지치게 만드는 일은 진상손님을 상대하는 거였다. 술을 먹었든 안 먹었든 생떼부리는 작자들이 의외로 많았다.
"야, 인마. 왜 이 길로 가는 거야? 요금 더 나오게 하려고 그러는 거 아냐? 난 이 길로 가본 적이 없어. 뭐 이런 개똥 같은 놈이 있어."
나는 오히려 손님 요금이 적게 나오도록 지름길로 가고 있는데, 처음 가는 길이라면서 트집을 잡는 것이었다. 이런 일은 흔했다. 어떤 손님은 삿대질에 주먹질을 하며 위협을 가했다. 그때부터 난 손님 배려보다는 그들이 원하는 '먼 길'로 돌아서 갔다. 가장 큰 곤욕은 취객이었다. 토악질을 해놓아 그날 일을 접고 차 청소에 나선 적도 있고, 돈이 없다며 요금을 안 주는 사람도 있었다. 처음엔 파출소로 끌고 가 돈을 받았지만 그런 일이 잦자 나중엔 귀찮아졌다.
'그래, 잘 먹고 떨어져라. 자식아.'
택시 알바는 그렇게 욕만 배불리 먹고 끝났다. 푼돈은 손에 쥐었지만, 그뿐이었다. 무슨 일을 할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 직업을 찾는 데 도움이 된 시간은 아니었다.
우리나라에 있는 직업은 대략 1만 개가 넘는다고 한다. 사라지는 직업은 몇 개 되지 않는다고 들었다. 한 사람은 평생 몇 가지 직업을 갖게 될까? 많아야 평생 2~3개 정도를 경험하지 않을까.
어떤 '직업'을 경험했느냐에 따라 인생의 여정은 때때로 만족스럽고 또 버겁다. 사람들은 어떤 직업인지 알게되면 '깐깐하겠군, 전략적이겠군, 감성적이겠군' 이라며 지레짐작 하기도 한다. 틀릴 때도 맞을 때도 있는 짐작들은 그만큼 직업이 한 사람을 대변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개인적으로 알바를 직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들과 내가 학비와 용돈을 벌며 고생했던 '고학생' 알바는 그냥 알바일 뿐이다. 몇몇 알바는 구하기도 어렵고 경쟁이 치열하다지만 기본적으로 문턱이 낮고 단기적이라고 알려져있다.
아들은 "요즘 젊은이들은 알바를 직장으로 생각하기도 하고, 선호한다"고 했다. 사실 아르바이트는 독일어로 노동(Arbeit)이라는 뜻이다. 알바가 언제부터 생업이 아니라 부업이라는 뜻으로 쓰이게 됐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직업으로서의 정체성보다 젊을 때 임시로 하는 일이라는 뉘앙스에 가깝다.
10대 청소년의 전단지 돌리기, 60대의 택배, 대학생과 주부의 파트타임, 일반노동자의 투잡과 해고 노동자의 생계 수단까지 알바는 도시의 밤낮에 여러 얼굴로 나타난다. 나 역시 알바를 거쳤다. 그런데 젊은 알바에게는 '젊을 때 사서 고생하지 말고, 젊을 때 고생해서 직업을 구하라'고 말하고 싶다.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일, 자신의 노동이 제값을 받을 수 있는 일, 괴롭기보다 일부분 만족과 행복을 줄 수 있는 일. 쓰다 보니 수십 년째 여전히 나도 찾는 바로 그 일을 업으로 갖기를 바란다. 2~3가지 직업을 거쳤으면서도 아직도 '직업'을 찾는 한 꼰대의 조심스러운 조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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