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9.29 19:34최종 업데이트 23.09.29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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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1년 5개월, 사회 각 부문에서는 급격한 변화의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때로는 탄압으로, 또는 퇴행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어서 각계 우려가 깊습니다. <오마이뉴스>는 <기획 - 윤석열 정부 전&후>를 통해 윤석열 정부의 부문별 평가와 더불어 대안을 모색하고자 합니다.[편집자말]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8월 28일 인천에서 열린 2023 국민의힘 국회의원 연찬회 만찬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의 집권은 한국 정치의 풍경을 바꾸었을까? 부정하기는 쉽지 않다. 사상 초유, 헌정 최초라는 말들이 헤드라인을 수시로 장식하는 최근 정세를 상기한다면 말이다.

제1야당 대표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되고, 그것이 헌정 최초로 국회에서 가결되는가 하면, 사상 초유의 국무총리 해임건의안이 통과되고, 국회를 통과한 숱한 입법안에 대통령 거부권이 연속적으로 행사되는 세상이다. 타협은 멀고 강대강 대치만 남았다. 이단의 배척과 신앙의 간증이 한국 정치의 모든 것이 된 것처럼 보인다.

극단적 대립 이면의 정치

그러나 나는 약간 다른 구도에서 윤석열 시대의 정치 풍경을 말해 보려 한다. 두 거인이 벌이는 격렬한 주먹다짐 이면에는 물질의 세계가 있다. 돈과 권위라는 사회적 자원을 배분하는 정치의 장이다. 극단적 대립이라는 한 문구로만 설명할 수 없는 복잡다단한 이해의 그물과 구조의 굴레 속에서 작동하는 영역이다.


나는 윤석열 정부가 그 자신의 정치 행위로 한국 사회에 실질적 변화를 불러일으킨 영역은 두 가지라고 본다. 첫째는 외교다. 미국의 대중국 포위 전략에 호응해 한미일 공조를 공식화했다. 권력 상층부의 고독한 결단으로 변화가 가능한 전통적 영역이다.

전임 대통령들도 모두 자신의 외교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다만 대체로 과거의 방식은 기존의 사회적 합의에 기초해 정치세력의 다른 색채를 덧대는 방식이었다고 한다면. 윤석열 정부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색깔 자체를 변화시키려 한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다른 하나는 바로 감세다. 윤석열 정부 임기 동안 이뤄지는 감세 규모는 무려 100조 원에 육박한다. 예산의 재배치도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매년 20조 원 이상씩 행해지고 있다. 즉 윤석열 정부의 직권으로 누군가의 호주머니에서 다른 누군가의 호주머니로 이전되는 돈의 크기는 대략 200조 원가량으로 추산할 수 있다. 대체로 수출 대기업과 고소득 고자산가에게 혜택을 집중시키는 방식이다.

이념적인 기둥으로서 자유민주주의를 앞세워 외교 영역에서의 냉전적 구도를 불가역적인 형태로 구성하고, 경제의 기둥으로서 지지층의 핵심 이익을 보전하는 감세를 밀어붙인 뒤, 이 기반 위에서 노동·연금·교육에서 보수주의 개혁을 만들어 내는 것이 윤석열 정부의 전략으로 보인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를 몇 년째 지켜보고 있는 입장으로서 전략의 핵심 고리인 감세 협상 과정을 복기해보며 윤석열 이후 정치의 이모저모를 이야기해 보려 한다.

민주주의 훼손을 대가로 치른 극한의 감세 협상
 

지난해 9월 22일 당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박홍근 원내대표 등 참석 의원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초부자감세 저지', '민생예산 확대' 등의 손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저도 이런 일은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지난해 예산안과 감세법안 협상 과정, 국회 보좌진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다. 비스마르크가 소시지와 법률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보지 않는 편이 이롭다고 말했다지만, 두 달에 걸친 감세안 협상의 그 기묘하고 허망한 전말은 정치 전반의 극단적 대립과 민주주의의 훼손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기에 외면할 수는 없는 일이다.

야당인 민주당은 제출된 정부 세법개정안을 부자감세로 규정하며 강경한 입장을 고수했고, 정부·여당도 역시 전혀 물러서지 않았다. 미군과 협상하며 '4달러'를 거듭 외치는 야인시대 김두한의 모습과도 같았다. 통상 법정 시한이 정해져 있는 세법과 예산안 협상은 12월 초에 마무리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12월 중순이 되어도 협상에는 진척이 없었다.

이 과정에서 야당이 독자적인 예산안을 협상 카드로 내밀기도 했고, 예산안 통과 없이 해를 넘겨 사상 초유의 준예산으로 일단 정부를 운용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양당이 가까스로 합의에 이른 것은 2023년을 열흘 앞둔 12월 22일이었다.

충돌의 흔적은 민주주의에도 상흔을 남겼다. 다양한 영역에서 대규모 감세가 이뤄졌지만, 정작 담당 상임위인 기획재정위원회는 개정안을 통과시키지 못했다. 수정안이 본회의에 바로 회부된 탓이다. 모든 결정은 2+2 같은 비공식 협의에 참석하는 양당의 지도부와 기재부 관료들에 의해 좌우됐다. 조세법률을 심의하는 조세소위는 겨우 법안을 1회독 하는데 그쳤다. 소위에서 합의가 되지 않거나 반대로 중지가 모인 94개 법안들이 '소소위'라고 하는 밀실 테이블에서 대부분 결론이 뒤집혀 본회의 수정안에 반영됐다. 비교섭단체는 완전히 논의에서 배제됐다.

정의당 이은주 의원은 12월 24일 본회의 반대토론에서 '소위와 상임위의 정상적인 의사결정체계를 모두 건너뛰고 단 한 차례의 공식적인 토론도 없이, 이 법이 국민과 기업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제대로 돌아볼 반나절의 시간도 갖지 못한 채 법을 통과시키고 있다'고 개탄했다. 유례없는 양당의 극한 대립은 조세민주주의의 훼손을 그 대가로 치렀다.

부자감세 vs. 서민감세, 양당의 감세 카르텔
 

지난해 12월 22일 당시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운데)와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내년 예산안·세법 일괄 합의 발표 기자회견에서 합의문을 발표한 뒤 악수하고 있다. 오른쪽은 추경호 경제부총리. ⓒ 남소연

 
그런데 윤석열 정부의 초대형 감세는 이런 극단적인 정치 대립 속에서도 결국 관철되었다. 원래 정부 측 개정안의 감세 규모는 국회예산정책처 추정 70조 6000억 원이었는데, 최종 합의안의 감세 규모는 64조 4000억 원이었다. 야당은 6조 2000억 원, 단 10%도 양보를 받지 못한 것이다. 부자감세를 저지하겠다고 힘주어 강조했던 압도적 과반 1야당 더불어민주당이 대책 없이 밀린 원인은 무엇일까?

이재명 대표는 이를 두고 "가짜 엄마와 진짜 엄마가 아이를 양쪽에서 잡아당기면 진짜 엄마가 손을 놓을 수밖에 없다"고 변명한 바 있다. 즉 준예산 시행이라는 정부 기능 정지에 준하는 사태를 막기 위해 대승적으로 양보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막은 다르다. 이미 민주당 내부에 씨앗은 내재돼 있었다. 단적으로 이를 상징하는 구호가 있다. 협상 말미에 민주당이 부자감세에 대응하는 말로 내세운 '서민감세'다.

조세정치에서 '서민'과 '감세'라는 말은 도무지 어울릴래야 어울릴 수가 없다. 세금을 깎아주는 행위는 누진세제 하에서 기본적으로 세금을 많이 부담하는 고소득층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서민에게만 핀포인트로 세금을 깎아줄 수 있는 수단은 존재하지 않는다. 더불어민주당의 '서민감세'는 부자감세 협조의 알리바이를 위해 급조해낸 말로, 감세정당으로서의 또 다른 정체성을 실토하는 표현이다.

결국 '감세'라는 합의점을 찾아낸 양당은 정부·여당이 민주당에 '서민감세'에 소소한 명분을 제공하는 것으로 타협할 수 있게 됐다. 법인세법 최고세율구간의 삭제가 전 과표에서 세율 1%p 삭감으로, 종부세 다주택자 중과세 폐지는 2주택자까지로 합의됐다.

민주당의 감세정당 면모는 발의한 법안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지난해 국회에서 통과된 세수 영향 법안은 223건인데, 모두 감세안이다. 이 중 민주당은 절반에 가까운 107건을 발의했다. 국민의힘 104건보다도 많다. 발의된 법안의 스케일도 엄청난데, 김두관·이인영·고용진 의원 등이 발의한 소득세법 개정안의 경우 5년간 45~65조원이라는 상상초월 감세 규모를 자랑한다.

이외에도 'K-칩스법' 합의, 유류세 인하, 가상자산과 금융투자소득세 과세 유예 등 민주당의 감세 선호 증거는 차고 넘친다. 이재명 대표의 '진짜 엄마' 비유가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다. 슬그머니 아이의 손을 놓아 '가짜 엄마'의 의지로 아이가 이끌리도록 한 게 사실에 부합하는 비유가 아닐까? 감세 합의는 필연이었다.

본질은 윤석열의 존재가 아니라 양당 체제
 

21일 오후 여의도 국회의사당. ⓒ 권우성

 
감세정국에서의 대립과 합의는 윤석열 시대 정치 영역에서의 극단적 양극화의 본질을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한국을 지배하는 두 당파의 대립은 그들 사이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들 사이가 그다지 멀지 않은 경우에도 작동한다.

여기에서 그들의 대립은 무탈한 합의를 향한 명분 만들기를 위한 산고의 과정을 대변하는 다분히 연극적인 장치다. 예산과 조세의 영역에서 전통적으로 구축되어 있던 '밀실 파이프라인'은 이 체제에서 유용하게 활용된다.

사회경제적 문제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두 당이 유이한 교섭단체로서 국회 의석의 95%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나라에서 정치의 초점은 정치인의 형사적 문제나 부패 이슈 같은 곳으로 모아지게 마련이다. 전 정권에서 '적폐청산'을 담당했던 검사 출신 대통령의 강한 개성은 대립을 더욱 증폭시킨다. 그리고 이런 정치는 '맥거핀'이 되어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끈다.

그리하여 윤석열 정부는 감세라는 어려운 미션을 너무나도 손쉽게 클리어했다. 아무리 세수결손이 심각하더라도 지금으로선 민주당조차 미온적인 증세나 감세철회는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올해 세법개정안조차 조 단위의 감세가 포함돼 있다. 양당 핵심 지지층의 이익은 그대로 유지되고, 연극적 대립과 밀실 합의라는 규칙은 반복될 것이다.

본질은 윤석열 정부가 아니라 사회경제적 차이가 없는 양당 체제라는 괴물이다. '호주머니'의 문제가 정치의 중심에 놓이지 못한 채 여론주도층이 이끄는 표심을 따라 허위의 대립 속에서 정치인들과 언론들을 허우적거리게 한다. 정작 싸워야 하는 곳에서는 밀실 합의가 창궐한다. 윤석열 정부 1년 5개월에서 이 모순이 더욱 선명하고 격렬해졌다. 결국 배제되는 이들은 가장 낮은 곳에 있는 다수의 국민들이다. 언제까지 이런 정치가 유지될 수 있을까. 
덧붙이는 글 필자는 정의당 소속 의원실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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