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9.22 17:21최종 업데이트 23.09.22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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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가 지난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남소연

 
" ***가 하고 있는 인사 검증은 한마디로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지금 나온 문제 중에는 평판 조회나 과거 저술 및 행적 등에 대한 조사 등 기초적 검증만 했어도 걸러질 수 있는 사안이 적지 않았다. ××× 후보자의 경우도 충분히 걸러 낼 수 있는 흠결이었다." - <조선일보> '대통령이 국민 앞에 사과해야 할 때 아닌가', 2017.06.17

***는 법무부가 아니다. ××× 후보자도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가 아니다. 사설에서 이렇게 날카로운 지적을 한 것은 2017년 조선일보다.


문재인 정부에서 안경환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낙마하자 조선일보는 인사 검증의 내부 기준이라는 것이 "일반의 상식과 동떨어졌거나 무능하거나 둘 중의 하나"라며 고위공직자 인사 검증 책임이 있는 청와대 민정수석실과 대통령의 책임을 따져 물었다. 당시 낙마한 후보를 두둔할 마음도 조선일보 사설 논조를 비판할 생각도 없다.

다만 의문스러운 건 지금은 왜 이런 비판을 찾아볼 수 없냐는 거다. 진보·보수 언론 모두 마찬가지다. 대다수 언론은 대법원장 후보자와 9월 개각 명단에 오른 장관 후보자들의 부적격 사유를 들어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인사검증 책임을 논하지 않는다.

숱한 의혹, 침묵하는 언론
 

2019년 4월 1일 당시 조국 민정수석(왼쪽)과 조현옥 인사수석이 오전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요청 이유 설명을 하고 있다. ⓒ 남소연

  
문재인 정부에서 고위 공직 후보자의 결격 논란과 낙마는 곧바로 대통령과 인사 검증을 담당하는 민정수석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졌다. 흠결 있는 인사를 지명했으니 대통령에게 책임이 있고, 이를 걸러내지 못했으니 민정수석이 응분의 책임을 져야 된다는 식이었다.

안경환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낙마하자 국민의당과 자유한국당은 한목소리로 당시 민정수석이었던 조국 전 장관의 사퇴를 요구했다. 문재인 정부 때만 그런 것도 아니다. 박근혜 정부에서 이철성 경찰청장 내정자의 부동산 투기 및 음주운전 전력이 드러나자 우병우 민정수석에 대한 사퇴를 요구한 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었다.

도식적인 정치 공세라 볼 수도 있다. 그러나 흠결이 있는 고위 공직자를 지명한 대통령의 잘못을 거론하고 인사 검증의 책임을 묻는 건 당연한 수순이 아닌가. 이런 과정은 흠결 있는 공직자를 걸러낼 수 있는 장치로서 유용성이 있다.

언론도 정부가 내놓은 자료에만 의존하지 않고, 직접 논란을 재검증하고 드러난 결격 사유에 임명이 불가하다는 입장을 냈다. 나아가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며 인사 검증 라인에 호된 비판을 가했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의 이균용 대법원장 지명 이후 비상장주식 재산 신고 누락, 아들 인턴 특혜 채용 의혹 등 숱한 결격 사유가 드러났음에도 '인사 검증'의 책임을 묻는 언론은 좀체 찾아보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검증은 제대로 한 건가"라고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게 묻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인가?

윤석열 정부는 과거 정부에 있던 민정수석실을 폐지했다. 뒷조사와 신상 털기를 하지 않겠다는 이유였다. 민정수석실이 했던 고위공직자의 검증은 법무부와 경찰에 일임하겠다는 대안을 제시했고 법무부 산하에 인사정보관리단을 꾸렸다. 검사 또는 고위공무원단 1명이 포함된 20여 명이 배치된 인사정보관리단에서는 경찰(세평·범죄), 국세청(세금), 국토교통부(부동산) 등 다양한 기관에서 수집한 정보를 활용할 것이라는 대책이 들어 있었다.

법무부 장관이 민정수석 역할까지 겸하며 '1인2역'으로 권력이 집중된다는 논란이 생겨났고,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겐 '소통령'이란 별칭이 따라붙었다. 그러나 검증 과정의 독립성, 부서 간 정부교류의 차단 장치를 마련해 우려를 해소하겠다며, 민정수석실 폐지와 법무부 산하 인사정보관리단 설치를 밀어붙였던 것이 1년 전이다.

"이번 인사사고는 누가 봐도 '시스템 참사'다. 만약 조현옥 인사수석-조국 민정수석 라인의 인사 추천과 검증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었다면, 어제 물러난 두 후보자는 애초에 청문회 자리에 나올 수도 없었다. 제2기 내각의 장관후보자 2명이 국민을 분노케 해 물러나는 마당에 이들을 추천한 사람이나 장관 자리에 가도 괜찮겠다고 '오케이 사인'을 준 사람은 멀쩡한 건 기본 상식에도 어긋난다." - <중앙일보> '장관후보 2명 낙마사태 본질은 청와대의 시스템 참사', 2019.04.01

문재인 정부 '2.8개각'에서 2명의 장관 지명 후보자가 사퇴하자 중앙일보는 고질병이 된 부실 추천·검증 문제를 어떻게 수술할 건지 청와대가 답하라는 사설을 실었다. 4년 전 사설이지만 '문재인 정부'를 '윤석열 정부'로 바꿔서 그대로 써도 무방할 것 같다. 누가 이런 사람들을 추천했는지, 대법원장과 장관 자리에 가도 괜찮겠다고 검증에 '오케이' 사인을 준 사람은 누구인지, 언론은 당연히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나? 문재인 정부에서 '시스템 참사'라고 연일 성토하던 언론들은 윤석열 정부의 인사는 지극히 상식적이라서 아무 소리도 하지 않고 있는가?

"이완용은 어쩔 수 없다"는 장관 후보자... 검증 책임 물어야
 

신원식 국방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15일 오전 서울 용산구 육군회관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 유성호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의 결격 사유는 과거 조선일보의 주장처럼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에서 평판 조회나 행적 등에 대한 기초적 검증만 했어도 충분히 문제를 인지할 수 있는 사안이었다.

이 후보자의 아들은 대학 1학년 때 대형로펌인 김앤장에서 인턴 생활을 했다. "아빠 찬스"가 아니라고 이 후보자는 반박했지만, 비판 여론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재산 신고에서 누락된 비상장 주식이 신고 대상인지 몰랐다는 해명은 궁색하다. 성인지 감수성이 현격히 떨어지는 판결들은 또 어떠한가. 법원 내부에서 최하위권 평가(법원노조가 실시한 법원장 다면평가 기준)를 받은 인물을 "해박한 법률 지식과 재판 실무능력을 인정받아 온 정통법관"이라며 '사법 신뢰 회복의 적임자'로 검증하고 추천한 윤석열 정부 인사 검증 시스템, 문제가 많아 보인다.

9월 개각에 오른 장관 후보자도 혀가 내둘러질 이력들이 허다하다. '이완용은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지만, 문재인 전 대통령은 매국노'라는 국방부장관 후보자. 12·12 및 5·16 군사 쿠데타 옹호 발언 등 역사관마저 부정하는 인물을 국회 청문회에 세운다는 사실조차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역시 주식 백지신탁 관련 의혹이 있다. 국민의힘 내부에서조차 이를 '주식파킹(우호적 제3자에게 지분을 맡겼다가 되찾는 것)'의 일종으로 보고, 다른 사건에 적용했던 기준과 동일하게 적용해야 된다는 쓴소리가 나오고 있다. 역대급 막말 논란과 과거 문화예술계 인사들을 탄압한 블랙리스트 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을 다시 문화체육부 장관 후보자로 내세우는 건 '코드 인사'가 아니라면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다른데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숱하게 했던 질문, '인사 검증은 제대로 했나'? 이 당연한 의문, 지금은 어떤 언론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바람이 풀을 누이는 것인지, 바람이 불기 전에 풀이 먼저 눕는 것인지, 답답하고 참혹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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