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8.16 07:06최종 업데이트 23.08.16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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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물류센터에서 작업자가 땀에 젖은 옷을 입고 분류 배송 작업을 하고 있다. (자료사진) ⓒ 연합뉴스


택배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 정말 힘들었던 것은 그저 주소를 못 찾거나, 물건이 무거워서가 아니었다. 여러 개의 음료 세트를 여러 번 들고 올라가 올려놓으니 다른데 옮겨달라고 너무 쉽게 말한다.

크고 무거운 안마의자나 여러 포의 쌀을 들고 메고 올라가 숨을 헐떡이는데도 '수고했다'는 인사는커녕 일부러 눈을 마주치지 않고 모른 척한다. 사실 별것 아니지만 일하는 사람은 기운이 빠진다. 물론 그렇지 않은 분들이 더 많다.


그 마음의 정체는 '돈 받았으니 불평하지 말라'는 것 아닐까? 돈을 받은 것은 맞다. 그런데 엘리베이터 타고 손수건 한 장을 배송하든, 음료 세트를 메고 5층을 걸어 올라가든 700~800여 원이다.

목사로 오래 살다 보니 일하면서도 설교에서 할 법한 생각을 자꾸 하게 된다. 자본주의 사회는 모든 것을 돈으로 말하고 돈으로 평가한다. 기본적으로 그렇다. 그러나 모든 일을 그저 돈으로만 평가하는 게 사람 사는 사회일까? 또 일에 따른 적정한 보수는 얼마일까? 한국 사회에 함께 묻고 싶은 질문이다.

친기업(재벌) 정부가 들어서니 국정농단 사태를 계기로 정경유착 관행을 반성하며 자숙하겠다던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삼성, 현대, SK, LG, 4대 재벌의 복귀를 포함, 재가동의 시동을 걸고 있다.

편의점 사장과 알바가 시급을 놓고 얼굴 붉히고, 같은 노동자와 노조가 채용조건과 임금수준을 두고 원수가 되고, 아파트 관리원과 청소원의 월급 몇 푼을 올리냐 깎냐를 놓고 신경전 벌일 때, 가려진 회장님들 세계에서는 천문학적인 보수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경제개혁연구소의 2021~22년 상장회사 임원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이 기간 근로소득 4위 이재현 CJ 회장의 보수는 221억 3700만 원(급여 45%, 상여 55%)이다. 7위 신동빈 롯데 회장은 154억 100만 원(85%, 15%), 김택진 NC소프트 대표는 123억 8100만 원(20%, 80%) 등이다. 그러나 진짜 놀라운 것은 이들의 고액 연봉이 아니다. 고액 연봉 지급 기준이 모호하고 때로는 그 기준이 충족되지 않아도 무조건 지급된다는 점이다.

한화그룹 승계 1순위 김동관 한화솔루션 부회장의 보수는 2020년 7억 5000만 원 정도에서 2022년 31억 1000만 원 정도로 2년 만에 무려 315% 올랐다. 고연봉이든 저연봉이든, 주변에서 보수가 2년 만에 4배로 오른 사람을 보았나? 아마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어떤 이유로든 4배 상승의 근거를 대기 어렵기 때문이다.

'수백 대 1'의 차이

그러나 회장들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김 부회장은 2020년 1월부터 사내이사 부사장으로 있다가 그해 10월 대표이사를 맡았고, 2022년 8월에는 다시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결국 보수상승 주요인은 경영 이양을 위한 직급의 수직상승이다. 게다가 회장들은 단지 한 회사가 아니라 여러 계열사의 임원이기에 동시에 여러 곳에서 수익을 창출한다.

이들의 높은 보수 기준은 무엇일까? 지난 9일 <한겨레>에 실린 "재벌총수 일가의 코미디 같은 임금체계"에 따르면, 한화솔루션 기준급은 '직무, 직급, 전문성, 회사기여도 등을 종합적으로 반영'하고 조정급은 '조직기여도 및 시장가치, 전문성 및 역량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책정'한다고 되어 있다. 두루뭉술한 기준에 필요에 따라 짜 맞추면 되는 구조다. 그러나 이런 엉터리 기준 고액 급여의 끝판왕은 다른 곳에 있다.

지난 10일 자 <한겨레> 기사 "취업제한·횡령 재판중에도, 회장님들은 수십억씩 보수 챙겼다"에 따르면,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은 특정경제가중처벌법(특경법)상 배임 혐의로 확정판결을 받아 취업제한 기간 중인 2022년에도 55억 원 넘는 근로소득을 받았다. 또 조현준 효성 회장도 업무상 횡령 혐의로 재판 중인 지난해 72억 원을 넘게 받았다. 장세주 동국 홀딩스 회장도 특경법 위반으로 취업제한 기간 중인 2021년 57억 원을 받았다. 이외에도 이해욱 DL 회장, 박태영 하이트진로 사장 등 사례가 끝이 없다

'회사가 어렵다'거나 '경기가 안 좋다'며 한숨이 많지만, 그래도 회장님들은 상황이 어떻든 받아 갈 돈 이상을 다 받아 간다. 최근 잼버리 대란에 필요한 물품을 전량 조달하겠다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지시에 '삼성이 없었다면 어떡할 뻔했냐'고 찬사를 내뱉는 언론에 심사가 뒤틀리는 것은 내 속이 좁은 탓일까?
 

8월 10일 자 <한겨레> 기사 "취업제한·횡령 재판중에도, 회장님들은 수십억씩 보수 챙겼다" ⓒ 한겨레

 
나는 지난 6월 한 달 동안 25일을 일해, 배송과 집하 포함 173만 8705원을 벌었고 그중 소득세 5만 7377원, 선지급 착불금 4만 1060원, 보험료 1148원 등을 제하고 165만 910원을 입금 받았다. 고된 노동을 하는 택배기사인 내가 하루 10만 원을 못 벌었다. 물론 앞서도 소개했듯이, 나는 지금 정식 기사로 내 구역을 확정받아 일하는 게 아니라, 회사의 필요시 임시 알바처럼 일하는 중이므로 정식 기사들보다 물량이 적은 편이긴 하다.

그럴 때면 자유시장경제의 '보이지 않는 손'(애덤 스미스)을 말할 것이다. 시장은 도덕적 선심도, 인색한 착취도 없이 수요와 공급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합리적으로 가격이 매겨진다는 이론 말이다. 결국 노동에 대한 가격인 임금도 고액 연봉이든 저임금이든 수요와 공급에 따라 합리적으로 매겨진 값이라는 말이다.

과연 그럴까? 아파트 층마다 쓸고 닦고 분리수거하며 하루 8시간 일하는 사람의 노동 값이 연봉 3000만 원을 넘기 힘든 반면, 부모를 잘 만나 받은 직책과 자동으로 빠르게 올라가는 직급으로 수십~수백억 원을 받으며 이런저런 배당금과 기준도 없는 파격적 상여금까지 받는 회장님들의 수익이 공정한 시장가격인가? 그 시장가격은 누가 어떤 기준으로 만들었기에 똑같은 시대, 비슷한 조건을 가진 사람이 비슷한 노동시간을 갖고 일해도 '수백 대 1'의 차이가 나는 걸까?

부당하게 기울어진 운동장

그러므로 더는 편의점 사장과 알바처럼 같은 '을'끼리 서로 싸우게 두지 말자. 최저시급 9000여 원 뒷자리 맞추기 갖고 수십 일 머리띠 매고 싸우는 동안 회장님들은 뚜렷한 기준과 합리적 설명도 없이 앉아서 수십~수백억 원을 벌어들이고 있다. 그러면서 성경을 빗대어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고 감히 말한다.

물론 일터 현장과 노조 등에도 오래 깃든 부당한 관행과 기득권 카르텔을 해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그러한 요구가 조금도 변치 않는 대기업 내 부당한 관행과 여전한 정경유착 카르텔을 가리는 데 사용되지 않기를 바란다.

목사인 나는 똑같은 하나님의 작품인 그들이 단지 엄청난 소득을 벌어들인다는 이유만으로 머리를 조아릴 생각이 없지만, 또한 같은 이유로 미움과 증오심을 불러일으킬 마음도 전혀 없다. 더구나 노동자와 기업은 실물 중심 경제를 함께 만들어 갈 파트너이기도 하다. 다만, 부당하게 기울어진 운동장, 지나치게 삶의 여건이 무너진 현실을 함께 개선해 나갔으면 하는 마음일 뿐이다.

유튜브를 보면 구호단체의 눈물겨운 공익광고를 시청할 기회가 많다. 전쟁이 나서, 기후 위기로 재난을 당해서, 기근으로 식량이 없어서, 아빠가 집을 나갔는데 엄마도 병들어서, 아이가 난치병에 걸렸는데 홀 부모가 여력이 안 돼서... 넘치도록 많은 사연을 앞에 두고 무기력함이 더한다.

한 사람당 600만 원 넘는 비용을 들여 신청한 참가자를 4만 명 넘게 모아놓고 대책 없이 방치하다가 뒤늦게 국제 망신이 되니 온 나라가 발칵 뒤집혀 지자체와 관공서마다 대체 관광, 대체 공연, 대체 놀이에 나서는 진풍경은 도대체 뭔 짓인가? 무엇이 더 중한지를 모르는 정치, 행정이 계속되고 있다. 쓰고 나니 더 덥다.

"그들에게 정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그들에게 공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 가옥에 가옥을 이으며 전토에 전토를 더하여 빈틈이 없도록 하고 이 땅 가운데에서 홀로 거주하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이 연회에는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피리와 포도주를 갖추었어도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일에 관심을 두지 아니하며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보지 아니하는도다."(이사야 5:7, 8,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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