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7.19 04:55최종 업데이트 23.07.19 04:55
  • 본문듣기

장마철 배송 ⓒ 구교형


최근에 택배를 처음 해보는 젊은 기사로 인해 동료들이 어려움을 겪었다. 그 젊은 기사는 20여 일 전에 택배를 하겠다고 찾아온 21세 청년이었다. 택배기사 가운데 간혹 20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20대 초반에 찾아오는 경우는 거의 보기 힘들다. 나도 그와 이야기 나눌 기회가 있어 비교적 소상히 상황을 들을 수 있었다.

택배 기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의외로 힘이 아니다. 기초체력이 너무 부족하면 택배하기 힘들겠지만 그건 대동소이하고 요령이 생기면 무거운 물건도 얼마든지 쉽게 들고 옮길 수 있다. 배달 기술도 차차 배우면 된다.


그러나 운전 실력은 단기간에 느는 게 아니다. 택배기사는 기본적으로 운전을 잘해야 한다. 비탈길, 좁은 길, 보행과 주차 차량이 많은 길이 일상이고 후진은 기본인데, 뒤에 탑이 있어 경보음에만 의존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21세 청년은 운전에 자신 있다고 했다. 그러면 안 되지만 자신이 살던 시골에는 청소년 시절부터 운전하는 일이 가끔 있단다. 자기도 아버지가 술에 취해 부르시면 가서 아버지를 태워 집까지 모셔 오는 일이 제법 있었는데, 그래서 14살 때 처음 운전을 해 봤단다. 세상은 역시 참 넓다.

고향에서부터 이 일 저 일 조금씩 해봐서 일에 대한 두려움이 별로 없고, 몸 쓰는 일도 익숙하다고 했다. 말만이 아니라 실제로 일을 빨리 배웠다. 그가 맡은 구역에 아파트와 건물이 많아 비교적 쉬운 곳이기는 하지만, 시작한 지 이틀 만에 혼자서 하겠다고 해서 모두가 기특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하필 그가 맡은 이후부터 최근까지 거의 매일 장대비가 내리고 있다. 네 번째 글(한여름인데도 추위에 덜덜... 다시는 나가고 싶지 않다, https://omn.kr/24nao)에서도 쓴 바 있지만, 장마철의 배송은 이만저만 힘든 게 아니다. 그는 의기양양하게 시작했지만 아직 길도 익숙하지 않은데, 매일 내리는 장대비에 점점 자신감이 떨어졌다.

한 번 두 번 결근하더니 연락도 받지 않는 일까지 생겼다. 다시 나와 일을 해도 부쩍 자신감을 잃은 표정이 역력했다. 결국 20여 일 만에 그만두었다. 그동안 주변 동료 기사들이 젊은 기사가 못한 물품까지 조금씩 떠맡아 알지도 못하는 동네를 헤매고 다녀야 했다.

내색하지 않고 그냥 버티다 보니

소식을 전해 들은 동료들은 안타깝게 느꼈다. '처음 일을 맡아 하다 보면 누구든 겪게 되는 첫 번째 고비를 잘 견뎌내면 점점 더 수월해질 텐데.' 우리 모두 다 거쳐온 과정이라 아는 것이다.

그런데 그보다 조금 앞서 처음으로 택배 일을 시작하게 된 또 다른 두 명의 기사가 있는데, 그들은 지금도 잘 적응하고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 두 명은 40~50대 가장이다. 지금도 익숙하지 않아 힘겨워하고 택배가 자기에게 맞는 일인지 모르겠다면서도 쉽게 그만둘 수 없는 가장이다.

사실 우리 기사들이 다 그렇다. 10~20년 된 베테랑들도 가끔 그런 넋두리를 한다. '내가 이젠 정말 그만둬야지, 왜 계속하는지 모르겠다'며 혼잣말을 하는데, 한참 후에 가보면 여전히 열심히 일하고 있다.

이런 일을 말하면 특히 나와 가까운 한 동료가 생각난다. 1973년생 50대 초반에 제법 마른 체형이고 허약해 보인다. 그런데 매일 평균 수량이 400개 정도 될 만큼 배달을 참 많이 한다. 항상 우리 대리점 상위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 그러니 안 아픈 데가 없다. 얼마 전에도 손목을 칭칭 감고 나와 아파하기에 물어보니 인대가 늘어나 힘쓰기가 어려워 병원 가서 진통 주사 맞고 약 먹고 버틴다고 했다.

그러나 그만 그런 것은 아니다. 택배 기사에게 괜히 '어디 아픈 데 없냐'고 물으면 안 된다. 오히려 안 아픈 데가 없다고 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만성피로는 기본이고, 골격이나 근육 계통은 어느 정도 다 온전하지 않다. 나도 예전에 배송 중 빗길에 발을 헛디뎌 발목이 꺾여 통증이 심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그냥 버티다 보니 차차 좋아지더라.

그 동료에게 수량을 좀 줄이라고 권하면 그는 전라도 사투리로 늘 같은 대답을 한다. 가난한 시골에서 태어나고 자라 잘 배우지도 못하고 힘들게 살아온 자기 인생을 외아들에게는 물려주지 않겠다는 것이다. 40대가 넘어 뒤늦게 베트남 여성과 결혼해 이제 4살 된 아들 하나 둔 착한 가장. 지갑에 가족사진 넣고 다니며 내게도 보여주고 아들 자랑으로 힘겨운 나날을 벌써 10년 넘게 잘 이겨내고 있다.

택배기사 중에는 부부가 함께 일하는 분도 있고 여성 기사도 가끔 있다. 부부가 함께 일하는 것을 보면 괜히 흐뭇한 마음이, 여성 기사를 보면 안쓰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우리 대리점 최고령 70대 초반 형님은 형수님이 함께 나와 정리해 주는 모습을 자주 본다. 70대가 되면 아무래도 힘도 달리고 순발력도 떨어져 누구보다 늦게 출발하지만 일단 나가면 제법 일찍 들어오는 그야말로 달인이다.

오늘도 배송에 나서는 이유
 

한 아파트 단지 입구에 택배가 쌓여 있다. 자료사진. ⓒ 연합뉴스


나도 1997년 첫 아이를 출산한 뒤 파트타임 전도사 일만으로는 안될 것 같아 중고 오토바이를 사서 한동안 새벽 우유배달을 했다. 그런데 권하지도 않았는데 갓난아기 엄마인 아내가 따라 나오는 거다(물론 어머니가 함께 계셨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먼 집은 내가 오토바이로, 비교적 가까운 평지는 아내가 카트에 박스를 달고 배송했다. 오래전 그 일을 생각하면 아내가 한없이 대단하고 고맙지만, 그때는 고마움도 잘 모르던 철없는 가장이었다.

여성 택배 기사를 보며 안쓰럽게 느끼는 것은 일단 힘든 일이기 때문이지만, 또한 현장 일이라는 게 남성에게 맞춰져 설계되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사람의 당연한 생리 현상을 배설할 곳이 마땅치 않다는 것도 있다. 다시 말해 정해진 화장실이 없다.

물론 주 배송지역이 아파트나 상가, 건물인 기사들에게는 큰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동네만 돌아다니는 기사라면 말이 달라진다. 서울 가리봉동과 구로동 배송 당시 나는 어쩌다 발견한 공용화장실이나 배송지 가운데 열려있는 화장실을 일일이 기억해 두었다가 위기를 넘기곤 했다. 그런데 여성이라면? 나는 잘 모르지만, 그래서 더욱 안타깝다.

그러나 육체노동의 장점은 정말 많다. 택배하면서 내가 가장 좋았던 것은 삶의 활력을 크게 느낀다는 것이다. 굵은 땀을 흘리며 거친 숨을 몰아쉬는 소리를 나 스스로 들으며 여전히 펄떡펄떡 살아 있음을 느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팔과 다리 근육운동에 택배만큼 좋은 운동이 없다. 우리끼리 하는 말이다. '누구는 돈 내가며 근육을 만들지만, 우리는 돈 받아 가면서 근육을 키운다.'

그리고 고비를 넘겨 익숙해지면 택배는 여러모로 재미있다. 나도 두렵고 힘들어 못 할 것 같은 고비를 넘기고 나니, 밤에 자려고 누워서도 돌아다니는 골목골목들과 재미있는 장면들이 떠오르며 가슴 뛴 적이 많다. 썩혀 두기 아까울 정도로 다양한 기술과 전문성도 생긴다. 어쩌면 그래서 기사들은 늘 그만둔다면서도 오늘도 배송에 나서는지도 모르겠다.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와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적은 소득이 공의를 겸하면 많은 소득이 불의를 겸한 것보다 나으니라.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잠언 16:7~9)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