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자그란 커피 ⓒ 위키미디어 공용
아이스커피의 계절이 돌아왔다. 물론 요즘 아이스커피는 여름 한 철만 즐기는 계절 음료가 아니라 계절 관계없이 즐기는 사철 음료가 되었다. 메뉴에 아이스커피가 없는 카페가 없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물론 우리나라 얘기다.
인류는 언제부터 얼음을 넣은 차가운 커피를 즐기기 시작하였을까? 기록에 의하면 아이스커피가 처음 등장한 곳은 북아프리카의 알제리다. 알제리 사람들이 아니라 현지에 있던 프랑스 군인들이었다. 프랑스는 1830년에 지중해 무역의 안전을 도모한다는 구실로 알제리를 침략하였다. 이후 1962년 알제리가 독립을 쟁취할 때까지 무려 130여 년간 두 나라는 늘 싸웠다.
프랑스의 침략 초기인 1837년에 두 나라 사이에 협정이 체결되었다. 일명 타프나협정을 통해 프랑스가 알제리의 일부 지역에 대한 통치권을 인정받는 대신, 나머지 지역에 대한 알제리인들의 통치를 승인하였다.
협정은 체결되었지만 충돌이 계속되었고, 1839년 2월 해안 도시 모스타가넴에 있던 마자그란이란 작은 요새에서 전투가 벌어졌다. 전투가 길어지자 더위에 지친 프랑스 군인들이 커피시럽에 찬물을 넣어 마셨다.
사실, 마자그란 전투는 프랑스 군인 백여 명 정도가 참여한 작은 전투였다. 전투도 매우 싱겁게 종료되었다. 프랑스군 화약이 소진될 것을 모르고 알제리 군대가 갑자기 철수하면서 끝나버린 전투였다.
그런데 프랑스 언론이 이 전투를 프랑스의 승리로 대서특필하였다. 부대장과 군인들에게 메달이 수여되고 엄청난 명예가 주어졌다. 파리의 샹젤리제 거리에 마자그란 요새 모형이 만들어졌고, 파리에 마자그란 거리(Rue Mazagran)도 생길 정도였다.
이 전투를 기념하는 방식의 하나로 파리 시내 유명 카페들에는 큰 유리잔에 커피를 부은 후 찬물, 뜨거운 물, 탄산수, 얼음 등을 넣은 음료가 등장하여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커피와 섞는 것이 무엇이든 이름은 '마자그란 커피'(Café Mazagran)였다. 프랑스 군인의 애국심과 언론의 애국심이 결합하여 신화화시킨 것이 마자그란 전투였고, 그 결과물로 탄생한 것이 마자그란이란 이름의 차가운 커피였다.
커피와 합해지는 액체는 달라지만 모든 마자그란 커피의 공통점은 음료를 긴 유리잔에 담는다는 것이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를 일이다. 아마도 당시 전투에 참가하여 커피시럽에 찬물을 넣어 마셨던 군인들이 현장에서, 아니면 귀환한 후 당시 전투를 재현하는 자리에서 긴 유리잔에 찬 커피를 부어 마신 것이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유추해 볼 수 있다.
코카콜라를 이기지 못한 아이스커피
포르투갈에서는 얼음 위에 에스프레소를 붓고, 레몬을 한 조각 얹은 음료 '포르투갈 아이스커피'가 개발되었다. 럼주나 달콤한 슈가 시럽을 섞어 마시기도 한다. 오스트리아에서도 얼음에 커피와 럼주를 넣은 아이스커피로 발전하였다.
스페인 남부 카탈루냐와 발렌시아에서도 커피, 얼음, 레몬을 섞은 음료 '카페델땅'(Café del temps) 혹은 '카페델띠엠포'(Café del tiempo)라는 유사한 음료가 등장하였다. 등장은 하였지만 지역 음료로 남아 있을 뿐 유럽 세계에서 크게 유행하지는 않았다.
1920년대 금주법이 내려진 미국에서는 비알코올성 음료 코카콜라, 웰치 포도주스, 커피 사이에 음료 시장을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벌어졌다. 얼음을 넣어 시원하게 마실 수 있는 콜라의 장점에 맞서기 위해 일부 카페에서 얼음을 넣은 아이스커피를 제조하여 판매하였다. 그러나 시원함에서 아이스커피가 코카콜라를 이기지는 못하였다.
20세기 어느 순간 아이스커피는 서양 대부분의 나라 커피 메뉴에서 사라졌다. 더운 여름에도 뜨거운 커피를 마시는 것이 교양이고 문화가 되었다. 커피는 뜨거운 것이라는 상식이 현실을 지배하게 된 것이다.
스타벅스는 1994년 미국의 더운 로스앤젤레스 매장에서 '마자그란'을 메뉴에 올렸다. 결과는 실패였다. 커피는 뜨거워야 한다는 선입견의 벽에 막혀 판매가 되지 않았다. 이후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매장에서의 아이스커피 유행을 지켜본 스타벅스는 프라푸치노를 내놓았다.
▲ 1941년 5월 22일 자 <매일신보> 기사 '아이스커피 이렇게 만들면 좋다' ⓒ 국립중앙도서관
그렇다면 우리나라에 아이스커피가 처음 소개된 것은 언제일까? 아이스커피라는 단어가 신문에 처음 등장한 것이 1941년 5월 22일이었다. 제목을 보면 그 이전에 이미 아이스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매일신보> 기사 제목이 '아이스커피 이렇게 만들면 좋다'였다. 아이스커피가 무엇인지를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맛있는 아이스커피 만드는 법을 알리는 기사였다. 80년 전 좋은 아이스커피는 어떻게 만들었을까?
첫째 원두는 '자바' 커피를 써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기사의 첫 문장이 "커피는 더운 것에는 여러 가지를 쓰지만 찬 '커피'에는 '자바' 것이 제일 좋습니다"였다. '자바' 커피를 써야 하는 이유로는 "캄도 그리 많지 않고" "맛도 퍽 달다"는 설명이었다.
찌꺼기가 많이 생기지 않고 달다는 것이 '자바' 커피의 특징으로 인식되던 시절이었다. 당시 자바 커피는 모카 커피와 함께 가장 비싼 커피였다. 요즘 아이스커피를 만드는데 가장 비싼 커피를 쓰는 카페가 있을까?
둘째, 아이스커피를 맛있게 만들려면 먼저 커피가 "투명하게 맑아야만" 한다고 했다. 흐리거나 검게 보이는 것은 보기에도 흉하고 마시면 맛도 좋지 못하기에 반드시 맑고 투명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제안이었다. 커피는 보기에도 좋고 맛도 좋아야 하는 음료였다.
용감한 커피공화국 시민들
그렇다면 맑고 투명한 커피를 만든 방법은 무엇이었을까? 이 신문이 알려주는 요령은 다음과 같다.
3인분의 아이스커피를 만들려면 먼저 커피 세 숟가락을 듬뿍 떠서 주전자에 넣고, 여기에 달걀흰자 한 개와 흰 껍질을 넣은 후 물을 조금 넣어 잘 저어준다. 다음에는 뜨거운 물을 네 컵쯤 붓고 불을 때서 끓인다. 끓으면 더러운 찌꺼기가 올라오니까 뚜껑을 열어 놓고 40분 정도 끓이면 커피(가루)는 아래로 가라앉고 투명한 맑은 커피가 된다. 아이스커피는 이것을 차게 하면 그만이다. 이 아이스커피에다 크림을 조금 타면 맛도 더 좋아지고 빛깔도 좋다.
커피를 끓일 때 찌꺼기를 가라앉게 하는 방법으로 달걀흰자와 껍질을 함께 넣고 끓이는 것은 이슬람권과 유럽에서도 오래전부터 사용되고 있었다. 이 방법이 식민지 조선에도 전파되어 있었던 것이다.
일제 강점기에 아이스커피를 얼마나 많이 마셨는지 알 수는 없다. 그렇지만, 한글 신문 <매일신보>에 이런 기사가 실린 것을 보면 당시에도 나름 산다는 조선 사람들은 여름이 되면 찬 커피를 즐긴 것은 분명해 보인다. 1941년은 전쟁이 한창이던 시절이었다.
▲ 1947년 5월 11일 자 <경향신문> 기사 '얼음 넌 음식 엄금'
ⓒ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해방이 된 후에도 얼음을 넣은 식음료는 꽤 유행을 했다. 1947년 5월 11일 <경향신문> 기사를 보면 서울시 보건위생국에서는 각 요리업자에게 통첩을 보내 "얼음을 음식물에 직접 넣어 쓰지 않도록" 지시하였다.
얼음과자는 아이스크림과 깨끗한 종이로 싸서 만드는 '아이스캔디'에 한해서 제조를 허가하고, 아이스케키는 제조를 허락하지 않았다. 이와 함께 얼음 넣는 아이스커피도 금지하였다. 콜레라와 같이 끓이지 않은 물을 마시면 전파되는 수인성 전염병을 예방하기 위한 방책이었다.
1947년 5월 19일에는 서울 시내 안암동에서 콜레라로 의심되는 환자가 세 명 발생하였다. 검사 결과 음성으로 판정되었지만 서울시 당국에서는 '아이스커피' 판매를 다시 금지시켰다. 그러나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커피에 얼음을 넣어 마셨고, 서울시는 위반하는 커피 판매자를 단속하겠다는 엄포를 거듭 발표하였다.
콜레라의 위험 앞에서도 용감하게 아이스커피를 마시던 시민들이다. 아무리 추운 겨울이라도 얼어 죽는 것이 두려워 아이스커피를 피할 리는 만무하다. 용감한 커피공화국 시민들이 아이스커피를 즐길 계절이 왔다.
(유튜브 '커피히스토리' 운영자, 교육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