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4.07 09:40최종 업데이트 24.04.07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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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10월 1일 25주년 국군의 날 기념행사에서 카드섹션으로 나타낸 박정희 대통령의 얼굴이 보인다. ⓒ 위키미디어 공용


사무실이든 집이든 손님이 오면 무엇을 마실지 물어보지도 않고 손님에게 커피를 끓여 내오는 '새 예절'이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노동자 하루 일당이 300원인데 커피 한 잔이 100원이던 시절이었다. 우리나라의 1년 커피 원두 소비량이 3500톤을 넘어선 시절이다.

국산 커피가 생산 5년 차를 맞이하였어도 미제 커피의 인기는 높았고, 미군과 짜고 커피를 보관하던 미군보급창을 터는 사건은 여전히 벌어졌고, 언론의 단골 뉴스거리였던 시절이다. 바로 우리나라 커피 역사에서 암흑기가 시작된 1974년이다. 정확하게 반세기 전이다.


1974년의 끝자락,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12월 19일 정부 수립 후 최초로 커피 가격이 자유화되었다. 다방에서 판매되는 커피 가격이 일제히 인상되기 시작하였고, 지나치게 인상하여 폭리를 취하는 다방에 대한 정부의 단속과 규제, 처벌 소식이 신문의 사회면에 끊임없이 등장하였다.

우리나라 커피 역사의 암흑기가 시작되어 맞이한 두 번째 해인 1975년은 오일쇼크가 정점에 이르러 세계 많은 나라들이 심각한 물가고와 불황을 겪었던 해였다. 그해 봄 북베트남에 의해 사이공이 함락되고 베트남이 사회주의 국가로 통일되었다.

이에 위기를 느낀 박정희 정권은 5월 13일 긴급조치 9호를 발동하여 민주화 세력을 극단적으로 억압하였다. 유신헌법을 반대하는 당사자, 이를 보도하는 언론인을 영장 없이 체포할 수 있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었다. 언론 자유를 금지하는 조치였다. 5월 20일에는 고등학교와 대학의 학생회를 폐지하고 학도호국단을 부활시켰다.

커피를 억제하려는 정부
 

1974년 12월 26일 자 <동아일보> 백지광고 ⓒ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이 암울한 시절에 벌어진 것이 <동아일보> 광고 탄압사건이었다. 1974년 12월부터 1975년 초에 걸쳐 벌어진 사건이었다. 미리 계약된 광고를 강제로 해약시키자, 광고면을 백지상태로 처리한 신문을 발간하는 방식으로 저항하였다. 국가정보원이 광고주를 불러 광고 게재를 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강요한 것이 발단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백지 광고에 이어 1975년 1월 3주 차에는 시민들의 응원 광고로 백지가 채워지는 저항 운동이 시작되었다. 자비 광고 1호는 국회의원 김대중이었다. 3월 들어 <조선일보>도 언론탄압 저항 운동에 가세하였다. 정부는 윤형주, 이장희, 이종용 등 유명 연예인들을 대마초 흡연 혐의로 구속한 후 이름과 혐의를 대대적으로 보도하였다. 시민들의 관심을 정치로부터 멀어지게 하려는 얄팍한 시도였다.

암울함으로 가득했던 1975년 한 해 동안 <조선일보>를 제외한 대부분의 신문이 커피 관련 기사를 쓰지 않았다. <조선일보><동아일보><경향신문><매일경제> 등 4개 일간 신문에 실린 커피 관련 기사는 총 154건으로 암흑기 도래 이전의 절반에 불과하였는데, 이 중 128건이 <조선일보> 보도였다.

<조선일보>는 신년 특집 기사로 '불황을 이기는 알뜰 의식주'를 실었다. 이 기사는 고려대학교 식품공학과 유태종 박사를 인용하여 손바닥만 한 마당이라도 채소를 심어 부식비를 줄일 것, 커피를 줄일 것을 권하였다. 경제가 어려울 때면 늘 등장하는 제안이었다. 이 신문은 분수에 맞게 떳떳하게 사는 것이 '진정 잘 사는 방법'이라는 것을 모두가 실감하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하였다. 대다수 신문은 정부 주도의 소비 절약 운동을 외면하는 방식으로 소극적인 저항을 보였다.

커피값 자유화 이후 커피 1잔은 80원을 거쳐 100원을 넘어섰다. 서울 시내 다방에서는 50원짜리 국산 차를 다섯 가지 이상 판매하는 것이 의무 사항이었지만, 이윤이 적다는 이유로 이 의무는 지켜지지 않았다. 국산 차의 판매는 기피되고 있었다.

서울시는 2월 말 국산 차 판매 지시를 어긴 다방과 협정가격을 위반한 다방을 적발하여 영업정지 처분을 내렸다. 신문에 보도된 위반 업소는 참다방, 화신다방, 한일다방, 서린다방, 함지다방, 맘모스다방, 무교동다방, 오림포스다방, 돌샘다방, 티나다방, 나폴레옹다방, 부루셀다방, 주리바다방, 그리고 커피하우스 등 14개 업소였다.

커피 관련 기사의 감소 속에서도 커피가 건강을 위협한다는 기사는 많아졌다. 커피 소비를 억제하려는 정부의 의도에 맞추려는 움직임이었다. 치즈와 함께 마시면 커피가 발암물질 분비를 촉진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영국 런던대학교의 브라이언 챌리스 박사라는 전문가의 주장이 5월 7일 자 <조선일보>에 실렸다.

많이 마시던 커피를 끊으면 두통, 피로, 혹은 복통을 겪게 될지도 모른다고 런던의 임상약학 교수인 폴 터너 박사가 한 의학회의에서 주장했다는 소식 역시 <조선일보> 9월 6일 자에 실렸다. 커피를 끊지 말라는 주장이 아니라, 커피는 중독이 되면 끊기 어렵게 되고, 그러면 여러 가지 질병에 시달려야 한다는 경계심을 담은 보도였다.

역사의 아이러니
 

커피녹병 ⓒ 위키미디어 공용


1975년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커피의 역사에서 암흑기였다. 1970년 1월 세계 커피 생산량의 50% 가까이 차지하던 브라질 커피 농장에서 커피녹병이 발견되었다. 100년 전에 자바커피를 포함하여 아시아의 커피 농장 90%를 괴멸시킨 바로 그 녹병이었다.

커피 국제 시세가 일시적으로 폭등하였다. 다행히 브라질 정부의 빠른 방제 정책으로 가격이 안정될 수 있었지만, 커피 생산지역에서 벌어지는 자연재해에 대한 커피 소비국들의 우려가 점점 증가하였다.

커피 녹병의 공포에서 벗어난 지 5년이 되던 1975년 7월 17일과 18일 이틀 동안 브라질의 대표적인 커피농장 지역인 파라냐 주의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고 때아닌 서리가 내렸다. 이른바 검은 서리였다. 수확기를 앞두고 있던 브라질 커피나무의 절반이 넘는 약 15억 그루의 커피나무가 죽는 재앙이었다.

새로 나무를 심으면 4년 내지 5년을 기다려야 수확이 시작된다는 점에서 세계 커피 소비국들은 모두 불안에 휩싸였다. 적어도 4~5년 동안 커피 수확량의 지속적 감소가 예상되자 뉴욕의 커피 선물 시세가 3배로 폭등했고, 브라질 정부는 일시적으로 커피 수출 금지 조치를 취했다. 이후 커피 수출은 재개되었지만 커피 수출 가격은 예상대로 대폭 인상되었다. 분말 인스턴트 커피는 파운드당 1.25달러에서 1.75달러로, 냉동건조 인스턴트 커피는 2.15달러에서 2.80달러로 인상되었다.

이해에 벌어진 것은 브라질의 검은 서리 재앙뿐만이 아니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커피 생산 국가들의 정치적 불안도 문제였다. 오랜 전쟁, 그리고 새로 등장한 사회주의 정권으로 인해 베트남의 커피 산업은 거의 붕괴되었다. 세계 인스턴트 커피 재료의 상당 부분을 공급하고 있던 베트남 커피의 소멸은 국제 커피 가격 상승을 가속화시켰다.

아프리카에서는 커피 생산국이었던 앙골라와 에티오피아에서의 내전 발발로 인한 커피 농업 붕괴, 우간다에서의 이디 아민 독재의 강화로 인한 커피 산업의 위축, 케냐에서의 노동자 파업으로 인한 커피 수출 중단 등이 1975년 한 해에 벌어졌다. 그야말로 커피 생산과 유통 부문에 나타난 대재앙이었다.

이렇게 암울했던 1975년은 우리나라 커피의 역사에서 새로운 이벤트가 시작된 해로 기록될 수 있다. 이해 5월 1일부터 31일까지 신세계백화점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커피 페스티벌이 열렸다. 요즘 도시마다 열리는 커피 축제, 카페 쇼, 커피 엑스포의 원조 격인 행사였다.

한국차연구소 주최로 열린 이 행사에는 커피 생두가 산지 별로 선보였고, 커피기구류, 커피관계 사진 등이 전시되었다. 커피 시음 행사도 열렸고, 차생활 상담도 이루어졌다. 요즘 열리는 각종 커피 축제와 크게 다르지 않은 행사였다.

우리나라의 커피 역사, 그리고 정치 역사에서 가장 암울했던 1975년에 최초의 커피 페스티벌이 등장했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커피가 위로의 음료라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 아니었는지.

(<커피가 묻고, 역사가 답하다>의 저자, 교육학 교수)
덧붙이는 글 참고문헌
<조선일보> <경향신문> <동아일보> 1975년 기사 일체.
<커피세계사+한국가배사>(2021, 푸른역사)
<커피가 묻고 역사가 답하다>(2023, 역사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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