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헌재의 '양심적 병역거부'와 관련한 판결과 대체 복무제 마련과 구속된 양심적 병역거부자 석방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때 헌재는 양심적 병역거부 처벌에 대해서는 합헌, 대체 복무제가 없는 병역법은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다.
연합뉴스
'병역기피'는 트집잡기 위해 내세운 명분이고 사실상 임 전 소장의 성소수자 정체성을 문제 삼는 일부 보수 기독교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의견도 있다. 컷오프의 진짜 이유는 나로서는 알 수 없지만 진짜 이유가 무엇이었든 더불어민주당과 더불어민주연합은 임 전 소장을 '병역기피'로 컷오프 한 선택과 판단은 결과적으로 크게 두 가지를 부정한 것이다.
첫 번째로 자기 역사 부정이다. 병역거부권이 한국에서 인정되고 대체복무제가 도입되는 데 민주당 계열의 정치인들이 나름의 역할을 했다. 물론 민주당 안에서도 병역거부에 부정적인 정치인들도 적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지만 중요한 역할을 한 정치인들이 대체복무 도입에 앞장 선 것도 사실이다.
국회에서는 장영달, 천정배 두 의원이 2001년 대체복무 법안을 발의한 것을 필두로 17대 국회에서는 임종인 의원, 18대 국회에서는 김부겸 의원, 19대 국회에서는 전해철 의원, 20대 국회에서는 박주민, 이철희, 전해철 의원이 대체복무 관련 법안을 발의했다. 이처럼 꾸준히 대체복무 입법을 시도한 정당은 민주당 계열과 민주노동당에서 정의당으로 이어지는 진보정당(노회찬 의원, 이정희 의원이 대체복무 관련 법안을 발의했었다)밖에 없다.
민주당 출신 정치인들은 행정부에서도 대체복무 입법에 역할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7년 정부입법으로 대체복무제 도입을 기정사실화 했다. 이후 선거에서 당선된 이명박 전 대통령이 이를 전면 백지화했고, 12년 뒤인 2019년 문재인 정부에서 대체복무제가 도입되었다. 병역거부를 이유로 국회의원 후보 자격을 박탈하는 것은 병역거부권 인정과 대체복무 도입에서 나름의 역할을 해온 민주당의 역사를 부정하는 것이다.
두 번째로 부정한 것은 대체복무제 개선에 대한 책임이다. 2019년 12월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대체역의 편입 및 복무 등에 관한 법률'이 통과 된 것은 헌정사상 처음으로 양심적 병역거부의 권리를 법률로써 인정한 의미 있는 일이었지만, 이후 도입된 대체복무제는 꽤나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이 문제점을 개선해야 한다는 국내외의 지적이 잇따랐다. 몇가지만 살펴보면 2023년 5월 국가인권위원회는 대체복무 기간 단축을 국방부에 권고했고, 2023년 11월 3일 유엔자유권 위원회는제5차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국가보고서에 대한 심의의 결과로 대체복무 기간을 단축하고, 복무 영역 확대하고, 현역 군인의 병역거부권 인정할 것을 한국 정부에 권고했다. 대체역심사위원회까지도 자체 연구를 바탕으로 복무기간을 단축하고 복무영역을 확대하고 복무형태(예외적 비합숙 허용)를 다양화해야 한다는 개선안을 발표했다.
평화인권 단체들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온 직후인 2018년 7월 시민사회안을 발표했고, 이후로도 지속적으로 대체복무제의 징벌적이고 인권침해적인 요소를 지적하며 개선을 촉구했다. 더불어민주당은 한때 180석 가까이 국회 의석을 차지한 큰 책임을 가지고 있는 정당으로서, 또 병역거부권 인정과 대체복무제 도입을 추진했던 정당으로서 이처럼 문제 지적과 개선 요구가 빗발치는 대체복무제를 개선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 그런데 이번 더불어민주연합의 선택과 결정으로 책임을 다하기는커녕 병역거부자에 대한 차별과 낙인찍기를 한 셈이다.
세 번째로 부정한 것은 양심과 사상의 자유다. 대한민국 헌법 19조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에선 양심의 자유를 국민의 기본권으로 명시하고 있다. 제2차세계대전에 대한 반성으로 탄생한 유엔의 <세계인권선언>에서도 "제18조 모든 사람에게는 사상과 양심과 종교의 자유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이하 생략)"라며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옹호한다.
헌법재판소는 2018년 병역법에 대한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헌법상 양심의 자유가 문제되는 상황은 개인의 양심이 국가의 법질서나 사회의 도덕률에 부합하지 않는 경우이므로, 헌법에 의해 보호받는 양심은 법질서와 도덕에 부합하는 사고를 가진 다수가 아니라 이른바 '소수자'의 양심이 되기 마련이다"라고 판시했다.
이처럼 양심과 사상의 자유는 민주주의 국가의 핵심적인 가치이며, 병역거부권 인정은 그 국가가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보호하는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는 척도다. 한국은 이미 법과 제도로서 병역거부권을 인정하고 있는데, 내부 절차를 거쳐 후보로 뽑힌 이를 병역거부자라는 이유로 탈락시키는 것은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 헌법 정신과 세계인권선언에 위배되는 것이다.
정치란 무엇인가

▲윤영덕 더불어민주연합 공동대표가 14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비례대표 후보자 면접에 참석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나는 평화활동가로서 때때로 정치인들을 만나는 기회가 있지만, 흔히 말하는 여의도 정치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모르며 선거 공학 같은 것은 더더욱 모른다. 그렇지만 정치가 무엇이고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한 명의 시민이자 유권자로서 생각하는 바는 있다.
내가 유권자로 바라는 것은 책임 있는 정치다. 다양한 계층과 이해관계가 사회에 존재하니 그들을 대변하는 정치세력도 다양한 것이 마땅하다. 어떤 정치적 신념을 가졌든 간에 적어도 직업정치인들이나 정권을 잡겠다고 나서는 정치세력이라면 책임 있는 모습을 보이면 좋겠다. 자기들이 한 말을 너무 쉽게 뒤집거나,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정치인 말고, 조금 불리하더라도 자기들이 실행해 온 제도나 정책을 일관성 있게 끝까지 책임지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리고 내가 바라는 정치란 사회적으로 차별받거나 배제되기 쉬운 존재들, 가치들을 옹호하는 것이다. 서로 다른 생각과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서 갈등이 일어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 갈등을 조정하는 것도 정치지만, 갈등 과정에서 너무 쉽게 배제되거나 차별받는 가치들과 사람들을 옹호하지 않는 정치를 한다면 결국 정치기술자밖에 안 된다고 생각한다.
너무나 쉽게 침해받기 때문에 부러 헌법으로 보호하는 양심의 자유라든지, 사회적인 차별이나 혐오의 대상이 되는 소수자들의 권리를 옹호하지 않는다면 정치인이 존재해야할 이유가 대체 무엇인가?
이번 더불어민주연합의 공천 과정은 병역거부운동을 해온 활동가로서는 말할 것도 없고, 한 명의 시민이지 유권자로서도 실망스럽고 우려스럽기 그지없는 모습이었다. 앞으로 남은 선거 과정이 낙인찍기, 혐오, 차별을 선동하는 과정이 아니라 부디 책임감 있는 정치, 차별받고 소외되고 배제되는 가치와 존재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정치가 확장되는 과정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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