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의대정원 증원 필요성 및 의사 집단행동 관련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한 지난달 18일 서울 시내의 한 대학병원의 모습.
연합뉴스
정부의 실제 의도가 어떻든 간에 이러한 정책의 '급발진'에 따른 피해가 정책결정 과정에서 간과되었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필자는 이 점을 집요하게 문제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민을 위한 정책이라고 말하지만 정작 시민의 관점은 결여되어 있는 것, 바로 이것이 진짜 문제가 아닐까.
의사 증원은 시민들의 삶에 '중요한(critical)' 영향을 미치는 정책결정이다. 하지만 이러한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에서 시민들은 철저히 배제됐다. 전문가와 관료의 관점에서 사람들의 고통은 흔히 과소평가 되기 마련이다. 만약 다양한 시민들의 관점이 반영될 수 있었다면 지금과 다른 접근법이 도출되었을지 모른다.
의사 증원에 대한 찬성 여론이 70~80%으로 높다고 해서 밀어붙이기식 정책 추진 방식마저 정당화되는 건 아니다. 정부는 시민들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에 충실하게 사용할 책무가 있다. 개별 사람의 생명과 인권을 소중히 여기고, 사회적 분열과 적대를 줄이기 위해 애쓰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정부의 싸움 역시 정당하다고 보기 어렵다. 그럼 지금 벌어지고 있는 국가권력과 의사권력 간의 싸움을 보면서 우리는 누구의 건투를 빌어야 하는가. 냉소와 무력감을 넘어 냉철하게 사태를 직시하는 가운데 무엇보다 정부와 의사, 전문가 집단 모두 시민의 관점이 결여되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분노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이때 시민의 관점이란 돈과 권력이 아닌, 사람의 생명과 건강, 인권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는 '사람 중심 관점(people-centered perspective)'을 말한다. 이러한 관점을 견지하지 않으면 이번 사태를 둘러싸고 쏟아지는 온갖 논의들의 홍수에 휩쓸려 문제의 본질로부터 멀어질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정부의 관점을 좇아, 또 다른 누군가는 의사 집단의 입장에 서서 사태를 진단하고 평론한다. 각 논의를 들여다보면 일정한 논리적 타당성이 있고 일말의 진실도 포함돼 있다. 하지만 동시에 이해관계에 따른 편향된 주장과 교묘한 논리적 비틀기도 섞여 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의 관점인지가 중요한 것이다.
사람 중심 관점의 결여는 단순히 정책결정의 민주적 정당성 여부나 추진 방식의 온건성 문제로 국한되지 않는다.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정책을 의제화하는 과정, 즉 문제를 정의하고 목표를 설정하고 최선의 대안을 개발하고 선택하는 모든 과정에 영향을 미친다.
'필수·지역의료 공백'이라는 개념으로 납작하게 추상화된 현실의 문제는 실제론 매우 입체적이며 복합적 요소들이 연결되고 중첩돼 있다. 의료와 관련해 사람들이 겪고 있는 고통 속에는 단지 의사나 병원의 부족만이 아니라 지나치게 영리를 추구하는 병의원에 대한 불신, 즉 신뢰할 수 있는 의료기관의 부족 문제도 포함돼 있다.
또 보건의료 자원이 부족한 비수도권 지역 주민의 관점이라면 경제성이 어떠하든 일정한 거리 내에 신뢰할 수 있는 의료기관이 존재하기를, 또 경찰이나 소방관처럼 있어야 할 그 자리를 꿋꿋이 지켜줄 수 있는 의사 인력을 양성하고 배치하는 시스템을 바랄 것이다. 이는 다 시장주의적 원리로는 구현될 수 없는 모델이다. 따라서 정책문제의 정의 단계에서부터 보건의료체계의 시장화·영리화 문제를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체계에 대한 문제화 과정은 건너뛴 채 곧장 대안으로 넘어가 정부는 '의사 수'를 말하고, 의사들은 '보상(수가)'을 외친다. 그리고 시민들은 이런 좁은 선택지 앞에서 '비자발적 동의'를 강요받고 있다. 강제적이지 않지만 자발적이지도 않은 그런 동의 말이다. 복잡다단한 현실의 고통을 '필수·지역의료 공백'이라는 프레임으로, 또 그에 대한 해결책을 의사증원이나 수가인상으로 환원시키는 이 단순함과 깔끔함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지난 글에서 밝혔듯이, 이 문제는 결국 보건의료체계의 과도한 시장성에서 기인한 것이므로 이를 억제하는 방향으로, 전체 체계 차원에서 접근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 지금은 서로 충돌하고 있지만 정부와 의사 집단 모두 보건의료 영역의 상품화, 영리화라고 하는 큰 틀의 방향성에 있어서는 한배를 타고 있는 사이인 만큼 시민들이 직접 공적 주체로 나서서 이를 통제하고 보건의료체계의 공공성 강화를 견인해 가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갑과 갑의 소란한 싸움 뒤에 묻혀있는 총체적 개혁의 필요성이 이번 계기로 공론화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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