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2.29 06:58최종 업데이트 24.02.29 0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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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한 대화'는 한국 사회의 성찰과 진전을 위한 사회적 대화 프로젝트입니다. 다양한 주제에 대한 경계 없는 논쟁, 토론, 대화를 통해 공동 대안을 모색합니다. [편집자말]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지난 4분기 역대 최저인 0.6명을 기록했다. 연간 합계출산율은 겨우 7명대를 기록했다. ⓒ 통계청

 
아이를 낳지 않는 나라. 모든 생물체의 본성은 번식과 종족 유지라지만 유독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는 더 이상 아이를 낳지 않으려고 한다. 지난해 4분기 합계출산율은 역대 최저인 0.6명대를 기록했다. 세계 최고의 자살률과 세계 최저의 출산율이 기묘하게 공존하는 나라. '대한민국은 끝났다'는 탄식도 들린다.

정부와 정치권도 앞다퉈 저출생 대책을 꺼내놓고 있다. 당장 정부는 학교 현장의 반발에도 늘봄학교를 시작했고, 올해부터 육아휴직급여 기간을 6개월 확대했다. 여야도 총선 공약 앞머리에 저출생 대책을 실었다. 국민의힘은 부총리급 '인구부' 신설을 약속했고 민주당도 '인구위기 대응부' 신설을 공약했다. 육아 관련 급여 확대와 분양전환 공공임대 등의 정책도 쏟아졌다.


이런 정책이 저출생의 현실을 타파할 수 있을까? 사회적 논쟁과 대화의 자리를 만들려는 '대담한 대화'의 이번 주제는 '저출생' 문제다. 초등학교 4학년 자녀를 둔 벤처기업 최고경영자(CEO) 윤정인(36)씨, 5세 자녀를 둔 워킹맘 오은선(36)씨, 이제 갓 20개월이 된 자녀를 둔 초보 아빠 전찬영(32)씨는 쉽지 않은 부모의 길에 들어섰지만, 할 말이 많다.

"저출생? 아이 낳을 환경이 아니지 않나?"

선진국일수록, 도시화가 진행될수록 출산율은 떨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는 심각한 상황이다. 출산율이 1.3명 미만이면 초저출생 국가로 분류하는데, 우리나라는 이미 2002년에 들어섰다. 출산율은 10년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저다. 원인이 무엇이냐는 질문은 사실 의미 없다.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 위해 직접 회사를 차린 윤정인씨 초등학교 4학년이 되는 자녀가 있는 윤정인씨는 연구직으로 일하며 전문직 여성이 아이를 키우며 일하기 힘든 상황을 뼈저리게 경험했다. 결국 연구원을 나와 같은 연구직 엄마와 함께 창업했다. ⓒ 박미혜

   
윤정인(벤처 CEO) : "아이를 낳아서 키울 수 있는 환경이 아니잖아요? 전 전문직인데, 여성 전문직이 아이를 키우면서 일하는 건 너무 힘들어요. 고등학교 선생님도 연구직으로 있다가 다시 사범대에 들어가서 선생님이 되셨는데, 제가 연구원을 하고 싶다니까 '커리어 쌓고 싶으면 결혼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정말 결혼하고 애를 낳아보니까 일도 바쁘고 육아에 집안 살림까지... 모든 요구가 나에게 다 몰리는 느낌?"

오은선(워킹맘) : "청년들을 보면 답이 나와요. 결혼하고 애를 낳으려면 좋은 직장, 안정적인 주거 등 기반이 있어야 해요. 이게 힘드니까 자연스럽게 결혼도 미루고, (결혼해도) 출산할 때가 되면 이미 노산이에요. 당연히 출생률이 낮아질 수밖에 없죠.

청년들은 결혼해서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사람들은 자기보다 조건이 좋고 삶이 윤택하다고 생각해요. 자기는 혼자 살면서 세금도 많이 내는데 혜택은 결혼하거나 아이 있는 사람에게만 준다고 느껴요. '팔자 좋다'는 약간은 혐오적인 감정까지 생기는 것 같아요. 오히려 아이를 키우는 사람에 대한 피해 의식이 있죠."

전찬영(초보아빠) : "제가 30세에 결혼했는데, 친구 10명 중 결혼한 사람은 나 포함해서 2명밖에 없더라고요. 친구들은 애를 왜 낳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많이 해요. 한 30% 정도는 딩크족(의도적으로 아이를 갖지 않는 부부-기자말)이 되기로 결심했더라고요.

이유는 물어보지 않아도 알아요. 애한테 돈도 많이 들어가고 현실은 무한 경쟁 시대고 정치권은 싸우기만 하잖아요? 한국 사회 전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나 혐오가 청년층에 뿌리 깊게 박혀 있어요. 나도 살기 힘들어 죽겠는데, 굳이 생명 하나 더 낳아서 이 세상을 버티게 하는 게 맞는 건가? 이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어요."

아이를 낳을 이유를 찾지 못하는 세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모두 아이가 있다. 지금의 현실을 모르고 낳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부모가 된 것을 후회하는 것일까?

오은선 : "아이를 생각하면 낳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죠. 그런데 나를 생각하면 후회가 많이 돼요. 제가 또래에 비해 일찍 아이를 낳은 편인데, 주위에서 너무 일찍 출산해서 아깝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아이를 낳는 순간 활동이나 공부 다 중단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남편은 오히려 승진하더라고요. 이 사람이 아빠가 되면서 우리 사회에 안정적으로 정착하는 걸 보니까 괜히 울컥하고 우울했어요. 나는 뭔가 싶고. 그래도 아이를 보면 사랑스럽죠."(웃음)

윤정인 : "2011년 박사 1년 차에 결혼해서 대전에 살았는데, 그때는 대출받아서 집을 살 수 있었으니까 결혼을 결심할 수 있었어요. 우리 업계는 주로 박사후 과정에 애를 낳아야 일을 하는 스케줄이 맞는데, 전 졸업하기 전에 애가 생겼어요. 인생 계획이 확 꼬였죠. 전에 있던 연구원에 30명이 일했는데 여자 박사는 딱 두 명이었어요. 전문직 여성은 결혼하고 애 낳고 일하는 게 정말 쉽지 않아요. 아이가 있어서 행복하고, 엄마가 된 것을 지금은 후회하지 않지만, 다시 그때로 돌아가서 선택하라고 하면 엄마의 삶은 빼고 싶어요."

전찬영 : "만일 이 자리에 저 대신 우리 아내가 참여했다면 나와 다른 이야기를 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결혼과 출산을) 후회한 적이 있다고. 지금 아내는 육아에만 전념하고 있는데 출산하면서 그동안 준비하던 여러 가지를 다 포기할 수밖에 없었어요."
  

초보 아빠 전찬영씨 이제 20개월 된 아이가 있는 전찬영씨는 육아에서 처가집 덕을 보고 있다. 아내는 육아에 전념하고 있지만 결혼과 육아로 포기한 것이 많다. ⓒ 박미혜

 
"정부 지원? 도움은 되지만 다른 곳에서 계속 새"

복지가 늘고 돌봄지원 정책은 계속 나오고 있는데 아이를 키우는 건 왜 더 힘들어지고 있을까? 단지 예전의 부모들보다 요즘 부모가 나약해졌기 때문일까?

국가 차원의 복지망이 취약했을 때, 이를 보완했던 것은 가족과 친인척이라는 혈연적 네트워크였다. 그러나 대가족이 해체되고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면서 노동과 육아는 온전히 부모의 몫으로 이전됐다. 지원은 많지만, 새로운 비용이 끊임없이 늘어나고 부모와 아이의 거리는 점점 더 멀어진다.

윤정인 : "지금 무상보육하잖아요? 그런데 참 이상한 건 무상보육한다고 이 정도 지원받으면 다른 쪽으로 그 정도 돈이 나가는 상황이 벌어져요. 유치원도 기타 경비라고 해서 원비 이외에 가방 비용, 특별활동 비용, 교복, 방과후, 학습지 등 비용을 또 내야 해요. 정부 지원금이 눈먼 돈이 되고 사실상 무상보육이 아닌 거예요. 민간 어린이집은 한 달에 18만 원에서 24만 원, 사립 유치원은 한 달 평균 50~60만 원 정도 낸다고 하더라고요."

오은선 : "다문화 가정이라 국공립 어린이집에 대기 없이 쉽게 들어가서 거의 공짜로 다녔어요. 그런데 이사 가면서 유치원에 보내니까 한 달에 25만 원 정도 들었는데, 그것도 엄청 싼 편이라고 하더라고요.

문제는 하원 시간이 5시 30분인데, 칼퇴근하고 가도 맞출 수 없으니까 나 대신 학원 차가 데리러 가야 해요. 태권도 학원 갔다가 피아노 학원 가고, 학원에 있는 아이를 찾아 집에 가요. 할머니 손을 빌리거나 도와줄 사람을 구하지 못하면 내가 데리러 갈 수 있는 시간까지 피아노든 태권도든 뭐든 보낼 수밖에 없는 거예요. 어쩔 수 없이 사교육비가 들어가는 거죠."

전찬영 : "우리 애는 어리기도 하고 맞벌이가 아니라서 오후 4시면 어린이집에서 데려와요. 이런 상황인 줄 몰랐어요. 작년부터 아동 수당이 많이 늘어서 운이 좋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크게 돈 들어갈 데가 없었던 거네요.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가도 사교육비가 든다는 생각은 해보지도 못했어요.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너무 무섭네요."

"늘봄학교? 학교장의 마인드에 따라 천차만별일 것"

5살 아이를 키우는 오은선씨는 한 달 사교육비로 50만 원 정도를 쓴다. 초등학교 4학년이 되는 윤정인씨의 자녀는 방과후를 다 보내면 12~13만 원 정도의 추가 교육비가 들지만, 태권도 학원과 피아노 학원을 보낼 때는 30~40만 원씩 꾸준히 들었다. 꼭 아이의 재능과 교육을 위해서라기보다 학원을 보내지 않으면 돌봄의 공백을 채울 수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오후 8시까지 학교에서 아이를 돌볼 수 있는 늘봄학교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올해는 초등학교 1학년이, 내년에는 2학년까지, 그 이후에는 모든 학년이 조건 없이 사용할 수 있다. 학교 현장은 예산과 인력 부족, 책임 문제 등으로 갈등이 일어나고 있지만, 부모들도 걱정이 많다.
 

워킹맘 오은선씨 5살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 오은선씨는 돌봄정책 대부분이 공기업과 대기업, 공공기관에서만 쓸 수 있는 제도라고 말한다. 여전히 우리 사회는 아이 키우는 엄마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다. ⓒ 손우정

   
오은선 : "학교장 마인드가 중요해요. 조카가 초등학교 5학년인데 돌봄 교실 다닌 이야기를 들어보면 학교마다 질 차이가 엄청나요. 정말 잘하고 있는 학교도 있는데, 어떤 곳은 황폐해요. 그럼 늦게까지 돌봄이 된다 해도 다 사교육으로 빠지죠. 학교별로 분위기 차이가 크니까 그냥 사립학교 보내는 경우도 많아요."

윤정인 : "제가 초등사립학교를 다녔잖아요. 학교 안에 프로그램이 많으니까 집보다 학교가 더 재미있었던 기억이 남아요. 스케이트, 수영, 오케스트라, 동이라, 캠프... 이런 경험을 많이 하니까."

오은선 : "공립학교도 사립학교처럼 할 수 있어요. 들어보니까 예산을 안 쓰고 불용 처리하는 학교도 많다더라고요. 제도도 중요한데, 이 제도를 실행하는 사람이 중요해요. 공립학교도 좋다고 소문나면 부모들이 주소를 바꿔서라도 보내려고 해요."

"정책은 좋지만, 이런다고 애를 낳을까?"

저출생 대책은 꾸준히 나오고 있고, 제도 수준만 봤을 때는 수준도 결코 낮지 않다. 그러나 있는 제도를 제대로 사용하는 곳은 대기업이나 공무원, 공기업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여전히 많은 회사에서 육아휴직은 퇴사로 가는 징검다리로 여겨지고 있고, 남성의 육아휴직은 공무원마저도 눈치가 보인다.

정부와 정치권은 4.10 총선을 앞두고 다양한 저출생 공약을 제출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정쟁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만큼 위기가 합의되어 있다는 의미다. 지원 범위와 규모를 확대하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는 저출생 공약들은 정말 효과가 있을까?
   
윤정인 : "정책은 다 좋아요. 그런데 이게 실제로 집행되는지는 어떻게 감시할 건가요? 그 내용이 없어요. 지금도 육아휴직을 쓰고 있는지는 고용노동부 신고만 봐도 파악할 수 있어요. 못 쓰게 하는 곳에는 페널티를 주면 되는데 의지는 있는 건가요? 정책은 좋은데, 이걸 안 지킨 곳에 페널티를 어떻게 주겠다는 이야기는 안 해요. 기업이 싫다고 하면 실행 안 할 것 같아요."

오은선 : "다 필요해 보이고 없으면 안 되는 정책 같아요. 그런데 이걸 보고 '어 좋은데? 그럼 나도 애를 낳아볼까?'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공무원이나 공기업 직원이 아닌 이상, (이 정책들이) 나에게 적용된다고 믿을까요?"

전찬영 : "(공약을 보면) 위기를 느끼고 있다는 건 알겠어요. 그런데 이걸 보고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결심한 청년들이 아이 낳겠다고 결심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이미 아이를 낳기로 결심한 사람에게는 도움이 되는 정책인데, 그렇지 않은 사람을 설득할 수 있을까요? 못할 것 같아요. 아는 형하고 이야기해 보니까, 아동 수당을 성인 될 때까지 꾸준히 주면 애를 낳겠다고는 하더라고요."

윤정인 : "아마 그렇게 되면 학원비가 더 오를걸요?"

"가장 좋은 저출생 해법은 안전함을 느끼는 사회"

정책도 좋고 공약도 좋다. 그러나 이미 낳은 애를 키우는 데에는 도움을 줄 수 있지만, 결혼과 출산을 건너뛸 결심을 한 이들의 마음을 돌려세우기에는 역부족이다.

그 간격은 지금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세상이 만만하지 않음을 체득한 경험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내 몸 하나 돌보기도 이렇게 퍽퍽한데, 내 아이도 이렇게 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론은 명확하다. 아이가 아니라, 지금 나의 삶을 바꿔줘야 한다.
 

저출생 정책에 대한 부모들의 수다 저출생 정책은 아이를 키우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지만, 결혼과 출산을 거부하는 이들을 설득하기에는 부족하다. ⓒ 박미혜

   
오은선 :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려면요? 내가 가장 약자가 되어도 괜찮다고 느껴야 하지 않을까요? 경제적 믿음, 불평등 해소에 대한 믿음, 안전한 사회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해요. 저출생만 따로 떼어서 치료한다고 해결될 수 없어요."

전찬영 : "대화를 나누다 보니까 걱정이 많이 생겼어요. 청년들이 자기 엄마, 아빠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다 보고 자랐어요. 주위에서 돌봄 문제, 집 문제 같은 이야기도 많이 듣고. 아이를 낳아도 되겠다는 이유가 늘어나야 하는데, 낳지 말아야 하는 이유만 계속 늘어나는 것 같아요. 육아 정책만으로는 해결되기 어려운 문제죠."

윤정인 : "우리 저출생 정책은 아이를 낳는 것에만 초점이 맞춰 있어요. 결혼하면 얼마 주고, 애 낳으면 얼마 주고. 영·유아 때는 이런 지원이 나쁘지 않아요. 그런데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 부모들이 시간을 확보하기가 너무 어려워요. 그런데 정부 정책은 부모의 근로 시간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것 같아요. 그냥 '이 시간까지 대신 애 봐줄 테니까, 넌 계속 일해. 돈 얼마 줄게' 이런 식? 가족을 가족답게 만들어 갈 수 있는 환경을 먼저 만들어야죠."

그래서 한국의 저출생 문제는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현상에 있지 않다. 우리 사회 문제들이 총체적으로 반영되어 나타난 결과일 뿐이다.

[토막 인터뷰] 박은정 육아정책연구소 부연구위원 "우리는 뒤처지는 두려움이 너무 큰 사회"
 

박은정 육아정책연구소 부연구위원 ⓒ 손우정


- 한국의 저출생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는 것 같다. 어느 정도인가?

"출산율이 1.3명 미만이면 초저출생 국가로 규정하는데, 우리나라는 2002년부터 초저출생 국가로 들어섰고, 2018년에는 1명 미만으로 떨어졌다. OECD 국가 중에서도 10년 넘게 최저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다. 2072년이 되면 인구수가 1977년 수준으로 떨어진다. 그렇게 되면 생산가능인구가 지금의 절반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진다. 세계에서도 우리나라 저출생 문제를 가장 급격하고 심각한 사례로 보고 있어서 관심이 높다."

- 부모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아이를 낳은 사람에게 지원이 집중되니까 불만이 있는 청년들도 많고 심지어 혐오적인 감정을 표출하기도 한다던데, 다른 나라도 이런 현상이 있나?
 

"외국은 덜하다. 결혼 안 한 청년들이 아이 있는 사람을 혐오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너무 경쟁이 심해서 나타나는 현상인 것 같다. 경쟁이 심해지면서 늘 불안감이 있으니까, 자신과 다른 집단을 쉽게 혐오하게 만든다.

스웨덴 등 유럽에서는 1980년대부터 여성의 경제활동이나 성평등이 단지 여성의 커리어만이 아니라 출산과 양육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인식이 있어서 양성 평등적인 육아 문화에 관심이 많았다. 여성의 경력이 단절되지 않고 미래를 그릴 수 있어야 출산율이 올라간다고 생각했고, 실제 통계로도 나타난다."

- 우리는 왜 그렇게 못할까? 문화적 차이도 큰 것 같다.

"우리나라는 생애주기라는 것이 고정관념처럼 있다. 몇 살 되면 뭘 해야 하고, 또 몇 살 되면 뭘 해야 하는. 여기에서 다른 사람보다 몇 년만 늦어져도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 물론 유럽에서도 여성들이 결혼이나 출산으로 경력이 단절되고, 이전보다 낮은 직급으로 복귀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나이가 좀 들어도 커리어를 새로 만드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우리에 비해 훨씬 덜하다. 우리는 뒤처지는 두려움이 너무 큰 사회다."

- 아이를 낳도록 유도한다고 하면서 실제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어려움을 호소하는 부모가 너무 많다.

"그런 문제 때문에 초등학교에서 늘봄학교를 하겠다는 것이다. 올해는 초등학교 1학년이 조건 없이 모두 이용할 수 있고 내년에는 1~2학년, 그 이후는 모든 학년이 사용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 정부 계획이다. 이게 실제로 어떻게 돌아갈지는 지켜봐야 한다. 어린이집의 경우는 4시까지는 기본 보육을, 7시까지 연장보육을 쓸 수 있는데 아동 대부분 이 4시 이전에 하원을 하기 때문에 사실 눈치 보여서 못 쓰는 경우가 많다.

- 중요하게 나오는 이야기가 비용 문제다. 나라에서 보육 비용을 지원해 주지만, 실제로 아이를 돌보기 위해서는 사교육 시장에 발을 디딜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비용이 지원받는 금액을 상회한다. 외국도 그런가?

"미국과 유럽이 좀 다르다.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서는 학업 관련 사교육이 매우 드물다. 아이가 흥미가 있는 분야에 대한 사교육 정도이며, 우리나라처럼 어릴 때부터 성적을 위한 사교육은 드물다. 또한 대부분의 국가가 소득수준에 따라 보육비용을 차등 적용하나, 우리나라는 무상보육을 실시하고 있기 때문에 부모의 보육비 부담이 훨씬 적어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특별활동 등 추가 비용이 많이 발생하여 부모의 부담이 여전히 크다."

- 공무원이나 공기업, 대기업이 아니면 육아휴직도 쓰기 어렵다는 문제 제기도 있었다. 특히 육아 문제에서 여성의 희생을 지나치게 요구한다는 의견도 거세다.

"육아휴직 사용자를 기업 규모별로 살펴보면 300인 이상 규모의 기업이 남녀 모두 높다. 남성 육아휴직률도 많이 늘었다고 하지만 2021년생 기준으로 아버지 100명 중에 4.1명이 사용했고, 2022년생 기준으로는 100명 중 6.8명이 사용했다. 물론 남성의 연령이 어릴수록 돌봄은 남성도 함께해야 한다는 인식이 높다.

그런데 사회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아직까지도 일부 중소기업 CEO들은 남성 육아휴직에 대해 매우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아직 우리의 사회문화나 조직문화가 넘어야 할 산이 많다."

- 저출생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어떤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크게 두 가지 측면을 말하고 싶다. 첫째, 저출생은 사회가 만들어 낸 불안의 결과다. 저출생 문제는 사회심리적인 영향이 크다. 청년의 불안이 해결되지 않으면, 이 불안 속에서 결혼과 출산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 이 불안은 어디에서 올까? 지나치게 경쟁적인 사회 문화다. 공부하고 취업해서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겠다는 안정감이 없는 것이다.

둘째, 실질적으로 정책이 작동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의 제도는 제도 설계 수준에서 보면 매우 높은 수준이긴 하다. 문제는 이게 의도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이제는 새로운 제도를 쏟아내기보다는 잘 작동하게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게 무엇일까를 세밀하게 들여다보아야 하는 시점이다."

* 이 기사는 '대담한 대화'의 일부 내용을 발췌, 재구성한 것입니다. 대화 전문을 보시려면 아래의 링크를 클릭하세요. 대담한 대화 전문보기 https://daehwa.xyz/g/home/news/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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