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0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의 한 아파트 단지 입구에 택배가 쌓여 있다. 이 아파트 입주자들은 안전사고 우려 등을 이유로 지하 주차장을 이용해달라는 입장이지만, 택배 기사들은 배송 차량(탑차) 높이 탓에 주차장 진입이 불가능하다며 지상 출입을 허용해달라고 요구했다.
연합뉴스
그러나 아파트 택배 지하 배송 문제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여러 기사를 살펴보면 아파트 지하 주차장 제한 높이는 2.1~2.3m인데, 택배 차량 탑재함 높이는 2.6~2.7m가량이다. 아예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다. 택배 기사에게 그 아파트의 특별한 사정 때문에 자비로 탑재함을 고쳐 운행하라는 것은 지나친 요구다.
어떤 아파트는 개조 비용을 제공하겠다고도 했단다. 그러나 택배 기사인 나는 그것도 쉽지 않은 일임을 안다. 왜냐하면 이전 글에도 썼지만, 택배 배송의 관건은 많은 물건을 얼마나 잘 쌓을 수 있는지와 얼마나 빨리 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물론 물건을 하자 없이 정확하게 배송하는 것은 기본전제다).
그만큼 택배 기사가 소화해야 할 하루 물량은 늘 탑재함을 꽉꽉 채울 만큼 많다. 그중에 배송량이 더 많은 기사는 대리점 집하장을 하루 두 번씩 오가거나 일부 물량을 다음날로 미루고 쌓아두는 일도 적지 않다. 그런데 탑재함 높이를 낮추면 얼마나 많은 물량을 싣지 못하게 되는지 택배를 해본 사람은 벌써 머리에 그려진다.
기사들은 매일 두 번씩 왕복 한 시간 가까이 소모하며 다시 대리점에 다녀와야 한다. 그렇게 될 경우, 직장인 퇴근 시간을 피하기 어렵고 특히 배송 후 집화까지 하는 기사들은 시간을 맞추기가 거의 불가능해진다. 대충 생각해 봐도 적재함을 낮추는 것은 단지 개조 비용을 누가 낼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택배 기사들은 지상 도로를 이용하되 정한 제한속도를 정확히 지키고, 또 아파트 측에서 지정해 주는 공동 주차구역에만 주차하고 그 이후에는 수레를 이용하겠다는 제안을 했다.
그러나 아파트 쪽에서 받지 않자 결국 정문 앞에 쌓아 놓는 불상사가 벌어진 것이다. 아파트 쪽에서도 집까지 배송하지 않은 물건을 일일이 사고로 신고하여 기사가 변상하도록 권하고 있다 한다. 이렇게 되면 양쪽 모두 자존심 때문에라도 굽힐 수 없고 불편함과 감정만 쌓여간다.
내 생각은 이렇다. 양쪽의 절충점을 찾되 아파트 쪽의 사정으로 생긴 일인 만큼, 그쪽에서 좀 더 합리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내가 택배 기사라서 거나 택배 기사가 수고하기 때문이라서가 아니다.
지상 주차장을 없애고 지하 주차장만 이용하는 것은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라는 말이다. 배송 업무의 일반적인 상황이 아닌 것을 일반 이용자도 아닌 물건 배달 기사에게 똑같이 요구하는 것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그것은 배달 기사가 각 배송지마다의 특수사정을 다 따를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앞서 기사들이 요구한 것처럼 아파트 측에서 지정한 공동 주차구역만 이용하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안 아닐까 싶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몇 해 전 갈등이 생겼던 의정부 어느 아파트는 결국 아파트 지하 주차장 높이를 2.7m로 높임으로써 해결했다고 한다.
생각해 보니 내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얼마 전 내가 배송한 지역 가운데 한 건물이 그 건물 배송임에도 건물 앞 주차장을 이용하지 못하게 했다. 그뿐 아니라 건물 안 배송을 위해 물건을 수레에 옮기려 하니 소음이 크고 바닥이 긁힐 수 있다며 건물에서 주는 바퀴가 넓은 큰 수레로 다시 옮기라고 요구했다.
너무 하는 것 아니냐고 따져 물으려니 경비원은 건물 주인이 그렇게 요구하니 자기도 어쩔 수 없노라며 미안하지만 자기 좀 봐달라고 했다. 경비원도 '을'이고 나도 입씨름하기 귀찮아서, 그 건물 배송이 있을 때는 좀 힘들어도 내가 들고 오르내렸다.
'뭣이 중한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