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5.03 18:26최종 업데이트 23.05.03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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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국길 동행 기자들과 인사하는 윤 대통령 미국 국빈 방문 일정을 마친 윤석열 대통령이 29일(현지시간) 보스턴 로건 국제공항 출발에 앞서 공군 1호기 기내를 돌며 동행 기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국빈방문을 마치고 돌아왔다. 국빈 방문 형식에 어울리게 윤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 미국 의회로부터 융숭한 대접을 받았고, '아메리칸 파이' 팝송도 열창하며 흥겨운 시간도 보냈다. 우리 대통령이 강대국 미국의 환대를 받으니 일견 좋아 보인다. 한·미정상회담 결과도 '한·미공동성명,' '워싱턴 선언,' 공동기자회견 등으로 발표되었다.

그런데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반도체과학법 등 우리의 많은 기대를 모았던 사안에 대해 구체적인 성과가 없다. 올인한 듯한 워싱턴 선언에서도 윤 정부가 바라던 '핵 공유'는 거부되었고, 핵 자주권은 포기되었다. 말의 성찬에 의한 '정신 승리'가 강조되었다. 국익의 관점에서 볼 때 윤 대통령의 외교 결과는 허탈한 '빈 강정'이다.


윤 대통령이 국빈 대접에 흥이 나는 동안 바이든 대통령은 경제적·군사적·정치적 이익을 차곡차곡 다 챙겼고, 우리 국민은 경제적으로 털리고, 군사적으로 더 불안한 현실을 맞이하고 있다. 이러한 결과는 충분히 예상된 것이다. 미국과 일본에 대해 일관되게 보여주는 윤석열 대통령의 굴종적 하인 외교가 가져올 수밖에 없는 결과이다.

필자가 아주대 동료 교수들과 함께 시국선언을 한 이유는 바로 윤석열 대통령의 굴종적 하인 외교가 나라를 온통 망가뜨리고 위태로운 상태에 빠뜨리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 뻔히 예상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대로 몇 년 더 간다면 나라가 망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 그리고 그 불행한 길의 가장 큰 희생자는 우리 청년 학생들과 국민 다수가 될 것이라는 인식을 공유하게 되었다.

문제의 심각성을 너무 늦지 않게 청년 학생들과 국민에게 알려 이들이 올바른 판단과 행동을 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자 우리는 시국선언을 하게 되었다(관련기사: "굴욕외교 더는 못 참아"... 시국선언 촛불, 전국이 불붙었다 https://omn.kr/23ot5).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은 도대체 왜 이런 외교를 하는가? 그 이유나 원리는 무엇인가? 이제 윤석열 정부의 외교가 구체적으로 왜 문제가 되는지, 그 메커니즘은 무엇인지를 파악하기 위해 한·일정상회담, 한·미정상회담을 잠시 복기해 보자.

참으로 해괴한 외교

윤석열 대통령은 한·일정상회담에서 일본 기업들의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우리 피해자들의 의사와 2018년 대법원의 판결을 무시하고 강제동원과 관련이 없는 한국 기업의 기금으로 배상하는 제3자 변제 방식을 취했다. 식민 지배의 불법성과 가해 기업들의 배상 책임을 모두 부정해 온 일본 정부의 입장을 우리 대통령이 앞장서서 두둔하는 참으로 해괴한 행위를 저질렀다.

정상회담에서 기시다 총리가 독도 문제,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를 언급했다는데 윤 대통령은 일본에서의 추억을 읊조리고, 오므라이스와 소맥을 즐기면서도 정작 항의 한마디도 못했다. 윤 대통령은 실로 일본의 요구를 알아서 행하는 굴종적인 하인 외교를 보였다. 우리 국민의 안전, 민생, 국가의 안보, 삼권분립 민주주의, 영토 수호가 심각하게 우려되지 않을 수 없다.
 

1박2일 일정으로 일본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오후 일본 도쿄 총리 관저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공동 기자회견을 마친 뒤 퇴장하고 있다. 2023.3.16 ⓒ AP=연합뉴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의 진짜 주인은 미국인 것 같다. 미국의 도·감청 사실이 누출되자 대통령실은 "미국의 악의적인 정황이 없다", "상당수가 위조되었다"라며 미국 정부를 두둔하기에 바빴다. "친구가 친구를 염탐합니까?"라는 NBC 앵커 레스터 홀트의 질문에 윤 대통령은 일반적으로 잘못된 것이라 하면서도 미국에 대한 강한 신뢰, 철통 동맹을 강조했다.

윤 대통령이 미국을 이렇게 신뢰하는 동안 미국은 도·감청이나 이와 비슷한 일을 계속할 것이며, 한국과의 관계에서 이를 활용해 이익 추구를 최대화할 것이 뻔한데 우리나라의 대통령은 왜 항의 한마디도 못하는가? 윤 대통령에게 미국은 무엇인가? 그의 마음에는 어느 수준으로 생각이 진전되는 것을 막는 '보이지 않는 유리벽'이 있는 것은 아닐까?

윤 대통령은 미국에 대해 '상징적 동일시'(symbolic identification)를 하는 것 같다. 라캉의 정신분석학에 따르면 아이는 자신이 사랑하는 아버지(혹은 어머니)와 동일시하게 되는데 이들이 제시하는 자기에 대한 담론('공부 잘해라' '선생님 말 잘 들어라' 등)을 내면화하여 자신의 이상적인 모습을 형성하게 된다. 아이의 행동과 사고에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이러한 상징적 동일시이다.

그런데 아이의 중심축인 아버지(어머니)가 아이에게 항상 좋은 역할만 하지는 않는다. 아버지는 아버지 나름의 욕구와 욕망이 있어 때로는 아이를 돌보지 않고 아이와 가정에 심각한 피해를 주는 일을 할 수도 있다.

이와 비슷한 일이 주인과 하인의 관계에서도 일어난다. 충직한 하인은 주인과 자신을 동일시하여 주인을 위해 스스로 일하지만 주인은 때로 하인에게 해가 되는 일을 시킬 수도 있다.

윤 대통령의 미국에 대한 강력한 철통같은 신뢰는 미국에 대한 상징적 동일시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자기 국익을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는 국제 관계에서는 아무리 동맹이라도 하더라도 주인-하인 관계는 바람직하지 않다.

앞서 언급한 일본에 대한 윤 대통령의 '해괴한' 태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실마리가 한·미 정상의 기자회견에서 나왔다. 바이든 대통령은 "인도·태평양 지역의 미래를 위해 한국과 미국은 일본을 포함한 삼각 협력으로 일하고 있다. 일본과의 외교에서 보인 윤 대통령의 정치적 용기와 개인적 헌신에 대해 다시 감사한다. 나는 이 이슈들을 위해 오랫동안 일해 왔다"라고 말했다.

바이든은 한·일 갈등을 넘어 한·미·일 동맹이 결성되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한국과 일본이 미국의 지휘하에 긴밀하게 협력하기를 바란다. 미국에 대해 철통같은 신뢰와 동일시를 하는 윤 대통령은 미국이 원하는 대로 일본의 요구를 일방적으로 들어줬던 것 같다.

그리고 미국이 원하는 대로 삼성, SK 등 한국 기업이 미국에 약 133조 원의 대규모 투자를 하고도 반도체법, IRA법 등으로 큰 피해를 본 반면 미국이 한국에 투자하는 것은 겨우 8조 원 정도에 불과한데도, 윤 대통령은 적극적인 요구나 항의 없이 미국의 '선의'만을 철통같이 믿고 있는 것 같다.

우리 기업이 이렇게 위기일 때 국익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서 방패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 대통령의 존재 이유가 아닌가?

바이든은 한·미·일 협력을 위해 오랫동안 작업했다고 했다. 무슨 뜻인가? 박근혜 대통령 때 한·일 간 위안부 문제 합의안이 나오는데 주요한 역할을 한 이들이 당시 일본 외상 기시다, 당시 외교의 중심축이었던 부통령 바이든이었다.

이번에 한·일정상회담에서 윤 대통령의 일방적 양보가 나오도록 기시다 총리가 바이든 대통령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 없지만, 바이든은 한·일 간 협력이 긴밀해지도록 작업을 해왔던 것이다. 바이든은 윤 대통령이 방일한 것에 대한 답례로 기시다 총리의 한국 방문을 종용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고,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최근 기시다의 한국 방문은 충분히 예상됐던 바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과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 UPI=연합뉴스


미국을 철통같이 믿는 게 합리적인가

그러면 바이든은 왜 이렇게 한·미·일 삼각협력을 중시하는가? 이것이 한국에는 무슨 의미가 있는가?

바이든 정부는 전 세계에 민주주의와 미국적 가치를 내세우고, 중국과 러시아를 적대국으로 설정하면서 신냉전 세계 질서를 추구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대러시아 전선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생하였고, 대중국 전선에서는 대만 전쟁의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러한 신냉전 구도에서 중국과 러시아의 공조는 긴밀해졌고, 북한은 이들과 더욱 가까워지고 있다. 미국은 이들에 대항하기 위해 한·미·일 공조가 더욱 필요하다. 바이든 행정부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한·미·일 군사동맹이며, 대중국 전선을 포함한 인도·태평양지역에서 한국군을 언제든 원하는 곳에 투입할 수 있도록 만들고 싶어한다.

현재 북·중·러-한·미·일 간의 군사적·경제적 대결이 점점 노골화되고 있는 형국이다. 그런데 이러한 구도에서 북·중·러의 공격을 가장 앞에서 당하는 것은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우리가 될 수밖에 없다. 즉, 대만이나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난다면, 한국은 전쟁터가 되거나 전쟁에 바로 끌려들어가 총알받이가 되기 쉽다. 일본은 한국전쟁 때처럼 큰 이익을 볼 것이므로 북·중·러와의 갈등을 부추길 것이 뻔하다. 왜 윤 대통령은 우리나라와 국민을 이런 군사적·경제적 위험 속으로 끌고 가는가?

이 대목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이 연상된다. 우리는 이제 우크라이나 전쟁을 냉정히 봐야 한다. 전쟁이 왜 일어났는가? 물론 러시아 침공 때문이다. 그런데 왜 러시아는 침공했는가?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시카고 대학 미어샤이머(Mearsheimer) 교수는 미국이 푸틴을 막다른 코너로 몰며 지나치게 자극한 것을 주요 원인으로 꼽는다.

2014년 우크라이나에서는 반러시아 시민 혁명이 일어났다. 우크라이나인들의 반러시아, 친미 정서는 엄청났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사태의 배후에서 깊숙이 관여한 인물이 지금의 미국 국가안보보좌관 설리번이며, 이를 뒤에서 지휘한 인물이 당시 외교의 중심이었던 바이든 부통령이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3.4.24 ⓒ 연합뉴스

 
다시 말하면 2014년 반러시아 정서를 기반으로 친미 혁명이 일어났고, 역시 2022년 반러시아 정서, 친미 나토 가입 문제를 기반으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갈등이 심해졌고, 마침내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했으며, 수많은 무고한 우크라이나인들이 죽고 고통받는 길을 걷게 되었다.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과 대만 문제에 강력한 영향을 행사하는 것은 바이든-설리번의 외교 정책이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볼 때 미국을 우리가 '완전히' 신뢰하고 '철통' 같이 그 선의를 믿어도 되는 존재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일까? 워싱턴 선언이 발표되기 1일 전에 미국은 중국에 미리 한국의 핵 포기를 알렸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한국의 핵무장 가능성을 제거한 것을 중국에 알려 대중국 카드로 쓰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오랜 우방인 프랑스의 마크롱은 왜 중국을 국빈 방문하고 프랑스는 미국의 속국이 아니라고 강조하는가? 미·중 갈등이 신냉전으로 가는데 프랑스뿐만 아니라 독일·스페인·브라질의 지도자들이 왜 중국을 방문하는가? 누구의 말처럼 이들이 한국의 '운동권 출신'인가?

윤석열 대통령은 미국에 대한 하인 외교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 미국은 윤 대통령의 주인이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주인은 오직 우리 국민이다. 지금처럼 미국·일본에 대해 스스로 하인의 자세를 취한다면, 우리나라와 국민은 경제적으로 털리고, 안보 면에서는 군사 충돌의 위험 지대로 내몰리는 희생자가 될 것이 뻔하다.

이제 우리 국민들은 반중-친미의 이분법적인 대중 감정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무엇이 우리에게 중요한지 냉정하게 따져야 한다. 이제 우리는 강대국 사이에서 망하지 않기 위해서 올바르게 판단하고 행동해야만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것이 내가 시국선언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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