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보티첼리
여성의 신체가 아름다움, 이상적 여인, 여신 등으로 본격적으로 표현된 것은 르네상스 시대 이후이다.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 등이 여성의 나체로 미의 이상을 표현했다. 그러나 아무리 예술 작품의 제작을 위한 것이라도 누드모델은 비천한 직업이었고, 누드모델로 공개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것은 매춘부 외에는 없었다고 한다.
석사 과정을 마치고 논문을 쓰게 되었을 때, 나는 문헌 연구나 통계 등의 양적 연구보다는 참여관찰과 인터뷰를 기반으로 한 질적 연구를 하고 싶었고, 누드모델은 꽤 괜찮은 소재 같았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전시된 작품의 5%만이 여성 작가에 의한 것인 반면 누드화의 85%는 여성을 소재로 했다는 게릴라 걸스의 주장은, "화가와 모델이라는 상징적 지정석은 특정한 성별에 의해 '나뉘어' 점유되어왔다"는 김애령(2006)의 문장으로 잘 정리된다. 남성은 보는 사람, 여성은 보여지는 사람이라는 전제에 도전하고 싶었고, 실제로 그 일을 하고 있는 여성들의 경험이 궁금했다.
검색 사이트에서 '누드모델'을 검색하자, 가장 먼저 뜬 화면은 성인 인증을 하라는 것이었다. 누드모델 체험을 해봤다는 남성의 블로그 글이나 누드모델과 성관계를 맺는 내용의 야한 소설 등 쓸모 없는 페이지들을 건너, 곧 모델협회를 찾아냈다.
일정 기간 동안 '훈련'를 받고 일을 시작했다. 내가 느끼기에 누드모델 일은 시작하기가 어려운 일은 아니다(지속하기가 어렵다). 먼저 미술 동호인의 화실, 백화점 문화센터 등에 일을 나갔고, 익숙해지자 대학교 수업도 받게 되었다.
서울 뿐 아니라 청주, 대구, 제주도에서 나를 찾는 곳이 생겨 전국을 돌아다녔다. 동료 모델들과 친분을 쌓았고, 다양한 모델들이 다양한 필요와 욕구로 일을 지속하는 것도 알게 되었다. 모델 일의 의미는 사람마다 달랐다. 예술이어서 하는 사람도 있었고, 예술이 아니어서 하는 사람도 있었다. 돈 때문에 하는 사람도 있었고, 돈이 되지 않는 선에서 하는 사람도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의 학생 정체성은 점점 옅어지고, 모델 정체성이 짙어졌다.
그렇게 10년이 흘렀다. 다양한 작업에 참여했고, 몇몇 인터뷰에도 응했으며, 근사한 포트폴리오도 마련했다. 결국 학위 논문은 마치지 못했지만, 평생의 직업을 찾았다.
'그런 여자'에 대해 쓰려고 시작한 일을 통해, 사실 '그런 여자'는 어디에도 없고 다만 '그렇게 보는 시선'이 있다는 사실을 다시 배웠다. 슬럿워크를 취재했던 기자들과, 10년 전 누드모델을 바라보았던 나의 시선이 다르지 않았다는 것도 깨달았다. 누드모델 일은 나에게 또다른 여성학 수업이었다.
* '그런 여자는 없다'는 '게릴라 걸스'의 책 제목이다. 게릴라 걸스는 1985년 뉴욕에서 결성된 익명의 여성 예술가들의 모임이다. 앵그르의 '오달리스크'를 패러디하여 "여성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들어가려면 발가벗어야만 하나"라고 적힌 포스터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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