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소과 인체크기 좌상의 제작 과정
정규리
석사논문을 쓰기 위해 모델들을 인터뷰 하다가, '우린 예술하는 사람이 아닌 거예요'라는 말을 하는 인터뷰이와 함께 울어버렸던 적이 있다. 우리가 예술가 본인은 아니더라도 예술의 언저리에는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못했던 순간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예술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일회용 마네킹으로 취급받는 감정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안다. 그래서 '직업체험'이나 '르포기사' 따위가 아니라, 장기간 활동하는 전업 모델들은 보통 자신만의 원칙이 있다. 화가와 단 둘이 작업하는 1:1 수업은 아예 받지 않는 모델도 있고, 무대와 그리는 사람 사이의 거리가 2미터 이상 확보되지 않는 좁은 공간에서는 옷을 벗지 않는 모델도 있다.
나는 탈의실에 민감해서, 환복 공간이 전혀 준비되지 않아 상가 건물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어야 했을 때는 정말 그대로 집에 오고 싶었다. 잠금 장치는 허술했고, 칸막이는 위아래가 휑 뚫려 있었다. 비위생적인 바닥에 옷이 떨어질까 봐 조심조심 움직였지만, 낡은 창문 틈으로 불어오는 겨울바람 때문에 맨살에 소름이 돋았다. 한참 사회적 이슈가 되었던 공중화장실 불법 촬영에 대한 걱정은 사치였다.
세상에는 돈으로만은 치유되지 않는 폭력이 존재한다. 돈을 위해 하는 일이라고 해서, 돈이 된다면 무엇이든 하지는 않는다. 모델마다 그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미대 수업이나 크로키 동호회같은 일반적인 모델 일과는 다른 작업을 할 때는 계약서를 쓰는 것이 좋고, 계약서에 앞서 작가와 모델이 충분한 대화를 통해 경계를 조율하고 합의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글을 쓰는 것은 내 작은 복수다. 인체를 표현하는 작가는 사람에 대한 이해와 존중을 먼저 배워야 할 것이다. 참여자를 존중하는 작업에 임할 때 모델은 보람과 자부심을 느끼며 최선을 다한다.
비좁을지언정 문이 달린 탈의실, 벌거벗은 모델이 추위에 떨지 않을 수 있는 실내온도, 천장 구석에 무심히 달린 CCTV를 가려주는 종이 등 아주 사소한 배려를 느낄 때 모델은 조금 힘들더라도 더 과감한 포즈를 취하고, 1분이라도 더 버티기 위해 이를 악문다. 한 명의 모델로부터 최선의 작품을 이끌어내는 것은 작가의 역량이다.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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