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코펜하겐 류슨스틴 고등학교의 정문.
이아선
류슨스틴 고교의 안데르스 교사는 학교의 가치와 핵심 교육활동을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학생으로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교사-학생 간 "민주적" 소통에 관한 부분이었다. 한국의 학교에서 '민주시민교육' '세계시민 양성'은 흔히 들을 수 있는 문구지만, 정작 교사와 학생의 관계와 대화에서 진정한 존중과 민주주의를 경험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평등하게, 사람 대 사람으로." 안데르스 교사가 말한 이 소통 방식은 학생들의 행복한 학교생활의 시작점이었다.
이 학교 이야기를 들으며 한국이 떠올랐다. 수업 시간 중 대다수 학생들의 무기력하고 의욕없는 모습들. 자신의 생각을 말할 기회가 아주 많으며 친구들과 적극적으로 토론하면서 수업한다는 이곳 학생들과는 상당히 대조적인 풍경이다. 현장에서 학생들과 질의응답 시간이 마련됐는데 질문을 하나 던졌다.
"배우고자 하는 열정은 어디서 나오는 것 같나요?"
돌아온 답변은 "지금 배우고 있는 과목을 '내가' 선택했기 때문에 흥미롭다"였다. 이곳 학생들이 선택한 과목은 수능이나 내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진짜 배우고 싶어서 선택한 과목이라는 당연한 사실에 놀랐다.
덴마크의 유치원, 고등학교, 초등학교 등을 연이어 방문하면서 흐린 듯 파란 그곳의 하늘을 자주 올려다봤다. 문득 고등학교 3학년 때 내가 봤던 하늘이 생각났다.

▲쇠토프 숲 유치원의 하늘자유로움을 가득 품고 있는 듯하다.
이아선
▲ [영상] 덴마크 어린아이들이 마주하는 하늘 2023년 1월 18일 덴마크 코펜하겐 쇠토프 숲 유치원에서 직접 촬영한 하늘. 자유로움을 가득 품고 있는 듯하다. ⓒ 이아선
관리형 독서실을 다니던 때였다. 그곳은 모든 창문을 블라인드로 가려놔 디지털시계로만 시간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었다. 밥 먹으러 건물을 나가야만 계절을 담은 나무와 시간대를 알려주는 하늘을 볼 수 있었다. 고3의 나는 그때마다 괜스레 하늘을 쳐다보곤 했었다. 그때 내가 본 하늘은 '한숨 돌리는 순간의 하늘'이었지만, 이곳 학생들에게 하늘은 '한없이 펼쳐진 자유로운 하늘'일 것이다.
안테나를 접고 살았던 1년... 사실 조금 억울했다
울타리 안에서 자란 아이가 문을 열고 세상으로 나아가기 직전인 19살, '나'에 대해 질문하고 앞으로 어떤 삶을 살지 고민하기만 해도 턱없이 모자라는 소중한 시간, 그 시기에 대부분의 한국 청소년들은 '진정한 자신'과는 거리를 두고 눈앞에 놓인 것들을 끊임없이 받아들이기만 하는 1년을 보낸다.

▲내가 지냈던 교실의 모습빈 교실을 보면 나는 왠지 늘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이아선
고2 때, 평소 이것저것 많은 활동에 참여하던 내게 존경하는 학교 선생님 중 한 분이 이런 조언을 해주셨다. "네가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관심사도 많아서 머리에 안테나가 엄청 많이 나 있잖아? 그걸 아예 없애지는 말고, 1년만 살짝 접어둔다고 생각하면 어때?"
그 말을 듣고 당시의 난 공부에만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더욱 불태웠다. 'K-고3' 시기는 지내보니 생각보다 버틸만했다. 친구들과의 추억, 성취감을 느꼈던 경험과 같이 좋은 기억도 많다. 그런데 '입시' 얘기만 하려 하면 나조차 놀랄 정도로 갑자기 울컥하곤 한다.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자신의 삶을 억누르며 한 치의 여유조차 없이 애쓰는 건 반드시 몸과 마음을 갉아먹을 수밖에 없기 때문인 듯하다.
그런데 덴마크를 둘러보고 나니 왜 우리 교육은 학생들의 '안테나'를 세상을 향해 쭉쭉 뻗게 하지 않고 오랜 시간 접어두게 하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 사실 조금 억울하기도 하다. 한국의 모든 청소년들이 닫힌 공간에서 고통을 인내하며 성장하기보다, 하늘 아래 자유로움을 느끼고 스스로 결정하고, 민주적으로 대화하고 존중받으며 행복한 어른으로 성장하길 간절히 바란다.
할 수 있다, 꿈틀거리겠다는 자신감
▲천문대(Planetarium)와 함께 찍힌 덴마크의 밤하늘밤산책 때 보았던 별들을 절대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이아선
'행복한 교육과 사회를 위해 우리는 어디부터 어떻게 바꿔야 할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아직 모르겠다. 하지만 '꿈틀비행기'를 타고 온 뒤, 적어도 내 주변만큼은 조금이라도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키고 싶다는 목표가 생겼다.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도 솟아났다.
덴마크의 시인, 신학자, 민중 교육가로서 정신적 지도자로 불리는 그룬트비도 혼자서 덴마크 사회를 변화시킨 건 아니라고 했다. 그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토론하고 머리를 맞대면서 변화·발전시킨 것이라고 했다. '꿈틀비행기'란 이름에 담긴 의미처럼 내가 있는 곳에서 먼저 꿈틀거리고, 작은 꿈틀거림들이 모인다면 막연히 꿈꿔왔던 우리만의 행복 사회가 어느새 현실이 돼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현실의 과업들이 여유와 행복을 빼앗을 수도 있겠지만, 19살 덴마크에서의 기억을 안고 시작하는 나의 20대는 한 뼘 더 행복할 것이라 확신한다. 다짐을 한 줄 적는다. 나와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 때로는 지치고 느리고 슬퍼도, 우직하고 건강하게 그리고 기뻐하며 살아갈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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