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서울 지하철 충무로역 승강장에서 경찰이 확성기로 질서유지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내리기 전에 타는 사람이 나쁜 사람일까? 그렇다고 할 수는 없다. 잠깐 누군가를 불편하게 한다고 해서 그것이 범죄는 아니다. 어차피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 언제 다시 볼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불편을 끼친다고 해서 내 월급이 깎이는 것도 아니다. 오늘 아침에 내 어깨를 밀치고 탄 그 사람이 알고 보면 많은 사람에게 존경받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는 엄청나게 친절하고, 배려심 많은 사람일 수도 있다.
애덤 스미스는 도덕적 타락의 원인 중 하나가 도시화가 낳은 익명성이라고 지적했다. 조그만 마을에서 사는 사람은 마을의 행동 규칙을 따른다. 규범을 어길 경우 마을에서의 평판이 나빠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도시로 나오면 아무도 그를 알지 못하고, 아무도 그의 행동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도시로 나온 사람은 규범을 어기고 싶다는 유혹을 느낀다.
친구와 함께하는 공간에서, 혹은 자신의 이름을 밝힌 공간에서, 타인의 시선이 느껴지는 곳에서 인간이 규범을 지키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은 다양한 연구를 통해 밝혀진 바 있다. 우리의 도덕적 자아가 사회적 자아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사회집단은 인간 도덕성의 근원이자 목적이다. 잠깐 모였다 사라지는 대중교통에서의 만남을 직장, 학교와 같은 사회집단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나에게 큰 영향을 줄 수 없는 사람들을 불친절하게 대하는 것, 그렇게 도시의 삶은 피곤해진다.
그래도 같은 공간을 이용하고 있을 때만큼은 공동체다.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는 것, 공공시설을 이용한다는 것은 함께 사용하는 공간에서 통용되는 암묵적인 규칙을 따르겠다는 약속에서 시작한다. 지하철에서 침 뱉지 않기, 버스에서 담배 피지 않기, 엘리베이터에 쓰레기 버리지 않기, 탑승하는 모든 공간에서는 내리고 타기. 모두가 규칙을 따른다는 믿음으로 돌아가는 시스템이다.
혼자 사는 인생이지만, 함께 사는 세상이다. 휴대폰에서 잠시 시선을 떼고, 혼자만의 생각 속에서 싸우는 것을 멈추고, 잠깐 고개를 들어 함께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자.
"당신이 만나는 모든 사람은 당신이 전혀 모르는 전투에서 각자 싸우고 있습니다. 언제나 모두에게 친절하게 대하세요"라는 말이 인터넷에서 유행한 적 있다. 익명성 속에 우리는 모르는 각자의 고통, 사정들을 갖고 있는 주변 사람들에게 잠깐 시간을 갖고 친절을 베풀어보자.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내리고, 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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