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에 맞춰 집을 짓느라 많은 것을 포기했지만 공간을 밝히는 근사한 조명은 포기할 수 없었다.
최지희
놀라운 조명의 세계
조명의 세계는 여러 가지로 놀라웠다. 디자인이 훌륭하고, 공간을 한순간에 빛나게 해 줄 만큼 멋졌지만 헉 소리 날만큼 비쌌다. 게다가 고급 주택 사진들을 수집하고 다니면서 눈은 롯데타워 123층 꼭대기만큼 높아졌다. 조명이야말로 단순한 기능을 넘어선 예술의 영역이었고 인테리어의 핵심이었다. 다른 건 다 양보해도 조명만큼은 양보 못하겠다는 불길한 결심이 (또) 섰다.
원목 마루 구입으로 남편 지갑을 탈탈 턴 마당에 조명 값까지 청구할 배짱은 없었다. 자력갱생해야 했다. 월급을 일 원짜리 한 장도 빼지 않고 남편에게 계좌 이체하고 용돈을 받아 생활하는 나의 한 달 용돈은 삼십 대에는 30만 원, 사십 대인 지금은 40만 원이다. 교통비, 식비, 커피값 등등 각종 부가세까지 몽땅 포함이다. 이러한 굴욕적인 시스템을 유지한 덕분에 경제관념 제로인 내가 시골이지만 작은 땅을 사서 집을 지을 수 있었다.
고고한(?) 안목으로 고른 조명들은 소박한 용돈의 범위를 한참 넘어섰기에 허리띠를 졸라맸다. 아이크림과 에센스 대신 로션 하나로, 옷은 추위와 더위를 막는 기능적 역할만 갖추기로 했다. 이른바 대대적인 '아나바다' 운동을 펼치고 간간이 글쓰기 아르바이트로 수령한 잔잔바리들까지 아낌없이 조명을 사는데 쏟아 부었다.
특히 빈티지 조명에 빠져서 독일 이베이 사이트에서 경매 낙찰까지 받아 가며 조명을 사는 데 진심이었다. 왜 자꾸 남의 나라 중고품을 사느냐는 남편의 핀잔에도 굴하지 않고 미국과 소련의 우주 경쟁 시대를 형상화한 1970년대 크롬 조명, 덴마크 학교에서 사용했다는 교실 조명, 현재는 단종된 유명 디자인 회사 조명까지 비용과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에 합당한 인테리어 효과가 있었느냐 냉정하게 판단한다면, 글쎄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전문가들이 인테리어를 진행한 다른 멋진 집들과 비교하면 확실히 어딘가 어색하고 어설프다. 그렇지만 그래서 의미가 있다.
어설픈 우리 집의 조명과 우여곡절 끝에 깐 원목 마루에는 나만의 사연과 이야기가 있고, 그것은 돈으로 따질 수 없는 가치이다. 때론 사람조차도 '가성비'로 평가받는 현실이지만 적어도 가장 사랑하는 공간에서만큼은 효율이 아닌 '존재'로 인정받는 무언가가 채워져 있다는 것이 가끔 괜찮은 위로가 된다.
물론 살아 내는 일의 고단함이야 물건 따위로 채워질 리 없겠지만 가끔씩 불현듯 찾아오는 일상 속 허기를 달래주기에는 충분하다. 찬바람 부는 계절, 서늘한 마음은 어쩌지 못해도 시린 속을 위로할 근사한 나무 마루가 있으니까 괜찮다. 조명을 사느라고 화장품도 끊고 애들 로션 얻어 쓰며 버티느라 눈주름은 더 깊어졌지만 괜, 찮다. 눈주름과 맞바꾼 조명 아래 있으면 '조명빨' 덕분에 주름이 잘 안 보이니까 아무렴 진짜 정말 완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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