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을 보낸 낡은 집에 대한 추억에서부터 시작해 어쩌다 짓게 된 집의 모습이다.
최지희
어쩌다 집 짓고 지 팔자 지가 꼰 전말의 원흉은 사춘기를 보낸 '효녀네 집'이었다. 은밀하게 일탈을 자행하면서도 선은 지키는 염치 있는 '효녀'가 되기까지 그 집의 공이 컸다.
쭈글쭈글한 학창 시절을 필터로 기억 보정해 준 고마운 집이지만 도무지 참지 못할 구조적 결함이 있었다. 대문이 낮아도 너무 낮은 것이다. 160cm 안 된다고 방심하거나 머리 조심 경고를 잊었다간 여지없이 눈앞에서 별을 본다.
어떤 자가 왜 때문에 대문을 그따위로 만들었는지 연유를 알 순 없지만 덤벙대기로 치면 남 부러울 것 없던 나는, 낮고 작은 대문의 단골 희생양이었다. 지치지도 않고 박치기를 당할 때마다 교양과 학식을 총동원해 애꿎은 대문 앞에 험한 말을 쏟아 냈다.
꼴도 보기 싫던 그 대문이 단박에 '최애'로 돌변한 건 '버스맨'을 우리 동네에서 목격한 이후부터이다.
사랑은 버스를 타고
'버스맨'이란 7080 세대의 '인싸 훈남'이다. 중학교 입학과 동시에 남녀공학 사각 지대로 밀려난 불운한 청소년에게 버스는 이성을 만나는 최적의 '핫플'이었다. 아무래도 미팅, 소개팅은 발각될 경우 학사 조치를 각오해야 하는 배짱이 필요해 부담스럽다.
'자만추(자연스러운 만남 추구)' 소녀들에게 버스맨은 교회 오빠와 더불어 첫(짝)사랑의 양대 산맥 정도였다고 봐야 합당하다. 버스에서 만난 썸남을 향해 '저 이번에 내려요' 멘트 던지는 TV 광고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사랑은 버스를 타고 달렸다.
나의 버스맨으로 말하자면, 명문고 교복을 간지 나게 빼입고 나이키 망치 가방을 힙하게 걸쳤으며 한 손을 주머니에 무심하게 툭 찌른 스웩이 서울(?) 남자처럼 영롱하고 고급졌다.
다만 시대 불문 보는 눈은 매한가지고 훈남은 희소가치 높은 재원인지라 그는 만인의 버스맨이었다. 사방에 경쟁자들이 우글거렸다. 음흉했으나 소심했던 난 그의 눈길 한 번 받지 못한 채 전전긍긍했다.
상황이 이 지경이었는데 우연히 하교하는 버스맨 뒤통수를 우리 동네에서 갑자기 '발견'하고야 말았다. 순간 사방에서 벚꽃 잎이 흩날리고 여의도 불꽃놀이 축포가 터지는 듯했다.
버스맨과 같은 동네에 산다는 것은 그와 이른 시일 내에 눈 맞춤이 가능한 교집합의 범주에 속해 있다는 수학적으로 완벽한 계산이었다. 인싸 훈남을 선점할 인프라를 구축했다는 체계적인 전략의 성공이었다.
공손하게 낮은 대문을 열고나서면 '동네 주민'인 버스맨과 마주치면서, 청량미 뿜뿜 매력 발산하면서, 운명의 데스티니 불타는 사랑에 빠지면서...로 시작하는 청춘드라마 여주인공 데뷔 무대가 펼쳐질 것 같았다. 그렇지만 이래 봬도 사실 버스맨이 첫 번째 사랑은 아니다. 사람도 아닌 것과의 지독한 첫사랑은 정작 따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