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반대 단체 및 서울대 트루스포럼 소속 학생들이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지명 철회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남소연
암담했다. 왜 우리를 이해하지 못할까. 그럼 무엇을 해야 했을까. 존재를 반대한다는데 말이다. 그저 웃으면서 '이해합니다, 나중에라도 챙겨주세요'라고 했어야 한 걸까. 수치심과 모멸감을 견디면서? 세상이 갑자기 벽으로 둘러싸인 느낌이었다. 대통령을 지지한다는 사람을 피해 다녔다. 아무 말도 하지 않기도 그렇다고 침묵하며 참기도 힘들어서 그랬다. 그렇게 세상에 갈 곳이 점차 적어졌다.
그리고 얼마 전 기시감을 느꼈다. 조국 법무부 장관이 인사청문회에서 한 발언을 들은 후였다. 조 장관은 그 자리에서 박지원 의원의 질문에 "동성혼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것은 이르며 군대 내 동성애(근무중)는 강한 제재가 필요하다"고 답변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또한 단계적 도입을 주장해 이전의 개혁적인 입장과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그러니까 조국 법무부 장관은 성소수자인 우리는 평등하지 않게 대해도 괜찮고, 유독 '동성애'는 제재가 필요하며(그렇다면 이성애는 괜찮다는 의미인가?), 단계적으로 나중에 차별로부터 보호하겠다고 말했다. 성소수자 단체들은 여기에 반발했지만, 조 장관을 둘러싼 논쟁이 점점 커지면서 이 사실들은 사람들의 관심에서 조용히 사라졌다. 아니 사실 인사청문회 당일에도 온도차는 이미 극명했다.
요즘 성소수자인 친구들을 만나면 학교 동기나 오래 알던 친구들이 모인 단체 메신저 방에서 나왔다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 그러면 대부분은 '너도 그랬어?'라는 반응이 돌아온다. 조국 법무부 장관에게 우호적이든 아니든 그 모든 대화에서 성소수자들이 설 자리는 없다. 서초동과 광화문광장을 양축으로 나라가 갈라졌다는 느낌이 드는 요즘이지만, 나는 어느 곳에도 갈 수 없다. 나는 조국이다? 너희는 다르게 취급받아도 괜찮다는 사람에게 어떻게 이입이나 지지가 가능하겠는가. 그렇다고 성소수자를 아낌없이 혐오하며 세상을 다시 이전으로 돌리고자 하는 보수 정치인들과 목사들이 있는 광화문광장이 우리의 자리겠는가.
슬프게도 서초동 집회에 참여했던 사람 중 현장에 노조와 시민단체의 깃발이 보이지 않아 좋았다는 이들이 있다고 한다. 순수한 시민들의 시위 같아서란다. 그들에게 각양각색의 모든 다른 사람들이 모인 2016년과 2017년의 탄핵 집회는 무엇이었을까. 다른 삶을 살기에 입장도 목소리도 다를 수밖에 없는 이들은 어떤 존재였을까. 그 어떤 광장에도 설 수 없는 우리를 무엇이라 생각했을까.
그럼에도 희망을 버리지 않는 이유

▲퀴어락 홈페이지
퀴어락 캡처
내가 일하는 비온뒤무지개재단은 부설기관으로 한국퀴어아카이브 퀴어락을 두고 있다. '퀴어락'은 한국성적소수자의 역사적, 문화적, 사회적 기록들을 수집 정리하여 오프라인과 온라인상으로 공유, 검색, 열람이 가능하도록 만들기 위해 탄생했다. 또한 퀴어락은 누구나 열람이 가능한 공공 아카이브를 지향한다.
퀴어락은 이미 2009년에 2000여편이 넘는 자료를 보유하고 있었고 지금은 더욱 방대한 자료를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그에 비하면 퀴어락의 공간은 다소 협소한 편이다. 조그만 비온뒤무지개재단의 사무실 한 쪽, 가장 좋은 방에 퀴어락이 위치하고 있다. 아마 사무실이 있는 망원을 오가는 사람 중 한국 성소수자들의 살아있는 역사가 그곳에 있음을 아는 이는 드물 것이다.
아무것도 남기지 않으면 망각이 반복되기에 소수자들에게 기록과 수집은 사실상 의무다. 하지만 한편으로 퀴어락을 바라보면서 양가적인 감정이 들 때도 있다. 성소수자들이 설 자리가 늘었다 줄었다가를 반복하고 결국은 어느 광장에서도 환대 받지 못하는 와중에 이 외딴 공간에 우리의 역사가 쌓여간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결국 우리가 나이가 들고 활동을 멈추면 이 공간과 자료를 찾는 사람들이 있을까. 세상은 우리를 멸시하거나 아예 관심조차 두지 않을 때가 많은데.
하지만 한편으로 퀴어락은 점차 나이를 먹어 올해 10주년을 맞았다. 이를 기념하는 전시도 현재 합정지구에서 진행 중이다. 즉 퀴어락은 사라지 않고 성장하여 이제는 외출까지 된 셈이다.
세상의 풍파와 심란한 일들 사이에서도 누군가는 묵묵히 노동하고 그 결과물은 자기의 자리를 넓히며 걸어 나간다. 편이 나뉜 세상에서 누군가는 설 곳이 사라지고 어떤 존재들은 보이지 않기를 반복한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누군가는 묵묵히 자기의 공간을 찾아 나선다. 세상이 우리를 여기저기 내친다는 느낌 속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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