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4.01 20:42최종 업데이트 24.04.01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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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3월 18일 서울 서초구 농협 하나로마트 양재점 야채 매장에서 대파 등 야채 물가 현장 점검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소상공인, 특히 외식 자영업계는 현재 '역대 최악'이란 표현이 전혀 과하지 않은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신음하고 있다. 매출 저하는 물론, 고임금, 고금리, 그리고 지속적인 물가 상승까지 겹쳐 경영난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의 '대파 한 단 875원' 발언이 논란의 중심에 섰다. 단순한 실언을 넘어 현 정부의 민생에 대한 얕은 인식과 비현실적인 소상공인 지원 정책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정부 정책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음식점 사장들을 대상으로 현 정부 정책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경기도에서 한식 배달전문점을 하는 A씨는 '대파'라는 단어에 허탈한 웃음과 함께 의견을 밝혔다.

"대파 가격을 모를 거라는 건 예상했지만, 이후 수습에 있어서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대통령이 대파 값을 모를 수도 있죠. 실수했으면 인정하고 사과하면 될 일이었는데, 대표적으로 이수정 후보의 '한 뿌리에 875원'이란 해명은 정말 아니라고 봅니다. 이건 우리 자영업자를 비롯한 모든 국민을 정말 우습게 본 거죠.

정부가 현실을 직시하는 정책을 내줬으면 좋겠어요. 제가 배달을 하는데 플랫폼 기업들 수수료 때문에 죽을 맛입니다. 이제 '매출'은 수익성과 그다지 관계없는 상황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매출이 오르면 수익도 올라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아요. 수수료로 다 빠져나가니까요. 이제 음식 배달 플랫폼을 이용한 매출은 자영업자들 사이에 암암리에 가게의 권리금 책정을 위한 도구로 전락했습니다. 정부가 이런 문제를 신속히 파악하고 해결해야지요."


부자 감세만 할 게 아니라 '민생' 위한 진짜 대책 있어야

서울에서 국수 전문점을 하는 B씨는 조금 격앙된 목소리로 의견을 더했다.

"무슨 정책이 있긴 있었나요? 체감하는 정책이 전혀 없어서 모르겠는데요? 당장 전기요금 지원 정책만 봐도 그 기준(월 매출 250만 원)이 말도 안 되는 황당한 정책이었잖아요. 구체적으로 그동안 무슨 정책을 내놨는지 모르겠어요.

가장 화나는 것 중 하나가 우리처럼 건전하게 버티는 자영업자에 대한 정책이 없다는 겁니다. 물론 당장 어려운 자영업자들부터 도와야겠죠. 그런데 우리처럼 이자 또박또박 내며 성실하게 버티는 자영업자도 인건비 인상에 물가 인상에 경기 하락에 따른 매출 하락으로 너무 어려워요. 그런데 이런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한 정책은 없어서 박탈감을 느껴요.

가령 소규모 자영업자 중 아직은 재무 상태가 나쁘지 않은 자영업자까지 무너지지 않도록 간이과세업자 기준을 이전보다 더 확대하는 것도 고려해야죠. 그리고 제 가게가 접객 전문 음식점이었는데 코로나19 때 부득이 배달을 시작해 현재도 하고 있습니다. 이거 해보니까 '배달앱' 수수료 정말 심각합니다. 이것도 정부에서 서둘러 손 봐야 합니다.

지금처럼 계속 대출 정책만 고집하는 것은, 말기 환자 연명 치료에만 집중하느라 그보다 덜 심각한 환자들의 적절한 치료 시기를 놓치는 것과 다를 게 없어 보입니다."


최근 수원에서 고깃집을 개업한 C씨는 자영업계에 몰아친 악재의 대표적 피해자였다. 피자 배달전문점을 하던 그는 코로나 재난 이후 매출 하락과 물가 상승 그리고 플랫폼 수수료의 압박에 눈물을 머금고 작년 말 폐업을 선택했다. C씨는 최근 고민 끝에 배달이 없는 접객전문의 아담한 고깃집을 창업했다.

"대파 가격 875원이 상징하는 건 이런 것이라 봅니다. 정부가 물가를 안정시키겠다고 농산물 납품가 또는 할인 지원을 하잖아요. 뉴스를 보니 그 일환으로 대형마트에서 시행한 '사과 할인'에 '오픈런'이 벌어지고 10분 만에 완판되었다고 합니다. 이게 뭡니까? 이건 모든 국민이 혜택을 보는 게 아니잖아요. 해당 지역만, 심지어 마트에 줄을 선 사람 중에도 일부만 혜택을 보는 거잖아요. 이건 아니죠.

아버지가 농부셨고 지금은 판매를 목적으로 농사를 하진 않지만, 실상은 잘 알죠. 현재 농산물 가격 이렇게 올라도 정작 농부들이 손에 쥐는 건 비슷합니다. 그런데 저 같은 자영업자나 일반 국민은 비싼 값에 살림이 팍팍한 거죠. 이런 걸 손 봐야지요. 유통망을 점검하고 문제가 있는 부분을 개선해야지요. 그리고 농수산물만 오르는 게 아니잖아요. 공공요금을 비롯한 모든 물가가 올랐잖아요. 부자 감세만 할 게 아니라 '민생'을 위한 진짜 대책이 있어야지요."


정부의 진정성에 의구심 갖는 자영업자들
 

농산물 등 체감 물가가 뛰면서 소비자들의 향후 1년 물가 전망에 해당하는 기대인플레이션율이 다섯 달 만에 올랐다. 한국은행이 3월 26일 발표한 '소비자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3월 기대인플레이션율은 전월보다 0.2%p포인트(p) 오른 3.2%를 기록했다. 황희진 한은 통계조사팀장은 기대인플레이션율 반등에 대해 "농산물 등 체감물가가 상승한 것이 가장 큰 요인"이라며 "국제유가 오름세, 하반기 공공요금 인상 가능성도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 연합뉴스


소상공인들은 정부 대책의 현실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실질적인 지원 방안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총선을 목전에 둔 지금, 정부와 여야는 그럴듯한 민생 공약, 특히 코로나19에 이어진 경기 하락으로 최악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각 당은 형형색색의 공약을 흔들며 자신들만이 해결사라 자청하고 있다. 최근 한 언론은 '각 정당의 공약 모두 구체성이 떨어진다'라고 평가했다. 이는 자영업자들의 비판과 맞닿아 있었다.

"대파 가격 모르는 게 문제인가요? 이 촌극의 핵심은 그게 아닙니다. 가맹점주 입장으로 보면 이전 정부 때는 민생을 챙긴다며 점주들을 대상으로 온갖 간담회를 열고 들어주긴 했어요, 그런데 구체적인 실행(법 개정)은 솔직히 별로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칼자루에서 칼을 뽑는 척하며 '어때'라고 폼만 잡았다고 할까요? 그럼 지금 정부는 어떨까요? 아예 뽑는 시늉도 하지 않는다는 거죠. 이게 문제의 핵심인 겁니다."

서울에서 프랜차이즈 카페를 운영하는 D씨는 현 정부뿐 아니라 과거 정부까지 냉소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았다. 그의 비판은 특정 정권을 넘어 정치권 전반에 대한 회의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정치에 대한 강한 불신이 자리 잡고 있었다.

'대파 한 단 875원'으로 촉발된 논란은 단순한 실언 차원을 넘어 우리 경제와 소상공인 지원 정책 전반에 대한 정부의 진정성에 자영업자들이 의구심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다.

이제라도 정부는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실효성 있는 대책을 내놓아야 하지 않을까? 일시적 봉합이 아닌 근본적 처방으로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정부의 적극적인 자세와 과감한 정책적 의지가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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