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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더 이상 회사와 회장님이 존경스럽지 않습니다"

[인터뷰]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라이온켐텍지회 김운성 사무장

등록 2023.12.05 13:44수정 2023.12.05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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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라이온켐텍지회 김운성 사무장 ⓒ 김선재

 
84년생 김운성씨는 세 아이의 아버지이고, 9년 차 직장인이다. 주식회사 라이온켐텍에서 그는 인조 대리석 생산 배합 공정을 맡고 있다.

하루가 시작되면 생산 공정에 출근해서 일을 해야 하지만 요즘 그는 공장으로 향하지 않는다. 대신 회사 정문 앞 천막 농성장에서 일과를 보내고 있다.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라이온켐텍지회가 11월 7일 오전 7시부터 파업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라이온켐텍지회 김운성 사무장은 회사에서 주는 우수사원 포상도 받을 만큼 회사 일에 적극적이었다. 2015년 입사하고 나서 라이온켐텍을 평생 직장으로 생각하고 살았을 만큼 애사심도 높았다. 회사 대표인 박희원 회장을 "존경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에게는 더 이상 회사의 우수사원 포상이 의미가 없다. 이제는 회사도, 회장님도 더 이상 자랑스럽지 않다고 말한다. 오히려 지금처럼 회사가 부끄러울 때가 없었다고 한다. 파업 24일 차를 맞은 지난 11월 30일 라이온켐텍 본사 앞으로 그를 찾아갔다. 무엇이 그를 부끄럽게 만드는지 물어봤다.
            
라이온켐텍은 지역에서 손꼽히는 중견기업이다. 합성 왁스와 인조 대리석 부문에서 세계 4위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1982년 25세의 박희원 회장이 세한화학공업사를 설립한 것이 그 시작이다. 2001년에 라이온켐텍으로 상호를 변경했고, 50년째 박 회장이 기업을 이끌고 있다. 2022년 기준 매출액은 1500억 원에 달하고, 순이익만 86억 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말 기준 현금은 250억 원을 보유하고 있고, 부동산 가치만 1000억 원대, 15년째 흑자 경영을 이어오고 있다.

"대전에서는 라이온켐텍이 '돈깨나 준다, 괜찮다'는 평이 있었거든요. 저는 인천에서 생활하다 내려와서 여기를 잘 몰랐어요. 제가 아무것도 모르고 라이온켐텍에 입사 지원 넣었다고 하니까 친구가 말해주더라고요. '거기 괜찮아. 급여 수준도 높고, 대전에서 그래도 알아주는 중소기업이야.' 이렇게 소개를 해줄 정도로 저희 세대 선후배 친구들에게 소문이 나 있었죠."

회사는 계속해서 성장 가도를 달렸다. 박희원 회장은 대전상공회의소 회장을 역임했고, 회사는 수출 7000만불탑을 수상했다. 고용노동행정발전 부문 고용노동부장관 표창을 수상했고, 국가품질경영상 대통령 표창까지 받았다.

"시급에 포함된 상여금, 주 52시간... 급여가 100만원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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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온켐텍 본사 정문 담벼락에 우수기업 인증 명패가 붙어있다. ⓒ 김선재

 
그런데 어째서인지 노동자들의 처우는 날이 갈수록 열악해졌다. 노동자들의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기본급의 500%였던 상여금이 기본급으로 전환됐고, 상여금이 사라졌다. 이후 최저임금이 가파르게 오르기 시작했다. 다른 회사보다 비교적 넉넉했던 급여는 금세 최저임금과 큰 차이 나지 않게 됐다.


"저희가 다른 회사에 비해 일찍 성과급을 기본급에 녹였습니다. 그게 500%였는데요. 2013년에 이뤄진 걸로 알아요. 그때는 노동조합도 없었고요. 노동자들의 힘이 부족한 시기였어서 그저 '하라면 하는' 시기였어요.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우리가 고충을 겪고 있습니다.

처음에 500% 상여금을 시급에 녹여서 주니까 소정의 급여가 올라간 것 같았어요. 그런데 지난 정부에서 최저시급이 과감하게 인상됐잖아요. 그러다 보니 고참들 사이에서는 '몇 년안에 우리 시급은 최저시급과 동일해진다'는 이야기도 서슴없이 나왔어요. 이윽고 고참들의 이야기가 정말 현실로 이루어지더라고요."


정부는 최저임금을 인상했고, 이후 '최저임금에 산입되지 않던 임금을 최저임금에 산입'하는 기업들이 생겨났다. 대표적인 것이 상여금이었다. 상여금을 폐지하거나 기본급화해서 법의 규제망을 벗어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노동계에서 나왔다.   

9년 차 노동자인 김운성씨의 급여명세표에는 시급이 9860원으로 명시돼 있었다. 2023년 최저시급은 9620원이다. 시급으로 불과 240원 차이. 또한 급여명세표에는 각종 수당이 없었다. 주야 맞교대 12시간 노동을 해도, 세전 월급은 360만 원에 세후 340만 원이 그에게 주어졌다. 아침에 눈 떠서 회사에 나와 12시간 일을 하고, 출퇴근 시간 빼고, 집에서는 밥 먹고 잠만 자는데도 한 달 이자 내고 살기가 버겁다고 했다.
      
라이온켐텍 노동자들을 더욱 궁지로 몰아넣은 것은 '주 52시간제'였다. 정부는 과도한 노동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주 52시간제를 현장에 도입했다. 라이온켐텍은 계도 기간에도 과감하게 52시간 노동을 시행했다. 그러자 현장 노동자들의 급여 명세서에 직격탄이 터졌다.

"정부가 주 52시간 노동을 공포했고, 굳이 계도기간인데도 회사는 이를 시행했어요. 법적인 근거로 시행하니까 우리가 이걸 막을 길은 없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 근로 시간이 제한됐고, 특근이 아예 없어졌죠. 급여가 100만 원이 줄어버렸습니다. 지금도 저임금인데요. 제가 그때는 세후 240만 원을 받았어요. 생활이 안 되는 지경이었습니다. 10만 원도 아까운데 100만 원이라는 돈을 가정에 못 갖다준다고 생각해 보세요. 너무 무책임한 거 아닙니까. 그래서 노조를 설립하게 됐습니다.

노동시간이 감축되는 것은 좋은 일이죠. 그런데 특근이 없어지고, 급여가 100만 원씩 깎이게 되면 '어떻게 임금을 보존할 것인가?' 고민이 생기잖아요. 그때 회사에서 '이러 저러한 운영을 할 거고, 차후 계획은 어떻다. 그러니 다 같이 힘들어도 정부의 정책 시행에 따라주십시오'라고 말했다면 우리도 노동조합 설립을 안 했을 겁니다. 그런데 아무런 사후 대책이 없었습니다.

지금은 52시간 적용이 안 되는 주가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돌아와요. 그러면 저희는 이제 특근을 나가죠. 급여가 적으니까요. 그거라도 해야죠. 울며 겨자 먹기로 특근을 안 할 수는 없습니다."

      
노동자가 느끼는 작업환경의 문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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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 중인 라이온켐텍지회 조합원들 ⓒ 라이온켐텍지회


인조 대리석 생산 공정의 작업 환경과 노동 강도에 대해서 물었다. 주야 12시간씩 교대로 생산공정은 24시간 가동된다. 배합, 성형, 칩, 가공 순으로 공정이 진행되는데, 돌가루 등 여러 재료를 섞어 반죽을 만들고 화학 약품을 넣어 굳히는 순이다.

"배합된 믹스를 계속해서 내려줘야 되기 때문에 짬짬이 알아서 쉬는 게 휴식이에요. 밥은 교대로 먹는데요. 밥 먹고 오자마자 그냥 마스크 쓰고 배합치는 날이 허다합니다. 그래도 우리는 꿋꿋이 참고 일합니다.

작업 현장엔 분진도 많고 화학 약품을 쓰는데요. 어디 한 군데서 트러블이 생기면 분진이 회사 전체를 덮쳐버리고, 폭발 사고도 세 번이 있었습니다. 분진과 화학약품 유증기가 정전기로 인해 폭발이 납니다.

탱크가 크기 때문에 주유소와 비슷하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주유소처럼 유증기가 많이 발생되고, 그로 인해서 호흡 곤란이나 트러블도 많이 생깁니다. 어떤 사람들은 냄새만 맡아도 아토피처럼 피부가 일어나고 닭 껍질처럼 벗겨집니다. 피부병을 앓는 작업자들이 있는데, 병원 가서 약 먹어 가며 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저희가 대기실에 앉아 있으면 회사 관리자가 '논다'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시스템상 12시간을 계속 나가 있을 필요도 없고, 일할 때 빡빡하게 하니까 대기실 와서 안 쉬면 못 버텨요. 그런데 대기실에 있으면 관리자들의 눈엔 우리가 노는 것처럼 보이는 거죠."


그 와중에 CCTV 감시 논란까지 터졌다. 공장 내 안전을 위해 설치된 CCTV가 노동자들의 근태를 감시하기 위해 활용됐다는 의혹이다. 사측 임원이 CCTV로 지켜보고 있다가 노동자의 로스 시간(근무시간에 실제로 일을 하지 않는 시간)을 추궁하는 일이 결정적이었다.

각 임원과 팀장 등 관리자들은 자기 자리에서 CCTV를 들여다볼 수 있다. 노동조합은 CCTV를 보려거든 현장에 있는 컴퓨터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원래의 설치 목적과 다르게 활용되고 있다는 게 조합 측의 입장이다.

"어쩔 수 없이 살아남으려고 천막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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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온켐텍지회 천막농성장 ⓒ 김선재

 

이어서 노동조합의 요구 조건에 대해 물었다. 교섭의 쟁점과 파업에 이르게 된 경위도 궁금했다. 노동조합의 첫 번째 요구 조건은 대단히 의외였다. '민주노조를 인정하라'는 것이 조합의 우선 요구 조건이었다.

"저희의 지금 현 요구사항은 '저희 민주노조를 인정하라'는 겁니다. 저희는 노동조합을 인정받고,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게 제일 큽니다. 솔직히 임금 부분에서 사측과 저희의 주장이 2% 밖에 차이가 안 납니다. 임금협상의 최종 단계에서 사측은 5%, 저희는 7%를 주장하면서 결렬됐습니다. 금액으로 따지면 대략 200원 정도 차이인데요.

임금 교섭 막바지 즈음에 회사는 '더 이상 줄 게 없으니 파업하려면 파업하라'는 입장이었습니다. 우리를 존중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놓고 파업 이야기를 꺼내고 우리를 몰아갔다고 봅니다.

우린 낭떠러지에서 등 떠밀려 어쩔 수 없이 살아남으려고 천막을 친 겁니다. 우리가 뭔가 욕심을 부려서 천막을 친 게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서 친 겁니다. 보통 사업장에서는 자기들이 뭔가 더 쟁취하기 위해 파업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서 나왔습니다. 우리도 처음에는 (파업을) 못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에서는 어쩔 수 없겠더라고요."


라이온켐텍지회는 4년 전 설립됐다. 2020년 지회를 설립하고 교섭을 요청했지만, 곧바로 사무직과 영업직을 중심으로 한 기업 노조가 설립돼 교섭대표노조가 될 수 없었다. 올해 처음으로 교섭대표노조가 됐고, 임금·단체협약을 진행했지만 임금 협상에서 파행에 이르게 됐다.

"우리가 볼 때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게요. 100억을 벌다가 이번에 90억 벌었다고 힘들다 하면, 우리는 어떻게 하라는 얘기예요? 그게 자본가들의 횡포 같아요. 

많은 이익을 창출해 놓고 연말 상여금이 20만 원에 불과한 적도 있습니다. 근속 2년 이상 20만 원, 1년 이상 15만 원, 1년 이하는 5만 원이 끝이었습니다.

한 가지 더 말씀드리면 저희 회장님 충대 겸임교수도 하시고, 대전에서 내로라하는 경제인입니다. 어마어마한 기부도 많이 하시고요. 납세도 꼬박꼬박 잘해서 상도 많이 받으시고요. 정문에는 봉사 우수 기업 상패도 붙어 있습니다. 부와 명예를 다 가지신 분이, 왜 같은 가족이라는 직원들에게는 이렇게 나 몰라라 하시는지..."


인터뷰를 마친 김 사무장은 조합원들과 함께 집회를 열고 행진을 시작했다. "실질임금 쟁취, 부당노동행위 중단, 민주노조 사수!"를 외치는 목소리가 라이온켐텍 공장 주변을 맴돌았다.

그날 저녁 김 사무장은 문자 한 통을 남겼다. 12월 1일 오전 7시부로 사측이 직장폐쇄를 단행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라이온켐텍 노동자들의 노동쟁의가 장기화하고 있다.

김 사무장이 인터뷰에서 이야기한 쟁점들과 관련해 라이온켐텍 측의 입장을 물었다. 라이온켐텍 관계자는 4일 기자에게 "입장을 정리하고 있다"며 "정리가 되면 보도자료를 배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직장폐쇄와 관련해선 라이온켐텍 측은 이날 언론에 '노조의 파업으로 인해 핵심 공정에 차질을 빚어 전체적인 생산이 불가능해 직장폐쇄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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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행진에 나서는 라이온켐텍 조합원들 ⓒ 라이온켐텍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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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 중인 라이온켐텍 지회 조합원들. 파업을 한 달 가까이 이어오고 있다. ⓒ 라이온켐텍지회

#라이온켐텍 #파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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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의 시민활동가입니다. 우리 지역 현장 곳곳을 다니며,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마이크가 필요한 분에게 마이크 드리는 것이 제 역할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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