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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님, 노조 회계 알고 싶다면 조합원이 되십시오

[주장] 노조에 회계장부 공개하라는 윤 대통령의 뻔뻔함

등록 2022.12.29 13:49수정 2022.12.29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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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교실에서 불시에 소지품 검사를 받았던 적이 있다. 정작 내 가방에는 불시검문(?)에 걸릴 만한 물품이 없었지만, 알 수 없는 불쾌함을 느꼈다. 그리고 한참 뒤에야 이런 소지품 검사가 학생의 사생활과 신체의 자유에 대한 제약, 즉 인권침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소지품 검사에 대한 불쾌감은 아마도 학창시절을 보냈던 대부분이 공유하는 경험일 것이다. 아마도 혹시나 내 가방에 들어있을지 모르는 위법적 물품에 대한 의심 때문에, 내 가방 전부를 들춰내고 공개해야 하는 곤혹은 명백히 부당한 조치다.

'내 가방'을 들춰내고 싶다면, 정당한 근거와 사유를 댈 수 있어야 한다. 내 가방에 무엇을 넣고 다니든 그 것은 내 권리다. 교사가 해야 할 일은 그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 지키고 보장하는 방법에 대해 가르치는 것이다.

윤석열 정권의 '부패 노조' 만들기 프로젝트
 
 윤석열 대통령이 2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2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윤석열 정권과 국민의힘이 연일 노동조합을 '부패한 집단'으로 만들기 위해 혈안이 돼 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노동조합 재정운영의 투명성 등 국민이 알아야 할 부분을 정부가 과단성 있게 요구하겠다"(12월 18일)고 말했고,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민주노총은 더 이상 치외법권 지대에 설 수 없다"(12월 20일)고 말했다.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도 "귀족 강성 노조를 몰아내고 진짜 노조만 존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12월 20일)고 말했으며, 하태경 의원은 노조의 회계 감사를 강화하는 내용의 노동조합법 개정안을 12월 20일 대표 발의했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 또한 26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노조 부패방지와 투명성 강화가 우리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고, 노동자 복리 증진에 필수적이다. 이를 반드시 기억하고 개혁에 임해달라"고 당부했단다.

이 짧은 기간에 정부여당이 총력을 다해 노동조합을 공격하고 있다. 이들에 따르면 대한민국 노동조합은 '귀족'들이 모인 '강성' 노조인데다 '부패'하고 '치외법권 지대'에 있는 후안무치한 집단이다.


이 말대로라면 민주노총-한국노총 양대 노동조합의 조합원이 200만 명이 넘는데, 아직까지 나라가 안 뒤집어진 것이 신기할 정도다. 노동조합에 대한 온갖 비난과 날조, 음해로 가득한 표현을 마다하지 않는 것을 보면, 윤석열 정권은 이번 임기 동안에 노동 세력과 결판을 내겠다는 마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문제를 삼을 것이라면 제대로 된 전장을 골랐어야 했다. 노동조합의 재정투명성에 대한 논점은 핀트가 나가도 너무 나가 있기 때문이다. 많은 언론들이 이미 다룬 것처럼, 노동조합의 회계 관련 자료는 지금도 투명하게 접근할 수 있으며, 그 방법과 수단들이 충분히 갖춰져 있다.


한상진 민주노총 대변인에 따르면 "민주노총은 회계 관련 회계감사 선임과 감사 기간 및 보고 등 규정에 따라 연 2회 집중 감사를 하고 모든 예·결산 자료는 대의원대회에 보고해 심의·의결한다"며 "조합원은 해당 노조와 대의원을 통해 언제든 회계자료를 열람하고 받는다"고 한다. 민주노총 조합원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조직이 재정을 어떻게 운용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것이다. 재정이 투명하게 운영돼야 한다는 원칙은 이미 지켜지고 있다.

그럼에도 왜 윤석열 정권과 국민의힘은 노동조합을 불투명한 회계를 운영하는, 무언가 감출 것이 있는, 부패한 집단으로 매도하는 걸까. 괴벨스가 말한 '거짓말도 100번 하면 진실이 된다'는 선전논리를 믿고, 실천하려는 것이 아닐까 의심스럽다.

재정은 누구에게 얼마나 투명해야 하는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지난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전국노동자대회에 참석해 노동개악 저지와 노조법 2,3조 개정, 민영화 중단, 화물노동자 안전운임제 등을 촉구하고 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지난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전국노동자대회에 참석해 노동개악 저지와 노조법 2,3조 개정, 민영화 중단, 화물노동자 안전운임제 등을 촉구하고 있다.유성호
 
일반적으로 어느 조직이든 재정은 투명해야 한다. 특히나 조직의 재원을 마련하는 구성원들에게 재정에 대한 정보접근권은 매우 중요한 권리다. 그렇기에 국민의 세금을 투여하는 공공기관에 대한 감사와 회계에 대한 정보 공유는 국가운영에 필수적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알 수 없는 회계내역이 있다. 국방부와 국정원 예산, 윤석열 대통령이 일했던 검찰에도 특수활동비라는 국민들이 알 수 없는 이른바 '깜깜이 예산'이 있다. 

국가기관의 이런 예산에 대해 투명하게 모든 걸 공개하라는 요구는 현실적으로 성사되기 어려운 측면도 더러 있다. 그간 비공개로 가려져온 돈 씀씀이 현황이 이를 증명한다. 이 국가기관들은 예산 등이 공개될 경우 제 역할을 수행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다른 사례로 기업들이 회계 정보를 공개하는 이유는, 오히려 자신들을 위한 조치다. 자신들이 얼마나 투명하고 적재적소에 재정을 투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기업인지를 증명하면서 투자를 유인하기 때문이다. 투자자의 권리 이전에, 기업들의 이해관계가 달린 문제다.

그렇다면 노동조합의 재정운영은 어떠해야 할까? 기본적으로 노동조합의 활동을 위해 쓰여야 할 텐데, 뿌리 깊은 반노동 국가인 한국 사회에서 노동조합 활동의 절반 이상은 국가와 재벌자본을 대상으로 한 투쟁이다. 윤석열 정권도 이를 알기 때문에, 노동조합을 탄압하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정권에 맞서 투쟁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회계부터 공개하라고 하다니, 참 치졸하고 뻔뻔하다.

윤석열 대통령 본인이 반노동 세계관이 확고한 정치인이라면, 누구의 가치관이 맞는지 정치로, 여론으로 겨루고 심판 받으면 될 일이다. 우리 사회가 보다 평등하고, 다수의 노동자들의 권리가 보장받을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아닌지를 다투면 된다. 회계장부를 들춰보면서 트집이나 잡으려고 하는 태도는 옹졸하다.

국제노동기구(ILO)이 노동조합의 회계와 관련해 국가 등이 과도하게 개입하는 것은 노조의 자주권을 해칠 위험이 있다고 판단한 것까지 이야기할 필요도 없다. 내 가방에 무엇이 들어있는지는 내가 알고 있으면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노동조합의 회계는 윤석열 대통령이 아니라 조합원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하면 된다. 정 알고 싶으면 대통령 임기 마치고, 노동조합 조합원이 되시라.
덧붙이는 글 글쓴이 김창인씨는 청년정의당 대표입니다.
#윤석열 #민주노총 #노조탄압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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