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 약소국들의 증오와 전쟁이 '몸통' 강대국들을 흔들다

[분석] 2020년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의 전쟁에 왜 강대국들이 당황할까

등록 2020.10.13 11:31수정 2020.10.13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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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의 계속되는 증오와 혈전

9월 27일,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간의 전쟁이 시작됐다. 아제르바이잔은 잃어버린 영토를 되찾겠다는 명분으로 아르메니아와 전쟁에 돌입했고, 아르메니아 또한 자국을 방어하기 위해 전쟁에 돌입했다.

누가 먼저 공격했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다. 지난 10일까지 두 나라는 상대 나라에게 과격한 민족주의적 언사를 퍼부으며 상대국가를 멸망시킬 태세로 전쟁을 수행했다. 각 나라는 미디어를 통해 자국의 군인들이 적군을 죽이는 모습을 스포츠 중계를 하듯이 방송했고, 양국의 국민들도 전쟁의 향기에 취해 상대에게 저주를 퍼붓고 있었다. 그러다 러시아의 중재로 모스크바에서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양국이 교전중지에 합의했다. 이 교전중지는 양국의 전쟁의 원인인 영토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합의이기도 했다.

양국의 전쟁의 원인은 나고르노 카라바흐 지역을 둘러싼 몇십 년 간의 갈등에 있다. 소련 시절인 1921년에 나고르노 카라바흐 지역이 아제르바이잔의 자치주으로 편입됐다. 이 지역은 아르메니아계 인구가 다수를 점하는 지역이었고, 소련이 해체되어 가던 1980년대 말 고르바초프가 연방 내 공화국들의 자치권한을 강화하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이 각각 독립하면서 문제가 생기게 됐다. 나고르노 카라바흐 인구의 70% 이상인 아르메니아계가 1991년에 독립을 선언한다. 그리고 소련이 해체된 후 1992년부터 본격적으로 이 지역을 둘러싼 양국의 전쟁이 시작됐다. 독립과 함께 전쟁을 수행하게 된 것이다. '나고르노 카라바흐 전쟁'이라고 불리는 이 전쟁에서 아제르바이잔은 패전한다. 아제르바이잔의 패전으로 이 지역에는 아르차흐 공화국이라는 국가를 건국한다. 물론 현재 아르메니아 말고는 인정받지 못하는 미승인국이다.

아제르바이잔이 아르메니아보다 인구가 더 많고 군대도 많았는데도 패전한 이유는 독립한 지 얼마 안 돼 보병보다 바쿠 지역 산업단지를 지키던 공병이 더 많았고, 미국, 러시아, 이란 같은 외국들이 아르메니아를 지원하면서 고립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렇게 캅카스 지역은 1994년 이후 화약고를 쌓아 올리다 2020년에 터지게 됐다.

미국도 러시아도 당황하게 만든 전쟁


이 전쟁은 당사자가 아닌 나라들에겐 이상한 전쟁이 돼 버렸다. 특히 미국과 러시아에겐 그렇게 보일 듯하다. 미국은 NATO(북대서양 조약기구)의 수장인 나라다. 아르메니아는 2018년 부터 친서방 정권이 들어서면서 NATO와 협력하는 관계로 발전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아제르바이잔은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이후부터 이란을 견제하는 거점으로서 이스라엘과 미국의 지원과 지지를 받고 있었다. 즉 미국의 입장에서는 누군가의 편을 들게 되면 득은 없고 실만 있는 상황이 된다.

문제는 양국이 서로 전쟁을 할 때 NATO 회원들이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아르메니아를 또는 아제르바이잔을 지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제르바이잔은 전쟁 시작부터 터키의 지원을 받았다. 터키의 에르도안 정권은 범투르크주의를 내세우며 중앙아시아로 세력을 넓힐 기회를 노리고 있었고, 아르메니아 대학살을 둘러싼 역사갈등으로 아르메니아와 사이가 극악이었다. 시리아 내전 때 형성된 친 터키 시리아 반군들을 아제르바이잔으로 파병 하는 등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이스라엘 또한 이란을 견제하는 목적으로 오랫동안 아제르바이잔에 공들여 왔고 이번에도 아제르바이잔을 지지하고 있다.


그에 비해 프랑스와 독일 등 유럽국가들은 아르메니아를 지지하고 있다. 특히 프랑스는 아르메니아가 프랑코포니 회원국이기 때문에 더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이 전쟁에 끼어든 나라들 중 상당수가 미국의 동맹세력들이다. 유럽 회원국들은 최근 터키와 여러 이권 및 외교 갈등이 일어나 사이가 극도로 나빠졌다. 그래서 유럽회원국들은 터키의 영향력 차단을 위해서라도 아르메니아 더 힘을 실어주는 상황이다.

문제는 위에도 말했듯이 아제르바이잔에는 바쿠 유전을 포함한 핵심 자원들이 많이 나오고 있고 현재 조지아를 통해서 유럽으로 공급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러시아의 송유관 팽창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입장에서는 매우 골치아픈 상황이 된 것이다.

고민이 깊은 것은 러시아도 마찬가지다. 아르메니아와의 관계가 예전만 못하다 하더라도 아직까지도 아르메니아에는 러시아군이 주둔하고 있고 러시아가 주도하는 집단안보조약기구의 회원국이다. 또한 아제르바이잔과도 지속적인 경제적 교류관계를 맺고 있다. 그러한 상황에서 두 국가가 전쟁을 일으키니 난감하긴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러시아도 동맹국들이 이 전쟁에 끼어들기 시작하면서 더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터키의 침략으로 영토 일부를 점령당한 시리아 또한 아르메니아를 지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로자바 혁명으로 유명한 쿠르드족 중심의 인민수비대 또한 터키에게 지속적으로 탄압 받았기 때문에 아르메니아를 지지하고 있는 상황이며, 아르메니아계 대원들을 파병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남오세티아, 트란스니스트리아 같은 친러 성향의 미승인 독립국들도 아르메니아를 지지하고 있는 상황이며, 세르비아도 아르메니아를 지원하려고 하다가 조지아에 의해 좌절되기도 했다.

거기에 러시아와 암묵적으로 동맹인 친이란 진영도 여기에 끼어들고 있다. 터키에게 심심하면 영토에 폭격 당하고 심지어 쿠르드족을 잡겠다는 명분으로 이라크에 주둔하고 있는 터키군들의 횡포를 당하고 있는 이라크 또한 자국 내 쿠르드족을 지원군으로 아르메니아에 파병하고 있다.

현재 이라크는 친이란 정부가 들어선 상황이다. 이란 또한 자국 내 아제르바이잔계 집단이 독립을 요구하거나 아제르바이잔으로의 통합을 시도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중립인 척 하면서 기독교 국가인 아르메니아를 은연 중 지지하고 있다. 이란 또한 터키의 성장을 꽤나 견제하고 있기도 하다.

이렇게 통제 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 러시아는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 양 국에게 휴전에 합의할 것을 지속적으로 권유하며 10월 10일 합의로 이끌었다. 그러나 양국의 영토갈등을 과연 러시아가 타협시킬 수 있을 것인가? 

시리아 내전에서 연장된 전쟁 : 이 전쟁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이 캅카스 지역의 전쟁의 구도를 쭉 살펴보면 한 가지로 연결이 된다. 터키에게 우호적인가 터키에게 반발하는가. 범서방, 비서방 할 것이 없이 터키에게 크게 데였거나 터키와 갈등 중인 나라는 모두 아르메니아를 지지했고, 터키와 큰 충돌이 없거나 어느정도 협력관계였던 나라들은 아제르바이잔의 손을 들어줬다. 터키와 사이가 좋지 않음에도 아제르바이잔을 지원하는 나라는 이스라엘뿐이다.

시리아는 시리아 내전으로 서방에게 제재를 당하고 내전까지 겪었는데도 불구하고 터키를 견제하기 위해 프랑스, 독일과 아르메니아라는 한 배에 탔다. 터키와 계속 싸우고 있는 쿠르드족들까지 이 대열에 합류했다. 아사드와 반아사드로 시작된 시리아 내전은 이제 친터키 대 반터키로 바뀌었다. 이 구도는 그대로 아르메니아 - 아제르바이잔 전쟁으로 이어졌다. 친터키 반군은 아제르바이잔으로 터키와 싸우던 쿠르드족과 시리아의 소수민족들은 아르메니아로 들어갔다.

터키가 아제르바이잔을 충동질 했던 것인지 전쟁 이후에 지원을 시작했는지는 확실하게 말 할수 없으나 터키의 최근 행보를 보면 아제르바이잔과 어느 정도 주고 받은 것이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다. 이 전쟁은, 어쩌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전쟁이었다.

터키가 시리아를 침략 할 때 NATO와 러시아가 적극적으로 막아섰다면, 터키가 시리아에서 소수민족을 학살할 때 NATO와 러시아가 더 적극적으로 막았다면, 터키가 아제르바이잔에 손을 올리기 전에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모두가 만족할 타협안을 국제사회가 제시 했다면, 이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전쟁이었다.

이익을 위해 눈치만 보던 강대국들은 이제 터키가 만들어 낸 것으로 의심되는 이 전쟁에 발목 잡혀 불확실성이라는 소용돌이로 끌려가고 있다. 세계시민들은 물어야 한다. 이 전쟁은 누구의 책임인가?
#아르메니아 #캅카스 #아제르바이잔 #터키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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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시사, 사회복지 관련 글을 쓰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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