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이후...여러분 계획은 무엇인가요?

등록 2017.03.14 10:06수정 2017.09.29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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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아직도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하셨을 때 받았던 충격이 생각납니다. 그 전까지는 그냥 우리가 괜찮은 지도자를 뽑으면 다 끝나는 줄 알았어요. "그러고 나면 저절로 잘 되겠지"라고 생각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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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과 아이들 내가 좋아하는노무현 대통령과 깨어있는 어린 시민들 ⓒ 김정여


그런데, 그 분이 돌아가신 다음에야 그 어떤 리더에 의해서도 혼자, 아니면 소수의 정치인들에 의해서 참 민주주의의 발전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죠. 그래서 돌아가신 그 분께 참 미안했어요. 외로울 때 함께 해 주기는커녕 속으로 투정하고 비난했구나 하고..

그래서 그 다음부터 하는 생각은 나부터 바뀌어야 하고 나부터 할 수 있는 뭔가를 찾아야 한다는 거였죠. 덴마크 꿈틀 여행을 떠난 것도 그 해답을 찾는 과정의 하나였어요.

드디어 원하던 탄핵이 이루어졌는데, 스무 번째의 촛불이 켜진 어제, 팩트 TV를 통해 광화문 광장의 촛불들을 보면서 혹시나 저처럼 광장에서 외치고 난 후, 일상으로 돌아가면 잊어버리는 게 아닐까? 하는 노파심이 들었어요.

'그게 아닐 거야!'라고 생각하면서도, 이제 드디어 우리 모두가 잘 못 꿴 단추를 풀고, 다시 시작하려는 순간, 나와 같은 풀뿌리들이 해 나갈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를 함께 고민하고 모색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이 글을 씁니다.

이런 생각, 함께 하는 우리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들판에 핀 작은 들꽃 한 송이는 눈에 잘 띄지 않지만, 그런 꽃송이가 잔뜩 모여 있으면 멀리서도 아름답게 보이잖아요. 그런 마음으로 글을 씁니다.                                      _한줌햇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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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청남대 설치 미술 희망을 노래하는 새들, 청남대에 설치되어 있는 미술 작품 ⓒ 김정여


2017년 3월 9일 목요일 아침 7시까지, 이번 주 내내 나자로 마을에서 미사 참여를 하면서, 우리나라의 참 민주주의를 위해, 기도 한 꼭지 올렸다. "탄핵이 되겠지.." 하면서도 꼭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그러나 목욜 저녁 회식 후 집에 와서 남편과 한 잔하는 바람에 금욜 아침 미사는 가질 못했다.

목욜 저녁, 3학년 모의고사가 끝나고 보리밥 집에서 환영식이 열렸다. 30년 넘는 교사 생활, 전입교사 환영식에서 장미꽃 한 송이로 환대를 받기는 처음이다. 가슴에 봄바람이 살랑하고 불어온다.


기타를 치며 바람이 불어오는 곳(김광석 노래)을 부르는 상조회장단들과 마이크가 없어 목청껏 소리치며 즐거운 퀴즈로 마음을 풀어주고자 노력하는 사회자 선생님. 이곳은 내겐 참 축복에 겨운 학교다. 무엇보다 착한 이 곳 아이들, 선생님을 '선생님'으로 받아들여 주는 아이들이 예뻐서 행복한 요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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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 전입교사 환영식에서 받은 장미 ⓒ 김정여

그래서 남편과 한 잔 했다. 보통 한국 사람이 그러하듯이 기분 좋아도 한 잔, 기분 나빠도 한 잔이다. 기분이 참 좋은데, 환영식에서 자동차 때문에 제대로 마실 수 없어서 남편과 더불어 소맥을 한 잔하고 얘기하느라 늦게야 잠이 들었다. 그래서 금욜 아침은 간단히 기도만 하고 나섰다.

학교에서 11시 10분에 3교시 수업이 열렸다. 마침 논술 시간이다. 아이들이 '언제 탄핵 방송하느냐? 고 잠시 볼 수 없냐?'고 해서 준비할 동안에 잠시 보라고 허락했다. 마악, 이정미 재판관이 뭐라고 했는지 모르지만 모니터에 '탄핵인용'이라고 떴다.

나는 "와~" 이러는데 애들은 벙벙한 표정이다. 내가 "얘들아~ 탄했되었단다" 하니까 애들은 작은 소리로 "와~ " 한다. 이곳 애들은 참 다소곳하다. 수업 시간이라는 걸 생각하고 표현에 절제를 할 줄 아는 아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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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 사건 선고에서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판결문을 읽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오늘 논술 수업으로는 '올버스의 역설(Olbers' paradox)'을 가지고 개요(SYNOPSIS) 만들기를 했다. 즉 써놓은 글을 가지고 글쓴이가 이 글을 쓸 때, 일관되게 잘 작성하기 위하여 어떻게 줄기(개요)를 잡았는지를 추정해서 모둠별로 골라내고 골라낸 개요를 교사인 내게 설명한다. 그런 다음 그걸 가지고 나무를 그려서, 어느 것이 줄기이고 어느 것이 가지인지를 생각해본 후 완성된 그림을 가지고 다시 하나의 글로 만들어보는 것이었다.

무슨 틀이 있어서가 아니라 어렵지 않게 아이들에게 글을 쓸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해서 적용한 것이다. 생명과학 교사인 내가 짧은 시간 내에 애들에게 논술을 얼마나 잘 가르쳐줄 수 있으랴? 거기에만 골몰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니까, 내 딴에 할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을 구해보는 것이다.

그럼에도 혁신학교라 모둠 수업으로 다져져서 그런가 학생들은 잘 토론하고 교사가 지도하는 대로 잘 따라온다. 보면서 뿌듯하고 행복하다.

오늘 저녁에 서울로 올라가면 좋으련만. 오늘은 6시까지 안양 중앙 성당으로 가야 한다. 그 곳에서 수녀님을 만나기로 했다. 꼭 오늘 오라고 한 건 아니지만, 담 주부터는 더 바빠서, 새미랑 시간 맞추기가 더 어렵기 때문이다. 부리나케 집으로 와서 아이를 데리고 차를 몰고 안양시장 앞에 있는 중앙 성당으로 갔다.

안양시장으로 가는 길은 정말 혼잡하다. 나는 다혈질이라 누가 내 앞에 불쑥 끼어들기 하는 것을 참아주지 못한다. 특히 시간이 늦어진다고 생각하면 예민해져서 화를 내게 된다. 결국 오늘도 차 안에서 밍기적 대며 가는 차를 참고 있었는데, 그 차가 빠지는 순간, 내 앞으로 끼어드는 봉고(내게 있어서 승합차는 모두 봉고이다)를 보면서 화를 내고 말았다.

그 순간, 속으로 자괴감이 들어찼다. '아, 이러면서 무슨 봉사를 한다고!' 더불어 내 말 듣고 '가슴이 움찔할 내 딸아이'에게 미안했다. 그러나 어쩌랴 아직도 극복하지 못한 성질인걸. 실망하지 말자고 스스로 다잡았다. 그래도 교통 상황은 어찌 술술 잘 풀려서 6시 훨씬 전에 중앙 성당 앞에 있는 '안양 엠마우스' 1층으로 찾아갔다.

앞으로 적어도 여름 방학까지 1학기 동안 새미는 초등 3년인 철이와 초등 1년인 규에게 영어를, 나는 휘와 인(초6, 중2년) 형제에게 과학을 가르쳐주기로 했다. 이 아이들은 베트남 여성과 한국인 남성 사이에서 태어난 다문화 가정 자녀들이다.

경쟁적인 우리나라의 상황은 자기 혼자 살기 바쁘기에 나보다 이곳에 적응하기 더 어려운 내 이웃을 살펴볼 겨를이 없다. 좀 심한 사람들은 말이 어눌한 그들에 대한 편견마저 강해서 우습게 깔보기도 한다. 나는 그런 게 가슴이 아프다. 우리 아버지가 내가 어렸을 적에 일본으로 밀항해서 노동자가 되었기에. 내가 겪어보지 못했지만, 나는 우리나라에 온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연민의 마음이 먼저 든다.

게다가 내가 어렸을 적에 나를 사랑해주셨던 파란 눈의 신부님.. 워낙 어렸을 다섯 살 기억이라 아무 것도 생각나진 않지만, 그분이 나를 얼마나 사랑해주셨는지 그 느낌은 그대로 남아서 나 또한 나와 상황이 다른 그들을 품고 싶다. 정말로 '사랑'만이 제대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마음이 좁아 제대로 사랑하지는 못하지만 말이다.

수녀님과 잠시 만나 서로 얘기하고, 우리가 만날 아이들에 대해 얘기를 듣고 봉사 시간 정하고.. 새미와 나는 오늘 뭔가 보람 있는 일을, 애써 찾아 했다는 뿌듯함과 감사한 마음에 행복했다.

학교 수업을 마치자마자 막 집으로 와서 후다닥 차에 올랐던 터라 아이는 배고프다고 내 손을 이끌고 막 중앙시장으로 간다. 우리 둘이는 기분 좋게 시장에 들어섰다. 새미는 첨에 닭 강정에 군침을 흘렸으나 줄 서있는 걸 보고 이내 포기하고는 그 옆에 있는 호떡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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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 학교 샘이 오늘 발견하고 찍어 보낸 따끈따끈한 사진, 노루귀꽃 병목 안에서 막 발견한 봄 꽃, 노루귀 ⓒ 최유리

호떡을 파는 아주머니 머리 위에는 음료 간판이 붙어 있었나 보다. 나는 무심히 넘겼는데 새미가 한마디 한다. "엄마, 난 이런 간판이 참 좋아." 올려다보니 '난 차가 좋더라 : 아이스, 핫 이런 영어가 아닌 달콤한 커피, 상큼한 차 뭐 이런 식의 순 한글로 표시된 정감이 가는' 메뉴 판이다.

나도 덩달아 좋다고 칭찬을 하는데, 아주머니가 한 마디 응수한다. 뒤에 있는 자기 아들이 썼다고. 회사에 다니다 아이디어를 얻으려고 일단 엄마 옆에서 '장사'라는 것을 배우는 젊은이였다. 아직은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것을 보니 어렵사리 용기를 내긴 했는데 수줍은가 보다.

어찌됐든 우리가 칭찬하니까 앉아서 구글링을 하다가 일어서서 인사를 한다. 나이 든 내가 젊은 날 살아왔던 우리 사회의 모습과 달라지고 있는 상황을 단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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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춘화 울 학교 샘으로부터 카톡으로 받은 사진, 영춘화 ⓒ 김민수

대학을 졸업하고 시장에서 커피 팔기부터 시작하는 일! 앞으로 벌어질 4차 산업 혁명에 따라 바뀔 직업의 변화가 보이는 상황이다. 그에 따라 닫혀가는 직업의 문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를 적극적으로 찾아나서는 몸부림. 사실 우린 이런 몸부림 속에서 새로이 찾아나서야 한다. 새로이 찾으려면, 몸부림을 쳐보지 않고 가능할까?
  
새미는 치즈 호떡을 나는 씨앗 호떡을 사고 앞 좌판에 앉은 할머니에게선 냉이며 방풍 나물을 사들고 남편을 위해선 고추 부각(찹쌀 풀 묻혀 찐 후 말린 고추 튀김)을 사들고 집으로 왔다.

자, 이제 새로운 시작이다. 남들은 탄핵 축제를 즐기고 있는 지금, 나는 새로운 시작을 하련다. 희망을 심는 노력을.. 그래서 기쁘고 감사하다.
#KIMJY #탄핵축제 #새로운시작 #희망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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