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 될 것"

[화제의 인물] 미디어 몹 '헤딩라인 뉴스' 앵커 이명선씨

등록 2004.04.05 04:31수정 2004.04.06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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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미디어 몹 2층 사무실은 옆 건물의 지붕과 연결되어 있다. 봄 내음 물신 풍기는 4월 3일 미디어 몹 ‘헤딩라인 뉴스’ 앵커 이명선씨와 지붕 위에서 인터뷰를 했다

미디어 몹 2층 사무실은 옆 건물의 지붕과 연결되어 있다. 봄 내음 물신 풍기는 4월 3일 미디어 몹 ‘헤딩라인 뉴스’ 앵커 이명선씨와 지붕 위에서 인터뷰를 했다 ⓒ 김진석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 엘리어트의 시구처럼 4월은 누군가에게 참으로 잔인한 달이 될 것입니다. 참 고소합니다"

탄핵정국이 또 한 명의 스타를 만들었다. 한 앵커의 정확한 발음에 실린 패러디 뉴스가 네티즌들에게 화제를 뿌리고 있다. 인터넷 패러디 뉴스 앵커, 모바일 뉴스 앵커, 혹은 뉴스 자키(NJ). 모든 타이틀 앞에 '최초'가 붙는 앵커 이명선씨(27)는 요즘 고속철보다 더 빨리(?) 치솟는 인기에 당황스런 웃음을 금치 못한다.

지난 3월 2일 네티즌이 직접 편집권을 갖는 새로운 블러그미디어 '미디어몹'(www.mediamob.co.kr)이 탄생했다. 불과 한 달 사이에 미디어몹은 이명선씨가 진행하는 '시사패러디 헤딩라인뉴스'로 인터넷 전국구 스타가 됐다.

고속철보다 더 빠르게 치솟는 인기

오픈한 지 한 달이 되는 4월 2일. 광흥창 역 근방에 위치한 아담한 스튜디오엔 5일자 '헤딩라인 뉴스' 녹화가 한창이었다. 방영 시간은 5분 가량에 불과하지만, 헤딩라인 뉴스는 네티즌들의 가려운 곳을 정확히 긁어주며 그들의 메시지를 짧고 굵게 전달한다.

5분 가량의 방송을 만들기 위해 대략 소요되는 시간은 하루 정도. 뉴스를 전달하는 앵커 이명선씨 못지않게 뒤에서 대본을 만들고 시스템을 제작하는 이들의 공 또한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제작팀이 가장 엄격히 심사하는 건 '대본'이다. 대본 작가 외 팀원들 모두가 대본을 검토하며 각자 아이디어를 내고 더 재미난 뉴스를 만들기 위해 골몰한다. 그 중엔 이명선씨도 예외가 아니다.


"다음은 스포츠 소식입니다. 먼저 월드컵 당시 한국에 패한 이태리와 스페인은 살다살다 몰디브까지 걱정해야 하느냐고 투덜댔고 ... 또 중국은 공한증을 뛰어넘는 공몰증 공포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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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똑 떨어지는 발음이 스튜디오를 장악한다. 이씨의 대본 심사 방법은 뉴스 낭독이다. 그는 '말'과 '글'이 사뭇 다르다며 재미있는 글이 정말 재미있는 말로 표현되는지를 확인한다. 띄어 읽어야 할 곳을 일일이 체크하며 진지하게 '재미있는 뉴스'를 전하는 이씨의 모습에 귀가(?) 의심스럽다.


오히려 '뉴스'보다 눈 하나 깜짝 않고 정자세로 패러디 뉴스를 전하는 그의 천연덕스러움에 웃음이 새어나온다. 앵커의 꿈을 가지고 방송 아카데미를 거쳐 케이블방송 리포터, 대기업 사내 방송 아나운서 등을 한 이씨는 <딴지일보>의 오바라인 뉴스로 네티즌과 연을 맺었다.

그 후 이 씨는 국민일보 NJ로 활동하며 최초로 매체융합형 온라인 토론회(포털사이트, 모바일, 일간지, 위성방송) '병렬아, 놀아줘∼', '근태야,근데∼', '러포트 주한미군 사령관과 네티즌이 만난 용산 기지 습격사건' 등을 진행하며 내공을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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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재미있는 뉴스를 만들기 위해 골몰

"저 장난 하는 거 아니에요. 정말 열심히 진지하게 하는데 사람들이 웃네요.(웃음) 처음 방송을 시작할 때는 부모님이 걱정을 많이 하셨어요. 아무래도 연세가 있으시고 하니깐, 방송을 봐도 잘 이해를 못하시고 '꼭 그래야만 했냐?'고 물어오시곤 했죠. 하지만 이젠 부모님이 저희 방송을 이해하고 또 그간 세상을 보는 시각도 서로 달랐는데 어느새 부모님과 만나는 접함점이 생겼어요."

다른 세계관으로 대립하던 사람들이 이씨가 전하는 뉴스로 인해 서로 이해하게 되는 것, 바로 그가 느끼는 보람 중 하나이다. 이어 이씨는 인터넷 뉴스의 앵커임에 자부심을 표한다.

그는 인터넷이 공중파 방송의 종속 매체가 아닌, 다른 개성을 지닌 '대등한' 매체라며 현 시점이 나름의 문화를 형성해나가기 위한 자정 과정이라고 단언했다.

"쪽팔림에 대책을 요구하는 네티즌들의 항의에 가수 김흥국씨는 '지금 축구협회랑 회장님 선거 운동하느라 바쁘니 말시키지 마'라고 승질 부렸습니다."

"여기서 승질 앞에 '아싸'할까요? 아니야, '아흐'가 낫겠다!"

이씨는 기존 앵커와 달리 망가지기를 자처(?)한다. 이도 표현의 다양성이 허용된 인터넷 때문에 가능했으리라. 그의 제안에 즉석에서 제작진들은 가수 김흥국이 유행시킨 말들과 관련 추억을 한 마디씩 거들며 또 새로운 아이디어를 모은다.

기존 앵커와 달리 망가지기(?)를 자처

이씨의 표현에 의하면 모든 제작진이 '스펀지' 같다고 한다. 제작진들이 서로 의견을 내는 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고 또 그 와중에 새로운 아이디어가 탄생한다는 게 그의 변이다.

스튜디오엔 방송용의 삼분의 일도 채 안 되는 방송용 조명 8개, 디지털 카메라 한 대, 빨대와 스티로폼으로 만든 가장 싸고 정확한(?) 민심 동향 야바위 게임기가 전부이다.

그러나 더 재미있는 뉴스를 전하기 위한 제작진들의 열기는 어느 방송 녹화 현장 못지 않다. 본업 외 한 가지씩 재주를 가진 이들은 어느 새 이승엽이 되고 또 배칠수가 돼 스튜디오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킨다. 덕분에 5일자 '헤딩라인 뉴스'는 이승엽 선수가 4월 15일 투표를 하러 오겠다는 특종(?)까지 보도했다.

a 녹화 10분전 리허설이 한창이다. 최내현 편집장을 비롯한 작가, 피디, 앵커등 마지막 대본을 점검하고 있다.

녹화 10분전 리허설이 한창이다. 최내현 편집장을 비롯한 작가, 피디, 앵커등 마지막 대본을 점검하고 있다. ⓒ 김진석


"숨소리 조심하고. 스탠바이 둘 하나 큐!"
"미디어 몹 패러디뉴스입니다."

피디의 신호가 떨어지자 순간 스튜디오엔 정적이 감돌았다. 조명이 다 켜진 환한 스튜디오엔 이씨의 청량한 목소리와 카메라 돌아가는 소리가 조화를 이루며 긴장감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이승엽 선수와 극비 전화연결, 김흥국 씨의 액션을 거쳐 배칠수 버전의 공익광고까지 대략 40여분에 걸쳐 녹화가 무사히 마감됐다. 하지만 이씨 자신이 매기는 방송 점수는 그리 높지 못하다.

오늘 방송에 60점을 준 이씨는 매회 할 때마다 부족한 것들을 발견하고 채워나간다며 아직 '이명선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선 멀었노라 자평했다.

"손석희 아나운서하면 그만의 시각과 뉴스가 있듯 저 또한 이명선만의 시각이 담긴 뉴스를 전하고 싶어요. 기존의 경직되고 거리감 있는 뉴스가 아닌, 편하고 쉽고 재미있는 '이명선 브랜드' 뉴스를 만들고 싶어요. 단순히 기계적 뉴스 브리핑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시청자들과 공감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끌어내고 싶습니다."

매회 할 때마다 부족한 점 발견

다음 팬 카페 3개, 네이버 팬 카페 1개를 거느리는 등 무섭게 팬을 확보하고 있는 이씨의 브랜드 만들기가 미디어몹에 닻을 올렸다. 그는 '적당한 편파'를 지향하는 미디어몹과 항해하며 눈에 보이지 않는 이면의 다른 사실들을 '이명선 브랜드'에 맞게 전할 것이라 다짐한다.

앵커를 꿈꿨던 대학 초년 시절. 이씨에게도 막연히 공중파 방송을 선망하며 죽어라 언론고시를 준비했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그런 그가 이젠 개인도 곧 공중파 못지 않은 미디어가 될 수 있다고 당당히 전한다.

이씨가 언론인을 꿈꾸는 많은 후배들에게 당부한다. 기존의 세상이 보여준 언론과 길이 전부가 아니라며 나름의 세계관으로 자신만의 목소리를 길러낼 수 있어야 한다고.

"인터넷 시사패러디 '헤딩라인뉴스' 최초로 공중파(KBS)에 진출!"

▲ 미디어 몹 최내현 편집장
ⓒ2004 김진석
미디어몹은 딴지일보 출신들이 주축으로 만든 블러그 미디어이다. 미디어몹 최내현 편집장은 "네티즌들의 수준은 높아 가는 데 비해, 중앙에서 언론이 일방적으로 네티즌에게 전달해주는 방식에 한계를 느껴 직접 네티즌 개인이 미디어가 될 수 있는 언론을 만들고 싶었다" 며 "네티즌의 기사가 현 미디어몹 사이트 왼쪽 중심에 배치되는 것이 바로 그러한 정신을 반영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디어몹이 갑자기 네티즌들의 호응을 얻는 것에 대해 "기쁘지만, 아직 시작 단계라 높은 기대에 호응하지 못할까 걱정스럽기도 하다"며 "남들이 보기엔 장난하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인터넷 업계의 최고이자 최장수 미디어가 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또 최씨는 "딴지일보의 장점인 문화적 마인드는 유지하되, 편집권을 독자에게 넘겨 미디어의 형태를 바꾸고 다른 매체와 교류를 위해 범용성을 넓히는 차별전략을 펼칠 것"이라 귀띔했다.

미디어몹은 수익성을 올리기 위해 현재 모바일 서비스(SKT, KTF) 제공에 이어 KBS와 교류를 시작했다. 특히, 패러디를 한 일반 네티즌들이 선거법 위반으로 체포돼 논란을 빚는 가운데, 최초로 시사패러디'헤딩라인 뉴스'가 공중파(KBS 2TV 시사투나잇)에 방영돼 적잖은 반향이 일고 있다.

KBS 시사투나잇 정찬필 피디는 "그간 공중파가 군사독재와 권위주의 정권 시대를 거치면서 제대로 표현하고 싶었던 것을 못했으며, 특히 정치권에 있어선 더욱 그랬다"며 "공중파가 가진 한계를 벗어나 표현의 다양성을 실현하기 위한 새로운 시도의 일환으로 인터넷 방송을 상영했다"고 말했다.

정씨는 "미디어몹의 헤딩라인 뉴스가 '가장 유연한 틀에 하드코어적 시사를 담겠다'는 프로그램 기획과 맞아 떨어졌다"며 "방송후 심의에서 지적이 있지 않을까 지켜보고 있는데 아직까지 별다른 지적이 없어 새로운 시도 자체를 좋게 보고 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주 1회만 하다보니 시청자들이 당황스러워하는 것 같아 방송을 매회 고정 코너로 정착시킬 것"이라며 "이제 두 번 방송이 나갔는데 부정적으로 보는 시청자들도 있는 것으로 안다, 하지만 더 신중하게 지켜보면 우리의 의지를 알게 될 것"이라고 헤딩라인 뉴스에 자신감을 표했다.

한편, 최씨는 "방송용이라고 일부러 비판의 수위를 낮추지는 않을 것"이며 시기가 민감한 만큼 선거법에 접촉되지 않게 할 말을 담아낼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법이 개인 누구나가 언론의 생산자가 될 수 있다는 시대의 흐름을 따라오지 못하는 것" 같다며 "언론과 언론의 소비자(네티즌)로 나누는 이분법적 사고를 인터넷에 적용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 김은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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