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대구의 세렝게티 팔현습지... 숨이 막혔다

팔현습지 새벽 생태조사에서 만난 야생의 흔적들... 이곳에 삽질이 불가한 이유

등록 2024.05.26 18:47수정 2024.05.26 18:47
4
원고료로 응원
  
a

대구의 세렝게티 팔현습지의 모습.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지난 25일 새벽 5시 반 길을 나섰다. 행선지는 금호강 팔현습지. 해가 뜨기도 전에 팔현습지로 향한 건 그곳에 살고 있는 야생의 친구들을 하나라도 더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니 만나지 못하더라도 야생의 소리를 직접 듣고 그 기운을 고스란히 느끼기 위해서다.

새벽 6시 팔현습지 초입에 도착해서 가슴장화를 챙겨 입고 습지로 들었다. 새벽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와 제법 쌀쌀하다. 강촌햇살교란 잠수교를 건너 팔현습지로 가 금호강으로 들어갔다.

새벽 팔현습지 생태조사에서 만난 야생의 흔적들

들어서자마 생명의 몸짓을 만나게 된다. 어른 팔뚝만한 잉어들이 낯선 이방인의 발걸음에 놀라 푸드덕푸드덕 거리며 달아난다. 그 소리가 그렇게 클 수가 없다. 내가 화들짝 놀라게 된다. 초입부터 야생의 환영인지 경고인지 모를 세레모니를 받았다. 그러나 야생의 인사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100여 미터나 떨어진 저 멀리서 오리새끼들이 낯선 이방인을 보고는 벌써부터 난리법석이다.
 
a

잉어의 꼬리짓. 어찌나 소리가 큰지 화들짝 놀라게 된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a

흰뺨검둥오리 새끼들이 일렬종대로 재바르게 달아난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제법 자란 흰뺨검둥오리 새끼들이 어미 곁으로 손살같이 달아나는데 그 모양새가 너무 웃기다. 달아날 때도 일렬종대로 달아나니 말이다. 일렬종대로 좌우로 왔다갔다 하더니 풀숲으로 이내 사라진다.

오리 새끼들의 환영인사를 받으면서 물살을 거슬러 상류로 올라갔다. 그러자 풀숲으로 뭔가가 휙 달아난다. 수달이었다. 호기심 짱인 수달이 어째 사람 구경하지 않고 달아날까 생각해보니 그곳은 물속이 아니었다. 물속에서야 자유자재로 움직임이 재빠르지만 육지에서는 그러질 못하니 우선 몸부터 숨기고 보는 것이리라.

수달이 달아난 풀숲에서 시선을 돌리자 이번엔 저 멀리서 흰목물떼새 한 마리가 특유의 울음을 운다. 소리가 나는 쪽을 보니까 아니나 다를까 자갈밭이다. 자갈밭에서 운다는 건 녀석의 둥지가 있을 수 있다는 거다. 그곳은 강 한가운데 있는 작은 섬이다.

다행히 금호강은 깊지 않고 이곳은 바닥이 청석으로 된 곳이라 강가운데까지 낮은 수위를 유지한다. 깊어도 허벅지 정도까지 수위가 오를 뿐 더 이상 깊지 않아서 가슴장화를 입으면 충분히 도강이 가능한 곳이 금호강이다.
 
a

강가운데 작은 자갈섬. 뒷쪽도 모두 자갈밭이다. 이곳에서 흰목물떼새가 울고 있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a

흰목물떼새 두 마리가 앉았다가 필자가 다가가자 휙 달아난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흰목물떼새 앉은 자갈밭이 가까워 오자 보니 두 마리다. 두 녀석이 휙 달아난다. 달아나는 녀석들을 보면서 인간이 얼마나 나쁜 짓을 많이 했으면 저들을 우리를 보자마자 저렇게 달아날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른 야생동물들은 종이 다른데도 잘만 어울리는데 말이다.


가령 오리와 고라니는 덩치와 종이 완전히 다른데도 잘 어울려 노는 장면을 종종 본다. 저들은 서로 소통이 되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우리 인간은 왜 저들에게 배척당한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니들 해칠 생각이 조금도 없으니 달아나지 말고 그냥 옆에만 좀 있어주면 되지 않겠니" 해보지만 매번 휑하니 달아나고 빈 공터에 덩그러니 남은 나를 쓸쓸히 보게 된다.

야생과 우리는 더 이상 가까워질 수 없는 것일까? 인간의 잘못이 정말 크구나 새삼 반성을 하게 된다. 반성하면서 흰목물떼새 둥지를 찾았지만 제법 넓은 자갈밭인데도 불구하고 둥지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벌써 산란이 끝난 것으로 보인다.
 
a

팔현습지의 여울. 맑은 강물이 세차게 흘러간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a

어른 손바닥보다 큰 말조개가 지천으로 널렸다. 저서생물이 많다는 건 강 생태계가 건강하다는 징표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다시 물길을 거슬러 올라간다. 저 위에서 물이 세차게 흐른다. 바로 여울이다. 어찌나 세차게 흘러가는지 다리에 가해지는 압력이 장난이 아니다. 그러나 강물은 정말 맑다. 그 맑은 강물의 힘찬 약동이 경쾌함과 동시에 어떤 활력마저 안겨준다. 경쾌한 리듬에 맞춰 올라가자 이번에 강바닥에 어른 손바닥만한 조개가 박혀 있다.


대칭이라 부르는 말조개다. 하나둘이 아니다. 이곳에도 저곳에도 말조개가 지천으로 널렸다. 뭍에는 패각도 엄청 많다. 물이 빠지면서 그대로 말라죽은 개체들이 상당한 것이다. 조개의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현장이다.
   
a

고라니의 척추뼈가 고스란히 걸려 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눈을 돌리자 말조개 패각이 널려 있는 곳의 버드나뭇 가지에는 고라니 뼈가 걸려 있다. 고라니가 삵에게 당했을까? 아니면 이곳 팔현습지에 출몰하는 담비에게 당했을까? 하여간 두개골은 바닥에 박혔고 척추뼈는 나뭇가지에 형태를 잘 유지한 채 걸려 있다. 인근에서 누군가에게 당한 녀석의 뼈가 불어난 강물에 휩쓸려 나뭇가지에 걸린 것으로 보인다. 그러고 보니 그 옆에 삵의 배설물이 보인다.
  
죽은 고라니의 명복을 빌고 이번에는 뭍으로 올라섰다. 버드나무가 자라고 달뿌리풀이 너무 우거진 완전한 하천숲의 형태를 띈 곳을 넘어서자 또다시 물길이 나타난다. 물길은 상류로 길게 이어져 있다. 그런데 저 앞에 원앙이 보인다. 이내 새끼들도 나타난다. 원앙 부부가 새끼들 육아라도 하는지 함께 종종 걸음친다.

"기다려" 속으로 외쳐보지만 이내 녀석들도 풀숲으로 사라진다. 녀석들이 사라진 곳으로 올라가니 물길이 막혔다. 이곳은 비로 불어난 물이 빠지면서 긴 호수가 된 곳이다. 그런 까닭에 물 흐름이 전혀 없는 고요한 곳이다. 새끼들 육아하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리라. 원앙 가족이 이곳에 왜 있는지가 알 것만도 같았다.
 
a

원앙 부부의 모습.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a

제법 자란 원앙 새끼들이 일렬 종대로 이동한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대구의 세렝게티 팔현습지

그때 벌 한 마리가 물에 빠져 녀석이 날개짓을 할 때마다 큰 동심원이 만들어진다. 동심원은 마치 나이테마냥 테두리를 만들어낸다. 멋진 문양이다. 문득 나비의 날갯짓 한 번이 태풍을 불러온다는 이야기가 허투루 들리지 않는 광경이었다.

녀석이 만들어내는 기하학적 문양을 계속 감상하고 싶었지만 그대로 기진맥진해 삶을 마감할 수 있을 거 같아서 물에서 건져서 땅에 놓아뒀다. 벌이 귀한 세상이고 보니 참 잘했다 싶다.
 
a

물에 빠진 벌 한 마리가 이런 기하학적 무늬를 만들어낸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벌과 작별하고 이젠 육상으로 올라서서 상류로 올라간다. 습지는 이렇듯 물도 있고 육상도 있다. 그러나 육상은 이맘때는 나무와 풀이 우거져 이동이 용이하지 않다. 이럴 때는 고라니가 낸 길을 찾아야 한다. 어른 키보다 훌쩍 자란 수풀 사이로 동굴 같은 길이 나타난다. 바로 고라니들의 이동통로다. 그곳을 통해 상류로 이동할 수 있었다.

수풀을 헤치고 나오자 다시 넓은 자갈밭이 나타난다. 또다시 흰목물떼새가 나타난다. 마치 "이곳은 내 영토이니 들어오지 마시오" 하는 것 같다. "그래 미안해" 하고는 다시 알집을 찾아봤지만 이곳도 허탕이다. 벌써 다 산란을 마친 것이리라.

자갈밭이 끝나는 곳엔 다시 수풀이 나타나고 그 너머엔 다시 금호강 본류다. 강 건너는 원앙 100여 마리들이 떼로 살았던 곳이다. 그런데 하나도 보이질 않는다. 아마도 각 가족별로 뿔뿔이 흩어져 한참 육아에 전념하고 있는 거 같다. 아까 봤던 그 원앙 가족처럼.
 
a

수달의 굴. 주변에 수달의 흔적이 보인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원앙은 없었지만 그러나 놀라운 발견을 했다. 바로 수달의 굴이다. 아니 정확히는 굴로 보이는 공간이다. 그래서 주변을 좀더 살폈다. 그랬더니 수달 발자국과 배설물이 나온다. 역시 수달 굴이 맞았다. 그런데 수달은 아직 귀가 전이었다. 그래서 요리 보고 조리 보고 주변도 더 샅샅이 살폈다.

이곳은 나무가 쓰러지면서 뿌리가 굴이 된 형태로 오래도록 사용한 굴 같지는 않아 보였다. 지난해 여름 쓰러진 나무일 것이니 그리 오래된 집은 아닌 것이다. 그래서 흔적이 많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굴은 확실해 보였다.
   
마침 나무가 그늘도 만들어줘 그 자리에 앉아서 한참을 수달을 기다렸지만 끝내 수달은 돌아오지 않았다. 마냥 기다릴 수는 없어서 자리를 떴다. 이제는 돌아갈 시간이기에. 마침 저 멀리 제방 확장공사 현장이 보인다. 그리로 길을 잡아 다시 도강을 시도했다.

여울을 지나니 강이 점점 깊어져 온다. 허벅지를 지나 허리춤까지 물이 차오른다. 더이상은 무리다 싶어서 다시 여울 쪽으로 가서 결국 강을 건넜다. 다시 어른 키보다 더 큰 풀숲을 지나 기어이 공사 현장으로 다가갔다.

국가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해야 할 공간에 웬 '삽질'

포크레인이 제방 아래 호안 정비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이질적이었다. 생명이 약동하는 습지에 거대한 기계라니 그것도 흙을 까뒤집으면서 작업하는 모습이 너무나 낯설었다. 제방 확장공사는 '금호강 고모지구 하천정비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공사다.
 
a

강 건너 제방공사 현장까지 다가갔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a

대구의 세렝게티에 포크레인이라니!!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이 제방공사가 모두 끝이 나면 팔현습지의 핵심 생태 공간인 무제부 산지 앞으로 높이 8미터 길이 1.5킬로미터에 이르는 보도교라는 탐방로 공사가 시작될 것이다. 이 보도교 공사는 멸종위기종들의 '숨은 서식처'인 하식애 앞에서 이루어지는 공사다. 그 공사로 인해서 얼마나 많은 멸종위기종들이 그곳을 떠나게 될 것인가? 또 공사가 완공돼 사람들이 밤낮 걷거나 자전거를 타게 된다면 그곳에선 또 얼마나 많은 야생동물들이 떠나게 될 것인가? 이곳의 생물다양성은 끝이 나는 것이다.

멸종위기종들의 '숨은 서식처' 기능을 더 이상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생태적 단절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이곳은 대구의 3대 습지인 팔현습지다. 국가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돼 관리되어야 할 중요 습지에 어처구니없는 '삽질'이 예고되고 있는 것이다.
 
a

수달을 기다리며 만난 물잠자리.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a

수달을 기다리며 만난 오목눈이.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a

금호강엔 지금 엄청나게 많은 소금쟁이들이 활보를 하고 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팔현습지는 완전한 야생의 영역이다. 이곳은 야생의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대구의 마지막 세렝게티다. 이런 곳은 더 이상 건드려서는 안된다. 야생과 공존을 위해서는 말이다. 강 좌안은 야생의 영역이고 강 우안은 사람 사는 공간으로 사람의 영역이다.

우안은 개발이 잘 이루어져 있다. 그렇다면 좌안 야생의 영역을 지금처럼만 그대로 두면 인간과 야생이 충분히 공존할 수 있다. 대구의 세렝게티를 그대로 보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보도교 삽질은 재고되어야 한다. 반드시"


필자가 팔현습지를 찾는 이들에게 팔현습지를 안내하면서 마지막에 늘 하는 말이다. 과연 이 사업은 재고될 수 있을까?

그런데 이 보도교 사업의 주체는 환경부다. 이런 야생의 세렝게티에 환경부가 삽질이라니, 오호통재라! 환경부의 각성을 바라볼 뿐이다.
 
a

인공으로 지어진 수달의 굴. 그러나 이곳엔 수달의 흔적이 전혀 없다. 야생은 인공이 아닌 자연을 원한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덧붙이는 글 기자는 대구환경운동연합 활동가입니다 .
#금호강 #팔현습지 #수달 #낙동강유역환경청 #환경부
댓글4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산은 깎이지 않아야 하고, 강은 흘러야 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의 공존의 모색합니다. 생태주의 인문교양 잡지 녹색평론을 거쳐 '앞산꼭지'와 '낙동강을 생각하는 대구 사람들'을 거쳐 현재는 대구환경운동연합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세계에서 벌어지는 기현상들... 서울도 예외 아니다
  2. 2 세계 정상 모인 평화회의, 그 시각 윤 대통령은 귀국길
  3. 3 돈 때문에 대치동 학원 강사 된 그녀, 뜻밖의 선택
  4. 4 [단독] 순방 성과라는 우즈벡 고속철, 이미 8개월 전 구매 결정
  5. 5 신장식 "신성한 검찰 가족... 검찰이 김 여사 인권 침해하고 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