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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국군 무명 용사의 초라한 무덤(1950. 7. 5.).
 한 국군 무명 용사의 초라한 무덤(1950. 7. 5.).
ⓒ NARA, 눈빛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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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지함으로 온 메일

교학사 역사 교과서에 실린 '학도병 이우근' 사진과 관련해 '5개월 전에 죽은 학도병, 누가 그를 환생시켰나' 기사가 나간 다음날 아침, 오마이뉴스 내 쪽지함에는 아래 글이 도착했다.

제목; 자랑스러운 외삼촌 학도병 이우근

안녕하십니까? 저는 학도병 이우근의 조카 곽 아무개(본인 요청)입니다. 저는 어머니의 하나뿐인 남동생 이우근에 대하여 어렸을 때부터 많이 듣고 자랐습니다. 특히 저는 외할머니와 같이 살았는데, 당신 생전에 4남매 중 막내인 외삼촌이 학도병으로 돌아가신 데 대해 매우 자랑스러워 하시면서도 한편 대단히 가슴 아파하셨습니다.

어느 부모나 마찬가지겠지만, 외할머니는 한평생 막내아들을 가슴에 묻고 사셨습니다. 근현대사 가운데 일제강점기, 6·25전쟁, 월남파병 등을 겪으면서 그때 돌아가신 분 가족들의 통한은 겪지 않은 이는 잘 모를 것입니다. 저는 이 역사의 굴곡기에 비명으로 가신 분들 부모의 아픔 마음을 곁에서 보고 자랐기에 잘 압니다. 그분들은 가슴에 묻은 자식이 가장 똑똑하고, 살았다면 집안의 기둥이 되었을 거라고 믿으며, 그것을 위안으로 삼으셨습니다.

제가 이번 교학사 역사 교과서 왜곡사건에 대한 언론보도를 접하면서 저에게까지 불똥이 튈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저는 이번 사태에 울분을 금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역사에 대한 바른 생각과 개념도, 책임감도 없는 집필자와 무성의한 출판사 때문입니다.

제가 이 글을 선생님께 올리는 이유는 이런 보도를 접한 일부 국민들의 뇌리에 외삼촌의 고귀한 희생이 왜곡될 것 같은 염려 때문입니다. 그래서 간곡히 부탁드리는 것은 학도병들의 거룩한 희생을 일반 국민들에게 널리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저는 학도병일기에 나온 제 외삼촌이 비록 적이지만 인민군을 죽이고 죄책감을 느끼는 휴머니즘에 크게 감동하였습니다. 그 일기의 한 구절이 떠오릅니다.

"어머니, 저는 꼭 살아서 어머님 곁으로 가겠습니다.
상추쌈이 먹고 싶습니다.
찬 옹달샘에서 이가 시리도록
차가운 냉수를 들이켜고 싶습니다."

저는 외삼촌의 이 절규를 들으며, 다시 한번 이번 교학사 사진 건은 매우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어린 나이에 조국을 위해 산화한 학도병 이우근의 순수한 명예를 위해서라도 이런 왜곡된 사진 게재는 반드시 시정돼야 할 것입니다. 

앞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했을 때 학도병들처럼 자기를 희생할 수 있는 많은 후손들이 나올 수 있도록 선생님의 좋은 글 주제 넘게 부탁 올립니다. 선생님, 늘 건강하시고, 좋은 일만 있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313쪽 '학도병 이우근' 편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313쪽 '학도병 이우근' 편
ⓒ 도종환 의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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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아진 세상

나는 쪽지함의 메일을 읽으며 새삼 정보가 빠르고, 참 세상은 좁아졌다는데 놀랐다. 몇 해 전 고교 졸업 후 30여년 동안 만나지 못한 친구 얘기를 인터넷에 올리자 두 시간 만에 알았고, 그 친구의 유일한 혈육인 조카 가족이 당시 내가 살았던 안흥찐빵마을까지 찾아온 적도 있었다.

쪽지 감사합니다. 저도 학도병의 훌륭한 희생은 조금 알고 있습니다. 적절한 때 그분들의 이야기를 써보겠습니다. 박도 올림.

나는 기사에 기명 여부를 묻고자 전화를 했더니 한 아가씨가 전화를 받으며 "전무님은 지금 회의 중이십니다"라고 했다. 두어 시간 후 곽 아무개 씨가 나에게 전화를 했다.

"교학사출판사에서 여름에 돌아가신 외삼촌에게 겨울옷 입은 사진을 올려놓은 것을 보고 눈이 뒤집혀지는 충격과 치솟는 울분에 선생님에게 쪽지를 보냈습니다. 정말 우리나라 역사학자나 출판사들 그리고 관계 공무원들 한심합니다. 아이들 교과서 가지고 이렇게 장난치다니 말이나 되는 얘깁니까?"

교학사가 학도병 이우근이라고 무단 게재한 문제의 사진으로 겨울철 국군의 동복 차림이다. 이 사진의 촬영일자는 1951년 1월 5일로, 이우근 학도병의 전사 5개월 뒤다.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교학사가 학도병 이우근이라고 무단 게재한 문제의 사진으로 겨울철 국군의 동복 차림이다. 이 사진의 촬영일자는 1951년 1월 5일로, 이우근 학도병의 전사 5개월 뒤다.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 NARA, 눈빛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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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이즈음 나는 장편소설 <어떤 약속>을 연재한다고 책상 위에 한국전쟁 관련 참고도서를 수북이 쌓아두고 있다. 나는 그 책 가운데서 언젠가 읽은 적이 있는 '학도병의 편지' 부분을 찾아 다시 읽었다.

학도병의 편지

어머니에게 쓴 부치지 못한 편지
- 1950년 8월 11일 포항여중 전투에서 전사한 '이우근 학도병'의 수첩에서

1950년 8월10일 쾌청

어머니, 저는 사람을 죽였습니다.
수류탄이라는 무서운 폭발무기를 던져
일순간에 죽이고 말았습니다.
어머니,
적은 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팔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아무리 적이지만
그들도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더욱이 같은 언어와 같은 피를 나눈
동족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하고 무겁습니다.
어머니,
전쟁은 왜 해야 하나요?
이 복잡하고 괴로운 심정을
어머니께 알려드려야 제 마음이 가라앉을 것 같습니다.
저는 무서운 생각이 듭니다.
지금 제 옆에는 수많은 학우들이 죽음을 기다리는 듯
적이 덤벼들 것을 기다리며 뜨거운 햇볕 아래 엎드려 있습니다.
적병은 너무나 많습니다.
우린 겨우 71명입니다.
이제 어떻게 될 것인지를 생각하면 무섭습니다.
어제 저는 내복을 손수 빨아 입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내복을 갈아입으며
왜 수의(壽衣)를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어머니,
어쩌면 제가 오늘 죽을지도 모릅니다.
저 많은 적들이
그냥 물러갈 것 같지는 않습니다.
어머니,
죽음이 무서운 게 아니라
어머님도 형제들도 못 만난다고 생각하니
무서워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살아가겠습니다.
꼭 살아서 가겠습니다.
어머니, 이제 겨우 마음이 안정되는군요.
어머니, 저는 꼭 살아서 어머님 곁으로 가겠습니다.
상추쌈이 먹고 싶습니다.
찬 옹달샘에서 이가 시리도록
차가운 냉수를 들이켜고 싶습니다.
아! 놈들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어머니 안녕! 안녕!
아, 안녕은 아닙니다.
다시 쓸 테니까요.
그럼….

- 정명복 지음, 집문당 <잊을 수 없는 생생 6.25전쟁사> 170~171쪽

이 편지의 주인공은 서울 동성중학교 3학년으로 재학 중에 한국전쟁에 참전하여 1950년 8월 11일 포항여중 앞 벌판에서 전사한 이우근 학도병이다.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

나는 어린 시절부터 어른들에게 들은 얘기로 6·25전쟁 당시 이 땅의 젊은이들은 남과 북 어느 편 군대에 가담치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그때 북한 인민군에 붙잡히면 의용군이 되었고, 경찰이나 국군에 붙잡히면 학도병이나 국군이 되었다고 했다. 실제로 내가 만난 고향의 한 아저씨는 의용군과 국군으로 한때는따발총을, 나중에는 엠원소총을 들었다는 체험담도 몰래 들려주기도 했다.

따발총
 따발총
ⓒ 한 재미동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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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원소총
 엠원소총
ⓒ 한 재미동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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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제까지 공부하고 느낀 바, 우리가 이민족에게 나라를 빼앗기거나 조국이 분단된 그 일차 원인은 바로 우리 내부에 있었다. 곧 지도층의 부정부패와 우리나라 백성 대다수가 역사에 대한 무지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꿰뚫는 안목이 없었던 탓이었다. 곧 외세를 끌어다가 동족 위에 군림한 것을 부끄러워 할 줄 모르는 게 그 단적인 예이다.

영국의 역사학자 E. H. 카는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말했다. 과거없는 현재가 있을 수 없고, 현재없는 미래 또한 없을 것이다.

우리 아이들의 역사교과서는 진실하고 정확해야 한다. 그래야 그들이 바른 역사관을 가지고 현실을 바로 본 뒤 나라와 겨레의 불행을 단절시키거나 미리 예방할 것이다.

우리는 언제까지 인문이 죽어버린, 동족간 총부리를 겨누는 이 야만시대에 서로 헐뜯고, 편을 가르며, 살벌하게 살아야 하나….

이번 교학사 사태는 몰역사적인 아주 불순한 집단의 교묘한 우민화정책으로 보인다. 이러다가 나라와 겨레가 망하면 그제야 통곡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관계 당국은 들불 같은 민심의 분노가 일어나기 전에 불씨를 꺼라. 사후 약방문이 되지 않게 관계자의 맹성과 민심을 존중하는 결단을 보여라. 이 나라가 민주주의 국가라면….

삼가 학도병 이우근 님의 명복을 빕니다.


태그:#교학사,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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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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