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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313쪽.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313쪽.
ⓒ 교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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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통의 전화... '학도병 이우근' 사진을 보는 순간

나는 강원도에 살고 있다. 오늘 아침, 같은 한국작가회의 회원으로 평소 친분이 있는 도종환 의원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그 요지는 교학사 313쪽에 수록된 '학도병 이우근'의 사진에 대한 질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교과서를 보지 못한 상태이기에 답변하기가 조심스럽다고 말하면서 그 부분만이라도 스캔하여 보내주면, 이를 확인한 다음 그에 대해 정확한 답변을 하겠다고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한 시간 뒤쯤 도종환 의원은 문제의 교과서를 스캔하여 메일로 보냈다. 나는 교과서에 수록된 '학도병 이우근'의 사진을 보는 순간, 무척 낯익은 사진임을 알아챘다. 그 사진은 내가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서 애써 찾은 사진 가운데 한 장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좀 더 확실한 출처를 알고자 책장 깊이 갈무리해 둔 그때의 자료를 모두 꺼내 살펴보았다.

2004, 2005, 2007년 세 차례 미국 메릴랜드 주 칼리지파크에 있는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 가서 70여 일간 한국전쟁 사진을 검색해 온 바가 있다. 그때 1차 578컷, 2차 794컷, 3차 584컷 모두 1956컷을 수집해 온 바, 이 가운데는 미국 버지니아 주 노퍽에 있는 맥아더기념관에서 검색 입수한 사진도 100컷도 포함되어 있다. 방미 후 귀국해서 이들 사진으로 <지울 수 없는 이미지> 시리즈로 세 권을 엮은 바 있고, 최근에는 <한국전쟁·Ⅱ>라는 제목으로 이들 사진을 집대성해 펴냈다(최근에는 그때 이야기를 '어떤 약속'이라는 소설로 <오마이뉴스>에 연재하고 있다).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 박유종 선생 도움 받아 수집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 5층 사진자료실에서 한국전쟁 사진 한 장 한 장을  검색한 뒤 토의하며 수집하다(왼쪽 박유종 선생과 오른쪽 기자)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 5층 사진자료실에서 한국전쟁 사진 한 장 한 장을 검색한 뒤 토의하며 수집하다(왼쪽 박유종 선생과 오른쪽 기자)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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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이나 맥아더기념관에는 한국전쟁 사진이 엄청 많았다. 그래서 나는 그 가운데 역사적 자료가 될 만한 사진을 고른 뒤, 동행한 박유종(임정 박은식 대통령 손자) 선생이 일일이 영문 캡션을 번역해 주면 다시 사진을 보면서 수집 여부를 확정한 다음, 스캔하여 내 노트북에 저장해 왔다.

그 사진 한 장 한 장에는 수집한 까닭과 그에 대한 기록을 모두 메모해 두었다. 박유종 선생은 대역사가의 손자답게, 나는 한 기록자로 후세에 남긴다는 신념으로 그렇게 사진 한 장 한 장을 가려왔던 것이다. 

문제가 된 이 사진은 2004년 2월 12일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 사진 자료실에서 찾았는데, 그날 우리가 검색한 사진은 한국전쟁 관련 문서상자 186, 192, 195, 201 네 상자를 열어봤기에 이 사진은 그 가운데 담겨 있었다. 그날 박 선생님이 번역해 준 이 사진(89) 영문 캡션은 다음과 같았다.

"신발, 겉옷, 모자; 한국제. 코트, 무기(M1소총), 탄알 미제."

문제의 89번 사진: 한 국군의 차림으로 신발, 겉옷, 모자는 한국제이고, 코트와 무기(M1소총) 그리고 실탄은 미제다(1951. 1. 5.).
 문제의 89번 사진: 한 국군의 차림으로 신발, 겉옷, 모자는 한국제이고, 코트와 무기(M1소총) 그리고 실탄은 미제다(1951. 1. 5.).
ⓒ NARA, 눈빛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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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설명을 들으며 이 사진을 보았다. 총도, 옷도 국군의 몸에 맞지 않을 뿐더러 이것이 바로 그 무렵 우리 국군의 처지라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에 굳이 수집해 왔던 것이다. 그때 내가 이 사진을 수집하게 된 동기는 당시 우리 국군은 작전권도 없이 유엔군 소속으로 미군들이 제공한 무기로 싸웠기에 그 모습을 기억하고 싶었다. 북한 인민군 역시 소련제 탱크나 소총으로 무장하여, 같은 겨레끼리 서로 한 하늘 아래 살수 없는 원수처럼 대판 싸웠다. 이를 알고 있는 나는 한 작가의 양심으로, 한 핏줄인 남·북한 병사가 남의 나라 무기를 들고 서로 싸운다는 것을 역사에 실증으로 남기고자 이 사진을 수집해 왔던 것이다.

전사 5개월 후 사진을 찍었다고?

한국전쟁 사진설명 원본
 한국전쟁 사진설명 원본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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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의 영문 캡션에는 분명히 사진 촬영일자가 1951년 1월 5일로 되어있었다. 영문 캡션은 오역이 있을 수 있지만, 이 사진 촬영 날짜만은 오역할 수 없다. 영문은 서툴지만, 그래도 아리비아 숫자는 확실히 알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기록에 따르면 이우근을 비롯한 학도병 48명은 1950년 8월 10일부터 이튿날 11일까지 모두 전사했다고 한다. 아무리 신출귀몰하는 종군사진작가일지언정 그때 돌아가신 이분을 그 이듬해 추운 겨울날 동복을 입혀 사진 촬영을 할 수 있을까?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 앞에 선 박유종 선생, 임시정부 박은식 대통령 막내손자시다.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 앞에 선 박유종 선생, 임시정부 박은식 대통령 막내손자시다.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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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나는 '백범 김구 암살자와 추적자'를 쓰고자 백범기념관에 가서 홍소연 자료실장에게 관련 자료를 물은 뒤 모두 대출해 온 적이 있었다. 그때 홍소연 실장은 이런 일화를 들려줬다.

"최근 독일대사관에서 백범 관련 사실을 문의해 온 바, 한 독일출판사가 백범에 관한 기술을 한 뒤, 이를 주한 대사관으로 팩스를 보내고는 백범기념관 관계자에게 자기들의 기록이 사실과 부합하는지 주한독일대사관 직원이 문의해와, 제가 검토 확인해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학자나 작가, 언론인들은 국내에 있는 자료조사도, 사실관계 확인도 소홀한 면이 많습니다. 문화선진국은 뭔가 다르더군요."

사실 이 사진은 2004년 2월 20일 <오마이뉴스> '사진으로 보는 한국전쟁(4)'에 이미 실렸고, 눈빛출판사 발간 <지울 수 없는 이미지> 1권 84쪽과 <한국전쟁·Ⅱ> 237쪽에 사진설명과 함께 날짜까지 정확히 기록하여 출판했다.

고인에 대한 모독

나는 이 사진을 실은 교학사출판사와 편집자 그리고 이를 감수한 분이 이 사진을 입수한 경위와 이를 '학도병 이우근'으로 단정한 까닭과 이를 교과서에 게재한 경위에 대한 솔직한 해명을 해주기 바란다. 이에 대한 명확한 답변을 하지 못한다면 이는 '학도병 이우근'님의 거룩한 희생에 대한 심대한 모독이요, 한 지성인으로서 양심을 의심치 않을 수 없다.

내가 이 글을 쓰기 전에 사전에서 '교과서'를 찾아보았다.

1. 학교에서 교과과정에 따라 주된 교재로 사용하기 위하여 편찬한 책.
2. 해당 분야에서 모범이 될 만한 사실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이런 교과서를 아무렇게나 '대충대충' 만들었거나 역사교과서를 집필했다면 실망감이 말이 아닐 것이다. 도서관에 가서 관련 책자 한번 뒤져보면 이런 실수를 하지 않을 텐데 그 많은 연구비는 어디에 쓰는 것일까? 그저 이런 무성의에다 기본도 안 된, 게으른 출판사와 역사학자가 교과서를 만들다니, 그저 어린 학생들에게 부끄러워 낯을 들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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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년 교사생활 후 원주에서 지내고 있다. 장편소설 <허형식 장군> <약속> <용서>, 역사다큐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사진집<지울수 없는 이미지> <한국전쟁 Ⅱ> <일제강점기> <개화기와 대한제국> <미군정 3년사>, 어린이 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 <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 <독립운동가, 청년 안중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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